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만흥구수(漫興九首) - 두보(杜甫)
흥에 겨워
其一
眼見客愁愁不醒(안견객수수불성) : 나그네 시름 눈에 보여 시름에서 깨어나지 못하는데
無賴春色到江亭(무뢰춘색도강정) : 봄빛이 무뢰하게 강가 정자에 이르렀네.
即遣花開深造次(즉견화개심조차) : 그래서 꽃들이 성급히 깊은 곳에도 피게 하고
便覺鶯語太丁寧(변각앵어태정녕) : 문득 꾀꼬리가 큰 소리로 울게 당부하였으리.
* 漫興(만흥) : 즉흥(시). 저절로 일어나는 흥취.
* 眼見(안견) : 눈으로 보다. 직접 보다.
* 客愁(객수) :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
* 無賴(무뢰) :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함부로 행동함.
* 造次(조차) : 급작스럽다. 경솔하다.
* 江亭(강정) : 강가 정자. 강은 탁금강(濯錦江)을 말하며 성도의 완화계라는 강의 별칭이다.
* 鶯語(앵어) : 꾀꼬리의 노래하는 소리.
* 丁寧(정녕) : 재삼 부탁하다. 신신당부하다.
* 이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으며 당(唐) 상원(上元) 2년(761) 봄 두보의 나이 50세 때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渓)의 초당(草堂)에서 지은 시이다. 두보는 당시 기근으로 벼슬을 버리고 촉으로 들어와 성도 완화계에 초당을 짓고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완화계로 돌아온 지 1년 되던 해 봄날 객지생활의 시름에 젖어 즉흥적으로 칠언절구 시 만흥 9수를 지었다.
其二
手種桃李非無主(수종도리비무주) : 손수 심은 복숭아와 자두나무 주인이 없는 게 아니며
野老牆低還似家(야로장저환사가) : 시골 늙은이 집은 담장 낮아도 돌아오니 집과 같다네.
恰似春風相欺得(흡사춘풍상기득) : 흡사 봄바람이 서로 주인이라고 업신여기는 듯
夜來吹折數枝花(야래취절수지화) : 밤사이 불어와 꽃가지 몇 개 꺾어놓았네.
* 手種 : 손수 심었다
* 非無主 : 주인이 없지 않다
* 野老 : 들에 묻힌 노인
* 牆低 : 담장이 낮다
* 還是 : 역시
* 相斯得 : 나(相)를 얕보다
* 夜來 : 밤사이
* 數枝花 : 꽃가지
두보는 평생 고생 속에 보내면서 고난에 찬 인생을 대가로 뼈저린 걸작을 남기다가 말년에 성도에 안착하여 초당을 짓고 몇 구루 꽃나무를 심어 여유로움을 읊었다.
其三
熟知茅齋絕低小(숙지모재절저소) : 내 초가집이 아주 낮고 작음을 잘 알아
江上燕子故來頻(강상연자고래빈) : 강가의 제비가 자주 날아온다네.
銜泥點汙琴書內(함니점오금서내) : 진흙을 입에 물어와 거문고와 책 속을 더럽히고
更接飛蟲打著人(갱접비충타저인) : 더욱이 날벌레 잡는다고 내게 부딪친다네.
* 熟知(숙지) : 익숙하게 앎. 익히 알다.
* 茅齋(모재) : 초가집. 두보의 완화계 초당을 말한다.
* 燕子(연자) : 제비
* 銜泥(함니) : 진흙을 입에 물다.
두보의 시 絶句二首(절구2수)에 “泥融飛燕子(이융비연자) : 진흙 묽어지니 제비가 날아오고”라는 표현이 있다.
* 點汙(점오) : 더럽히다. 오염시키다.
* 接飛蟲(접비충) : 날벌레를 잡다.
제3수에서는 봄이 되니 두보의 완화계 초당에 제비가 날아 들어와 귀찮게 하지만 초가집이라도 제비가 찾아옴을 은연중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시이다.
其四
二月已破三月來(이월이파삼월래) : 이월 이미 지나고 삼월이 왔네.
漸老逢春能幾回(점로봉춘능기회) : 나날이 늙어가니 봄날을 몇 번이나 맞을까?
莫思身外無窮事(막사신외무궁사) : 몸 밖의 끝이 없는 일들은 생각하지 말고
且盡生前有限杯(차진생전유한배) : 우선 살아 있는 동안 많지 않은 술 마셔버리세.
* 幾回(기회) : 몇 번.
* 莫思(막사) : 생각하지 말라. 莫은 ~하지 말라.
* 且(차) : 우선.
제4수에서는 봄이 되어 2월도 벌써 지나고 3월이 오니 늙어가는 자신이 앞으로 봄을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하는 허탈감에 세상일을 잊고 술이나 마시며 봄날을 즐기려는 마음을 읊은 시이다.
其五
腸斷春江欲盡頭(장단춘강욕진두) : 애끊는 봄 강은 봄날이 끝나려 하는데
杖藜徐步立芳洲(장려서보립방주) :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걸어 꽃피는 물가에 서네.
顛狂柳絮隨風去(전광류서수풍거) : 미친 듯한 버들개지는 바람 따라 가버리고
輕薄桃花逐水流(경박도화축수류) : 경박한 복숭아꽃잎 물 따라 흘러가네.
* 腸斷(장단) : 애끊다. 몹시 슬프다.
* 春江(춘강) : 봄날의 탁금강(濯錦江).
* 欲盡頭(욕진두) : (봄이) 한창 때가 지나려하다.
* 芳洲(방주) : 초당(草堂) 앞의 중주(中洲).
* 顛狂(전광) : 미칠 지경이 되다. 미치다. 두보의 시 <江畔獨步尋花七絕句(강반독보심화칠절구) >제1수에 無處告訴只顛狂 이 소식 알릴 곳 없으니 그저 미칠 것 같네. 라는 표현이 있다.
* 柳絮(유서) : 버들개지. 버드나무의 꽃.
제5수에서는 초당 앞의 강가에서 홀로 서서 봄날이 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읊은 시이다.
其六
懶慢無堪不出村(나만무감불출촌) : 게으름을 이겨내지 못해 마을에 나가지 않고
呼兒日在掩柴門(호아일재엄시문) : 아이 불러 해 떠있어도 사립문 닫으라한다.
蒼苔濁酒林中靜(창태탁주림중정) : 푸른 이끼 위에서 탁주 마시니 숲은 고요한데
碧水春風野外昏(벽수춘풍야외혼) : 푸른 강에 봄바람 불고 들판은 어두워지네.
* 懶慢(나만) : 게으름. 태만함.
* 無堪(무감) : 이겨내지 못함. 견뎌내지 못함.
* 蒼苔(창태) : 푸릇푸릇한 이끼.
* 野外(야외) : 들판.
제6수에서는 봄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술을 마시며 강을 바라보고 봄 풍경을 음미하는 모습을 읊은 시이다.
其七
糝徑楊花鋪白氈(삼경양화포백전) : 버들개지가 쌀가루처럼 깔린 길은 흰 담요를 펼친 듯하고
點溪荷葉疊青錢(점계하엽첩청전) : 연잎 흩어져 있는 시내에는 푸른 동전을 포개놓은 듯하네.
筍根稚子無人見(순근치자무인견) : 죽순의 뿌리는 거들떠보는 사람 없고
沙上鳧雛傍母眠(사상부추방모면) : 모래 위의 오리 새끼는 어미 곁에서 잠이 드네.
* 糝徑楊花(삼경양화) : 버들개지가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한길. 糝은 쌀가루.
* 鋪白氈(포백전) : 흰 담요를 펼쳐놓은 것과 같다. 氈(전)은 (모직)담요.
* 點溪荷葉(점계하엽) : 연잎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개울.
* 青錢(청전) : 푸른빛 동전(靑銅銭).
* 筍根雉子(순근치자) : 죽순의 뿌리. 稚子(치자)는 죽순의 별명(稚子也是笋的别名).
* 鳧雛(부추) : 오리 새끼.
제7수에서는 봄날 버들개지가 하얗게 깔린 길을 거닐며 시내에 연잎들을 바라보고, 숲길을 가니 죽순을 건드리는 사람도 없이 고요하고 강가에는 새끼오리가 어미 곁에 잠들고 있는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한 시이다.
其八
舍西柔桑葉可拈(사서유상엽가념) : 집 서쪽에 부드러운 뽕잎은 손으로 집을 만하고
江畔細麥復纖纖(강반세맥부섬섬) : 강변의 가는 보리 다시 가냘프고 여려졌네.
人生幾何春已夏(인생기하춘이하) : 인생 그 얼마인가! 봄은 이미 여름 되니
不放香醪如蜜甜(불방향료여밀첨) : 꿀처럼 향기로운 술잔 놓지 않으리.
* 柔桑(유상) : 어린(부드러운) 뽕잎.
* 拈(념, 염) : (손가락으로) 집다. 집어 들다.
* 細麥(세맥) : 가는 보리. 잔 보리.
* 纖纖(섬섬) : 가늘고 긴 모양. 가냘프고 여림.
* 人生幾何(기하) : 인생이 그 얼마인가?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에 “對酒當歌(대주당가),人生幾何(인생기하)? : 술을 마시며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마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 香醪(향료) : 향기로운 술(탁주, 막걸리).
* 蜜甜(밀감) : 꿀같이 달다.
제8수에서는 봄이 다 지나가니 뽕잎을 딸 때가 가까워지고 겨울에 심은 보리를 수확할 계절이 옴을 말하고, 세월이 가는 아쉬움에 술잔을 놓지 못하는 마음을 읊은 시이다.
其九
隔戶楊柳弱嫋嫋(격호양류약뇨뇨) : 사립문 사이에 버드나무 부드러워 하늘거리니
恰似十五女兒腰(흡사십오녀아요) : 마치 열다섯 살 계집아이의 허리 같구나.
誰謂朝來不作意(수위조래부작의) : 그 누가 아침이 오는 것을 마음 쓰지 않는다고 말했나?
狂風挽斷最長條(광풍만단최장조) : 사나운 바람이 가장 긴 가지를 끌어당겨 끊어버리겠구나.
* 嫋嫋(뇨뇨,요요) : 간들간들 가냘픈 모양. 하늘하늘.
* 朝來(조래) :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오다. 세월이 흘러감을 뜻한다.
* 不作意(부작의) : 마음을 쓰지 않다. 作意(작의)는 고의(故意).
* 挽斷(만단) : 잡아당겨 끊다. 挽은 잡아당기다.
제9수에서는 봄이 깊어진 완화계의 초당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소녀를 연상하고 오래 된 가지가 먼저 없어지리라 며 세월이 쉽게 흘러감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읊은 시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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