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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禪師들의 禪詩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의 禪詩(선시) (1)~(10)

by 산산바다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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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鑑國師(원감국사)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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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 (1226~1292)禪詩 (1)~(10)

 

 

圓鑑國師, 圓鑑沖止, 釋圓鑑(원감국사, 원감충지, 석원감) (1226~1292. 高麗 . 俗名 魏元凱. 本貫 長興. 諡號(시호) 圓鑑國師. 定安 <現在長興人. 처음 法名法桓. 沖紙. 自稱 號宓庵이라 함)

 

*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2)

고려시대 선승(禪僧). 수성사(修禪社) 6(). 성은 위(). 속명은 원개 (元凱). 본래의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 자호는 복암(宓庵). 전 라남도 장흥출신.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호소(號紹)이며, 어머니 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선림(禪林) 에 나아가 득도하기를 원하였지만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관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였 는데, 이는 항상 도를 얻고자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닌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1266(원종 7) 여름에 원오국사의 교유(敎諭)와 조지(朝旨)로 인하여 부득이 경상남도 김해군의 감로사(甘露寺) 의 주지가 되었다. 1269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 로사를 떠나 승주군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보조국사(普 照國師)로부터 시작된 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선 ()보다는 교()에 치중하였다.

128311월에는 대중을 거느리고 조계산을 출발하여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 장경을 도중에 맞이하여 나누어 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 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수선사를 떠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 로 옮겨 선정을 닦고 있던 중 12862월에 원오국사가 그를 수선사의 사주 (社主)로 추천하는 장문(狀聞)을 왕에게 올리고 입적하였다. 장문을 받은 충 렬왕은 원외시랑(員外侍郞) 김호담(金浩淡)을 시켜 그로 하여금 616일에 개당(開堂)하게 함에 따라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불교의 삼장(三藏)에 이 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사림(詞林)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과 시는 당대의 유림에서도 추앙을 받았다. 도를 닦음에 있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오 조(五祖) 홍인(弘忍)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파강이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부 끄러워하였지만,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선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사(儒士)들처럼 천 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조화(儒禪調和)의 사상조류를 보였고, 상제상 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도이교(儒道二敎)를 불교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 풍(宗風)을 계승하였다.

1292110일 삭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문인 (門人)들에게 "생사(生死)가 있는 것은 인생의 일이다. 나는 마땅히 가리니 너희는 잘 있거라."는 말을 남겼다. 정오가 지나자 분향하고 축원을 올린 뒤 선상(禪床)에 앉아 '설본무설(說本無說)'이라 설하고, 문인들이 청하는 바에 따라 "돌아보니 세상살이 67년인데, 오늘 아침 모든 일을 마쳤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탄연하여 평탄하고, 노두가 분명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손에는 겨우 하나의 대지팡이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피로하지 않을 것이 또 한 기뻐라(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未曾失 手中裳有一枝 且喜途中脚不倦)."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랍 39세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1) 誡人(계인) 1 : 사람을 警誡

 

嬌言令色雖足恭 ~ 듣기 좋은 말, 착한 얼굴빛 恭遜(공손)한 듯해도

爭奈利刀藏笑中 ~ 웃음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칼날 어찌하나.

質直無華無詐委 ~ 華麗하지 않아 質樸(질박)하고 속임 수 없다면

是名眞實道人風 ~ 이것을 이름 붙이면 眞實道人風貌이어라.

 

 

 

(2) 誡人(계인) 2 : 사람을 警誡

 

此身若信同泡幻 ~ 이 몸이 만일 泡沫(포말)같은 幻影임을 믿는다면

刀割香塗豈二心 ~ 칼로 자르고 香氣로 바름이 어찌 다른 일일까.

只爲多生顚倒執 ~ 다만 거꾸러지고 넘어지는 삶이 많아져

順違波裡枉遭沈 ~ 順境逆境의 물결 속에 잘못 만나 빠지리라.

 

 

 

(3) 鷄峯苦(계봉고) : 鷄足峯의 괴로움

 

鷄峯之苦今無譬 ~ 鷄足峯의 괴로움은 비할 데가 없어라

欲說一二先酸鼻 ~ 한두 가지 말하려니 코가 먼저 시큰해지네.

經營歲久屋甚老 ~ 살아 온지가 오래 되어 家屋히 낡고

檐牆壁皆傾地至 ~ 처마와 담장이 땅에까지 기울었네.

每遇淋漓下雨時 ~ 每番 장마가 되어 비가 내릴 때면

屋漏如篩無處庇 ~ 집이 체처럼 비가 새서 감쌀 수가 없네.

四時執爨唯數髡 ~ 사시사철 부뚜막에 넣을 것은 長斫(장작) 몇 조각뿐

衣裳繿縷顔色悴 ~ 의상은 襤褸(남루)하고 顔色憔悴(초췌)하네.

齋時蔬藕晨淡粥 ~ 낮에는 채소와 연뿌리요 아침에는 묽은 죽이며

陟嶮搬柴日三四 ~ 험준한 곳 오르며 땔나무를 해봐야 하루에 서너 짐이라.

何曾揀擇寒與暑 ~ 추위와 더위를 가릴 여유도 없으니

雖復雨雪不敢避 ~ 비록 비와 눈이 내려도 피하지 못하네.

園頭老僧只一個 ~ 늙은 圓頭(원두) 스님은 한 사람뿐이어서

薙草倒地折一臂 ~ 풀을 베다 넘어져 팔 한 쪽이 부러졌네.

山椒菜圃小如掌 ~ 山椒(산초)나무 채마밭은 작아서 손바닥만 하고

草深沒膝無人理 ~ 풀이 무성하여 무릎이 빠져도 손보는 사람이 없네.

深村丁力四五戶 ~ 궁벽진 마을에 힘쓰는 사람 있는 너 댓집

茅茨不完蓬滿地 ~ 초가지붕 허술하고 땅에는 쑥이 가득.

男出耕耘女踏碓 ~ 男子는 나가서 밭을 갈고 女子는 방아질 하는 것이건만

長年力役到童稚 ~ 어른의 노역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네.

十日驅使一日休 ~ 열흘 부림을 하고 하루를 쉬니

奚暇仕家營自利 ~ 어느 餘暇에 자기 집일에 신경을 쓰랴?

秋至蕭然無所穫 ~ 가을이 되어도 뭘 거둘 게 없어

但向人田拾遺穗 ~ 다만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이나 주울 뿐.

每說明年必不堪 ~ 매번 내년에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 말하며

遠邇不復見玆寺 ~ 멀든 가깝든 다시는 이 절을 보지도 못하는구나.

獨眼院主頻來言 ~ 외눈박이 院主는 자주 와서 하는 말이

糧罄將無數月備 ~ 糧食(양식)이 다 떨어져 몇 달 것밖에 없다 하네.

欲令齋鉢不全空 ~ 밥그릇을 완전히 비울 수는 없으니

急須將貨糴於肆 ~ 급히 물건을 가져가서 시장에서 쌀을 사 온다.

不然晨夕省其費 ~ 그렇게 하지 않으면 朝夕으로 쓰는 것을 줄여야 하니

草加於飯鹽加豉 ~ 밥에다 풀을 섞고 된장에는 소금을 집어넣네.

鷄峯之苦苦復苦 ~ 鷄峯苦痛이 괴롭고도 괴로우니

具說豈止唯此事 ~ 갖추어 말하자면 어찌 이런 것에 그치리오?

旣不是北洲鬱單越 ~ 이미 北洲鬱單越(울단월)처럼

衣食隨心而自至 ~ 입고 먹는 물품을 생각만 하면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又不能毗耶老居士 ~ 또한 毗耶(비야)의 늙은 維摩居士(유마거사)처럼

上方取飯而分施 ~ 위쪽 世界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나눠줄 수도 없는 일.

不如將此千般萬 ~ 차라리 이런 천 가지 만 가지 苦痛을 모조리

都付風軒一場睡 ~ 바람 부는 집의 한 바탕 잠에 부치는 것이 나으리.

 

* 圓頭(원두) : 절에서 채마밭을 管理하는 스님

* 北洲鬱單越 : 須彌山 北方에 있다고 하는 땅 이름. 이 곳의 사람은 千 年을 살며, 中間에 일찍 죽는 일이 없고, 生活必要한 여러 物品이나 시설이 豊富하다고 한다.

* 維摩居士香積世界라는 곳에서 飮食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4) 苦熱吟(고열음) : 매우 심한 더위

 

有地盡炎赫 ~ 地上엔 온통 더위 天地

無階奔廣寒 ~ 廣寒殿(광한전) 月宮으로 달아날 주 없으니

瀑川思雪岳 ~ 雪岳山 瀑布 생각나고

風穴憶氷巒 ~ 風穴 있는 氷山이 그리워라.

未學乘飆列 ~ 列子의 바람 타기를 못 배웠으니

空希愛華潘 ~ 潘閬(반랑)華山 사랑함을 空然히 바라네.

何當酷吏去 ~ 어쩌면 酷吏(혹리)가 가고

得與故人歡 ~ 親舊와 반가이 만나 기쁘게 놀까.

 

 

 

(5) 寄道安長老(기도안장로) : 道安 長老에게 부치다

 

情存見道還迷道 ~ 깨닫고자 하면 漸漸 멀어지고

心要求安轉不安 ~ 平安하려 하면 오히려 不安해지네.

安到無安見無見 ~ 便安함 없는 곳에서 便安하고 보는 것 없이 보아야

方知此事勿多般 ~ 道理元來 複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리.

 

 

 

(6) 臘月十八日微雪中作(납월십팔일미설중작) : 섣달 18일 가는 눈이 내릴 때

 

風勁天陰糝玉塵 ~ 바람이 드세고 날씨는 陰沈한데 가루 뒤섞이니

山居寥落似無人 ~ 속의 삶터가 쓸쓸하여 아무도 없는 듯하네.

地爐幸有柴頭在 ~ 火爐多幸長斫(장작)이 남아 있어

煨爇能廻一室春 ~ 그것을 태워 하나의 봄을 되돌릴 순 있겠군.

 

 

 

(7) 答李行儉(답리행검) : 李行儉에게 하다

 

庭栢含煙自淸瘦 ~ 뜰의 잣나무 안개 머금어 말쑥하고

盆蓮帶雨更嬌饒 ~ 花盆꽃은 비 맞은 뒤 더욱 아름다워라.

淸凉高格渾呈露 ~ 맑고 시원한 높은 氣運 절로 드러났거니

何待山藤六十條 ~ 六十 藤나무 회초리 무슨 所用 있겠는가.

 

 

 

(8) 東方丈山茶花(동방장산다화) : 方丈山(방장산) 冬柏

 

夏炎將半白花盡 ~ 무더위 쯤 지나 모든 꽃 지고

喜見山茶方盛開 ~ 바로 활짝 핀 冬柏꽃 기쁘게 바라본다.

應是天公燐寂莫 ~ 하늘도 寂寞(적막)世上 가련하게 여겨

小留春色着山隈 ~ 봄빛 暫時 머물려고 모퉁이에 두었나.

 

* 方丈山(방장산) : 頭流山 (智異山)

* 山茶花(산다화) : 冬伯나무의 꽃.

 

 

 

(9) 東征頌(동정송) : 日本 征伐한 일을 찬양하다.

 

皇帝御天下 ~ 皇帝께서 온 天下統御하시와

神功超放勛 ~ 神功()보다도 뛰어나시니

德寬包有截 ~ 크신 宇宙를 포함하시고

澤廣被無垠 ~ 넓으나 넓은 德澤(덕택) 가없이 덮어

車共千途轍 ~ 수레는 길에 궤도가 같고

書同九域文 ~ 글은 九域에서 글자 같은데

唯殘島夷醜 ~ 오직 저 섬의 오랑캐 추한 놈들이

假息鼎魚群 ~ 솥 안의 고기처럼 꾸물거리네.

但恃滄溟隔 ~ 滄海 바다 험한 것을 오직 믿고서

仍圖疆場分 ~ 疆土(강토)를 따로 하려고 꾀하여

苞茅曾不入 ~ 조그만 공물도 안 바치거니

班瑞亦無聞 ~ 상서를 반포해도 모른 체하네.

帝乃赫斯怒 ~ 이에 皇帝께서 크게 하사

時乎命我君 ~ “때로다우리 임금께 내리시니

一千龍鵲舸 ~ 龍鵲艦(용작함) 艦隊(함대)들과

十萬虎貔軍 ~ 十萬虎貔軍(호비군)

問罪扶搡野 ~ 扶槡(부상) 벌판에 를 물으려

興師合浦濆 ~ 合浦(馬山의 옛 이름) 바닷가에 氣勢 올렸네.

鼓鼙轟巨浸 ~ 꽝꽝 북소리는 바다에 울리고

旌旆拂長雲 ~ 펄렁펄렁 깃발은 구름 떨치며

驍勇皆趨死 ~ 용맹한 장졸들 모두 다 結死(결사)

英雄竸立勳 ~ 英雄들이 다투어 세우려 할 제

江思韓信背 ~ 에선 생각하느니 韓信(나라의 名將)背水陣

舟欲孟明焚 ~ 河水 건너서 불사르는 孟明(나라의 名將)戰術

係越奚專美 ~ 南越王을 목매어 오는 것 옛 사람 뿐이랴

平吳不足云 ~ 平定한 것쯤 말할 것 없네.

斫營應瞬息 ~ 순식간에 敵軍을 쳐부수어서

獻捷在朝曛 ~ 아침이나 저녁에 諜報를 아뢰리

玉帛爭修貢 ~ 玉帛(옥백)으로 다투어 을 올리고

干戈盡解紛 ~ 干戈(간과)는 모조리 이 풀어져

元戎錫圭卣 ~ 隊長에겐 勳賞을 내리옵시고

戰卒返耕耘 ~ 軍卒農土로 되돌아가서

快劍匣三尺 ~ 三尺 快劍(쾌검) () 속에 되 넣어두고

良弓櫜百斤 ~ 百 斤 羊弓 활주머니에 간직해 두리.

四方歌浩浩 ~ 四方太平歌謠 높이 부르고

八表樂欣欣 ~ 八表(世上)欣快(흔쾌)하고도 흔쾌한 춤을 추리라.

烽燧收邊警 ~ 이란 에는 烽火가 걷고

風塵絶塞氛 ~ 머나먼 邊方에도 風塵 사라져

當觀聖天子 ~ 우리 聖天子 萬歲토록

萬歲奏南熏 ~ 南熏曲(남훈곡) 아룀을 보게 되오리.

 

* 東征 : 高麗聯合軍으로 日本征伐한 일. 第一次 東征元宗 15(1274) 10, 第二次 忠烈王 7(1281) 5이다.

* 南越王을 목매어 오는 것 : 나라 終軍弱冠武帝에게 글을 올려갓끈 하나만 주시면 南越王의 목을 매어다 바치겠습니다.”한 고사를 일컬음.

* 南薰曲(남훈곡) ~: 虞舜五弦琴을 타며 불렀다는 노래. 內容南風薰薰함이여, 우리 百姓들의 不平을 풀어주리로다. 南風의 때 맞춤이여, 우리 百姓들의 財物豊富히 하리로다".

 

 

 

(10) 暮春卽事(모춘즉사) : 저물어가는 봄날에

 

春深日永人事絶 ~ 봄 깊어가고 해는 긴데 사람은 오지 않고

風打梨花滿庭雪 ~ 배꽃에 바람 불어 눈처럼 뜰에 가득하도다.

倚簷佳木影交加 ~ 처마에 기대 고운 나무들 그림자 서로 얽혀

散步行吟自怡悅 ~ 散步하며 읊으니 마음이 절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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