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和飲酒二十首(화음주이십수)/和陶飮酒(화도음주) : 소식(蘇軾)
도연명의 음주 20수에 화답한다.
吾飲酒至少,常以把杯為樂。
往往頹然坐睡,人見其醉,而吾中了然,蓋莫能名其為醉為醒也。
在揚州時,飲酒過午輒罷,客去,解衣盤礴,終日歡不足而適有余。
因和淵明《飲酒》二十首,庶以仿佛其不可名者,示舍弟子由、晁無咎學士。
其一
我不如陶生,世事纏綿之。雲何得一適,亦有如生時。
寸田無荊棘,佳處正在茲。縱心與事往,所遇無復疑。
偶得酒中趣,空杯亦常持。
其二
二豪詆醉客,氣湧胸中山。漼然忽冰釋,亦復在一言。
嗇氣實其腹,雲當享長年。少飲得徑醉,此秘君勿傳。
其三
道喪士失己,出語輒不情。江左風流人,醉中亦求名。
淵明獨清真,談笑得此生。身如受風竹,掩冉眾葉驚。
俯仰各有態,得酒詩自成。
其四
蠢蠕食葉蟲,仰空慕高飛。一朝傳兩翅,乃得粘網悲。
啁啾厭巢雀,沮澤疑可依。赴水生兩殼,遭閉何時歸。
二蟲竟誰是,一笑百念衰。幸此未化間,有酒君莫違。
其五
小舟真一葉,下有暗浪喧。夜棹醉中發,不知枕幾偏。
天明問前路,已度千金山。嗟我亦何為,此道常往還。
未來寧早計,既往復何言。
其六
百年六十化,念念竟非是。是身如虛空,誰受譽與毀。
得酒未舉杯,喪我固忘爾。倒床自甘寢,不擇菅與綺。
其七
頃者大雪年,海波翻玉英。有士常痛飲,饑寒見真情。
床頭有敗榼,孤坐時一傾。未能平體粟,且復澆腸鳴。
脫衣裹凍酒,每醉念此生。
其八
我坐華堂上,不改麋鹿姿。時來蜀岡頭,喜見霜松枝。
心知百尺底,已結千歲奇。煌煌淩霄花,纏繞復何為。
舉觴酹其根,無事莫相羈。
其九
芙蓉在秋水,時節自闔開。清風亦何意,入我芝蘭懷。
一隨采折去,永與江湖乖。斷絲不復續,斗水何足棲。
不如玉井蓮,結根天池泥。感此每自慰,吾事幸不諧。
醉中有歸路,了了初不迷。乘流且復逝,抵曲吾當回。
其十
籃輿兀醉守,路轉古城隅。酒力如過雨,清風消半途。
前山正可數,後騎且勿驅。我緣在東南,往寄白髮余。
遙知萬松嶺,下有三畝居。
其十一
民勞吏無德,歲美天有道。暑雨避麥秋,溫風送蠶老。
三咽初有聞,一溉未濡槁。詔書寬積欠,父老顏色好。
再拜賀吾君,獲此不貪寶。頹然笑阮籍,醉幾書謝表。
其十二
我夢入小學,自謂總角時。不謂有白髮,猶誦論語辭。
人間本兒戲,顛倒略似茲。惟有醉時真,空洞了無疑。
墜車終無傷,莊叟不吾欺。呼兒具紙筆,醉語輒錄之。
其十三
醉中雖可樂,猶是生滅境。雲何得此身,不醉亦不醒。
癡如景升牛,莫保尻與領。黠如東郭㕙,束縛作毛穎。
乃知嵇叔夜,非坐虎文炳。
其十四
我家小馮君,天性頗純至。清坐不飲酒,而能容我醉。
歸休要相依,謝病當以次。豈知山林士,骯臟乃爾貴。
乞身當念早,過是恐少味。
其十五
去鄉三十年,風雨荒舊宅。惟存一束書,寄食無定跡。
每用愧淵明,尚取禾三百。頎然六男子,粗可傳清白。
於吾豈不多,何事復嘆息。
其十六
嘵嘵六男子,弦誦各一經。復生五丈夫,戢戢丁欲成。
歸田了門戶,與國充踐更。普兒初學語,玉骨開天庭。
淮老如鶴雛,破殼已能鳴。舉酒屬千里,一歡愧凡情。
其十七
淮海雖故楚,無復輕揚風。齋廚聖賢雜,無事時一中。
誰言大道遠,正賴三杯通。使君不夕坐,衙門散刀弓。
其十八
何人恐東臺,一郡坐可得。亭亭古浮圖,獨立表眾惑。
蕪城閱興廢,雷塘幾開塞。明年起華堂,置酒吊亡國。
無令竹西路,歌吹久寂默。
其十九
晁子天麒麟,結交及未仕。高才固難及,雅誌或類己。
各懷伯業能,共有丘明恥。歌呼時就君,指我醉鄉里。
吳公門下客,賈誼獨見紀。請作鵩鳥賦,我亦得坎止。
行樂當及時,綠髮不可恃。
其二十
蓋公偶談道,齊相獨適真。頹然不事事,客至先飲醇。
當時劉項罷,四海創痍新。三杯洗戰國,一斗銷強秦。
寂寥千載後,陽公嗣前塵。醉臥客懷中,言笑徒多勤。
我時閱舊史,獨與三人親。未暇餐脫粟,苦心學平津。
草書亦何用,醉墨淋衣巾。一揮三十幅,持去聽坐人。
和飲酒二十首(화음주이십수)
其一
我不如陶生(아불여도생) : 나는 도연명(陶淵明)선생 같지 못하여
世事纏綿之(세사전면지) : 세상일에 칭칭 얽혀 산다네.
雲何得一適(운하득일적) : 어찌하여 한 번 한적함을 얻으면
亦有如生時(역유여생시) : 선생과 같을 때도 있다네.
寸田無荊棘(촌전무형극) : 얼마 안 되는 밭에는 가시나무가 없으니
佳處正在茲(가처정재자) : 좋은 곳은 바로 이곳이라네.
縱心與事往(종심여사왕) : 마음 따라 세상일과 더불어 가니
所遇無復疑(소우무부의) : 만나는 일마다 다시 의심이 일지 않네.
偶得酒中趣(우득주중취) : 우연히 술 마시면서 즐거움 얻으면
空杯亦常持(공배역상지) : 빈 잔이라도 항상 쥐고 있다네.
* 陶生(도생) : 도연명(陶淵明)을 존칭한 것으로 生은 선생이라는 의미
* 纏綿(전면) : 칭칭 얽힘. 纏은 얽을‘전’. 綿은 이어질‘면’. 도연명은 전원으로 돌아갔지만 자신은 세상일에 얽혀 있다는 뜻.
* 雲何(운하) : =如何(여하). 어찌하여
* 寸田(촌전) : 얼마 안 되는 밭. 단전(丹田)을 말하기도 한다. 단전(丹田)은 배꼽 아래로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
* 荊棘(형극) : 나무의 가시. 고난의 길을 비유.
* 所遇無復疑(소우무부의) : 만나는 일마다 다시 의심이 일지 않는다. 도연명의 음주 제1수에 “達人解其會(달인해기회) 逝將不復疑(서장불부의) : 통달한 사람은 그 이치를 깨우쳐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이 詩는 북송(北宋) 철종(哲宗) 원우(元祐) 7년(1092) 소식의 57세 때에 양주지사로 있을 때 지은 것으로 토주를 즐기다가 도연명의 시‘음주(飮酒)’가 떠올라 음주 시에 화답한 작품으로 20편 중 첫 번째 詩이다. 도연명은 동진(東晋)의 시인으로 평생 술과 함께 하며 은자(隱者)로 살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음주(飮酒) 20수 등을 지은 시인으로 소식이 도연명을 흠모하여 음주 시에 화운(和韻)한 시이다. 조선시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퇴계선생문집’의 시(詩)에도“《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린 음주에 화운하다”라는 시가 실려 있다.
음주이십수(飲酒二十首) 並序 : 陶淵明(도연명)
序
余閑居寡歡(여한거과환)
兼比夜已長(겸비야이장)
偶有名酒(우유명주)
無夕不飮(무석불음)
顧影獨盡(고영독진)
忽焉復醉(홀언부취)
旣醉之後(기취지후)
輒題數句自娛(업제수구자오)
紙墨遂多(지목수다)
辭無銓次(사무전차)
聊命故人書之(료명고인서지)
以爲歡笑爾(이위환소이)
내가 조용히 살다보니 달리 기쁜 일도 없고
게다가 요즘 들어 밤도 길어졌는데
우연히 귀한 술이 생겨
저녁마다 빼 놓지 않고 마시게 되었다.
등불에 비친 내 그림자를 벗 삼아 마시다 보니
혼자서 다 비우고 금방 취하곤 했다.
취하고 나면
왕왕 시 몇구를 지어보고 혼자서 흐뭇해 했다.
이렇게 짓다보니 여러 수가 되었지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구보고 다시 정서해달라고 시켰다.
이는 같이 기뻐하며 웃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衰榮無定在(쇄영무정재) : 영고성쇄는 정해져 있지 않고
彼此更共之(피차갱공지) : 피차에 서로 함께하는 것이라
邵生瓜田中(소생과전중) : 소평(召平)의 참외밭 가운데 있는 것이
寧似東陵時(녕사동릉시) : 어찌 동릉후(東陵侯) 때 같기야 하겠는가?
寒署有代謝(한서유대사) :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고 가듯이
人道每如玆(인도매여자) : 사람의 도리도 언제나 같다.
達人解其會(달인해기회) : 통달한 사람은 그 이치를 깨우쳐
逝將不復疑(서장부부의) :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忽與一樽酒(홀여일준주) : 문득 한 단지 술과 함께
日夕歡相持(일석환상지) : 하루 밤을 즐거이 지낸다.
* 음주이십수(飲酒二十首) 其一 - 도연명(陶淵明) (tistory.com)
이 詩는 도연명이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에 정착한 후 12년 되는 해에 지은 것으로서 모두 20수가 있다. 시 전문에 병서(幷序)가 있다.
* 소평(召平) : 진한 교체기 때 진나라의 귀족이었으나 영락하여 장안의 교외에서 참외를 길러 생업으로 삼고 살았다. 그가 키운 참외는 맛이 있어 그의 작호 동릉후(東陵侯)를 따라 동릉과(瓜)라고 불리웠다. 사마천의 사기『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11년 기원전 196년, 진희(秦豨)가 반하자 고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전하여 한단에 당도했다. 반란군을 미처 진압하기 전에, 회음후 한신이 다시 관중에서 반란을 일으켜 진희에게 내응하려고 했다. 여후(呂后)가 소하의 계책을 이용하여 회음후를 잡아 죽였다. 이 일은《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당시 한단에 머물고 있었던 고조가 회음후 한신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파견하여 승상 소하를 다시 상국에 임명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여 5천 호의 식읍을 더하여 주고, 이와 함께 명을 전하여 500명의 사졸과 1명의 도위를 정해 소하의 경호를 맡게 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와서 소하에게 축하의 말을 올렸다. 그러나 유독 소평(召平)만은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소평이라는 사람은 원래 진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었다. 그러다가 진나라가 망하자 윤락하여 평민으로 떨어져 가난하게 살면서 장안성 동쪽의 교외에 참외를 길러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키운 참외는 맛이 좋아 사람들은 그 참외를 ‘동릉과(東陵瓜)’라고 칭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 詩 *** > 東坡居士 蘇軾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浣溪沙(漁夫) 완계사(어부) : 소식(蘇軾) (0) | 2022.09.30 |
---|---|
水龍吟(次韻章質夫楊花詞) 수룡음(차운장질부양화사) : 소식(蘇軾) (0) | 2022.09.30 |
阮郎歸(初夏) 완랑귀(초하) : 소식(蘇軾) (0) | 2022.09.30 |
八聲甘州(寄參寥子) 팔성감주(기참료자) : 소식(蘇軾) (0) | 2022.09.30 |
浪淘沙(探春) 낭도사(탐춘) : 소식(蘇軾) (0) | 2022.09.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