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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팔분소전가(李潮八分小篆歌)

by 산산바다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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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조팔분소전가(李潮八分小篆歌) - 두보(杜甫)

                  이조의 팔분서와 소전을 읊은 노래

 

 

蒼頡鳥跡既茫昧(창힐조적기망매) : 창힐의 새 발자국은 이미 아득하니

字體變化如浮雲(자체변화여부운) : 글자체의 변화 뜬 구름 같아 알 수 없네.

陳倉石鼓又已訛(진창석고우이와) : 진창(陳倉)의 석고문(石鼓文)도 이미 와전되니

大小二篆生八分(대소이전생팔분) :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에서 팔분서(八分書)가 나왔다네.

秦有李斯漢蔡邕(진유이사한채옹) : ()나라에는 이사(李斯) ()나라에는 채옹(蔡邕)이 있었는데

中間作者寂不聞(중간작자적불문) : 중간에는 작자가 적막하여 알려지지 않았다오.

嶧山之碑野火焚(역산지비야화분) : 역산의 비()는 들불에 타버렸고

棗木傳刻肥失真(조목전각비실진) : 대추나무에 전각한 것은 자획이 살쪄 참모습 잃었네.

 

이 시는 杜少陵集(두소릉집)18권에 실려 있는 바, 작자의 생질(甥姪)인 이조(李潮)가 팔분서(八分書)와 소전체(小篆體)에 뛰어남을 노래한 것으로, 대력(大曆) 원년(元年:766)에 기주(夔州)에서 지은 것이다. 이조는 이사(李斯)의 역산비(嶧山碑)를 본받았다고 하며, 팔분서(八分書)로 쓴 것으로는 唐慧義寺彌勒像碑(당혜의사미륵상비)彭元曜墓誌(팽원요묘지)가 있다고 한다.

* 이조(李潮) : 성당(盛唐)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능했던 서예가. () 조명성(趙明誠)금석록(金石錄당이조미륵상비(唐李潮彌勒像碑)이조의 글씨는 처음에는 극히 적어서 오직 이 비석과 팽원요묘지뿐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구했다. 그 필법 또한 빼어난 것이 아니어서 한택목(韓擇木)이나 채유린(蔡有鄰)과 비교할 수 없다.(潮書初絶少, 惟此碑與彭元曜墓志, 余得之. 其筆法亦不絶工, 非韓蔡比也.)”라고 하였다. 일설에 이조는 당대 전서의 대가인 이양빙(李陽冰)이라고 한다.

* 八分書(팔분서) :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고예(古隸)를 제외한 예서(隸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팔분서와 예서는 소전(小篆)과 대전(大篆)의 관계와 같으며, 고예의 연변에서 생겨난 것으로 필세상의 구별이 있을 뿐 짜임새에 있어서는 어떠한 차이점도 없다. 왜냐하면 팔분(八分)이란 고예에서 점점 파책(왼쪽으로 삐치는 획을 파라 하고 오른쪽으로 삐치는 획을 책이라고 한다.)이 생기고 글자의 팔면이 모두 충분히 배치되고 정제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팔분서의 대표작으로는 <예기비(禮器碑)>, 을영비(乙瑛碑)>, <서악화산묘비(西嶽華山廟碑)>등이 있다.

* 창힐(蒼頡 혹은 倉頡) : 한자를 창제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고대의 인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의 사관(史官)으로서, 눈이 네 개 달려있었다고 한다. 중화민국의 타자 입력법 중 하나인 창힐수입법은 이 인물의 이름을 딴 것이다.<위키백과>

 

* 蒼頡鳥跡(창힐조적) : 창힐은 황제의 신하이니,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

* 陳倉(진창) : 섬서성(陝西省) 寶雞縣 동쪽의 지명으로 원래 석고(石鼓)가 이곳에 흩어져 있었다.

* 大小二篆生八分(대소이전생팔분) : ()나라 태사인 ()가 처음으로 대전을 만들고 진()나라의 승상인 이사(李斯)가 소전을 만들고 왕차중(王次中)이 예서를 줄여 팔분서(八分書)를 만들었다. 채옹이 말하기를 신의 아비가 일찍이 말하기를 팔분서는 정막의 예서법을 줄여서 팔분을 제거하고 이사의 소전을 본받아 이 분을 제거하여 팔분을 취하였으므로 팔분서라 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전서(篆書) : 전서(篆書)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뉜다. 대전은 주문(籒文)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때 사주(史籒)가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으므로 붙여졌다. 대표적으로 대전에 속하는 주대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의 통일을 꾀할 때에 이사(李斯)가 대전의 서체를 더 간략하게 만들었는데 그 서체가 소전(小篆)이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역산비가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자형이 아래위로 길다.

* 嶧山之碑(역산지비) : 진시황(秦始皇)이 동쪽으로 순행(巡行)할 적에 추역산에 올라 돌에 새겨 공덕을 칭송하니, 이 글은 이사(李斯)의 소전이다.

* 棗木傳刻肥失真(조목전각비실진) : 추역산(鄒嶧山)의 비석이 들불에 타버리자, 이것을 다시 대추나무에 옮겨 새겼는데, 원래보다 글자체가 두꺼워졌으므로 자획이 살쪄 참모습을 잃었다고 한 것이다.

 

 

苦縣光和尚骨立(고현광화상골립) : 고현(苦縣)에 있는 광화(光和)의 노자비(老子碑) 아직도 뼈대가 서 있으니

書貴瘦硬方通神(서귀수경방통신) : 글씨는 야위고 굳셈 귀하니 신()을 통할 수 있네.

惜哉李蔡不復得(석재이채불부득) : 애석하다 이사(李斯)와 채옹(蔡邕) 다시 얻을 수 없는데

吾甥李潮下筆親(오생이조하필친) : 우리 생질 이조(李潮) 붓을 놀리면 이들과 가깝다오.

尚書韓擇木(상서한택목) : 상서(尙書)인 한택목(韓擇木)

騎曹蔡有鄰(기조채유린) : 기조(騎曹)인 채유린(蔡有隣)

開元已來數八分(개원이래수팔분) : 개원(開元) 이래로 팔분(八分)을 잘 쓴다고 꼽아오는데

潮也奄有二子成三人(조야엄유이자성삼인) : 이조(李潮)는 두 사람의 경지 소유하여 셋이 되었다오.

況潮小篆逼秦相(황조소전핍진상) : 더구나 이조(李潮)의 소전(小篆)은 진()나라 승상 이사(李斯)와 가까워

快劍長戟森相向(쾌검장극삼상향) : 예리한 칼과 긴 창이 삼엄하게 서로 향한 듯하여라.

八分一字直百金(팔분일자직백금) : 팔분(八分) 한 글자는 백금(百金)의 값이 나가니

蛟龍盤拏肉屈強(교룡반나육굴강) : 교룡이 서려 있는 듯 근육이 억세어 보이누나.

 

* 苦縣光和(고현광화) : 는 하남성(河南省) 녹읍현(鹿邑縣) 동쪽의 옛 땅 이름으로 노자(老子)의 고향이고, 광화(光和)는 동한(東漢) 영제(靈帝)의 연호이다. 호현의 노자비(老子碑)는 광화년간(光和年間)에 세운 것으로 채옹(蔡邕)이 썼다.

* 瘦硬(수경) : 필획이 여윈듯하면서도 강하고 곧으며 힘이 있는 것을 말한다.

* 李蔡(이채) : 이사(李斯)와 채옹(蔡邕).

* 騎曹(기조): 병부(兵部)를 가리킨다.

* 韓擇木(한택목) : 당나라 양주(揚州) 광릉(廣陵) 사람. 사유칙(史維則), 채유린(蔡有隣), 이조(李潮)와 함께 예서사가(隷書四家)’로 불린다. 한유(韓愈)의 숙부다. 현종(玄宗) 때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와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냈다. 팔분(八分)과 정서(正書)에 능했다. 천보(天寶) 초에 제왕시서(諸王侍書)와 경왕부속(慶王府屬), 영왕부사마(榮王府司馬),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을 지냈다.

* 蔡有鄰(채유린) : 당대의 서예가로서 예서에 능하였다.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주로 활동하였다.

* 快劍長戟森相向(쾌검장극삼상향) : 서체의 빠르기와 날카로움이 칼과 창같이 잘 정제되었다는 뜻이다.

* 一字直百金(일자직백금) : 와 같은 뜻이다.서경잡기(西京雜記)에는 회남왕 유안(劉安)회남자(淮南子)를 짓자 양웅(揚雄)은 매 글자에 출입이 있다 하여 한 자에 백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말이 있고, 사기(史記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여불위는 식객을 시켜 그 들은 바를 저술하여 논집을 내고 그것을 여씨춘추(呂氏春秋)라 불렀다. 이것을 함양의 시문(市門)에 진열하여 놓고 천금을 그 위에 달아 놓은 뒤에 제후의 유사(游士)와 빈객들을 맞아들여 단 한 글자라도 더 보태거나 빼버리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정막(程邈)이 이사의 글씨를 보고 이는 한 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此一字直千金)”고 했다 한다.

* 蛟龍盤拏(교룡반나) : 반나는 필획이 굽이돌아 끌어당기는 상태를 말한다. 교룡반나는 필적이 기괴하고 굳세어 용이 서리어 끌어당기는 듯하다는 뜻이다.

* 屈强(굴강) : 고집이 세다. 강직하고 순종하지 않는 모양.

 

 

吳郡張顛誇草書(오군장전과초서) : 오군(吳郡)의 장전(張顚)이 초서(草書) 과시하나

草書非古空雄壯(초서비고공웅장) : 초서(草書)는 옛것 아니니 부질없이 웅장하기만 하다오.

豈如吾甥不流宕(기여오생불류탕) : 어찌 우리 생질이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아니하여

丞相中郎丈人行(승상중랑장인항) : 승상(丞相)과 중랑(中郞)의 장인(丈人) 항렬이 됨만 하겠는가.

巴東逢李潮(파동봉이조) : 파동(巴東)에서 이조(李潮) 만나니

逾月求我歌(유월구아가) : 한 달이 넘도록 나에게 노래 지어주기 청하였네.

我今衰老才力薄(아금쇠로재력박) : 내 이제 노쇠하고 재주와 힘도 부족하니

潮乎潮乎奈汝何(조호조호내여하) : 이조(李潮)! 이조(李潮)! 너에게 어찌하리.

 

* 張顚(장전) : ()은 미치광이라는 뜻으로, ()나라 때 서가(書家)인 장욱(張旭)의 이칭(異稱)이다. 자가 백고(伯高)인데 초서(草書)를 잘 써 초성(草聖)으로 알려졌는바, 특히 술에 취하면 큰소리로 고함치고 미친듯이 달리며 초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 丞相中郞(승상중랑) : 승상은 관명으로 진()나라 승상을 지낸 이사(李斯)를 가리키고, 중랑 또한 관명(官名)으로 후한(後漢) 때에 이 벼슬을 지낸 채옹(蔡邕)을 가리킨다.

* 丈人行(장인항) :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뻘 이라는 뜻으로, 장자(長者)에 대한 존칭. 이사·채옹은 이조의 스승임을 이르는 말이다.

* 파동(巴東) : () 이름으로, 후한 때 파군(巴郡: 지금의 사천성 동부)을 셋으로 나누어 삼파(三巴)라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호북성(湖北省)에 속한다. 파수(巴水)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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