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與諸子登峴山(여제자등현산) : 맹호연(孟浩然)
여럿이 함께 현산에 올라
人事有代謝(인사유대사) :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바뀌고
往來成古今(왕래성고금) : 오는 일과 가는 일 역사가 되네.
江山留勝迹(강산유승적) : 강산은 볼만한 곳 남겨두어서
我輩復登臨(아배부등림) : 우리 다시 올라와 볼 수 있게 하네.
水落魚梁淺(수락어량천) : 물 빠진 어량은 바닥 드러나 있는데
天寒夢澤深(천한몽택심) : 날 추운 몽택은 물 깊어져 끝이 없네.
羊公碑字在(양공비자재) : 옛사람 양공의 비석 글자 그대로 남아
讀罷泪沾襟(독파루점금) : 읽고 나니 눈물 흘려 옷을 적시네.
* 峴山 : 孟浩然의 고향인 지금의 湖北省 襄陽縣 남쪽 9리 지점에 있는데, 일명 峴首山이라 한다.
* 代謝 : 興替라고도 하며 새것이 와서 묵은 것을 대신하는 것, 곧 교체되어 바뀌는 것을 말한다.
* 往來 : 日往月來, 세월이 오고감을 가리킨다.
* 勝跡 : 名勝古蹟으로 여기서는 峴山을 말한다. 산 위에 羊祜의 墮淚碑가 있다.
* 魚梁 : 襄陽 鹿門山 부근의 沔水 중간에 있는 모래섬을 지칭한다. 《水經注》 〈沔水〉에 의하면 魚梁洲는 沔水 중간쯤에 있는데 東漢의 隱士인 龐德公이 살던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둑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곳이라고 보기도 한다.
* 夢澤 : 雲夢澤으로 고대 楚 나라 땅에 있었던 큰 늪의 이름이다. 지금의 湖南省 益陽縣과 湘陰 縣 이북, 湖北省의 江陵縣과 安陸縣 이남 및 武漢市 이서의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지금의 洞庭湖 北岸 일대의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는 산 위에서 보이는 일반 沼澤을 가리킨다.
* 羊公碑尙在 : ‘尙’이 ‘字’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羊公碑는 곧 峴首山 위에 있는 墮淚碑를 말한다. 晉 나라 武帝 때 羊祜가 襄陽을 진압하고 늘 여기서 술을 마셨다. 그는 산수를 즐겨서 자주 峴山에 올라 놀았는데, 從事 鄒湛에게 이르기를 “우주가 있을 때부터 이 산이 있었으니, 예로부터 賢士들이 여기 올라 조망하였을 것이다. 나와 그대 같은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모두 다 사라져 아는 이 없으니 슬프다. 내가 백 년 뒤에도 魂魄이 있다면 다시 이 산에 오르리라.” 하였는바, 《晉書》 〈羊祜傳〉에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 羊祜가 죽은 뒤에 양양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현산에 碑를 세우니, 보는 사람들이 슬퍼하여 눈물을 떨어뜨렸으므로 杜預가 그 碑를 墮淚碑라 하였다.
* 襟 : ‘巾’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진서(晉書)·양호전(羊祜傳)》에 따르면 양호는 형주(荊州)에 주둔하고 있을 때 사람들과 함께 자주 현산(峴山)에 올라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데 술기가 오르면 탄식하듯 말하곤 했다고 한다.
“천지가 있고 강산이 있어 수많은 인물들이 이곳을 찾아왔을 것이지만 지금 이렇게 이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모두가 연기처럼 사라져 아무것도 들을 수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양호는 생전에 정치적인 공적이 많아 사후 양양의 백성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현산에 비석과 사당을 세우고 때맞춰 제사를 지내며 그의 공적을 기렸는데 산에 와서 양공비(羊公碑)라고 줄여서 부르는 그의 비석을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양호의 뒤를 이은 또 한 사람의 명신 두예(杜預)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비석에 타루비(墮泪碑)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비석의 원래 이름은 진정남대장군양공호지비(晉征南大將軍羊公祜之碑)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 詩 *** > 孟浩然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원습유불우(訪袁拾遺不遇) : 맹호연(孟浩然) (0) | 2022.06.26 |
---|---|
송두십사지강남(送杜十四之江南) : 맹호연(孟浩然) (0) | 2022.06.26 |
망동정호증장승상(望洞庭湖贈張丞相)/임동정호증장승상(臨洞庭湖贈張丞相) : 맹호연(孟浩然) (0) | 2022.06.26 |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 : 맹호연(孟浩然) (0) | 2022.06.26 |
제의공선방(題義公禪房)/제대우사의공선방(題大禹寺義公禪房) (0) | 2022.06.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