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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聖 杜甫 詩

회금수거지이수(懷錦水居止二首)

by 산산바다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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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금수거지이수(懷錦水居止二首) - 두보(杜甫)

             금수에 살던 때를 회상하다

 

 

其一

軍旅西征僻(군려서정벽) : 군대가 서쪽 정벌하려는 곳 외져

風塵戰伐多(풍진전벌다) : 바람에 먼지 날리는 전쟁이 많지만

猶聞蜀父老(유문촉부로) : 여전히 촉 땅의 부로가

不忘舜謳歌(불망순구가) : 순임금 노래하기를 잊지 않았다고 들었다.

 

天險終難立(천험종난립) : 천연의 험지에서 끝내 몸 세우기 어려웠으니

柴門豈重過(시문기중과) : 사립문을 어찌 다시 들르겠는가?

朝朝巫峽水(조조무협수) : 아침마다 무협의 강물은

遠逗錦江波(원두금강파) : 멀리 금강의 물결을 이끌어 오건만.

 

* 이 시는 운안에서 성도의 초당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으로, 촉 땅의 난리를 걱정하는 마음과 떠나온 초당에 대한 미련 등이 표현되었다. 두보가 운안에 거주한 시기는 영태 원년 가을 이후부터 대력 원년 봄까지인데, 이 시의 저작 시기에 대하여 대다수의 주석가는 영태 원년으로 추정하였다. [두시상주]도 이 시를 영태 원년에 편재하면서 그 근거로 황학의 설을 제시했지만, [보주두시]를 보면 황학은 저작 시기를 대력 원년으로 추정하였다. 아마 구조오에게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시제의 '금수'는 성도를 흐르는 금강(錦江)이고 '거지'는 거처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성도의 초당을 가리킨다.

 

 

其二

萬里橋西宅(만리교서택) : 만리교 서쪽의 집과

百花潭北莊(만화담북장) : 백화담 북쪽의 장원

層軒皆面水(층헌개수면) : 층층의 처마 모두 물가에 닿아있고

老樹飽經霜(노수포경상) : 늙은 나무는 세월을 이겨왔네.

 

雪嶺界天白(설령계천백) : 눈 덮인 산봉우리는 하늘과 닿아 희고

錦城薫日黄(금성훈일황) : 금관성은 햇빛에 그을어 누르스름한데

惜哉形勝地(석재형승지) : 아쉽도다 명승지 이지만

回首一茫茫(회수일망망) : 고개 돌려 바라보니 망망하기만 하구나.

 

 

이 시는 시성 두보의 시로 그가 765년 즉 53살 때 쓴 시이다. 그는 이때 성도의 완화초당(莞花草堂)을 떠나 양자강을 따라 내려가 새로 거처인 운안(雲安)에 자리를 잡았을 때다. 시의 제목 금수에 살았을 때를 회상하며(懷錦水居止)는 성도 시절의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생활에 대한 회상이다. 금수는 흔히 금관성(金官城)이라고 부르는 성도성을 끼고 도는 강을 가리킨다. 성도시절 그는 완화계(浣花溪)라는 작은 개울 옆에 초당을 지어 생활했다. 아마 당시의 집이 만리교 서쪽이었고 백화담 북쪽이었던 듯하다. 층층건물은 이층 삼층이란 말 보다는 안채 사랑채 하는 식으로 몇 채의 건물이 한데 있었다는 말로 보인다. 또 그 울안에는 오래된 고목도 몇 그루 있었던 것 같다.

 

 

* 위의 이 그림 위쪽에 層軒皆面水 老樹飽經霜(층헌개면수 노수포경상)’이란 시구가 적혀있다. 시는 시성 두보의 시로 그가 765년 즉 53살 때 쓴 시이다. 그는 이때 성도의 완화초당(莞花草堂)을 떠나 양자강을 따라 내려가 새로 거처인 운안(雲安)에 자리를 잡았을 때다. 시의 제목 금수에 살았을 때를 회상하며(懷錦水居止)성도 시절의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생활에 대한 회상이다. 금수는 흔히 금관성(金官城)이라고 부르는 성도성을 끼고 도는 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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