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의 禪詩 (121)~(130)
●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 俗名은 崔汝信. 兒名 雲鶴.
本貫은 完山<全州>. 字 玄應, 號 淸虛. 法名 休靜. 平南 安州 出生.
壬辰倭亂 때 僧軍을 이끌고 平壤奪還作戰에 參加하여 功을 세웠다.
妙香山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妙香山人 또는 西山大師<別號>로 불린다)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 승첩을 돌려 승군을 조직하고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 활동 사항
서산대사는 1520년(중종 20)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화엄경(華嚴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유마경(維摩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 등을 읽으며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1540년 수계사(授戒師)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각지를 떠돌며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며 물러나 금강산·두륜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다니며 수행하였으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감록(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서산대사를 불렀다. 이에 서산대사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었고,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서산대사는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후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산대사(西山大師)
(121) 積石寺柱聯(적석사주련) : 적석사의 주련(柱聯)
見聞覺知無障礙 ~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데 障礙가 없고
聲香味觸常三昧 ~ 소리, 香, 맛, 觸覺이 언제나 그대로 三昧로다.
如鳥飛空只麽飛 ~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그냥 날아가듯
無取無捨無憎愛 ~ 取함도 버림도 없고 미움과 사랑도 없어라
若會應處本無心 ~ 萬若 대하는 곳마다 本來 無心임을 안다면
方得名爲觀自在 ~ 비로소 이름 하여 觀自在라 하리라.
(122) 情春(정춘) : 정취가 흐른 봄
花落千萬片 ~ 千萬조각으로 떨어지는 꽃잎
鳥啼兩三聲 ~ 우는 새 두서너 曲調
若無詩與酒 ~ 詩와 술이 없다면
應殺好風情 ~ 이 좋은 風情 半減하겠네
(123) 題鑑湖臺(제감호대) : 감호대에서 쓰다
澗石留奇筆 ~ 골짜기 바위에다 수려한 필체를 남기고
山花獨送春 ~ 山에 핀 꽃만이 홀로 봄을 보내네.
鑑湖明月夜 ~ 거울 같은 湖水에 달 밝은 밤
猿鶴怨無人 ~ 원숭이와 鶴이 아무도 없음을 원망하네.
(124) 題淸涼影帖(제청량영첩) : 淸凉國師의 影幀을 보고
八萬大藏經 ~ 八萬大藏經을
師能彈一舌 ~ 스님은 혀 하나를 퉁기어 說破하셨네.
淸風灑金沙 ~ 맑은 바람이 金모래 씻어 내리고
桂子落秋月 ~ 가을 달빛 아래 桂樹나무 열매 떨어지네.
(125) 俊禪子(준선자) : 俊 禪子에게
悲歡一枕夢 ~ 슬픔과 기쁨이란 베갯머리 꿈
取散十年情 ~ 만났다 헤어짐은 十年 情일세.
無言却回首 ~ 말없이 고개 돌려 발을 옮기니
山頂白雲生 ~ 山 마루엔 흰 구름이 생겨나누나.
(126) 贈江湖道人(증강호도인) : 江湖道人에게 주다
世事空中鳥 ~ 世上일은 空中을 나는 새와 같고
浮生水上漚 ~ 떠도는 삶은 물 위의 거품 같네.
天下無多地 ~ 天下에 땅은 많이 없어도
山僧一杖頭 ~ 山僧은 지팡이 하나면 되네.
(127) 贈德義禪子(증덕의선자) : 德義 禪子에게 주다
吾家有寶燭 ~ 내 집에 보배로운 촛불 있거니
可笑西來燈 ~ 可笑롭게도 西쪽에서 온 燈불이라.
半夜黃梅信 ~ 한밤중 黃梅山의 消息이
虛傳粥飯僧 ~ 헛되이 밥이나 축내는 중에게 傳해졌도다.
(128) 贈道能禪子(증도능선자) : 道能 禪子에게 주다
歷歷離賓主 ~ 歷歷해서 손(賓)과 主人을 여의었고
寥寥絶色空 ~ 너무도 寂寥해서 色空의 見解도 다 끊어졌다.
目前勤記取 ~ 目前에 昭昭靈靈(소소령령)한 그 놈을 부지런히 取하라
山立白雲中 ~ 山은 白雲 가운데 섰느니라.
* 昭昭靈靈(소소령령) : 昭昭는 밝은 貌樣이고, 靈靈은 精神作用의 不可思議 함,
卽 心識이 微妙하여 또렷또렷한 樣狀을 形容하는 말이다.
(129) 贈別白蓮寺處敏禪子(증별백련사처민선자) : 白蓮寺에서 處敏 禪子와의 離別에 드림
別後十三年 ~ 離別한 지 십 삼年
今逢情不已 ~ 오늘에야 만나니 情이 다함없구나.
連床夜話長 ~ 침상에 나란히 누워 밤 깊도록 이야기하다 보니
澗月低窓紙 ~ 창호지에 비친 산골 달이 낮아졌구나.
告別天南去 ~ 離別을 고하고 하늘 南쪽으로 떠나간 것은
山紅澗碧時 ~ 山은 붉고 溪谷물은 푸르던 때였지.
人間眞火宅 ~ 人間世上은 참으로 불난 집과 같으니
毋失白蓮期 ~ 白蓮寺의 期約을 잊지 마소서.
禪敎流名利 ~ 禪과 敎는 名利로 흐르고
榮華誤世間 ~ 富貴榮華는 世上을 그르쳤도다.
夢中無限好 ~ 꿈속에 그리던 無限히 좋은 곳
只是在靑山 ~ 그곳은 바로 淸山이어라.
(130) 贈淳長老(증순장로) : 淳長老에게
正宗消息沒滋味 ~ 正統的인 宗門 중의 最上乘法 消息은 자미가 없으니
不用如何又若何 ~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것도 所用이 없음이라.
打破銀山鐵壁去 ~ 銀山과 鐵壁을 打破해 버리면
此時方渡死生河 ~ 이때야 비로소 生死의 江을 건너는 것이니라.
정종(正宗)의 소식이 재미가 없다 해도
쓰지 않고 어이하고 또 어찌 한단 말가.
은산과 철벽을 깨부수고 가야지만
그제야 바야흐로 사생 강물 건너가리.
* 最上乘法 = 活句參禪法 =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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