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樓觀(누관)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10.

산과바다

경회루(慶會樓)

蘇軾 詩 HOME

 

 

 

                  樓觀(누관) : 소식(蘇軾)

                  누관

 

門前古碣臥斜陽閱世如流事可傷長有幽人悲晉惠強修遺廟學秦皇

丹砂久窖井水赤白朮誰燒廚竈香聞道神仙亦相過只疑田叟是庚桑

 

 

門前古碣臥斜陽(문전고갈와사양) : 문 앞에 낡은 비석이 석양 아래 누웠나니

閱世如流事可傷(열세여유사가상) : 세상을 물같이 보아 세상일이 안쓰럽네.

長有幽人悲晉惠(장유유인비진혜) : 언제나 은자 진 혜자가 있어 슬퍼했고

强修遺廟學秦皇(강수유묘학진황) : 억지로 사당을 지어 진시황을 흉내 내네.

丹砂久窖井水赤(단사구교정수적) : 단사가 오래 묻혀 우물물이 시뻘겋고

白朮誰燒廚竈香(백출수소주조향) : 백출을 누가 태우나 주방 안이 향긋하네.

聞道神仙亦相過(문도신선역상과) : 듣자하니 신선도 들른 적이 있다는데

只疑田叟是庚桑(지의전수시경상) : 저 농부 경상초(庚桑楚) 아닐까 그것만이 궁금하네.

 

 

樓觀可以指

* 樓觀 (蘇軾)

* 樓觀 (蘇轍)

* 樓觀 (神仙避世守關門)蘇轍

 

누관(樓觀) = 누각(樓閣), ()에 있는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누관(樓觀) : 누각(樓閣)과 관대(觀臺)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누각(樓閣) : 자연이 아름다운 곳 등에 풍류(風流)를 즐기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정자(亭子)보다 크다.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대체로 문과 벽이 없이 사방으로 트여 있다.

관대(觀臺) : 대상(臺上), 즉 대()의 위에 옥()을 설치하고서 먼 데를 구경하는 곳으로 물견대(物見臺)라고도 한다.

() :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 : 집 또는 지붕이나 지붕 모양의 덮개를 말한다.

* 경상초(庚桑楚) : 노담(老聃)의 제자 중에 경상초(庚桑楚)라는 이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를 일부 얻어서 북쪽으로 가서 외루산(畏壘山)에서 살고 있었다. 그 신하 중에서 분명한 것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기는 자를 내보내고 첩 중에서 인자하게 이끌어 주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기는 자를 멀리하고 우둔한 이와 함께 하고 용모를 꾸미지 않는 이를 부려서 삼 년 동안 머물러 외루(畏壘)가 크게 번성하였다.

 

* 老聃(노담) : 노자(老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성은 이(), 이름은 이(), 시호는 담()이다. 그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하여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라고 이름지었다. 그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고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라고 설명하였다.

 

* 樓觀 : 산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주지현(周至縣)에 있는,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도교(道敎)의 성지로 도교 누관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樓觀臺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때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자신의 집에 천문을 살피기 위해 초가를 엮어 세운 초루관(草樓觀)이 효시였다고 전하는데, 노자(老子)가 이곳에서 도덕경(道德經) 5천 자를 썼다고 한다. 누관대가 세워진 주()나라 이후 진혜제(晉惠帝)가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주민을 이주시켜 지키게 했다. 당태종(唐太宗) 무덕(武德) 7(624)에 누관대를 종성궁(宗聖宮)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건물을 세운 데 이어 현종(玄宗) 때 더 크게 확충되면서 황실의 도관(道觀)이자 도교의 성지가 되었다.

* 古碣 : 입석(立石), 즉 석비(石碑)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昔周康王大夫關令尹喜所立也(주나라 강왕 때 함곡관령을 지낸 대부 윤희가 세운 것이다).’란 글이 새겨진 누관비(樓觀碑)를 가리킨다.

* 閱世如流 : 세상의 이런저런 풍속을 겪는 것이 마치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강물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 晉惠 : ()나라 혜제(惠帝)를 가리킨다. 누관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백성을 이주시켜 누관을 지키게 했다.

* 秦皇 : 진시황(秦始皇)을 가리킨다. 소식이 자주에서 화양록기(華陽錄記)에 실린 始皇好神仙, 於尹先生樓南立老君廟. 晉元康中, 重更修葺, 蒔木萬株, 連亘七里, 給供灑掃戶三百(진시황이 신선을 좋아하여 윤희가 세운 누관 남쪽에 노군사당을 세우고, 진나라 혜재 원강 연중에 지붕을 중수하고 나무 만 그루를 칠 리에 걸쳐 심은 뒤 백성 삼백 호를 이주시켜 물을 주고 쓸어 지키게 했다).’이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秦始皇立老子廟於觀南, 晉惠始修此廟(진시황이 누관 남쪽에 노자의 사당을 세우고, 진나라 혜제가 이 사당을 처음 개수하였다).’라고 했다.

* 丹砂久窖井水赤 : 누관에 있는 상선지(上善池)를 가리키는 것으로, 포박자抱朴子에서 余亡祖鴻臚少卿曾爲臨沅令, 云此縣有廖氏家, 世世壽考, 或出百歲, 或八九十, 後徙去, 子孫轉多夭折. 他人居其故宅, 復如舊, 後累世壽考. 有此乃覺是宅之所爲, 而不知其何故, 疑其井水殊赤, 乃試屈井左右, 得古人埋丹砂數十斛, 去井數尺, 此丹砂汁因泉漸入井, 是以飮其水而得壽, 況乃餌煉丹砂而服之乎(돌아가신 조부 황려소경이 임원령으로 있을 때, 그곳의 요씨 집안이 대대로 장수하여 백 년을 살기도 하고 팔구십 년을 살기도 했는데, 집을 옮긴 뒤로는 요절하는 자손들이 많아지고, 그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다른 사람네는 이전처럼 대대로 장수하였다. 그때서야 택지 때문인 것을 알았으나 그 까닭을 모르다가 우물 물이 특히 붉은 것을 이상히 여겨 우물의 좌우를 파보았더니 옛사람이 묻어둔 단사 수십 곡을 얻었다. 우물에서 몇 자 정도 떨어진 곳이라 단사의 즙이 조금씩 우물 속으로 들어가 그 물을 마신 사람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인데, 하물며 연단한 단사를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전하는 이야기에는 옛날에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갈 때 누관의 도사 꿈에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나타나 산문 앞 석판 밑에 있는 우물 속에 자신이 만들어 둔 단약이 있으니 환자들에게 먹이라고 했는데, 도사가 확인해보니 과연 그러한지라 환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한 뒤로 역병이 물러갔다고 했다. 원나라 때 서법가 조맹부趙孟頫가 누관에 들러 도덕경에 나오는 上善若水의 뜻으로 上善池석 자를 써서 비석으로 만들어 우물 위에 세웠는데, 비석과 우물이 아직도 누관에 남아 있다.

* 白朮(백출) : 약재.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주석에서 선경仙經朮能除惡氣, 弭灾沴(백출은 악기를 없애고 요기妖氣를 편안케 한다).’이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 庚桑(경상) : 장자莊子경상초庚桑楚에서 老聃之役, 有庚桑楚者, 遍得老聃之道, 以北居畏壘之山(노담의 제자 중에 경상초란 사람이 있었는데, 노자의 도를 전부 터득하지는 못했지만 북쪽에 있는 외루란 산에 살면서 하인들 중에 확연하게 지혜로운 이는 쫓아버리고, 첩들 중에서도 교만한 자는 멀리하며 순박한 사람과 함께 살고 자색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시중을 들게 하였다. 그렇게 살기를 삼 년, 외루산 일대에 큰 풍년이 들었다).’이라고 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