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두보는 퉁구에서도 안주하지 못한 채, 1개월 만에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를 향하여 떠났다. 산천은 험하고 식량은 늘 부족했으며 처자를 이끌고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때 그는 저 유명한 기행시인 〈성도기행(成都紀行){十二首}를 지었다.
두보의 〈성도기행〉 12수는 모두 오언고시로 장편이다. 구조오(仇兆鰲)가 편찬한 《두시상주(杜詩詳注)》에는 권 9에 수록되어 있다. 두보의 원주에 “건원 2년 12월 1일에 농우를 떠나 성도로 갔다”고 했다.
12수는 〈발동곡현(發同谷縣)〉·〈목피령(木皮嶺)〉·〈백사도(白沙渡)〉·〈수회도(水會渡)〉·〈비선각(飛仙閣)〉·〈오반(五盤)〉·〈용문각(龍門閣)〉·〈석궤각(石櫃閣)〉·〈길백도(桔柏渡)〉·〈검문(劍門)〉·〈녹두산(鹿頭山)〉·〈성도부(成都府)〉이다. 퉁구에서 청두까지는 500킬로미터에 가깝다고 한다.
성도기행십이수(成都紀行十二首) - 두보(杜甫)
발동곡현(發同谷縣), 목피령(木皮嶺), 백사도(白沙渡), 수회도(水會渡), 비선각(飛仙閣), 오반(五盤), 용문각(龍門閣), 석궤각(石櫃閣), 길백도(桔柏渡), 검문(劍門), 녹두산(鹿頭山), 성도부(成都府)
〈성도기행〉 12수의 첫수인 〈발동곡현(發同谷縣)〉은 퉁구(同谷)를 떠나면서 지은 것으로, 20구의 장편이다.
其一
발동곡현(發同谷縣)-동곡현을 떠나며
賢有不黔突(현유불검돌) : 현인 묵자도 굴뚝이 검도록 앉아있지 못했고
聖有不煖席(성유불난석) : 성인 공자도 자리가 더워지도록 있지 못했거늘
況我飢愚人(황아기우인) : 하물며 나같이 배고프고 어리석은 사람이
焉能尙安宅(언능상안댁) : 어찌 편안히 한곳에 살리오.
始來玆山中(시래자산중) : 처음에 이 산속에 와서는
休駕喜地僻(휴가희지벽) : 수레를 쉬고 땅이 그윽함을 기뻐했으니
奈何迫物累(내하박물루) : 나는 왜 이러저러한 사정에 핍박받아
一歲四行役(일세사행역) : 한 해에 화주·진주·성주(成州)·동곡 네 곳을 떠돌았나.
忡忡去絶境(충충거절경) : 하지만 시름겹게 이 절경을 버리고
杳杳更遠適(묘묘경원적) : 아득하니 또 멀리 가게 되어
停驂龍潭雲(정참룡담운) : 용담 가 지날 때 구름 보며 말을 머물고
回首虎崖石(회수호애석) : 호애(虎崖)의 흰 바위를 사랑하여 머리 돌려 바라본다.
臨岐別數子(림기별수자) : 갈림길에 임하여 두어 벗을 이별하매
握手淚再滴(악수루재적) : 손잡고 눈물을 다시 떨어뜨리나니
交情無舊深(교정무구심) : 우정이란 오랜 벗이라 해서 깊은 것도 아니기에
窮老多慘慽(궁로다참척) : 곤궁하고 늙은 터라 너무도 슬프구나.
平生懶拙意(평생라졸의) : 내 평생에 게으르고 어리석은 뜻만 있었기에
偶値棲遁跡(우치서둔적) : 우연히도 은둔할 자취를 행여 만났었다만
去住與願違(거주여원위) : 가거나 머물거나 내 뜻과 어긋나 정처 없이 분주하니
仰慙林間隔(앙참림간격) : 숲속 새들이 자득함을 쳐다보며 부끄러워하노라.
현인 묵자도 한곳에 안주하지 못해서 굴뚝이 검어질 겨를이 없었고, 성인 공자도 천하를 주유하느라 앉은 자리가 따스해질 겨를이 없었다. 그렇기에 배고프고 고달팠던 내가 이 동곡에 머물게 되었을 때는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이곳도 버리고 떠나게 되매, 호애라는 경승지를 못 보게 된 것도 서글프고, 그동안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너무도 슬프다. 세간과 조화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곳에 은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 뜻도 어긋나, 숲 속에서 제 있을 곳을 얻어 재잘거리는 새들이 부럽기만 하고 또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기만 하다.
제2수는 목피령(木皮嶺)이다. 두보는 퉁구현의 동남쪽 20리쯤 현재의 휘현(徽縣) 서쪽 총산(蔥山) 동맥(東脈)에 있는 목피령 고개를 넘어가면서 〈목피령(木皮嶺)〉이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其二
목피령(木皮嶺) - 목피령에 오르며
首路栗亭西(수로률정서) : 율정 서쪽으로 길을 향하면서
尙想鳳凰村(상상봉황촌) : 봉황 마을을 오히려 잊지 못하네.
季冬携童稚(계동휴동치) : 늦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辛苦赴蜀門(신고부촉문) : 고생하며 촉문[검각]으로 가는 길.
南登木皮嶺(남등목피령) : 남쪽으로 목피령에 오르는데
艱險不易論(간험불역론) : 그 험난함은 두말할 것 없으니
汗流被我體(한류피아체) : 땀이 흘러 내 몸을 덮어
祁寒爲之暄(기한위지훤) : 큰 추위에도 이로 인해 덥구나.
遠岫爭輔佐(원수쟁보좌) : 먼 뫼들은 다투어 보좌하고
千巖自崩奔(천암자붕분) : 뭇 바위도 스스로 무너지듯 달려오기에
始知五嶽外(시지오악외) : 비로소 알리라 오악 이외에도
別有他山尊(별유타산존) : 각별히 존귀한 산이 있는 줄을.
仰干塞大明(앙간새대명) : 산령이 위로 간범하여 태양을 가리고
俯入裂厚坤(부입렬후곤) : 굽혀서는 두터운 땅을 찢은 형세
再聞虎豹鬪(재문호표투) : 호랑이와 표범 싸움 소리를 다시 들으며
屢跼風水昏(루국풍수혼) : 바람과 강물 어둑한 곳을 자주 굽혀 지나노라.
高有廢閣道(고유폐각도) : 높은 데에는 버려진 잔도가 있어
摧折如斷轅(최절여단원) : 꺾여 굽은 모습이 수레 바퀴살 끊긴 듯하다.
下有冬靑林(하유동청림) : 아래에는 동청의 수풀이 있어
石上走長根(석상주장근) : 돌 위에 긴 뿌리가 내달리며
西崖特秀發(서애특수발) : 서쪽 벼랑은 두드러지게 빼어나
煥若靈芝繁(환약령지번) : 빛나는 것이 영지가 떨기 진 듯해라.
潤聚金碧氣(윤취금벽기) : 촉촉하기는 금벽(金碧)의 기운이 모인 듯하고
淸無沙土痕(청무사토흔) : 맑기는 흙모래 흔적이 없으니
憶觀崑崙圖(억관곤륜도) : 전에 곤륜산 그림을 본 적 있다만
目擊玄圃存(목격현포존) : 현포 선경을 실제로 보는 듯하다.
對此欲何適(대차욕하적) : 이 좋은 데를 두고 어디로 갈까
默傷垂老魂(묵상수로혼) : 늘그막의 이 영혼을 가만히 슬퍼하노라.
두보는 검각이 중국의 보편적인 산악신앙에서 손꼽는 오악보다도 더 존귀하다고 했다. 검각으로 이어지는 목피령은 산령이 위로 태양을 가리고 아래로 두터운 땅을 찢은 형세인 데다가 그곳을 지나는 여행자는 호랑이와 표범 싸움 소리를 들으며 바람과 강물 어둑한 곳을 굽혀 지나야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두보는 그곳이 곤륜산의 현포와도 같은 선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선경을 놓아두고 떠돌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했다.
제3수는 〈백사도(白沙渡)〉이다. 이 나루는 휘현(徽縣) 서남쪽 소하관(小河關)의 낙하(洛河)가 탁수(濁水)와 이어지는 곳에 있는 관교패(官橋壩, 관청에서 관리하는 다리 둑)이다.
其三
백사도(白沙渡)
畏途隨長江(외도수장강) : 무서운 길이 긴 강을 따라 났고
渡口下絶岸(도구하절안) : 나루터는 끊어진 기슭 아래로 이어졌는데
差池上舟楫(차지상주즙) : 분분하게 배들이 오르내리며
杳窕入雲漢(묘조입운한) : 아스라이 구름하늘로 들어간다.
天寒荒野外(천한황야외) : 하늘은 거친 들 밖에 춥고
日暮中流半(일모중류반) : 해는 강 흐름 가운데서 저무나니
我馬向北嘶(아마향북시) : 나의 말은 북쪽을 향하여 울고
山猿飮相喚(산원음상환) : 산 원숭이는 물을 마시며 서로 부른다.
水淸石礧礧(수청석뢰뢰) : 맑은 물속에 돌들이 무리 지고
沙白灘漫漫(사백탄만만) : 모래 흰 강여울이 느릿느릿 흘러가기에
逈然洗愁辛(형연세수신) : 환하게 시름을 씻으니
多病一疎散(다병일소산) : 큰 병이 단번에 흩어진다만
高壁抵嶔崟(고벽저금음) : 높은 돌벼랑은 더욱 아스라하고
洪濤越凌亂(홍도월릉란) : 넓게 이는 거친 물결은 갈수록 어지러워
臨風獨回首(림풍독회수) : 바람에 임하여 홀로 머리 돌려 바라보며
攬轡復三歎(람비복삼탄) : 말고삐 잡고 다시 세 번 탄식한다.
“하늘은 거친 들 밖에 춥고, 해는 강 흐름 가운데서 저문다.”는 표현은 협곡의 을씨년스런 풍광을 매우 교묘하게 묘사한 명구이다. 두보는 “맑은 물속에 돌들이 무리 지고, 모래 흰 강여울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풍광을 보면서 시름을 씻고 숙병도 다 나은 듯했지만, 높은 돌벼랑이나 거친 물결을 보면서 이곳에는 안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낭패감이 마지막 두 구에 잘 드러나 있다.
제4수는 〈수회도(水廻渡)〉이다. ‘회’는 ‘回’나‘會’로도 적는다. 이 나루는 휘현(徽縣) 노우관(老虞關)의 어관도(漁關渡)를 가리킨다고 한다. 두보는 배로 가릉강(嘉陵江)을 건너면서 이 시를 지었다.
其四
수회도(水廻渡)
山行有常程(산행유상정) : 산길 가는 일정이 있어
中夜尙未安(중야상미안) : 한밤에도 쉬지 못하는데
微月沒已久(미월몰이구) : 희미한 달은 일찌감치 지고
崖傾路何難(애경로하난) : 벼랑은 기울어 길이 험난하다.
大江動我前(대강동아전) : 큰 강물이 내 앞에서 일렁거려
洶若溟渤寬(흉약명발관) : 넘실넘실 넓은 바다 같거늘
篙師暗理楫(고사암리즙) : 뱃사공은 어둠 속에 삿대를 잘 저어
歌笑輕波瀾(가소경파란) : 노래하고 웃으며 물결을 무던히 여긴다.
霜濃木石滑(상농목석활) : 서리 두터워 나무 바위 미끈거리고
風急手足寒(풍급수족한) : 바람 급하여 손발이 차가운데
入舟已千憂(입주이천우) : 배에 들면 온갖 시름 일어나고
陟巘仍萬盤(척헌잉만반) : 뫼에 오르면 산길은 일만 굽이.
廻眺積水外(회조적수외) : 많이 쌓인 물 밖을 되돌아 바라보니
始知衆星乾(시지중성건) : 뭇 별이 바싹 말라있음을 알겠나니
遠遊令人瘦(원유령인수) : 먼 길 여행은 사람을 여위게 해서
衰疾慙加餐(쇠질참가찬) : 병든 늙은이 밥 더 먹으란 옛말이 부끄럽구나.
일정에 따라 산길을 가면서 밤에도 쉬지 못하고 묵묵히 걷는데, 달은 일찌감치 져서 길이 더욱 험난하다. 문득 큰 강이 눈앞에 나타나 도도하게 흐른다. 뱃사공은 깜깜한 밤중에 배를 저어 배따라기 노래를 부르면서 물살을 헤치고 나아간다. 서리는 내려 나무와 바위를 물기로 적셔 매끄럽게 만들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손과 발을 차갑게 만든다. 배에 탔을 때부터 근심에 휩싸였지만, 배에서 내리자 더욱 험준한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머리를 돌려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찬란하게 흩어져 있는데, 먼 길을 오느라 이미 여위고 지쳐, 억지로 밥을 먹어도 기운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두보는 여행길의 풍경을 세밀하게 응시하다가, 결국 여행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말았다.
제5수는 〈비선각(飛仙閣)〉이다. 비선각은 지금의 산시성 뤠양(略陽)인 흥주(興州)의 동남쪽에 있는 비선진(飛仙鎭)의 전망 좋은 곳이다. 그 부근의 고개를 비선령이라고 한다.
현재는 검각의 초입인 검문관진(劍門關鎭)을 출발해서 신현성(新縣城)을 지나 가릉강(嘉稜江)을 따라나가 소화고진(昭化古鎭)에 닿고 다시 광원(廣元)으로 향하다가 명월협(明月峽)의 고잔도(古棧道)에서 마주치게 된다고 한다.
其五
비선각(飛仙閣)
土門山行窄(토문산행착) : 문처럼 열린 좁은 산을 헤쳐 나가매
微徑緣秋毫(미경연추호) : 가는 길이 가을터럭처럼 한데
棧雲闌干峻(잔운란간준) : 잔도의 구름은 성하여 높고
梯石結構牢(제석결구뢰) : 돌계단은 단단하게 얽어져 있다.
萬壑欹疎林(만학의소림) : 일만 골짝엔 성근 수풀 갸웃하고
積陰帶奔濤(적음대분도) : 짙은 숲 그늘은 내닫는 파도를 띠었는데
寒日外澹泊(한일외담박) : 차가운 해는 각도(閣道)의 바깥에 엷고
長風中怒號(장풍중노호) : 긴 바람은 골짝 안에서 울부짖누나.
歇鞍在地底(헐안재지저) : 말을 쉬게 하길 땅 밑에서 하니
始覺所歷高(시각소력고) : 지나온 곳이 높았음을 비로소 깨닫나니
往來雜坐臥(왕래잡좌와) : 오고 가며 앉고 눕고를 뒤섞어서 하느라
人馬同疲勞(인마동피로) : 사람이나 말이나 숨 가쁘고 고단하다.
浮生有定分(부생유정분) : 뜬 인생에는 정해진 분수 있거늘
飢飽豈可逃(기포기가도) : 고프거나 배부른 운명을 어떻게 도망하랴
嘆息謂妻子(탄식위처자) : 탄식하며 처자식 향해 이르기를
我何隨汝曹(아하수여조) : 내 무슨 이유로 그대들을 데리고 이 고생인가.
사람이 혼자 지나가기도 어려운 잔도를 따라 처자식을 데리고 말을 몰며 가는 고통을 매우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두보는 이 험로에서 “뜬 인생에는 정해진 분수 있거늘, 고프거나 배부른 운명을 어떻게 도망하랴”고 체념하는 듯도 하다가, 처자식을 향해 “내 무슨 이유로 그대들을 데리고 이 고생인가!”라고 극도의 탄식을 내뱉고 있다.
다음은 제6수 〈오반(五盤)〉이다. 오반은 다섯 번 서린다는 고개를 말한다. 현재는 칠반관(七盤關)이라 부르는데, 한중(漢中) 영강현(寧羌縣) 서남쪽에 있다.
其六
오반(五盤)
五盤雖云險(오반수운험) : 오반이 비록 험하다 말하나
山色佳有餘(산색가유여) : 산 빛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仰凌棧道細(앙릉잔도세) : 우러러 잔도 좁은 곳을 오르고
俯映江木疎(부영강목소) : 굽어 물가 나무 드문 데를 비춰본다.
地僻無網罟(지벽무망고) : 땅이 유벽하여 그물로 잡을 이 없으니
水淸反多魚(수청반다어) : 물이 맑아도 도리어 고기들 많아라.
好鳥不妄飛(호조불망비) : 좋은 새 멋대로 날지 아니하고
野人半巢居(야인반소거) : 뫼의 사람은 반만 깃들여 산다.
喜見淳朴俗(희견순박속) : 순후 검박한 풍속을 보고 즐거워
坦然心神舒(탄연심신서) : 훤히 내 마음을 펴겠다.
東郊相格鬪(동교상격투) : 동교[섬락(陝洛)]에선 여전히 싸움을 하니
巨猾何時除(거활하시제) : 큰 모진 이[安慶緖]는 어느 때 없어질까.
故鄕有弟妹(고향유제매) : 고향에 아우와 누이 있거늘
流落隨丘墟(류락수구허) : 유락하여 황폐한 땅을 다니노라.
成都萬事好(성도만사호) : 성도는 만사가 좋다지만
其若歸吾廬(기약귀오려) : 어디 내 집에 돌아감만 같으랴.
이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시상이 상반된다. 오반은 좁은 잔도에서 마주치는 험준한 고개이지만, 시의 전반부에서 두보는 “우러러 잔도 좁은 곳을 오르고, 굽어 물가 나무 드문 데를 비춰보”면서 그곳의 유벽한 풍광과 순후한 풍속에 위안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산시성(陝西省)과 뤄양(洛陽)에서는 안녹산의 잔당인 안경서가 여전히 발호하고 있고, 아우와 누이는 먼 곳에 떨어져 있어 안부가 걱정되기에, 두보는 도회지인 청두(成都)에 이른다고 해도 안정을 얻을 수 없으리란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기에“성도는 만사가 좋다지만, 어디 내 집에 돌아감만 같으랴”라고 한 것이다.
제7수는 〈용문각(龍門閣)〉이다. 현재의 쓰촨성 광원(廣元) 동북쪽에 있는 용문각을 지나면서, 두보는 잔도의 험준한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공포심을 생생하게 토로했다.
其七
용문각(龍門閣)
淸江下龍門(청강하룡문) : 맑은 강(가릉강)이 용문 아래로 내려 흐르고
絶壁無尺土(절벽무척토) : 높다란 벼랑에 한 치 흙도 없으며
長風駕高浪(장풍가고랑) : 긴 바람에 높은 물결 가로지르나니
浩浩自太古(호호자태고) : 넘실넘실 태고부터로다.
危途中縈盤(위도중영반) : 밭은 길이 벼랑 사이에 서려
仰望垂線縷(앙망수선루) : 우러러보니 실올이 드리운 듯.
滑石攲誰鑿(활석기수착) : 미끄러운 돌은 기우뚱하게 누가 깼나
浮梁裊相拄(부량뇨상주) : 부교(뜬 다리)가 흔들려 서로 괴어 두었군.
目眩隕雜花(목현운잡화) : 눈 어질어질 잡꽃이 떨어지듯 하고
頭風吹過雨(두풍취과우) : 머리에 바람 일어 비를 부르듯 하니
百年不敢料(백년불감료) : 백년 인생을 헤아리지 못할 지경
一墜那得取(일추나득취) : 한번 떨어지면 어찌 잡겠나.
飽聞經瞿塘(포문경구당) : 구당협 다닌다는 말을 익히 들었고
足見度大庾(족견도대유) : 대유령 건너는 일을 많이도 보았다만
終身歷艱險(종신력간험) : 일생 험한 데 지나는 일일랑
恐懼從此數(공구종차수) : 여기서부터 꼽아야 하리.
산시성과 쓰촨성의 경계를 흐르는 가릉강(嘉陵江)은 태곳적의 웅대함을 지니고 있다. 절벽에 난 밭은 잔도는 벼랑 사이에 서려 마치 실올이 드리운 듯한데, 중간에는 미끄러운 돌을 깎고 부교를 얽어둔 곳까지 있어, 당초 그렇게 길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신기할 정도이다. 장강(양자강)의 구당협이나 영남의 대유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험준한 곳을 꼽는다면 단연코 이곳을 손꼽아야 하리라. 두보는 그 험준함이 인생의 험로를 너무도 잘 비유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제8수는 〈석궤각(石櫃閣)〉이다. 이 요새는 쓰촨성 광원의 북쪽 천불애(千佛崖) 남단에 있으며, 삼국시대 촉나라 병사가 지키던 곳이다. 광원은 산시성과 간쑤성으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며, 북방의 간쑤성 천수(天水)에는 맥적산(麥積山)이라는 불교 유적이 있다. 두보는 이 시에서 석궤각이 층층 물결 위에 있고, 허공을 마주해 높은 벼랑이 이어져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其八
석궤각(石櫃閣)
季冬日已長(계동일이장) : 맹동에 해가 이미 길어
山晩半天赤(산만반천적) : 산에 석양 비춰 하늘이 붉은데
蜀道多草花(촉도다초화) : 촉도에는 화초가 많고
江間饒奇石(강간요기석) : 강물 사이엔 기이한 돌이 많다.
石櫃層波上(석궤층파상) : 석궤는 층층 물결 위에 있어
臨虛蕩高壁(림허탕고벽) : 허공을 마주해 높은 벼랑에 이어져
淸暉回群鷗(청휘회군구) : 말간 햇빛에 들갈매기 돌아오고
暝色帶遠客(명색대원객) : 어둔 빛은 길손을 에워싼다.
羈栖負幽意(기서부유의) : 나다님이 은둔의 뜻을 저버렸으니
感歎向絶迹(감탄향절적) : 사람 자최 끊긴 데로 향하여 탄식하고.
信甘孱懦嬰(신감잔나영) : 모진 처지에 걸렸음을 달게 여기니
不獨凍餒迫(부독동뇌박) : 춥고 주림에 핍박받아 그럴 뿐이 아니다.
優游謝康樂(우유사강악) : 사강락(사영운)은 유유하고
放浪陶彭澤(방랑도팽택) : 도팽택(도연명)은 방랑했건만
吾衰未自由(오쇠미자유) :` 나는 노쇠해서 자득하지 못하기에
謝爾性有適(사이성유적) : 그대 두 사람의 유유자적함을 사양한다오.
두보는 인적이 끊어진 곳으로 나다니며 탄식하고, 춥고 주림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사영운의 넉넉한 삶도 자신의 몫이 아니고 도연명의 일민(逸民)으로서의 삶도 몫이 아니라고 체념했다.
제9수는 〈길백도(桔柏渡)〉이다. 이 나루는 쓰촨성 소화현(昭化縣)의 옛 성 바깥에 백수강(백룡강)과 가릉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가맹관(캽萌關)이라고도 부르는 군사 요지이다. 전국시대 이래 옛 역로로, 나루 어구에 오래된 잣나무들이 하늘로 솟아 있어서 길백이라 불렀다고 한다.
其九
길백도(桔柏渡)
靑冥寒江渡(청명한강도) : 높은 하늘 아래 찬 강물이 지나는데
駕竹爲長橋(가죽위장교) : 대를 가로질러 긴 다리로 삼았는데
竿濕烟漠漠(간습연막막) : 죽간 젖은 데 아지랑이 아득하게 퍼져 있고
江水風蕭蕭(강수풍소소) : 강물에는 바람이 스르르 불어온다.
連笮動嫋娜(련착동뇨나) : 연이은 대다리는 흔들흔들
征衣颯飄颻(정의삽표요) : 길손 옷은 바람에 팔랑팔랑
急流鴇鷁散(급류보익산) : 물 급한 곳에 자고새 놀라 흩어지고
絶岸黿鼉驕(절안원타교) : 깎아지른 기슭에 자라들 건장하다.
西轅自玆異(서원자자이) : 서쪽(성도) 향하는 수레가 여기부터 길이 달라
東逝不可要(동서불가요) : 동쪽으로 가자고는 요구치 못하겠나니
高通荊門路(고통형문로) : 높다랗게 형문으로 길이 통했고
闊會滄海潮(활회창해조) : 널찍하니 창해에 조수가 모여든다.
孤光隱顧眄(고광은고면) : 외론 햇빛이 돌아볼 사이에 숨고
遊子恨寂寥(유자한적요) : 떠도는 나는 고요함이 서러워라
無以洗心胸(무이세심흉) : 마음을 헤쳐 씻어내질 못하고
前登但山椒(전등단산초) : 전진해서 산마루를 오를 뿐.
마지막 구절의 산초(山椒)는 산마루를 뜻한다. 이 시도 산길의 험준함을 묘사하되, 숨이 막히는 광경보다는 시야에 들어오는 원경과 미세한 근경을 대비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외론 햇빛이 돌아볼 사이에 숨고, 떠도는 나는 고요함이 서러워라”라는 구절은 여전히 처참한 느낌을 담고 있다.
제10수는 〈검문(劒門)〉이다. 검문은 검각(劍閣)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쓰촨성 검각현(劍閣縣)에 있는 검문관(劍門關)을 가리킨다. 아스라한 절벽이 중간에 끊겨 문을 열어둔 듯하고 마치 칼을 꽂아놓은 듯하다. 삼국시대 촉(蜀)의 강유(姜維)가 위(魏)의 종회(鍾會)를 막아낸 천연의 요새이다.
其十
검문(劒門)
惟天有設險(유천유설험) : 하늘이 험한 곳을 설치하되
劒門天下壯(검문천하장) : 검문이 천하에 가장 장대하다.
連山抱西南(련산포서남) : 연이은 뫼는 서남으로 끌어안고
石角皆北向(석각개북향) : 돌부리는 모두 북쪽을 향했다.
兩崖崇墉倚(량애숭용의) : 양 기슭은 높은 성벽처럼 갸우스름하여
刻畵城郭狀(각화성곽상) : 성곽의 형상을 새겨 그린 듯.
一夫怒臨關(일부노림관) : 한 사람이 노하여 관문에 임하면
百萬未可傍(백만미가방) : 백만 사람이 가까이 못 할 정도.
珠玉走中原(주옥주중원) : 여기 출토의 주옥은 중원으로 나가니
岷峨氣悽愴(민아기처창) : 민산과 아산 기운이 처창도 하다.
三皇五帝前(삼황오제전) : 삼황오제 이전에는
鷄犬莫相放(계견막상방) : 닭과 개를 풀어놓지 않았더니
後王尙柔遠(후왕상유원) : 후대 왕이 주변국의 회유를 숭상하자
職貢道已喪(직공도이상) : 조공을 행하면서 순후한 도가 사라졌다.
至今英雄人(지금영웅인) : 지금에 이르도록 영웅들이
高視見覇王(고시견패왕) : 자만하여 패왕 되는 일을 보았거니
幷呑與割據(병탄여할거) : 땅을 삼키거나 차지해 버텨
極力不相讓(극력불상양) : 있는 힘 다 부려 사양하지 않았다.
吾將罪眞宰(오장죄진재) : 내 장차 조물주를 죄주어
意欲剷叠嶂(의욕산첩장) : 첩첩 묏부리를 깎아버리려 하나니
恐此復偶然(공차복우연) : 그러면 저런 사람 또 있을까 하여
臨風默惆悵(림풍묵추창) : 바람 맞으며 가만히 슬퍼하노라.
두보는 영웅들이 패권을 쥐려고 그 험준한 곳을 근거로 발호하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내 장차 조물주를 죄주어, 첩첩 묏부리를 깎아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군웅이 할거하여 힘의 논리에 따라 침략을 자행하는 폭력의 논리를 증오하고, 순후한 도리를 존중하던 상고시대를 그리워한 것이다.
제11수는 〈녹두산(鹿頭山)〉이다. 녹두산은 쓰촨성 더양시(德陽市) 뤄장현(羅江縣)에 있다.
其十一
녹두산(鹿頭山)
鹿頭何亭亭(록두하정정) : 녹두산이 자못 높으니
是日慰飢渴(시일위기갈) : 이날 나의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위로해 준다.
連山西南斷(련산서남단) : 연이은 뫼가 서남쪽에 그쳐 있어
俯見千里豁(부견천리활) : 굽어 촉 땅을 보니 천리에 훤하다.
遊子出京華(유자출경화) : 여행객이 번화한 서울을 나와
劒門不可越(검문불가월) : 검문이 험해서 넘지 못할 듯하더니
及玆險阻盡(급자험조진) : 여기 이르러 험난함이 다하여
始喜原野闊(시희원야활) : 비로소 들판이 훤함을 기뻐한다.
殊方昔三分(수방석삼분) : 특수한 이곳에서 유비는 천하를 셋으로 나눠 갖고
覇氣曾間發(패기증간발) : 패주(覇主)의 기운이 그 사이에 발했으나
天下今一家(천하금일가) : 천하가 이제 한 집이 되었으니
雲端失雙闕(운단실쌍궐) : 구름 끝에 패주의 쌍궐이 없어졌도다.
悠然相楊馬(유연상양마) : 양웅(楊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생각하노니
繼起名硉兀(계기명률올) : 서로 이어 일어나 명성이 우뚝했지.
有文令人傷(유문령인상) : 문장재주가 사람을 서럽게 하니
何處埋爾骨(하처매이골) : 어느 땅에 너의 뼈를 묻을까.
紆餘脂膏地(우여지고지) : 기름지고 찰진 땅이 멀고 넓어서
慘憺豪俠窟(참담호협굴) : 호협 배출하는 굴혈이 슬프기만 하여라.
杖鉞非老臣(장월비로신) : 부월 지녀 진무할 노성한 신하가 아니라면
宣風豈專達(선풍기전달) : 풍화를 베풂을 어디로부터 통달하리오.
冀公柱石姿(기공주석자) : 기국공(冀國公) 배면(裴冕)은 급류 막아설 주석(柱石) 자질로
論道邦家活(론도방가활) : 도리를 의논하여[태자를 즉위시킴] 나라를 살렸다.
斯人亦何幸(사인역하행) : 여기 사람은 또 무슨 행운 이었나
公鎭餘歲月(공진여세월) : 기국공이 진무함이 여러 해 되었다니.
두보는 녹두산에 이르러 들판이 드넓은 지형을 만나 비로소 안도했다. 그리고 한(漢)나라 때 양웅과 사마상여와 같은 문장가가 나서 일시에 명성이 높았던 일을 회상하고, 또 당시에 배면(裴冕)이 당나라 숙종을 보필해서 촉 땅을 기반으로 국면 전환을 도모하고 있는 사실을 예찬했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 현종은 촉 땅으로 피신하여 마외(馬嵬)에 이르러 부로들의 요청에 따라 군사를 나누고 셋째 아들로서 태자였던 형(亨)에게 전지를 내려 전위하려고 했다. 태자는 두홍점(杜鴻漸)과 배면(裵冕)을 측근에 두었는데, 그들이 모두 삭방으로 가기를 권하고, 영무(靈武)에 이르러 마외에서의 명령을 따르기를 청하자, 즉위했다. 그가 당나라 숙종이다. 숙종은 배면ㆍ두홍점ㆍ곽자의(郭子儀)ㆍ이광필(李光弼)을 임용하고, 산인(山人) 이필(李泌)을 불러 군국(軍國)의 참모를 시켰으며, 광평왕(廣平王)으로 원수(元帥)를 삼아 팽원(彭原)으로 진격했다. 이듬해 군사를 펑샹(鳳翔)으로 옮겨 그해에 양경(兩京)을 회복하였는데, 상황인 현종을 서울로 맞아들였다. 뒷날 이보국(李輔國)이 재상이 되려고 하자, 배면은“내 팔을 자를지언정 이보국을 재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라고 했다. 숙종도 아직 이보국을 재상으로 삼을 수는 없음을 알았으나, 결국 그를 재상에 등용하여 정치상의 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성도기행〉의 제12수, 즉 마지막 시는 〈성도부(成都府)〉이다.
其十二
성도부(成都府)
翳翳桑楡日(예예상유일) : 뽕나무, 느릅나무 사이로 해는 어둑한데
照我征衣裳(조아정의상) : 길가는 나의 옷을 비추나니
我行山川異(아행산천이) : 길을 가매 강산이 달라져
忽在天一方(홀재천일방) : 홀연 하늘 한 끝에 와 있다.
但逢新人民(단봉신인민) : 오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뿐
未卜見故鄕(미복견고향) : 고향 사람 만날지는 못하겠네.
大江東流去(대강동류거) : 큰 강물은 동녘으로 흘러가고
遊子日月長(유자일월장) : 집 버리고 떠난 날이 벌써 오래기에.
曾城塡華屋(증성전화옥) : 높은 성에 훌륭한 집들 가득하고
季冬樹木蒼(계동수목창) : 섣달에 따뜻해서 수목이 푸르며
喧然名都會(훤연명도회) : 이름난 도회지 떠들썩하여
吹簫間笙簧(취소간생황) : 젓대와 생황 소리 뒤섞여 울려난다.
信美無與適(신미무여적) : 진실로 아름다우나 갈 땅이 없고 보니
側身望川梁(측신망천량) : 몸을 기울여 강의 다리를 바라볼 뿐
鳥雀夜各歸(조작야각귀) : 밤들어 새와 까치 제자리로 가거늘
中原杳茫茫(중원묘망망) : 중원은 멀어 아득하기만 해라.
初月出不高(초월출불고) : 갓 나온 달이 채 높지 못하여
衆星尙爭光(중성상쟁광) : 뭇 별이 오히려 빛을 다툰다만
自古有羈旅(자고유기려) : 떠도는 사람이란 예로부터 있었거늘
我何苦哀傷(아하고애상) : 내 어찌 심하게 슬퍼하랴.
두보는 도회지인 청두에 이르러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중원은 멀어 아득하고 여전히 ‘뭇 별이 오히려 빛을 다투는’ 혼란스런 세상이지만, 떠도는 사람이란 예로부터 있었으니 나 자신만 떠돌고 있다고 여겨 심하게 슬퍼할 것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갓 나온 달이 채 높지 못하여, 뭇 별이 오히려 빛을 다툰다.”는 것은 당나라 숙종이 왕위에 오른 초기에 도적들이 잠잠해지지 않은 상황을 말한 것이다.
두보는 쓰촨성 청두시(成都市) 서쪽 교외 금강(錦江)의 지류인 완화계(浣花溪)에 초당을 짓고 일시 안주하게 된다. 그 초당을 완화초당(浣花草堂)이라 부른다.
* 퉁구로 향하면서, 또 퉁구를 떠나 청두로 향하면서, 두보는 극도로 지쳐서 눈물도 흘리지 못할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도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슬픔의 감정으로 시적 언어로 표현해 냈다. 퉁구에서 청두로 향하면서 다시 두보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곳곳의 자연경관에 눈을 주고 역사사실을 반추하면서 시를 남겼다.
그런데 두보는 〈동곡칠가〉나 〈성도기행〉의 연작시에서 자연 풍경을 묘사하되, 자연을 결코 친근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산수자연은 귀향의 의지를 꺾고 여행의 고통을 증폭시켰다. 두보는 매몰찬 풍경 속에서 고독감을 느꼈다.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한 채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그는 서글퍼했다.
또한 두보는 경치를 묘사할 때 단순한 스케치로 끝내지 않고 사색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그가 묘사한 경물은 그다지 구상적(具象的)이지 않다. 두보는 오묘한 깨달음을 통해 경물과 정신이 통일하고 그 경험의 끝에 자동기술(自動記述)을 하곤 했다. 일일이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동곡칠가〉나 〈성도기행〉의 연작시에서도 그 점을 잘 알 수가 있다.
* 〈동곡칠가〉나 〈성도기행〉의 연작시는 침울한 심사를 잘 드러낸 서정시들이다. 사실 두보는 결코 고정된 이념에 따라 충정(忠情)을 토로하거나 현실에의 참여의식만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두보는 오히려 내면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는 했다. 그 토로가 진실 되므로 후대의 작가들은 그의 시를 귀하게 여기고 또 기꺼이 그 소재나 어휘를 이용해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는 했던 것이다.
진정한 시는 관념의 덩어리를 근사한 어휘로 포장하려 애쓰지 않는다. 진정한 시는 시인이 깊은 내면을 솔직히 드러낸다. 그 사실을 두보의 〈동곡칠가〉나 〈성도기행〉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심경호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1955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으로 문학박사 학위 취득.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한국한시의 이해》 《김시습평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등과 역서로 《불교와 유교》 《일본서기의 비밀》 등이 있음. 성산학술상과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수상. 한국학술진흥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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