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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의 禪詩(선시) (41)~(50)

by 산산바다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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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선시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 (1226~1292)禪詩 (41)~(50)

 

 

圓鑑國師, 圓鑑沖止, 釋圓鑑(원감국사, 원감충지, 석원감) (1226~1292. 高麗 . 俗名 魏元凱. 本貫 長興. 諡號(시호) 圓鑑國師. 定安 <現在長興人. 처음 法名法桓. 沖紙. 自稱 號宓庵이라 함)

 

*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2)

고려시대 선승(禪僧). 수성사(修禪社) 6(). 성은 위(). 속명은 원개 (元凱). 본래의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 자호는 복암(宓庵). 전 라남도 장흥출신.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호소(號紹)이며, 어머니 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선림(禪林) 에 나아가 득도하기를 원하였지만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관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였 는데, 이는 항상 도를 얻고자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닌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1266(원종 7) 여름에 원오국사의 교유(敎諭)와 조지(朝旨)로 인하여 부득이 경상남도 김해군의 감로사(甘露寺) 의 주지가 되었다. 1269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 로사를 떠나 승주군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보조국사(普 照國師)로부터 시작된 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선 ()보다는 교()에 치중하였다.

128311월에는 대중을 거느리고 조계산을 출발하여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 장경을 도중에 맞이하여 나누어 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 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수선사를 떠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 로 옮겨 선정을 닦고 있던 중 12862월에 원오국사가 그를 수선사의 사주 (社主)로 추천하는 장문(狀聞)을 왕에게 올리고 입적하였다. 장문을 받은 충 렬왕은 원외시랑(員外侍郞) 김호담(金浩淡)을 시켜 그로 하여금 616일에 개당(開堂)하게 함에 따라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불교의 삼장(三藏)에 이 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사림(詞林)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과 시는 당대의 유림에서도 추앙을 받았다. 도를 닦음에 있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오 조(五祖) 홍인(弘忍)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파강이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부 끄러워하였지만,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선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사(儒士)들처럼 천 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조화(儒禪調和)의 사상조류를 보였고, 상제상 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도이교(儒道二敎)를 불교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 풍(宗風)을 계승하였다.

1292110일 삭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문인 (門人)들에게 "생사(生死)가 있는 것은 인생의 일이다. 나는 마땅히 가리니 너희는 잘 있거라."는 말을 남겼다. 정오가 지나자 분향하고 축원을 올린 뒤 선상(禪床)에 앉아 '설본무설(說本無說)'이라 설하고, 문인들이 청하는 바에 따라 "돌아보니 세상살이 67년인데, 오늘 아침 모든 일을 마쳤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탄연하여 평탄하고, 노두가 분명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손에는 겨우 하나의 대지팡이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피로하지 않을 것이 또 한 기뻐라(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未曾失 手中裳有一枝 且喜途中脚不倦)."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랍 39세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41) 嶺南艱苦狀二十四韻(영남간고상이십사운) : 苦生하는 嶺南地方의 모습

庚辰年造東征戰艦時作(1280年 元나라가 日本征伐하기 戰艦을 만들 때 지었다)

 

嶺南艱苦狀 ~ 嶺南苦生하는 모습

欲說涕將先 ~ 말하려니 눈물부터 앞서네.

兩道供軍料 ~ 에선 軍粮米

三山造戰船 ~ 三山에선 戰船 製造.

征徭曾百倍 ~ 賦稅(부세)百 倍 더하고

力役亘三年 ~ 勞役三 年이나 계속되네.

星火徵求急 ~ 星火같이 급한 세금 징수

雷霆號令傳 ~ 벼락같이 號令 내리네.

使臣恒絡繹 ~ 使臣恒常 이어지고

京將又聯翩 ~ 서울 將軍 줄 지었네.

有臂皆遭縛 ~ 있는 대로 팔 묶이고

無胰不受鞭 ~ 온 등줄기에 채찍질.

尋常迎送慣 ~ 늘 맞이하고 보내며

日夜轉輸連 ~ 밤낮으로 수송이 이어지네.

牛馬無完脊 ~ 소나 말은 온전한 등이 없고

人民鮮息肩 ~ 百姓 어깨 쉴 새 없어.

凌晨採葛去 ~ 이른 새벽 칡을 캐고

踏月刈茅還 ~ 달빛 밟으며 띠풀 베네.

水手驅農畝 ~ 漁夫들은 논두렁으로 내몰리고

梢工卷海堧 ~ 木手는 바닷가를 뒤덮었네.

抽丁擐甲冑 ~ 머슴을 뽑아서 옷을 두르게 하고

選壯荷戈鋋 ~ 장정을 뽑아서 창을 둘러메게 하였네.

但促尋時去 ~ 다만 한시 바삐 가길 재촉만 하니

寧容寸刻延 ~ 어찌 촌각인들 지체함을 용납하랴!

妻孥啼躄地 ~ 妻子는 땅을 치며 울부짖고

父母哭號天 ~ 父母는 하늘을 부르짖으며 통곡을 하네.

自分幽明隔 ~ 삶과 죽음이 서로 갈라져 있는데

那期性命全 ~ 목숨 부지하길 어찌 기약하리.

孑遺唯老幼 ~ 남은 자는 늙은이와 어린이뿐

强活尙焦煎 ~ 억지로 살려하나 속을 태우네.

邑邑半逃戶 ~ 고을마다 반은 도망간 집이요

村村皆廢田 ~ 마을마다 모두가 농사 그만두었네.

誰家非索爾 ~ 어느 집인들 索寞(색막)하지 않으며

何處不騷然 ~ 어느 곳인들 썰렁하지 않을까!

官稅竟難免 ~ 관청의 세금은 끝내 면하기 어려우니

軍租安可蠲 ~ 군대의 부역인들 어찌 덜 수 있으리?

瘡痍唯日甚 ~ 상처는 날로 심해져 가는데

疲瘵曷由痊 ~ 피로에 지친 몸 어찌 치유되리?

觸事悉堪慟 ~ 일마다 통곡 참으니

爲生誠可憐 ~ 산다는 것 참 가련하다.

雖知勢難保 ~ 형세의 어려움을

爭奈訴無緣 ~ 呼訴할 데도 없구나.

帝德靑天覆 ~ 황제의 덕이 하늘을 덮고

皇明白日懸 ~ 황제의 지혜가 밝은 해와 같아

愚民姑且待 ~ 百姓들이 잠시만 기다리면

聖澤必當宣 ~ 거룩한 恩澤이 널리 퍼지리니

行見三韓內 ~ 그때는 온 나라 안 百姓

家家奠枕眠 ~ 베개 높여 자리라.

 

 

 

(42) 寓居禪石庵觀種竹(우거선석암관종죽) : 禪石庵寓居(우거)하면서 심어놓은 대나무를 보다

 

移植亭亭竹一竿 ~ 옮겨 심은 정정한 대나무 한 줄기

愛看千尺依巖間 ~ 좋아서 바라보니 바위 사이에 자나 된다.

夜來風雨鳴蕭瑟 ~ 지난 밤 비바람에 蕭瑟(소슬)하게 울리니

似泊湘江渭水灣 ~ 瀟湘江(소상강)渭水의 물굽이에 배가 定泊한 듯하다.

 

 

 

(43) 偶書(우서) : 우연히 쓰다

 

邯鄲枕上事荒唐 ~ 邯鄲(감단)의 꿈 이야기야 황당하고

寵辱眞同夢一場 ~ 愛辱一場春夢 인지라

盡道吾能窮此理 ~ 眞理를 깨달았다고는 하나

逢些順境却顚忙 ~ 조금만 順坦(순탄)해도 도리어 허둥댄다.

 

 

 

(44) 偶書(우서) 1 : 우연히 쓰다

 

飄然一葉泛風濤 ~ 나뭇잎 하나 풍랑 속에 떠다니는데

萬扤千搖浪轉高 ~ 천 번 만 번 흔들리고 물결은 갈수록 높아가네.

本自舟中無一物 ~ 本來 배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陽侯惱殺也徒勞 ~ 波濤가 부질없이 애를 쓰누나.

 

 

 

(45) 偶書(우서) 2 : 우연히 쓰다

 

世人終日競奔忙 ~ 世上 사람들 하루 終日 다투어 바삐 달리니

羶蟻灯蛾莫可方 ~ 개미와 부나방도 견줄 수가 없다네.

坐穩那知船底漏 ~ 便安히 앉아서 배 밑이 새는 줄 어찌 알랴

途長猶愛樹陰凉 ~ 갈 길이 먼데도 나무 그늘의 시원함에 빠져 있네.

 

 

 

(46) 偶書問禪者(우서문선자) : 禪僧에게 偶然히 적어 묻다

 

朝來共喫粥 ~ 아침에 함께 () 마시고

粥了洗鉢盂 ~ 마시고 나선 바릿대(鉢盂) 씻는다.

目問諸禪客 ~ 눈짓으로 禪客들에게 묻노니

還曾會也無 ~ 깨달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47) 偶書一絶(우서일절) : 偶然絶句 를 짓다

 

雨餘庭院靜如掃 ~ 비 온 뒤의 뜰은 비로 쓴 뜻 고요하고

風過軒窓凉似秋 ~ 바람이 지난 가는 가을처럼 서늘하다.

山色溪聲又松籟 ~ , 溪谷 물소리, 또 솔바람 소리

有何塵事到心頭 ~ 어떤 世俗의 일이 마음까지 이를까보냐.

 

 

 

(48) 偶閱晉人郭文傳 愛其能外身世 放情於山水間 因敍鄙懷 成 二十八韻 : 진나라 사람 郭文의 전기를 읽다가 그가 世俗을 벗어나 山水 사이에 을 펼쳤던 것을 사랑하여 나의 感懷28으로 적어본다.

 

吾聞昔郭文 ~ 내 듣기를 옛날에 郭文(곽문)이란 사람은

少小愛山水 ~ 어려서부터 山水를 사랑하여

遊歷華山陰 ~ 華山 北地方으로 다니면서

深入窮谷裏 ~ 窮僻(궁벽)진 골짜기로 깊이 들어갔다네.

斬木倚於樹 ~ 木材를 잘라 나무에 걸치고

覆苫作居止 ~ 거적을 덮어 살 곳을 만들었네.

不虞飢與寒 ~ 굶주림과 추위를 걱정하지 않고

但喜山水美 ~ 다만 山水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였네.

孑爾處其中 ~ 홀로 그 속에 있으면서

坐閱十餘祀 ~ 앉아서 십여 년을 지냈네.

于時虎入室 ~ 當時에는 호랑이가 집으로 들어와

害人頗多矣 ~ 사람을 친 적도 많았다지만

而文樂不徹 ~ 그런데도 그는 즐기기를 그만두지 않고

安然傲生死 ~ 便安한 마음으로 生死를 업신여겼네.

文也是俗士 ~ 그는 世俗의 선비인데도

逸想尙如彼 ~ 世俗을 벗어나려는 생각이 그와 같았거늘

嗟哉浮圖人 ~ 아아 佛敎人들은

宜爾反不爾 ~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도 그러하질 못하네.

.圖飽復圖煖 ~ 배부르고 따뜻하길 꾀하여

遊獵意不已 ~ 내달리는 생각 그치지 않고

營營度一生 ~ 끙끙거리며 一生을 지내면서도

竟不知愧恥 ~ 끝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顧予本書生 ~ 생각해 보면 나는 本來 工夫 하던 사람으로

稚齒遊闕里 ~ 어릴 때부터 留學工夫했었지.

名題金牓魁 ~ 科擧壯元으로 及第를 하여

迹厠玉堂士 ~ 玉堂(옥당)學士들과 함께했었지.

當時靑紫意 ~ 當時에 크게 賢達하려던 뜻이

豈止拾芥耳 ~ 어찌 지푸라기 줍는 程度에 그쳤겠는가?

一朝慕獨住 ~ 하루아침에 홀로 있는 것을 그리워하여

棄官如弊屣 ~ 헌신짝처럼 벼슬을 버렸었지.

便欲山水間 ~ 山水 사이에서

翺翔一終始 ~ 한결같은 마음으로 높이 날고자 하였지.

爭奈障根深 ~ 그러나 障碍의 뿌리가 깊음을 어찌 하리오?

難逃業力使 ~ 業力의 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네.

累爲叢席主 ~ 거듭 叢林(총림)의 우두머리가 되어

日與衆人比 ~ 날마다 大衆들과 함께 하다 보니

聞其不堪聞 ~ 차마 듣기 힘든 것을 듣게 되고

視所不欲視 ~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네.

低頭長隱忍 ~ 고개 숙여 오래토록 드러내지 않고 참다 보니

如聾瞽相似 ~ 귀머거리나 소경같이 되어 버렸네.

居然喪初心 ~ 끝내는 처음 마음 잃어버렸으니

念此輒顙泚 ~ 이를 생각하면 곧 이마에 땀이 나네.

旣往雖難追 ~ 이미 지난 일이야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來者猶可企 ~ 앞으로 올 일은 努力할 수 있는 것.

近聞好山中 ~ 近子에 듣자니 좋은 속에

有地平如砥 ~ 땅이 숫돌처럼 平平한 곳이 있다고 하였네.

土肥泉又甘 ~ 땅은 肥沃하고 샘물도 맛있다 하며

窮僻遠塵累 ~ 窮僻(궁벽)한 곳이라 世俗煩惱도 멀리할 수 있다 하네.

逝將結茅茨 ~ 가서 장차 띠집을 지어

於焉寄衰齒 ~ 이에 늙어 쇠약해진 몸을 맡기고자 하였네.

棲息共林麞 ~ 숲 속의 노루와 함께 살고

飮啄同澤雉 ~ 못 가의 꿩과 함께 마시고 쪼면서

生兮樂於斯 ~ 살아서 이렇게 즐기며

死兮埋於此 ~ 죽어서 여기에 묻히리라.

此言如有飾 ~ 이 말에 어떤 꾸밈이 있다면

天遙耳卽邇 ~ 하늘은 멀어도 그 귀는 가까우리라.

 

* 郭文(곽문) : 中國 晋나라 사람으로, 七 年間 벼슬을 하다가 自然이 그리워 辭職하고 남은 平生山水隱居하여 自然을 즐기면서 살았다.

* 玉堂(옥당) : 學述的인 일을 맡아보던 기관으로, 弘文館이라 하기도 하였다.

 

 

 

(49) 偶用雪堂韻示印二禪人(우용설당운시인이선인) : 雪堂을 빌어 를 지어 印二 禪人에게 주다

 

曹溪不獨龍象窟 ~ 曹溪宗單純高僧들의 道場만이 아니니

春晩園林最氣絶 ~ 늦은 봄 동산 숲은 가장 氣品이 있다네.

數枝山茶紅似火 ~ 몇 가지 冬柏꽃은 불처럼 붉고

千樹梨花白於雪 ~ 많은 배꽃들은 흰 눈보다 더 희구나.

 

 

 

(50) 雨中獨坐(우중독좌) : 빗속에 혼자 앉아

 

寂寞山堂雨更幽 ~ 寂寞山堂에 비 내려 더욱 그윽해지고

獨吟誰會我心悠 ~ 혼자 를 읊노니 내 마음 便함을 누가 알까.

林疎未敢容群羽 ~ 숲이 성그니 뭇 새의 날개 짓도 容納 않고

海淺那能納衆流 ~ 바다가 얕으니 온 갓 냇물 받아들인다.

逸翮投籠徒受困 ~ 鳥籠(조롱)에 갇힌 새들 괴로움만 하고

飛蹄繫皁不勝愁 ~ 마구간에 묶인 날랜 말도 시름울 못 견딘다.

何當卜得安身地 ~ 어찌해야 이 한 몸 平安한 땅 얻어서

一藏茆庵杖屨留 ~ 草堂 庵子에 몸 감추고 지팡이 짚고 머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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