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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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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억미지(早春憶微之) - 백거이(白居易)

by 산산바다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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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춘억미지(早春憶微之) - 백거이(白居易)

            이른 봄날 미지를 생각하며

 

 

昏昏老與病相和(혼혼노여병상화) : 늙고 병들어 몸과 마음이 혼곤해져서

感物思君嘆復歌(감물사군탄부가) : 보는 것마다 그대 생각에 탄식 섞인 노래가 되네.

聲早鷄先知夜短(성조계선지야단) : 짧아진 밤 아는 닭은 다른 닭보다 먼저 울고

色濃柳最占春多(색농유최점춘다) : 버들은 봄을 차지하려는 듯 빛깔을 더해가고

沙頭雨染斑斑草(사두우염반반초) : 백사장의 비 맞은 풀들은 빛깔이 더욱 선명해지고

水面風驅瑟瑟波(수면풍구슬슬파) : 봄바람은 물 위를 달리며 흰 물결을 일으키는데

可道眼前光景惡(가도안전광경오) : 눈앞에 보는 풍경이야 밉다고 말할 수 있지만

其如難見故人何(기여난견고인하) : 벗을 만나기 어려운 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 昏昏(혼혼) : 정신이 흐릿해지고 몸이 노곤해지다.

* 相和(상화) : 서로 조화를 이루다. 함께 찾아오다.

* 感物(감물) : 다른 것에 감동하거나 감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 沙頭(사두) : 모래사장. 모래톱. 모래섬.

* 斑斑(반반) : 반점이 많은 모양을 가리킨다. 숫자가 많은 것을 가리킨다. 빛깔이 선명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 瑟瑟(슬슬) : 푸른 빛깔을 가리킨다.

백거이는 暮江吟이란 시에서도 一道殘陽鋪水中, 半江瑟瑟半江紅(석양빛 한 줄기 물 위로 비치니 / 강의 반은 푸르고 반은 붉게 일렁이네)’이라고 읊었다.

* 可道(가도) : 말할 수 있다.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에서 道可道, 非常道(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 其如(기여) : 어찌하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 故人(고인) :

 

장경(長慶) 3(823) 쉰둘이 된 백거이가 항주자사(杭州刺史)로 있을 때에 월주(越州)(소흥紹興)자사와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로 부임하던 원진이 10월에 항주를 지나다 잠깐 백거이를 만났다 헤어진 뒤로 두 사람은 임지가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만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 시기에 두 사람은 많은 시를 주고받았고 백거이가 보낸 위 시를 받은 원진은 백거이의 운을 빌어 아래와 같은 답시를 썼는데 차운시라는 말대로 1, 2, 4. 6, 8구의 마지막 글자가 같다.

 

 

雨香雲澹覺微和(우향운담각미화) : 비와 구름에서 조금씩 따뜻함이 느껴지고

誰送春聲入櫂歌(수성춘성입도가) : 누가 보내는 봄 소리인지 뱃노래가 들려오네.

萱近北堂穿土早(훤근북당천토조) : 원추리는 뒤란에서 때 이르게 흙을 뚫고 나오고

柳偏東面受風多(유펴농면수풍다) : 버들은 동쪽에서 봄바람 맞는 날 많아졌네.

湖添水色消殘雪(호첨수색소잔설) : 호수의 물빛에서는 눈 색깔이 사라지고

江送潮頭湧漫波(강송조두용만파) : 조수가 물러간 강물에서는 큰 물결이 일어나네.

同受新年不同賞(동수신년부동상) : 함께 새해를 맞았지만 느낌이 서로 달라서

無由縮地欲如何(무유축지욕여하) : 축지법이라도 써서 가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네.

- 원진(元稹)낙천이 이른 봄에 보낸 시에 답하여(和樂天早春見寄)전문

 

 

쉰만 넘어도 자를 쓰는 데 아무런 어색함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기야 기운이 이전 같지 않은 것을 느끼는 것은 그보다도 더 이른 나이다. 이때만 해도 일곱 살이나 젊은 원진이 부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이로부터 십 년이 채 되지 않아 원진이 먼저 세상을 떴고 백거이는 원진을 먼저 보내고도 십 년을 더 넘게 살았다.

 

* 원진(元稹 779~831)

당조(唐朝) 때 시인으로 자는 미지(微之) 또는 위명(威明)이고, 낙양(洛陽) 사람이다. 북위(北魏) 종실인 선비족 탁발부의 후예로 부친 원관(元寬)과 모친 정씨(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신악부(新樂府)를 제창한 그를 사람들이 원백(元白)으로 병칭하였다. 어려서 부친이 세상을 뜬 뒤 모친을 따라 봉상(鳳翔)에 있는 외가로 가서 자랐다.

정원(貞元) 9(793)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을 제수한 뒤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직간을 잘하여 보수적인 관료와 환관들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구세력과 타협하여 벼슬을 살았다. 무창군절도사(武昌軍節度使)를 지내던 중 진중에서 병사했다. 염시(艶詩)와 도망시(悼亡詩)에 특히 능했다. 원씨장경집元氏長慶集60권과 소집小集10권을 남겼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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