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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經/大雅

250. 文王有聲(문왕유성)-詩經 大雅(시경 대아)

by 산산바다 2016. 2. 7.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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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雅(대아)

一. 文王之什(문왕지십) 241~250

 

250. 文王有聲(문왕유성)

       문왕을 기리는 소리 있어

 

文王有聲(문왕유성) : 문왕을 기리는 소리 있어

遹駿有聲(휼준유성) : 그 소리 크기도 하여라

遹求厥寧(휼구궐녕) : 세상 사람들의 안녕함을 구하시어

遹觀厥成(휼관궐성) : 그 것을 이루는 일 보게 되었네

文王烝哉(문왕증재) : 훌륭하도다. 문왕이시여

 

文王受命(문왕수명) : 문왕께서 천명을 받아

有此武功(유차무공) : 무공을 세우셨도다

旣伐于崇(기벌우숭) : 숭나라 정벌하고

作邑于豐(작읍우풍) : 풍 땅을 도읍으로 삼으셨네

文王烝哉(문왕증재) : 훌륭하도다. 문왕이시여

 

築城伊淢(축성이역) : 성을 쌓고 참호를 파서

作豐伊匹(작풍이필) : 풍 땅을 어울리게 만드셨다

匪棘其欲(비극기욕) : 욕심대로 급하게 이루지 않고

遹追來孝(휼추내효) : 선왕의 뜻 좇아 효도를 다하셨다

王后烝哉(왕후증재) : 훌륭하도다. 문왕이시여

 

王公伊濯(왕공이탁) : 임금님의 공 위대하니

維豐之垣(유풍지원) : 풍 땅에다 성을 쌓으셨도다

四方攸同(사방유동) : 사방의 제후들 모여

王后維翰(왕후유한) : 임금의 기둥이 되었다

王后烝哉(왕후증재) : 훌륭하도다. 문왕이시여

 

豐水東注(풍수동주) : 풍수 물이 동으로 흐르니

維禹之繢(유우지궤) : 우임금의 공적이로다

四方攸同(사방유동) : 사방의 제후들 모여

皇王維辟(황왕유벽) : 대왕님을 받드는 구나

皇王烝哉(황왕증재) : 훌륭하도다. 대왕님이시여

 

鎬京辟廱(호경벽옹) : 호경에 학궁을 세우시도다

自西自東(자서자동) : 서쪽에서 동쪽에서

自南自北(자남자배) : 남쪽에서 북쪽에서

無思不服(무사부복) : 복종하지 않은 자 없도다

皇王烝哉(황왕증재) : 훌륭하도다. 대왕님이시여

 

考卜維王(고복유왕) : 임금님이 점을 치시어

宅是鎬京(댁시호경) : 이 호경으로 옮겨오셨도다

維龜正之(유구정지) : 거북이 바로 일러주어

武王成之(무왕성지) : 무왕께서 이룩하셨도다

武王烝哉(무왕증재) : 훌륭하도다. 무왕이시여

 

豐水有芑(풍수유기) : 풍읍 물가에 시화가 자라는데

武王豈不仕(무왕개부사) : 무왕께서 어찌 일하지 않으시리오

詒厥孫謀(이궐손모) : 따라야 할 계획 전하시어

以燕翼子(이연익자) : 자손들 편히 보호하셨도다

武王烝哉(무왕증재) : 훌륭하도다. 무왕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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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王有聲  遹駿有聲  遹求厥寧  遹觀厥成  文王烝哉

이다. 의 뜻은 未詳인데, 의심컨대 과 같은 듯하니 發語辭이다. 駿은 큼이요, 은 임금다움이다. 文王遷都하고 武王에 천도한 일을 말한 것이니, 首章에서 推本하여 말하기를, “文王名聲 두심이여! 심히 크게 명성을 두셨도다. 대개 天下安寧을 구하여 그 成功을 보시려 했도다. 文王이 이와 같으시니 진실로 능히 임금다우시도다.”라 하였다.  

 

文王受命  有此武功  旣伐于崇  作邑于豊  文王烝哉

이다. 征伐한 일은 皇矣篇에 보였다. 作邑都邑을 옮김이다. 은 바로 나라의 땅이니, 지금의 鄠縣 杜陵 西南쪽에 있다

 

築城伊淢  作豊伊匹  匪棘其欲  遹追來孝  王后烝哉

이다. 城溝이다. 四方 十里이라 한다. 사이에 도랑이 있는데, 깊이와 넓이가 각각 八尺이다. 은 걸맞음이요, 은 빠름이다. 王后는 또한 文王을 가리킨 것이다. 말하자면, “文王豊邑을 경영할 때에 옛날에 있던 도랑을 따라서 한계를 삼아서 쌓고, 邑居할 곳을 지을 적에 또한 그 에 맞춰서 侈大하지 않으니, 모두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갑자기 이룬 것이 아니요, 다만 先人의 뜻을 미루어 그 를 오게 하였다.”라는 것이다.  

 

王公伊濯  維豊之垣  四方攸同  王后維翰  王后烝哉

이다. 이다. 著明함이다. 著明하게 된 所以는 그 능히 이 墻垣을 쌓은 연고 때문이다. 四方이 이에 와서 귀의하여 文王楨榦으로 삼았다.

 

豊水東注  維禹之積  四方攸同  皇王維辟  皇王烝哉

이다. 豊水東北으로 흘러서 豊邑의 동쪽을 경유하여 渭水에 이르러서 黃河에 들어간다. 이다. 皇王天下를 둔 자의 호칭이니, 武王을 가리킨 것이다. 은 임금이다. 말하자면, “豊水쪽으로 흘러가게 된 것은 임금의 이다. 그러므로 사방이 바야흐로 여기에 와서 함께 모여서 武王으로 임금을 삼으니, 이것은 武王鎬京을 아직 짓지 않았을 때이다.

 

鎬京辟廱  自西自東  自南自北  無思不服  皇王烝哉

이다. 鎬京武王이 경영한 것이다. 豊水 東쪽에 있으니, 豊邑과의 거리가 25리이다. 張子가 말하였다. “周家, 后稷땅에 하면서부터 公劉에 거하고 太王岐山하고 文王에 옮겨가고 武王에 이르러 또한 鎬京하시니, 이 당시에 백성 중에 귀의하는 자들이 날로 많아지니 그 땅이 능히 백성들을 수용할 수 없어서, 천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辟廱은 설명이 前篇에 보였다. 張子가 말하였다. “靈臺辟廱文王學宮이요, 鎬京辟廱武王學宮이니,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天子學宮을 된 것이다.” 無思不服心服함이다. 孟子天下心服하지 않았는데도 왕 노릇 할이 있지 않다.”라 말씀하셨다. 이는 武王鎬京에 옮겨가서 하면서 講學하고 하니 천하 사람들이 自服함을 말하였다.

 

考卜維王  宅是鎬京  維龜正之  武王成之  武王烝哉

이다는 상고함이요, 함이요, 은 결정함이다. 成之邑居를 만드는 것이다. 張子가 말하였다. “여기에서 諡號를 든 것은 그 일을 追述한 말이다.”

 

豊水有芑  武王豈不仕 詒厥孫謀  以燕翼子  武王烝哉

이다. 는 풀이름이다. 는 일이요, 는 남김이요, 은 편안함이요, 은 공경함이다. 成王이다. 鎬京이 오히려 豊水下流에 있었다. 따라서 취하여 을 일으켜서 豊水가에 오히려 구기자가 있으니, 武王이 어찌 일삼은 바 없으시리오. 그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히 하신다.”라 말한 것이니 武王의 일이다. 계책이 그 손자에게 미친다면 아들은 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니 豊水 옆에 生物繁茂하니 武王이 어찌 이곳에서 일함이 없고자 하시리오 마는 다만 후손들에게 계책을 남겨 주어 翼子를 편안케 하였다. 그러므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文王有聲 八章이니 章 五句이다.

 

武功으로 文王을 칭하고 武王에 이르러서는 皇王維辟 無思不服만을 말했을 뿐이니, 아마도 文王이 이미 그 시작을 지었다면 武王이 이어서 끝낸 것은 無難했기 때문이다. 또한 文王에 부족한 것이 아니요, 武王天下를 둔 것은 힘으로 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文王之什十篇六十六章이요, 四百一十四句이다.

 

鄭譜에는 이 以上文武 때의 라 하였고, 以後成王·周公 때의 라 했지만, 지금 살펴봄에 文王 首句에 바로 文王在上이라 일렀으니 文王가 아닌 것 같고, 또한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으랴.”라 하니 武王가 아니며, 大明有聲文武라 아울러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니니 어찌 文武 당시의 지은 것이 되리오. 대개 正雅는 모두 成王·周公 以後일 것이다. 文王之什은 모두가 文武追述하였다. 고로, 에서 이것으로 인하여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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