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파릉증가사인(巴陵贈賈舍人) - 이백(李白)
巴陵에서 가지(賈至)에게 주다
賈生西望憶京華(가생서망억경화) : 가의 같은 그대는 서쪽 보며 장안을 생각 하는가
湘浦南遷莫怨嗟(상포남천막원차) : 상수의 강가로 유배 온 것을 원망치 말게나.
聖主恩深漢文帝(성주은심한문제) : 성주의 은혜는 한 문제보다 깊으니
憐君不遣到長沙(연군불견도장사) : 그대를 아껴 장사보다 가까운 이곳으로 보내지 않았소?
* 巴陵 - 岳州,今 岳陽市。 지금의 호남성 악양시
* 賈舍人(가사인) - 李白과 同時代의 詩人 賈至를 말함,唐 玄宗 天寶 末年에 中書省 舍人을 지냈고,肅宗 乾元元年(758년)에 汝州刺史로 나갔다가,759년 岳州司馬로 좌천되었다. 이때에 巴陵에서 李白과 만났다.
* 가지(賈至)는 漢代의 賈誼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많이 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姓이 같고 洛陽人이라는 것이고, 詩人이며, 궁에서 임금을 모시다가 모함(謀陷)으로 억울하게 長沙 쪽으로 左遷되어 간 것이 모두 같다. 따라서 李白이 이 贈詩에서 賈至를 漢代의 賈誼로 추켜세워 賈誼의 別稱 ‘賈生’이라 한 것이다.
* 賈生(가생) : 賈誼-BC 200 ~ BC 168, 중국 河南 洛陽 人. 漢 高祖 7년에 태어나서 文帝 12년에 죽었는데, 그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18세 때에 詩書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으며, 당시 河南 太守 吳公曾이 門下에 두고 사랑하였다. 또, 20세 때 文帝가 그를 博士로 삼았는데, 나중에 太中大夫에 이르러 禮樂을 일으키고, 法度를 제정하고, 服色을 바꾸는 등 文帝를 잘 보필하는 데 힘썼으나, 뒤에 周勃 의 모함을 받아 長沙王 太傅(태부)로 축출되었다. 그는 모함으로 쫓겨나 끓어오르는 울분을 금할 수 없었지만, 마침 멱라수(汨羅水)를 건너려 할 때, 자신의 처지가 굴원과 비슷하여 「弔屈原賦」를 지어 감개를 표현하였다. 『漢書』 「藝文志」에 그의 賦가 7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가장 뛰어난 것은 「조굴원부」와 「복조부(鵩鳥賦)」를 꼽을 수 있다. 「복조부」는 작자가 장사왕 태부로 있은 지 3년째 되던 해에 문답체 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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