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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여행이 좋아**/사찰 여행

경기도 여주 신륵사

by 산산바다 2008. 9. 2.

산과바다

신륵사앞 남한강가의 강월헌정자에 앉아 강건너 나루에서 떠나는 황포돛대를 바라보며 눈이빠지게 누구를 기다리나......

님은 옆에 있는데.......

  

                    여주 신륵사(神勒寺)

 

우리들의 만남(박종규 이계도 홍순호 박상기 부부)

2008.8.24.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봉미산에 있는 절

세계도자기축제장 옆에 남한강이 흐르고 강가에 신륵사가 위치함

  

 정자의 현판 글씨를 읽으며 그 뜻을 생각하나보다(박종규님 부부) 

 여주에서 여주대교를 건너와서 일성콘도에서 1박하고 신륵사로 향함 (남한강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여주세계도자기축제장의 출입문을 세종문이라 이름지었군요.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에 있어서 인가?)

  

세종문을 지나 도자기판매하는 상가길 앞으로 신륵사 가는길임.

 

신륵사 일주문(봉미산신륵사)을 통과하여...............경내로 들어감.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봉미산에 있는 절. 신라 때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懶翁)이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신륵사 범종각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1382년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신륵사다층석탑(조선 전기), 보물 제225호, ...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 보물 제225호. 높이 300cm.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다층의 탑신부가 있어 기본적인 구조는 신라나 고려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 부재의 세부조형은 전혀 다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기단에서 탑신에 이르는 각 부재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복석(地覆石) 위에 복련(伏蓮)이 조각된 하층 기단부가 있으며, 그 중석(中石)에는 화형(花形)으로 장식된 우주(隅柱)가 있고 그 사이에는 파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갑석(甲石)은 상하에 앙련(仰蓮)과 복련이 있고 중간에 넓게 돌출된 띠가 있다. 상층 기단부의 중석 역시 화형의 우주가 있고 그 사이에 운룡(雲龍)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상층 갑석에는 복련만 새겨져 있다. 탑신부는 체감률이 완만하며 옥신석(屋身石)은 옥개석(屋蓋石)의 두께와 비슷할 정도로 낮다. 옥신석의 각 면에 우주가 있고 옥개석은 수평에 가까워 낙수면도 완만하며 합각 부분에서 매우 약한 반전(反轉)이 있을 뿐이다. 상륜부는 모두 결실되고 철제 찰주만 남아 있다. 현재 8층의 옥개석 위에는 작아진 옥개석과 옥신석이 1개씩 남아 있어 더 많은 층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세종의 능)의 원찰(願刹)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해에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했다.

 

1858년(철종 9)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해 중수했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명부전 ·심검당 ·적묵당 ·노전(爐殿) ·칠성각 ·종각 ·구룡루(九龍樓) ·시왕전 등이 있다.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또한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보물 제230호) ·석등(보물 제231호) 등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나옹선사의 선시가 생각나는군요

(경북 상주에있는 갑장사뒤 갑장산에 나웅의 흔적인<나옹바위>가 있지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신륵사다층전탑앞에 <삼층석탑>이  나옹선사(懶翁:혜근)를 기다리고 있는듯 하군요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박상기님부부와 홍순호님부부 항상 밝은 미소로 다정하군요)

  

신륵사 /신륵사다층전탑(1726 중수), 보물 제226호, ...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 전탑. 보물 제226호. 높이 940cm. 한강변에 있는 암벽 위에 건립된 것으로, 지대석 위에 화강석으로 된 7층의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높은 6층의 탑신부가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받침을 마련한 것은 신라시대의 전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탑신부는 6층 부분만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각 층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高俊)해 보인다. 각 층의 옥개(屋蓋)는 옥신(屋身)에 비해서 극히 간략화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塼)으로 된 노반(露盤) 위에 화강석으로 된 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 등이 얹혀 있다.

 

탑 북쪽에 있는 이 탑의 수리비에 "崇禎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서 1726년(영조 2)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

혜근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 ...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종형 승탑. 보물 제228호. 높이 190cm. 1376년 나옹이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檜巖寺)에서 경상남도 밀양으로 돌아가던 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자 1379년 각신과 각주가 절의 뒤편에 있는 봉미산 중턱에 묘역을 마련하고 나옹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넓은 묘역을 마련하고 전면에 박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 넓은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놓여 있는 2매의 판석 중앙에 석종형 부도를 안치했다. 기단의 정면과 좌우면 중간에 2단의 계단이 있고, 탑신은 위로 갈수록 완만한 타원형을 이루다가 어깨부분에서 수평을 형성하고, 그 위에 보주를 조각했다.

 

이 부도의 형식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와는 다른 것으로 라마 탑계에 속하는 특이한 형식이다. 이러한 계단탑 형식의 부도는 통도사와 금산사 등에 있는데 이러한 형식을 모방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전개되는 석종형 부도의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예이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묘비(墓碑). 1379년 건립. 보물 제229호. 높이 212cm. 너비 61cm. 지대석 위에 3단의 직사각형 대석이 놓여 있는데 상단의 대석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비신(碑身)을 얹었다. 대리석으로 된 비신의 양 옆에는 화강암 기둥을 세워 비신을 보강하도록 했으며 그 위에 목조건축물의 공포와 기왓골을 조각한 옥개석을 얹었다.

 

이러한 석비(石碑)의 조형은 이 절에 있는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와 비슷하다. 신라시대 이래 일반화된 형식인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고려 말기에 대석과 옥개석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예이다. 비문의 내용은 이색(李穡)이 지었고, 글씨는 해서체로 한수(韓脩)가 썼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등. 보물 제231호. 높이 194cm. 전형양식에서 변형된 석등으로 화사석(火舍石)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팔각 지대석 위에 기단부는 상대·중대·하대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8각의 하대석에는 복련이, 상대석에는 앙련이 도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대석(간주석)은 그 길이가 상당히 짧아졌으며 각 면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아(亞)자형 안상(眼象)이, 각 모서리에는 연주형(連珠形) 우주가 새겨져 있다. 상대석 위에는 2단의 층급이 있으며 그 위에 납석제 화사석이 있다.

 

팔각형의 화사석 각 면에는 화사창(火舍窓)이 뚫려 있고, 모서리에는 반룡(蟠龍)이 조각된 원형기둥이 고부조(高浮彫)로 새겨져 있다. 화사석의 상단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 기둥 사이에는 고부조의 비천상(飛天象)을 장식했다. 전각(轉角)이 두꺼운 옥개석은 둔중한 느낌을 주며 각 면의 합각에 우동(隅棟)만이 둥글게 돌출되어 있다. 상륜부는 연꽃이 장식된 복발 위에 2단의 층급을 이룬 연꽃 봉오리형 보주(寶珠)가 얹혀 있다.

 

전체적으로 석등의 우아한 형태와 장식성이 돋보이며, 기단부의 간주석이 짧아져 상대와 하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데 이는 석등이 형식화되어가는 시대적 추이를 반영한 것이다. 보제존자석종 앞에 있으므로 보제존자인 나옹의 부도가 세워진 139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륵사를 둘러보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무엇의 깨달음이 있었는지 입을 다물고 있군요......


어제 용문사에 들리고 오늘 신륵사에 들리면서 두런거리며 즐거움을 담았지요

박종규님 홍순호님 박상기님 과의만남은 산과바다는 항상 고마와하고 즐거움 이지요

다음 코스는 세종대왕영릉과 명성황후생가인데 카메라 배터리가 다되었군요

박종규님 사진 보내 준다고 했는데..........안 오네요  

 

올여름 우리들의 만남은 이렇게 지나가나?

남은 늦더위 잘 보내시고 항상건강하게 매일매일 즐거우세요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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