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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東坡居士 蘇軾 詩

昭君村(소군촌)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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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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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昭君村(소군촌) : 소식(蘇軾)

                     소군촌

 

昭君本楚人艷色照江水

楚人不敢娶謂是漢妃子

誰知去鄉國萬里為胡鬼

人言生女作門楣昭君當時憂色衰

古來人事盡如此反覆縱橫安可知

 

 

昭君本楚人(소군본초인) : 王昭君은 본래 초() 지방 사람이거늘

艶色照江水(염색조강수) : 빼어난 미모가 강물을 환히 비추었네.

楚人不敢娶(초인불감취) : () 지방 사람들이 감히 아내로 맞지를 못해

謂是漢妃子(위시한비자) : 한나라 오황비라고 부르게 되었네.

誰知去鄕國(수지거향국) : 그 누가 알았으리 조국을 떠나

萬里爲胡鬼(만리위호귀) : 만 리 밖에서 오랑캐 땅의 귀신이 될 줄을?

人言生女作門楣(인언생여작문미) : 사람들은 딸을 낳으면 가문을 일으킨다고 했지만

昭君當時憂色衰(소군당시우색쇠) : 왕소군은 당시에 근심으로 안색이 초췌했다네

古來人事盡如此(고래인사진여차) : 예로부터 인간사란 모두 이와 같은 것

反覆縱橫安可知(반복종횡안가지) : 엎치락뒤치락 종횡무애(縱橫無碍)로 뒤바뀜을 어찌 알리?

 

* 昭君村可以指

* 昭君村 (蘇軾)

* 昭君村 (蘇轍)

 

* 소군촌(昭君村) : 무산(巫山) 十二峰 남쪽의 神女廟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왕소군(王昭君) - Daum 백과 : 왕소군은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다. 훗날 흉노의 호한야(呼韓耶) 선우에게 화친을 목적으로 시집 보내진 비극성으로 인해 중국 문학의 소재로 자주 애용되었다. 왕소군의 원래 이름은 장()이고, 자는 소군(昭君)이며, 아명은 호월(皓月)이다.

한 원제의 후궁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 보내졌다.

왕소군 이야기는 민간 전승, 설화, 시가 등으로 재창조되었으며, 당나라 시인인 이태백과 백거이, 송나라 시인 왕안석과 구양수 등에 의해 시로 창작되는 등 중국 문학 소재로 애용되었다.

기원전 3611대 황제 원제는 전국에 궁녀를 뽑아 올리라는 조서를 내렸다. 한나라 시대에는 민간의 여성을 궁녀로 뽑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었는데, 집안이나 국적 등 출신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왕소군은 열여덟 살에 이미 가무와 비파 연주에 능했고, 자색이 뛰어나 궁녀로 선발되었다. 당시에는 뇌물을 주면서까지 궁녀로 선발되려는 경우가 많았으며, 선발되는 궁녀의 수도 수천 명에 달했다. 따라서 황제가 일일이 선발된 궁녀를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했고, 이에 화공이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을 보고 간택했다.

 

원제가 본 왕소군의 초상화는 실물과 달리 세상에 둘도 없는 추녀의 모습이었다. 황제가 초상화를 보고 간택한다는 것을 안 궁녀들은 황제를 하룻밤이라도 모시기 위해 화공들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고 궁에 연줄도 없었던 데다 원제를 속일 마음도 없었던 왕소군은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고, 그 결과 평범한 얼굴에 큰 점이 찍힌 초상화를 얻게 되었다. 그녀는 5년간 원제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궁녀 신분에 머무르며 외롭고 쓸쓸한 궁 생활을 비파를 연주하며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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