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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禪師들의 禪詩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의 禪詩(선시) (21)~(30)

by 산산바다 2022. 11. 4.

산과바다

圓鑑國師(원감국사) 탑비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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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선시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 (1226~1292)禪詩 (21)~(30)

 

 

圓鑑國師, 圓鑑沖止, 釋圓鑑(원감국사, 원감충지, 석원감) (1226~1292. 高麗 . 俗名 魏元凱. 本貫 長興. 諡號(시호) 圓鑑國師. 定安 <現在長興人. 처음 法名法桓. 沖紙. 自稱 號宓庵이라 함)

 

*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2)

고려시대 선승(禪僧). 수성사(修禪社) 6(). 성은 위(). 속명은 원개 (元凱). 본래의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 자호는 복암(宓庵). 전 라남도 장흥출신.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호소(號紹)이며, 어머니 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선림(禪林) 에 나아가 득도하기를 원하였지만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관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였 는데, 이는 항상 도를 얻고자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닌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1266(원종 7) 여름에 원오국사의 교유(敎諭)와 조지(朝旨)로 인하여 부득이 경상남도 김해군의 감로사(甘露寺) 의 주지가 되었다. 1269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 로사를 떠나 승주군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보조국사(普 照國師)로부터 시작된 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선 ()보다는 교()에 치중하였다.

128311월에는 대중을 거느리고 조계산을 출발하여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 장경을 도중에 맞이하여 나누어 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 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수선사를 떠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 로 옮겨 선정을 닦고 있던 중 12862월에 원오국사가 그를 수선사의 사주 (社主)로 추천하는 장문(狀聞)을 왕에게 올리고 입적하였다. 장문을 받은 충 렬왕은 원외시랑(員外侍郞) 김호담(金浩淡)을 시켜 그로 하여금 616일에 개당(開堂)하게 함에 따라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불교의 삼장(三藏)에 이 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사림(詞林)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과 시는 당대의 유림에서도 추앙을 받았다. 도를 닦음에 있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오 조(五祖) 홍인(弘忍)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파강이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부 끄러워하였지만,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선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사(儒士)들처럼 천 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조화(儒禪調和)의 사상조류를 보였고, 상제상 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도이교(儒道二敎)를 불교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 풍(宗風)을 계승하였다.

1292110일 삭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문인 (門人)들에게 "생사(生死)가 있는 것은 인생의 일이다. 나는 마땅히 가리니 너희는 잘 있거라."는 말을 남겼다. 정오가 지나자 분향하고 축원을 올린 뒤 선상(禪床)에 앉아 '설본무설(說本無說)'이라 설하고, 문인들이 청하는 바에 따라 "돌아보니 세상살이 67년인데, 오늘 아침 모든 일을 마쳤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탄연하여 평탄하고, 노두가 분명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손에는 겨우 하나의 대지팡이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피로하지 않을 것이 또 한 기뻐라(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未曾失 手中裳有一枝 且喜途中脚不倦)."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랍 39세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21) 山居(산거) : 산속에서 살며

 

蔘差殿閣倚雲根 ~ 크고 작은 殿閣(전각)들 구름 끝에 依支해있고

日晏林間尙掩門 ~ 날이 밝아도 숲 사이에 아직도 이 닫혔다.

山近翠嵐朝入座 ~ 이 가까워 푸른 氣運 아침마다 자리에 들고

川廻白氣夜侵軒 ~ 시냇물 굽이쳐 서리 氣運 밤에 欄干을 덮친다.

養松爲愛猿猴掛 ~ 소나무 길러 원숭이 매달림 사랑하고

鍾竹從敎鳥雀暄 ~ 대나무 심어 새소리 들리지 않게 한다.

我不遠人人自遠 ~ 내가 사람을 멀리 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멀어져

㗳然孤坐度晨昏 ~ 우두커니 외로이 앉아 아침저녁 보내네.

 

 

 

(22) 山居暮春卽事(산거모춘즉사) : 에 살면서 늦은 봄날에

 

節屬三春暮 ~ 석 달 봄이 끝나갈 무렵

風和物色齊 ~ 바람도 溫和하고 萬物도 모두 푸르네.

早鶯初出谷 ~ 때 이른 鸚鵡(앵무)새 처음으로 골짜기에 나오고

新燕已銜泥 ~ 새로 온 제비는 이미 진흙을 입에 물었네.

雲羃山屛暗 ~ 구름 덮이자 屛風같은 어두워지고

煙籠樹幄低 ~ 안개 둘러싸니 나무들이 揮帳처럼 늘어졌구나.

巖華紅馥馥 ~ 바위틈에 핀 붉은 꽃은 香氣 더욱 짙고

庭草碧萋萋 ~ 마당에 난 푸른 풀은 무성하고 무성하구나.

雨歇鳩呼婦 ~ 비 그치자 비둘기는 짝을 부르고

林深鹿養麛 ~ 깊은 숲엔 사슴이 새끼를 기르는 모습.

睡餘聊散步 ~ 한잠 자고 나서 散步를 하였더니

日在小窓西 ~ 해는 벌써 작은 窓門 西쪽에 있네.

 

 

 

(23) 山中樂(산중악) : 山中의 즐거움

初出家住白蓮庵時作 : 처음 出家하여 白蓮庵에 있을 때 지음

 

山中樂 ~ 山中의 즐거움이여

適自適兮養天全 ~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타고난 온전함을 기르리라.

林深洞密石逕細 ~ 숲이 깊고 골짜기는 빽빽하고 돌길은 좁은데

松下溪兮岩下泉 ~ 소나무 아래에는 시냇물이요, 바위 아래에는 샘물이로다.

春來秋去人跡絶 ~ 봄이 오고 가을이 가도 인적이 없으니

紅塵一點無緣 ~ 世俗의 번뇌와는 조금도 련관이 없네.

飯一㿻蔬一盤 ~ 밥 한 그릇 나물 한 접시

飢則食兮困則眠 ~ 배고프면 먹고 疲困하면 잠자네.

水一缾茶一銚 ~ 물 한 甁 茶 ()

渴則提來手自煎 ~ 목마르면 가져와서 손수 끓이네.

一竹杖一蒲團 ~ 대지팡이 하나 方席 하나

行亦禪兮坐亦禪 ~ 다닐 때도 參禪 앉아서도 參禪이라.

山中此樂眞有味 ~ 山中의 이 즐거움 참으로 재미있으니

是非哀樂盡忘筌 ~ 옳고 그름과 슬프고 즐거움 모두 다 잊네.

山中此樂諒無價 ~ 山中의 이 즐거움 참으로 값이 없으니

不願駕鶴又腰錢 ~ 을 타고 神仙이 되어 허리에 돈까지 차는 치 않네.

適自適無管束 ~ 拘碍됨이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니

但願一生放曠 ~ 一生동안 마음대로 하면서 平生을 마치고 싶을 뿐.

 

* 終天年 : 神仙이 되어 을 타고 昇天하는 일과 富者가 되어 허리에 돈을 차는 것은 大槪 人間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며, 이 둘을 한 꺼번에 하는 것은 最高의 바람이다.

 

 

 

(24) 禪餘得句書示同袍(선여득구서시동포) : 參禪하고 나서 얻은 句節同僚들에게 보임

 

塵刹都盧在一庵 ~ 티끌같이 많은 世界 庵子 속에 다 들었으니

不離方丈遍詢南 ~ 方丈室(방장실)을 떠나지 않고 쪽을 두루 돌았네.

善財何用勤劬甚 ~ 善財童子는 무엇하러 苦生하면서

百十城中枉歷參 ~ 百 個을 두루 다녔던가.

 

 

 

(25) 山中春日(산중춘일) : 산중의 봄날

 

人間炎熱正紛然 ~ 인간세상 炎凉世態 분분하나

氷谷尋常獨獵天 ~ 얼음 골짜기엔 늘 섣달의 날씨.

若使東君隨世態 ~ 봄의 世態에 따르게 한다면

肯敎春暖到山巓 ~ 따뜻한 봄 꼭대기에 오게 하리라.

 

 

 

(26) 西原道俗 出城泣送 感而有作(서원도속 출성읍송 감이유작) : 西原의 스님과 信徒들이 밖까지 나와 눈물로 배웅하기에 느낌이 있어 짓다

 

大都餞客意難平 ~ 큰 고을에서 손님 전송에 마음 편치 못함은

爲有從前繾綣情 ~ 예전부터의 曲盡(곡진)다움 때문이네.

底事滿城緇與白 ~ 어찌하여 온의 스님과 信徒들이

一時揮涕送吾行 ~ 一時에 눈물 뿌리며 날 보내나?

 

 

 

(27) 書情(서정) : 마음속의 생각을 적다

 

得辭鷄嶺樂何如 ~ 계령을 떠나니 즐거움이 어떠한가?

政似嬴牛卸角駄 ~ 정말 허약한 소가 짐 내려놓은 듯하도다.

昨夜枕前風一陣 ~ 어제 밤 베개 앞 한 바탕 바람

已吹歸夢到楞伽 ~ 이미 돌아갈 꿈을 불어 楞伽山에 이르렀도다.

 

 

 

(28) 惜春吟(석춘음) : 봄이 아쉬워 부르는 노래

 

春風大無情 ~ 봄바람은 너무도 無情하여

棄去不我顧 ~ 버리고 떠나 날 돌아보지 않는다.

垂楊徒有絲 ~ 한갓 실처럼 늘어진 수양버들

曾不解繫駐 ~ 歲月을 묶어 머물게 할 줄 모른다.

紅桃怨春歸 ~ 붉은 복숭아 가는 봄 怨望하여

朝來空泣露 ~ 아침이면 부질없이 이슬처럼 운다.

山鳥亦哀呼 ~ 새도 哀絶히 불러대며

似欲向人訴 ~ 사람 呼訴하는듯하여라.

幽懷無以寫 ~ 그윽한 懷抱 표현할 수 없어

細履繞園圃 ~ 가벼운 걸음 동산을 돌아다닌다.

群芳掃以盡 ~ 온갖 꽃 이미 다 쓸어버리고

綠葉滿林樹 ~ 푸른 잎은 온 숲을 가득 채운다.

春歸也任歸 ~ 가는 봄이야 가는 대로 두지만

爭奈催衰暮 ~ 늙고 쇠약함 재촉하니 어찌해야 하나.

人生宇宙間 ~ 人生宇宙에 태어났으니

何異暫羈寓 ~ 暫時(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무엇이 다른가.

置之不用悲 ~ 그만 두어라, 슬퍼할 필요 없으니

代謝固有數 ~ 오고 감의 뒤바뀜 眞實理致가 있다.

聊乘化歸盡 ~ 에오라지 造化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니

姑以信天賦 ~ 짐짓 天賦性品을 믿을 수밖에 없어라.

 

 

 

(29) 惜花吟(석화음) : 지는 꽃을 아쉬워하며

 

臘月念六初入郭 ~ 臘月 二十六 日에 처음으로 에 들어

轉頭春已七十有三日 ~ 머리 돌리는 사이 봄은 이미 七十이요 사흘이네.

去年今年同逝川 ~ 지난해나 올해도 물처럼 흘러가고

昨日今日甚奔馹 ~ 어제도 오늘도 역말처럼 달려가네.

昨日看花花始開 ~ 어제 꽃을 보매 꽃이 처음 피더니

今日看花花欲落 ~ 오늘 꽃을 보매 꽃이 지려 하는구나.

花開花落不容惜 ~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아낄 겨를도 없고

春至春歸誰把捉 ~ 봄이 왔다 가는 것 누가 잡을 것인가.

世人但見花開落 ~ 世上 사람은 다만 꽃이 피고 지는 것만 보고

不知身與花相若 ~ 제 몸이 저 꽃과 같은 줄은 모르네.

君不見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朝臨明鏡誇紅顔 ~ 아침에 거울 앞에서 젊은 얼굴 자랑하다가

暮向北邙催紼翣 ~ 저녁에는 北邙(북망)紼翣(불삽)을 재촉하는 것을

須信花開花落時 ~ 모름지기 믿어라 꽃이 피고 질 때에

分明說箇無常法 ~ 그것은 分明 無常을 말하는 것이니라.

 

* 紼翣(불삽) : 發靷 때에, 喪輿의 앞뒤에 세우고 가는 祭具.

 

 

 

(30) 雪中作苦寒詩 寄韓平陽謝(설중작고한시 기한평양사) : 눈 속에서 고한시를 지어 한 평양사기에게 부치다

 

雪厭山堂冷似氷 ~ 눈 덮인 庵子는 얼음같이 찬데

坐來寒涕輒垂膺 ~ 앉아 있자니 갑자기 차가운 눈물이 가슴에 떨어지네.

何時造化廻春暖 ~ 언제나 봄 돌아와 따뜻하게 되려나

空歎天工不我矜 ~ 하늘이 無心하다고 空然歎息하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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