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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聖 杜甫 詩

수고사군상증(酬高使君相贈)

by 산산바다 2020. 12. 24.

산과바다

高適

두보 시(杜甫 詩) HOME

 

 

 

         수고사군상증(酬高使君相贈) - 두보(杜甫)

           고사군 고적(高適)에게 화답하여주다

 

 

古寺僧牢落(고사승뢰락) : 옛 절이라 스님이 적어 쓸쓸하고

空房客寓居(공방객우거) : 빈 방에 나그네 처지로 산다네.

故人供祿米(고인공록미) : 친구들이 녹으로 받은 쌀을 보내오고

隣舍與園蔬(린사여원소) : 이웃집에서는 밭의 채소를 준다네.

雙樹容聽法(쌍수용청법) : 법당에서는 부처님 설법을 들을 수 있고

三車肯載書(삼거긍재서) : 세 수레는 불경을 기꺼이 실어오네

草玄吾豈敢(초현오기감) : 양웅처럼 태현경을 어찌 감히 지으리오마는

賦或似相如(부혹사상여) : 글 짓는 일이라면 상여정도는 될 듯하네.

 

 

* 牢落 : 드물다. 외롭고 쓸쓸하다. 적막하다. 살림이 졸아들어 보잘것없어지다. 육기(陸機)文賦에서 心牢落而無偶, 意徘徊而不能揥(마음이 쓸쓸해도 짝할 이 없고 / 뜻으로는 서성여도 버릴 수 없네)’라고 했다.

* 寓居 : 기거하다. 깃들어 살다. 타지에서 기대어 살다. ‘으로 쓴 자료도 있다.

* 雙樹 : 붓다가 마지막 설법을 마친 뒤 열반에 들었던 곳에 있던 사라쌍수(沙羅雙樹)를 가리킨다. ‘雙林이라고도 한다. 열반경涅槃經에서 世尊在雙樹間演法(세존께서 쌍수 사이에서 법을 설하셨다).’이라 했고, 翻譯名義集에서 娑羅樹, 東西南北四方各雙, 故曰雙樹. 方面悉皆一榮一枯(사라수는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한 쌍으로 있어서 상수라 한다. 각 방면 모두 하나가 번성할 때 하나는 시들어 있다).’라고 했다.

 

* 三車 : 법경(法華經)비유품(譬唯品)에서 長者以牛車羊車鹿車立門外, 引諸子出離火宅(장자가 소가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양이 끄는 수레를 갖고 와 문밖에 서서 불 타는 집에서 자식들이 나오기는 기다리고 있었다).’이라고 했는데, 성문승(聲聞乘)으로 비유되는 양이 끄는 수레(羊車)와 연각승(緣覺乘)으로 비유되는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 그리고 보살승(菩薩乘)으로 비유되는 소가 끄는 수레(牛車)는 각각 소승(小乘)과 중승(中乘), 그리고 대승(大乘)을 가리킨다. 이백(李白)僧伽歌에서 眞僧法號號僧伽, 有時與我論三車(참된 스님 법호를 승가라고 하는데 / 때때로 나와 함께 세 가지 수레를 논하네)’라고 했다.

* 草玄 : 서한西漢 때 사부가辭賦家이자 사상가인 양웅揚雄이 쓴 태현太玄을 가리킨다. 한서漢書양웅전하揚雄傳下에서 哀帝時, 丁傅董賢用事, 諸附離之者或起家至二千石. 時雄方草太玄, 有以自守, 泊如也(한애제 때 정씨와 부씨 등의 외척과 미남 동현이 권력을 장악하자 권세에 빌붙어 하루아침에 태수가 되어 녹봉 이천 석을 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이때 막 태현을 짓기 시작한 양웅은 그런 권력자들에게 아첨할 생각 없이 담박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냈다).’고 했다. 이후 玄草가 권세나 재물 따위에 마음 쓰지 않고 저술에 전념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相如는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키고, ‘로 쓴 자료도 있다.

 

건원乾元 2(759) 섣달, 동곡(同谷)을 나선 뒤 어렵게 성도(成都)에 이른 두보는

성도성 서쪽에 있는 초당사(草堂寺)란 절에서 승려 복공(復空)의 배려로 기거하게 되었는데,

이듬해 초에 당시 팽주자(彭州刺史)로 촉에 와 있던 고적이

 

人日寄杜二拾遺」 - 고적(高適) 시를 지어 보내오자 이에 답으로 쓴 것이다.

人日題詩寄草堂(인일제시기초당) : 정월 초에 초당으로 시를 지어 보내며

遙憐故人思故鄕(요련고인사고향) : 고향 그릴 벗 생각에 마음 하도 아파서

柳條弄色不忍見(유조농색불인견) : 푸르른 버들가지 춤추는 걸 못 보겠고

梅花滿枝空斷腸(매화만지공단장) : 가지 가득한 매화꽃에도 공연히 애가 타네

身在遠藩無所預(신재원변무소예) : 먼 데 있는 몸이라 조정 참여 어려워도

心懷百憂復千慮(심회백우부천려) : 맘속에선 근심걱정 셀 수 없이 일어나고

今年人日空相憶(금년인일공상억) : 금년에는 정월부터 생각이라도 해보지만

明年人日知何處(명년인일지하처) : 한 해 뒤 오늘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네

一臥東山三十春(일와동산삼십춘) : 동산에 드러누워 삼십 년을 지내고도

豈知書劍老風塵(기지서검노풍진) : 책과 칼 들고 벼슬 살 줄 뉘 알았으랴

龍鍾還忝二千石(용종환첨이천석) : 다 늙어서 뒤늦게 벼슬길에 나서보니

愧爾東西南北人(괴이동서남북인) : 터 못 잡고 떠도는 사람 마주하기 부끄럽네

- 고적(高適)의 시 정월 초이렛날 습유 두보에게 보내다(人日寄杜二拾遺)」 전문

高適像

* 고적高適(700~765) - 당조(唐朝) 때의 시인으로 자는 달부(達夫), 중무(仲武)이며 경현(景縣 - 지금의 허베이(河北) 경현(景縣)) 사람이지만 나중에 송주(宋州) 수양睢陽(지금의 허난河南 상구商丘 일대)에서 살았다. 어려서 집안이 어려웠으나 사람들과 사귀면서 나중에 공을 세우고 업적을 쌓을 것을 다짐하였다. 스무 살 때 장안(長安)으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른을 넘어서 계북(薊北)으로 가 변경을 경험했고, 나중에는 양()() 일대를 주유하였다.

천보(天寶) 3(744)이백(李白), 두보(杜甫), 잠참(岑參)과 함께 양원(梁園)을 돌아보며 친교를 맺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보 8(749) 수양태수 장구고(張九皋)의 추천을 받아 나이 쉰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한 뒤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백성들을 착취하고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삶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주유의 길에 나섰다. 안사의 난 이후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를 시작으로 팽주자사, 촉주자사, 검남절도사 등을 지내다가 산상시(散常侍)를 끝으로 벼슬살이를 마쳤다. 사람들이 그를 고상시(高常侍)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세상을 뜬 뒤에 예부상서(禮部尙書)가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이다. 잠참(岑參)과 더불어 고잠(高岑)으로 병칭되었고, 여기에 왕창령(王昌齡)과 왕지환(王之渙) 두 사람을 더해 변새사시인(邊塞四詩人)으로도 불렸으며, 이백과 두보를 비롯하여 하경명(何景明), 이몽양(李夢陽)과 함께 개봉(開封) 우왕대(禹王台) 오현사(五賢祠)에 모셔지기도 했다. 고상시집高尙詩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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