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大雅(대아)
一. 文王之什(문왕지십) 241~250
243. 緜(면)
길게 뻗힌
緜緜瓜瓞(면면과질) : 길고도 길게 뻗은 오이덩굴
民之初生(민지초생) : 백성들을 처음 다스리심이여
自土沮漆(자토저칠) : 두수에서 칠수까지 이르시어
古公亶父(고공단보) : 고공단보께서
陶復陶穴(도복도혈) : 토굴 파고 지내셨도다
未有家室(미유가실) : 아직 집이 없어서라네
古公亶父(고공단보) : 고공단보께서
來朝走馬(내조주마) : 일찌기 말을 달려오시어
率西水滸(률서수호) : 서쪽의 칠수가에서부터
至于岐下(지우기하) : 기산 밑에까지 이르시었다
爰及姜女(원급강녀) : 강씨 여인과 함께
聿來胥宇(율내서우) : 이곳에 와서 사시었다
周原膴膴(주원무무) : 주나라 넓은 들판이 기름져
蓳茶如飴(근다여이) : 쓴 나물 씀바귀도 엿처럼 달콤하였다
爰始爰謀(원시원모) : 처음 계획하여 시작하실 때에
爰契我龜(원계아구) : 거북으로 점을 쳐보시고
曰止曰時(왈지왈시) : 머물러 살 만하다고 하시어
築室于茲(축실우자) : 이곳에 집을 지으셨도다
迺慰迺止(내위내지) : 이곳에 머물러 살게 되시어
迺左迺右(내좌내우) : 왼편에도 오른편에도 사시었고
迺疆迺理(내강내리) : 땅에 경계도 긋고, 도랑도 파서 길 내셨도다
迺宣迺畝(내선내무) : 밭 일궈 이랑을 내시어
自西徂東(자서조동) : 서편에서 동편에 이르기까지
周爰執事(주원집사) : 모두 나라를 위하여 일하였다
乃召司空(내소사공) : 집 짓는 일 맡은 사공을 부르고
乃召司徒(내소사도) : 백성을 다스리는 사도를 불러서
俾立室家(비립실가) : 집을 세우도록 하시었다
其繩則直(기승칙직) : 땅은 먹줄을 따라 곧아지고
縮版以載(축판이재) : 담틀 묶고 흙을 넣어서
作廟翼翼(작묘익익) : 장엄한 묘당을 만드셨도다
捄之陾陾(구지잉잉) : 흙 수레로 척척 흙을 담아서
度之薨薨(도지훙훙) : 담틀에다 퍽퍽 흙 쳐넣고
築之登登(축지등등) : 탕탕 흙을 다지고
削屢馮馮(삭누풍풍) : 펑펑 높은 곳을 쳐내리어
百堵皆興(백도개흥) : 모든 담벽을 다 세워서
鼛鼓弗勝(고고불승) : 북소리도 다 들리지 아니하였다
迺立皐門(내립고문) : 바깥문을 세워서
皐門有伉(고문유항) : 그 바깥문이 우뚝하고
迺立應門(내립응문) : 정문을 세워서
應門將將(응문장장) : 그 정문 반듯하였다
迺立冢土(내립총토) : 대사를 세워서
戎醜攸行(융추유행) : 그 나쁜 오랑캐들 물리친다
肆不殄厥慍(사부진궐온) : 오랑캐들에 대한 노여움 없어지지 않아도
亦不隕厥問(역부운궐문) : 그들을 돌보심은 멈추시지 않으시고
柞棫拔矣(작역발의) : 갈참나무 백유나무 뽑아내시고
行道兌矣(항도태의) : 다니는 길 열어 놓으시어
混夷駾矣(혼이태의) : 오랑캐들 기뻐서 들고 뛰며
維其喙矣(유기훼의) :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구나
虞芮質厥成(우예질궐성) : 우나라 예나라 시비 가리려 와 화해함은
文王蹶厥生(문왕궐궐생) : 문왕께서 덕으로 그들 마음 갈동 시켜서 라네
予曰有疏附(여왈유소부) : 생소한 사람도 천하게 어울리고
予曰有先後(여왈유선후) : 먼저 사람은 뒷사람 이끌어준다
予曰有奔奏(여왈유분주) : 부지런히 다니며 섬기고
予曰有禦侮(여왈유어모) : 다른 나라의 업신여김을 막겠다고 하였다
<해>
綿綿瓜瓞 民之初生 自土沮漆 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比이다. 綿綿은 끊임없는 모양이다. (오이의) 큰 것을 瓜라 하고 작은 것을 瓞라 하는데, 오이가 뿌리 가까이에서 처음 자란 것은 항상 작고, 그 덩굴이 끊어지지 아니하여 끝에 이른 뒤에야 커진다. 民은 주나라 사람이다. 自는 부터요, 土는 땅이다. 沮·漆은 두 河水의 이름인데 豳땅에 잇다. 古公은 號요, 亶父는 이름인데, 혹자는 字라고 하기도 하는데, 後代에 太王을 追稱한 것이다. 陶는 구들부엌이요, 復은 이중구들이요, 穴은 土室이다. 家는 門內의 通名이다. 豳땅은 西戎에 가까워서 추위에 괴로웠다. 따라서, 그 풍속이 이와 같다. ○ 이 또한 周公이 成王을 경계한 詩이다. 太王이 비로소 岐周에 옮겨와서 王業을 여시니, 문왕이 이에 말미암아 천명을 받았음을 追述하였다. 이는 그 首章이니, 오이덩굴이 처음에는 작고 나중에 커짐을 말하여 주나라 사람들이 처음에 漆·沮가에서 살았는데, 古公 때에 窯竈와 土室 중에 살아서 그 나라가 매우 작았는데, 문왕 때에 이르러 커졌음을 비유하였다.
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賦이다. 朝는 아침이요, 走馬는 狄人의 난리를 피함이다. 滸는 물가이니, 漆·沮水의 옆이다. 岐下는 岐山 아래이다. 姜女는 太王의 妃이다. 胥는 서로요, 宇는 집이다. 孟子가 말씀하셨다. “太王이 邠땅에 居하셨는데 狄人이 침범하거늘, 皮幣·珠玉·犬馬로써 섬겼는데도 침범을 면하지 못하니, 이에 그 耆老들을 모아서 告하기를 ‘狄人이 얻고자 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나는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자네들은 어찌 임금이 없음으로 근심을 삼겠는가. 내 장차 떠나가리라.”라고 하시고, 邠땅을 떠나서 梁山을 넘어 岐山 아래에 邑을 삼아 居하셨는데, 邠人이 말하기를 “仁人이다. 잃을 수 없다.”라 하고, 그를 쫓는 자가 시장에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周原膴膴 菫荼如飴 爰始爰謀 爰契我龜 曰止曰時 築室于玆
賦이다. 周는 地名이니, 岐山 남쪽에 있다. 廣平한 곳을 原이라 한다. 膴膴는 肥美한 모양이다. 菫은 烏頭요, 荼는 苦菜인데 여뀌의 등속이다. 飴는 餳이다. 契은 불을 태워 거북을 지지는 것이니, ꡔ儀禮ꡕ의 이른바 ‘楚燉’이 이것이다. 혹자는 칼로 거북의 껍질에 뚫고자 하는 곳을 파는 것이라 한다. ○ 周原의 토지가 아름다워서 비록 물건 중에 쓴 것조차도 또한 달게 되었다. 이에 太王이 비로소 자기를 따르는 豳人과 살 곳을 도모하고, 또한 거북을 지져 점을 쳐서 이미 그 吉兆를 보았으므로, 이에 그 백성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가히 이곳에 집을 지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혹자는 時가 土功의 時를 이른 것이라고도 한다.
迺慰迺止 迺左迺右 迺疆迺理 迺宣迺畝 自西徂東 周爰執事
賦이다. 慰는 편안히 함이요, 止는 居함이다. 左右는 東西로 열을 지음이다. 疆은 그 큰 경계를 그음이요, 理는 그 條理를 구별함이다. 宣은 布散하여 居함이니, 혹자는 그 溝洫을 말한 것이라 한다. 畝는 그 田疇를 다스림이다. 自西徂東은 서쪽 水滸로부터 동쪽으로 감이다. 周는 두루함이니, 일마다 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乃召司空 乃召司徒 俾立室家 其繩則直 縮版以載 作廟翼翼
賦이다. 司空은 國邑의 경영을 관장하고, 司徒는 徒役의 일을 관장한다. 繩은 곧게 만드는 것이니, 무릇 위치를 營度함에 모두 먼저 繩으로 바르게 하여, 이미 바르게 되면 판자를 묶어 흙을 쌓는다.縮은 묶음이요, 載는 상하가 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니, 새끼줄로 판자를 묶어 흙을 던져 쌓기를 마치면 아래로부터 올라가서 서로 받들어 잇닿게 함을 말한다. 군자가 장차 궁실을 경영하려 한다면 宗廟가 최우선이요, 廏庫가 다음이요, 居室이 맨 뒤가 된다. 翼翼은 嚴正함이다.
捄之陾陾 度之薨薨 築之登登 削屢馮馮 百堵皆興 鼛鼓弗勝
賦이다. 捄는 그릇에 흙을 담는 것이다. 陾陾은 많음이다. 度은 판자에 흙을 던져 넣는 것이다. 薨薨은 여러 사람의 소리요, 登登은 서로 應하는 소리이다. 削屢는 담이 이루어짐에 중복된 곳을 깎아 다듬는 것이다. 馮馮은 담이 단단한 소리이다. 다섯 판자를 堵라 하고, 興은 일어남이니, 이는 궁실 짓는 것을 말한 것이다. 鼛鼓는 길이가 一丈 二尺이니, 役事할 때에 치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을 즐거워하고 工事를 권면하여 북치기를 그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迺立皐門 皐門有伉 迺立應門 應門將將 迺立冢土 戎醜攸行
賦이다. 傳에 이르기를 “王의 郭門을 皐門이라 한다.”라 하였다. 伉은 높은 모양이다. 太王 때에 制度가 없어서 다만 두 門을 만들고 이와 같이 이름 지었는데, 주나라가 천하를 둠에 이르러 드디어 天子의 門으로 높여서 諸侯들이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冢土는 太社인이니, 또한 太王이 세운 것인데, 후에 이것으로 인하여 天子의 제도로 삼았다. 戎醜는 大衆이다. 大事를 일으키고 대중을 동원할 때에는 반드시 제사한 뒤에 출발하니, 이것을 宜제사라 이른다.
肆不殄厥慍 亦不隕厥問 柞棫拔矣 行道兌矣 混夷駾矣 維其喙矣
賦이다. 肆는 ‘그러므로 이제’라는 뜻인데, ‘드디어’라는 말과 같으니, 上文을 이어서 下文을 일으키는 語辭이다. 殄은 끊음이요, 慍은 怒함이요, 隕은 失墜함이다. 問은 聞과 通하는데, 聲譽를 이름이다. 柞은 떡갈나무인데, 가지가 길고 잎이 무성하고 叢生하며 가시가 있다. 棫은 白桵인데 작은 나무요, 또한 叢生하며 가시가 있다. 拔는 쑥 뻗어서 올라가 拳曲하거나 蒙密하지 않음이다. 兌는 通함이니, 처음으로 柞·棫나무 사이에 길을 틈이다. 駾는 말달리는 것이요, 喙는 숨쉼이다. ○ 말하자면, 太王이 비록 능히 混夷의 慍怒함을 殄絶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자신의 聲聞을 隕墜하지 않았으니, 대개 비록 聖人이라 해서 능히 반드시 남들이 자기에게 성내지 않게 못하는 경우도 있고, 다만 그 스스로를 닦는 실제를 廢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太王이 처음으로 이 岐山 아래에 이르렀을 때에는 林木이 深阻하고 人物이 鮮少했는데, 나중에 生齒가 점점 많아지고 歸附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짐에 이르러서는 나무들이 쑥 자라난 곳의 아래에 길이 트여지니 昆夷들이 두려워하여 奔突하고 鼠伏하여 그 喙息만 할 뿐이었다. 德이 성해짐에 混夷가 스스로 복종했음을 말한 것이니, 아마도 이미 文王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虞芮質厥成 文王蹶厥生 予曰有疏附 予曰有先後 予曰有奔奏 予曰有禦侮
賦이다. 虞·芮는 두 나라의 이름이다. 質은 바르게 함이요, 成은 화평함이다. 傳에서 말하였다. 虞와 芮의 임금이 서로 토지로 다투어 오래도록 화평치 못하였다. 이에 서로 함께 周에 入朝하여 그 境界에 들어가니 밭가는 자는 밭두둑을 양보하고, 행인은 길을 양보하며, 그 邑에 들어가니 男女는 길을 달리하고 斑白者는 提挈하는 자가 없으며, 조정에 들어가 보니 士는 大夫 자리를 양보하고 大夫는 卿자리를 양보하거늘 두 나라의 임금이 감동하여 서로 이르기를 “우리들은 小人이니 君子의 경계를 밟을 수 없다.”라 하고 이에 서로 양보하여 그 분쟁하던 토지를 閒田으로 삼아서 물러났는데, 천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歸依한 자가 四十餘國이었다. 蘇氏가 말하였다. “虞는 陝州의 平陸에 있고 芮는 同州 馮翊에 있다. 平陸에 閒原이 있는데 虞·芮가 양보한 곳이다.”라 하였다. 蹶生은 그 뜻이 자상하지 않다. 혹자는 “蹶는 움직임이 빠름이요, 生은 起와 같다.”라 하였다. 予는 詩人 자신이다. 率下親上을 疏附라 하고, 서로 前後에서 인도함을 先後라 하고, 德으로 깨우쳐서 善譽를 떨치는 것을 奔奏라 하고, 武臣이 예봉을 꺾는 것을 禦侮라 한다. ○ 昆夷가 이미 복속되고 虞·芮가 와서 그 송사의 화평을 이루니, 이에 제후 중에 주에 귀의한 자가 많아서, 文王이 이로 말미암아 그 興起할 형세를 動하시니, 이는 그 덕이 비록 盛하다 해도 또한 이 네 신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 ‘予曰’로 문장을 시작하여 그 語辭가 번잡한 듯 한데도 줄이지 않은 것은 그 得人의 盛함을 깊이 稱歎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綿 九章이니 章 六句이다.
一章은 豳땅에 있었던 일을 말하였고, 二章은 岐山 아래 있었던 일을 말한 것이고, 三章은 집지을 곳을 定함을 말하였고, 四章은 토지를 주어 百姓을 居하게 함을 말한 것이요, 五章은 宗廟짓는 일을 말하였고, 六章은 宮室짓는 일을 말하였고, 七章은 門社짓는 일을 말하였고, 八章은 文王 때에 이르러 混夷를 복속시킨 일을 말하였고, 九章/은 드디어 文王이 受命한 일을 말하였다. 나머지는 上篇에 보였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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