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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詩經/國風

131. 黃鳥(황조)-詩經 秦風(시경 진풍)

by 산산바다 201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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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風(국풍)

十一. 秦風(진풍) 126~135

 

131 黃鳥(황조)

             꾀꼬리

 

交交黃鳥(교교황조) : 꾀꼴꾀꼴 꾀꼬리

止于棘(지우극) : 가시나무에 앉는다

誰從穆公(수종목공) :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子車奄息(자차엄식) : 자거씨 아들 엄식이로다

維此奄息(유차엄식) : 이 엄식이란 분은

百夫之特(백부지특) : 백사람 중의 특별한 사람

臨其穴(임기혈) : 그가 무덤에 임하여

惴惴其慄(췌췌기율) : 그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을 것인저

彼蒼者天(피창자천) : 저 푸른 하늘이여

殲我良人(섬아량인) : 우리의 어지신 분을 죽이시려하시나

如可贖兮(여가속혜) : 되사서 바꿀 수만 있다면

人百其身(인백기신) : 백 사람이 그 분의 몸을 대신하련만

 

交交黃鳥(교교황조) : 꾀꼴꾀꼴 꾀꼬리

止于桑(지우상) : 뽕나무에 앉는다

誰從穆公(수종목공) :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子車仲行(자차중행) : 자거씨 아들 중행이로다

維此仲行(유차중행) : 이 중행이란 분은

百夫之防(백부지방) : 백 사람을 이겨낼 사람

臨其穴(임기혈) : 그가 무덤에 임하여

惴惴其慄(췌췌기율) : 그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을 것인저

彼蒼者天(피창자천) : 저 푸른 하늘이여

殲我良人(섬아량인) : 우리의 어지신 분을 죽이시려하시나

如可贖兮(여가속혜) : 되사서 바꿀 수만 있다면

人百其身(인백기신) : 백 사람이 그 분의 몸을 대신하련만

 

交交黃鳥(교교황조) : 꾀꼴꾀꼴 꾀꼬리

止于楚(지우초) : 가시나무에 앉는다

誰從穆公(수종목공) :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子車鍼虎(자차침호) : 자거씨 아들 침호로다

維此鍼虎(유차침호) : 이 침호이란 분은

百夫之禦(백부지어) : 백사람 을 막아낼 사람

臨其穴(임기혈) : 그가 무덤에 임하여

惴惴其慄(췌췌기율) : 그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을 것인저

彼蒼者天(피창자천) : 저 푸른 하늘이여

殲我良人(섬아량인) : 우리의 어지신 분을 죽이시려하시나

如可贖兮(여가속혜) : 되사서 바꿀 수만 있다면

人百其身(인백기신) : 백 사람이 그 분의 몸을 대신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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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交黃鳥  止于棘  誰從穆公  子車奄息 維此奄息  百夫之特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이다. 交交는 날아서 왕래하는 모양이다. 穆公을 따른다는 것은 따라 죽음이다. 子車奄息은 이름이다. 傑出함을 칭한 것이다. 이다. 惴惴는 두려운 모양이다.은 두려움이요, 은 다함이요, 함이요, 은 바꿈이다.

秦穆公함에 子車氏의 세 자식을 殉葬하니 무두가 나라의 賢良이었다. 國人들이 슬퍼하여 黃鳥를 읊으니 일이 春秋傳에 보이니, 바로 이 이다. “交交하는 黃鳥는 가시나무에 앉는다

누가 穆公을 쫓는가 子車奄息이로다.”라 말하였으니, 아마도 본 바를 인하여 을 일으킨 성싶다. 구덩이에 임하여 두려워함은 산채로 안에 넣음이다. 세 사람이 모두 나라의 賢良인데 하루아침에 죽이니, 만약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진댄 모두 백번이라도 그 몸을 바꾸기를 원한 것이다

          

交交黃鳥  止于桑  誰從穆公  子車仲行 維此仲行  百夫之防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이다. 은 감당함이니 한 사람으로 사람을 감당함을 말한 것이다.

 

交交黃鳥  止于楚  誰從穆公  子車鍼虎 維此鍼虎  百夫之禦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이다. 과 같다.

黃鳥 三章이니, 章 十二句이다.

 

春秋傳에 이르기를 君子가 말하기를 秦穆公盟主가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죽으면서까지 백성을 버렸도다. 先王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오히려 을 끼치거늘 하물며 善人을 빼앗음에서랴.’ 이제 無法한 일을 방종이 행하여 後嗣에게 남기고 또 그 賢良을 거두어 죽이니 위에 있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군자는 이 때문에 이 다시 東征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라 하였다. 내가 살펴보니, 穆公이 이에 그 죄를 도망할 수 없다. 다만 혹은 穆公遺命이 이와 같거늘 세사람이 자살하여 쫓았다고 하는데, 세 사람 역시 죄가 없을 수 없거니와 지금 구덩이에 임하여 惴慄한 말을 본다면 이는 康公이 아버지의 亂政을 쫓아서 핍박하여 구덩이에 넣을 것을 명한 것이니 그 죄를 돌릴 곳이 있으랴. 史記를 살펴보니, “秦武公함에 처음에는 사람을 따라 죽게 하여 죽은 자가 66인이었는데, 穆公때에 이르러 드디어 177인을 사용하여 세 사람의 賢良이 이에 끼었으니, 아마도 그 처음에는 戎狄의 풍속에서 나왔거늘 明王`賢伯이 그 죄를 성토함이 없었다.

이에 습관으로 떳떳함을 삼으니, 비록 穆公의 어짊으로도 면할 수 없었다. 그 일을 논한 자 또한 한갓 三良의 불행만을 슬퍼하고 의 쇠미함만을 탄식하고 王政의 기강이 없어서 제후들이 擅命하여 殺人을 꺼리지 않음이 이 같음에 이르러서는 그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 풍 속의 퇴폐함이 오래되었도다. 그 후에 始皇을 장사할 적에 後宮에게 모두 따라 죽을 것을 명하고 工匠을 산채로 묘 안에 매장하니 어찌 족히 괴이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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