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八陣磧(팔진적) : 소식(蘇軾)
팔진의 자갈밭
平沙何茫茫,仿佛見石蕝。縱橫滿江上,歲歲沙水嚙。孔明死已久,誰復辨行列。
神兵非學到,自古不留訣。至人已心悟,後世徒妄說。自從漢道衰,蜂起盡奸傑。
英雄不相下,禍難久連結。驅民市無煙,戰野江流血。萬人賭一擲,殺盡如沃雪。
不為久遠計,草草常無法。孔明最後起,意欲掃群孽。崎嶇事節制,隱忍久不決。
志大遂成迂,歲月去如瞥。六師紛未整,一旦英氣折。惟餘八陣圖,千古壯夔峽。
平沙何茫茫(평사하망망) : 평평한 모래밭 어찌 이리도 망망한가.
仿佛見石蕝(방불견석절) : 마치 늘어선 돌무더기 보는 것 같네.
縱橫滿江上(종횡만강상) : 종횡으로 강가에 가득히 있는데
歲歲沙水齧(세세사수설) : 해마다 모래와 물이 조금씩 갉아먹네.
孔明死已久(공명사이구) : 제갈공명은 죽은지 이미 오래 됐는데
誰復辨行列(수복변행렬) : 그 누가 더 이상 그 행렬을 알아보리?
神兵非學到(신병비학도) : 신묘한 방법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니
自古不留訣(자고불류결) : 옛날부터 그 비결이 보존되지 않네.
至人已心悟(지인이심오) : 지인은 이미 八陣法을 마음으로 깨닫고
後世徒妄說(후세도망설) : 후세 사람들 쓸데없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네.
自從漢道衰(자종한도쇠) : 한나라의 왕도가 스스로 쇠퇴 되면서부터
峰起盡姦傑(봉기진간걸) : 봉기한 사람 모두가 간교한 인걸이라네.
英雄不相下(영웅불상하) : 영웅들이 상호간에 양보하려 들지 않아
禍難久連結(화난구란결) : 재앙이 오래도록 그칠 줄을 몰랐네.
驅民市無烟(구민시무연) : 백성을 몰아내어 시장에 연기가 없고
戰野江流血(전야강류혈) : 들판에서 싸우느라 강에 피가 흘렀네.
萬人賭一擲(만인도일척) : 모든 사람이 단판 승부에 운명을 걸어서
殺盡如沃雪(살진여옥설) : 눈에 물을 뿌리듯 손쉽게 다 죽였네.
不爲久遠計(부위구원계) : 장구한 계략을 세우지 못하고
草草常無法(초초상무법) : 허둥지둥 언제나 진법이 없었네.
孔明最後起(공명최후기) : 공명이 누구보다 뒤늦게 나타나서
意欲掃群孽(의욕소군얼) : 온갖 재앙을 말끔히 쓸어 버리려 하네.
崎嶇事節制(기구사절제) : 군사의 지휘 통솔 험난하여서
隱忍久不決(은인구불결) : 은인자중 오랫동안 결정하지 못했네.
志大遂成迂(지대수성우) : 성취해야 할 뜻은 크고 먼데
歲月去如瞥(세월거여별) : 세월은 별안간에 다 지나가 버렸네.
六師紛未整(육사분미정) : 천자의 군대 어지러이 정돈되지 않아
一旦英氣折(일단영기절) : 하루아침에 빼어난 기운 꺾이었네.
惟餘八陣圖(유여팔진도) : 오직 팔진도만 이렇게 남아서
千古壯夔峽(천고장기협) : 오랜 세월 웅장하도다. 구당협이여!
八陣磧可以指:
* 八陣磧 (蘇軾)
* 八陣磧 (蘇轍)
* 팔진법(八陣法) : 중국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창안하였다는 고대 진법.
팔진(八陣)이란 중국 고대의 인물인 풍후(風后)가 지은 『악기경(握奇經)』에서 기인한 진법으로, 제갈량이 이를 바탕으로 전투 대형으로 여덟 가지 진법을 완성하였다. 팔진법은 이후 당나라 시대 이정(李靖)이 고안한 육화진(六花陣)에 영향을 주었고, 이정의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조선시대 다양한 진법을 개발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여 주었다.
* 팔진도(八陣圖) : 촉한의 제갈공명이 창안한 것으로, 중군을 가운데에 두고 전후좌우, 사우에 여덟 개의 진을 배치한 진법의 그림
* 봉절팔진도유지(奉節八陣圖遺址)
위치 : 사천성 중경시 봉절현(奉節縣) 현성 동남쪽 약 3km 지점의 장강 북쪽 연안. 길이 150m, 너비 60m 정도 되는 좁고 긴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모래 제방이다.
그 위에는 자갈과 조약돌이 가득 깔려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제갈량이 이 모래 제방 위에 잔돌들을 쌓아 팔진도(八陣圖)를 조성했다고 한다. 7m의 거리를 두고 쌓은 돌 보루가 종횡 여덟 줄이니, 모두 64무더기나 된다. 북위(北魏) 시기 역도원(酈道元)은 제방 위의 돌 보루가 높은 것은 1m도 되지 않고 낮은 것은 이미 마멸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기록에서는 이 돌무더기들이 세월이 갈수록 신기하게도 물결의 충격을 잘 견디며 잘 보존되었다고 말했다. 두보(杜甫)의 「팔진도(八陣圖))」, 유우석(劉禹錫)의 「관팔진도(觀八陣圖)」, 소식(蘇軾)의 「팔진적(八陣磧)」 등 시에서 이 유적지를 읊었다.
팔진의 모래 제방은 구당협(瞿塘峽) 기문(夔門) 입구에 있다. 강물이 기문으로 들어오다 저지당하면, 빠른 물살이 느려져 하절기 홍수에 밀려 떠내려온 진흙 · 모래 · 돌 등이 이곳에 쉽게 퇴적된다. 또 옛날 제방 위에는 염천(鹽泉)이 있었는데, 겨울철에 사람들이 늘 이곳으로 와서 보루에 쌓인 돌로 화덕을 만들고 고염(苦鹽)을 얻기 위해 소금을 끓였다. 그래서 해마다 침적된 돌 모래와 사람들이 소금을 끓이다 남겨 놓은 화덕으로 인해 ‘강은 흘러도 돌은 움직이지 않는(流江石不轉)’ 현상이 생겼다. 지금은 큰 댐을 건설했기 때문에 아득히 넓은 사주(沙洲)로 된 모래 제방도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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