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위풍록사택관 조장군화마화인(韋諷錄事宅觀 曹將軍畵馬畵引)/(韋諷錄事宅觀 曹將軍畫馬圖) - 두보(杜甫)
위풍 녹사의 댁에서 조 장군이 그린 말 그림을 보고서
國初已來畫鞍馬(국초이래화안마) : 개국한 이래 안장 얹은 말 그림
神妙獨數江都王(신묘독수강도왕) : 신묘하기로는 오직 강도왕(江都王)을 꼽는데
將軍得名三十載(장군득명삼십재) : 조(曹)장군이 이름 얻은 지 삼십 년에
人間又見真乘黃(인간우견진승황) : 세상에서는 다시 진짜 승황(乘黃)을 보게 되었네
曾貌先帝照夜白(증모선제조야백) : 일찍이 선제(先帝)의 신마(神馬) 조야백(照夜白)을 그렸더니
龍池十日飛霹靂(용지십일비벽력) : 용지(龍池)의 용이 연일 천둥처럼 내달리는 듯했지
內府殷紅瑪瑙盤(내부은홍마노반) : 황실 창고의 붉게 빛나는 마노반(瑪瑙盤)을
婕妤傳詔才人索(첩여전조재인색) : 첩여(婕妤)가 어명 전해 재인(才人)에게 찾아오게 하니
盤賜將軍拜舞歸(반사장군배무귀) : 마노반을 받은 장군은 절하고 춤추며 돌아가는데
輕紈細綺相追飛(경환세기상추비) : 가볍고 가는 비단들이 뒤따라 너울너울
貴戚權門得筆跡(귀척권문득필적) : 귀척(貴戚)과 권문(權門) 세도가들 그의 그림 얻고서야
始覺屏障生光輝(시각병장생광휘) : 병풍에서 빛이 나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네.
* 韋諷(위풍): 낭주록사(閬州錄事)였는데 그의 집이 성도(成都)에 있었다. 낭주(閬州)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낭중현(閬中縣)이다.
* 曹將軍(조장군) : 조패(曹霸)를 가리킨다. 《歷代名畫記(역대명화기)》 卷9에, “조패는 위(魏)나라 조모(曹髦)의 후손이다. 조모의 그림은 후대에 와서 유명해졌지만 조패는 개원(開元) 연간에 이미 명성을 얻었고, 천보(天寶) 말기에는 매양 부름을 받아 어마(御馬)와 공신상(功臣像)을 모사(模寫)하였다. 관직이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에 이르렀다.[曹霸 魏曹髦之後 髦畫稱於後代 霸在開元中已得名 天寶末 每詔寫御馬及功臣 至左武衛將軍]”라 하였다.
* 鞍馬(안마) : 안장을 갖춘 말
* 江都王(강도왕): 당(唐) 태종(太宗)의 조카인 이서(李緖)이다. 당(唐)나라 장언원(张彦远)의 《歷代名畫記(역대명화기)》 卷10에, “강도왕 서(緖)는 곽왕(霍王) 원궤(元軌)의 아들이며 태종 황제의 조카였다. 재주가 많고 글씨를 잘 썼으며 안마(鞍馬)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다. 수공(垂拱) 연간(685~688)에 관직이 금주자사(金州刺史)에 이르렀다.[江都王緖 霍王元軌之子 太宗皇帝猶子也 多才藝 善書 畫鞍馬擅名 垂拱中官至金州刺史]”고 하였다.
* 乘黃(승황): 신마(神馬)의 이름이다. 《廣川畫跋(광천화발)》에, “승황의 모습은 여우 같고 등에는 뿔이 있다. 조패(曹霸)가 그린 말은 한 번도 이와 같지 않았으니, 다만 그 신묘하고 빼어남을 말한 것일 뿐이다.[乘黃狀如狐 背有角 霸所畫馬 未嘗如此 特論其神駿耳]”고 하였다.
* 先帝(선제): 당(唐) 현종(玄宗)을 가리킨다.
* 照夜白(조야백) : 현종(玄宗)이 타고 다녔다는 준마(駿馬)의 이름이다. 《明皇雜錄(명황잡록)》에, “임금이 타는 말로는 옥화총(玉花驄), 조야백(照夜白)이 있다.[上所乘馬 有玉花驄照夜白]”고 하였다.
* 龍池十日飛霹靂(용지십일비벽력): ‘龍池(용지)’는 못 이름인데, 장안(長安)의 남내(南內) 남훈전(南薰殿)의 북쪽에 있다. 《唐六典(당육전)》 주(注)에, “흥경궁은 금상(今上:玄宗)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살던 옛 집이다. 집 동쪽 우물이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솟아올라 작은 연못이 되었다. 항상 그곳에는 운기(雲氣)가 서려 있고 간혹 황룡(黃龍)이 그 안에서 나왔는데 못의 물이 점점 불어나더니 마침내 물이 솟아나와 용지(龍池)가 되었다.[興慶宮 今上潛龍舊宅也 宅東有井 忽湧爲小池 常有雲氣 或黃龍出其中 其沼浸廣 遂澒洞爲龍池]”고 하였다. 십일(十日)은 연일(連日) 이어진다는 뜻이다. 비벽력(飛霹靂)은 뛰어오르는 것의 빠르기가 천둥과 같음을 형용한 것이다.
* 內府(내부): 황실(皇室)의 창고이다.
* 瑪瑙盤(마노반): 盤(반)은 쟁반이다. ‘瑪瑙(마노)’는 보석의 일종이다.
* 婕妤傳詔才人索(첩여전조재인색): ‘婕妤(첩여)’는 궁중의 여관(女官)이며, ‘傳詔(전조)’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다. ‘才人(재인)’ 역시 궁중의 여관이다. 《新唐書(신당서)》 〈百官志(백관지)〉에, “내관(內官)으로는 첩여(婕妤)가 아홉 명인데 정3품이요, 재인(才人)이 일곱 명인데 정4품이다.[內官有婕妤九人 正三品 才人七人 正四品]”라고 하였다.
* 輕紈細綺相追飛(경환세기상추비): ‘紈(환)’과 ‘綺(기)’는 모두 결이 가늘고 섬세한 비단이다. ‘相追飛(상추비)’는 황제가 상을 내리는 데 마노완 이외에도 환기(紈綺)를 더 주어서 은총을 표시하였음을 말한다.
昔日太宗拳毛騧(석일태종권모왜) : 옛날 태종의 준마 권모왜(拳毛騧)
近時郭家獅子花(근시곽가사자화) : 근래 곽씨 집의 명마 사자화(師子花)
今之新圖有二馬(금지신도유이마) : 지금 새 그림에 이 두 마리 말이 있으니
復令識者久嘆嗟(복령식자구탄차) : 다시금 식자(識者)들이 오랫동안 찬탄케 하는구나.
此皆騎戰一敵萬(차개기전일적만) : 이 말들 모두 전쟁터에서 일당만(一當萬)이라
縞素漠漠開風沙(호소막막개풍사) : 흰 비단 넓은 곳에서 모래 바람 헤치는 듯
其餘七匹亦殊絕(기여칠필역수절) : 나머지 일곱 필의 말 또한 빼어나서
迥若寒空雜煙雪(형약한공동연설) : 멀리 찬 하늘에 날리는 안개와 눈 같아라.
霜蹄蹴踏長楸間(상제축답장추간) : 말발굽은 긴 가래나무 사이를 내달리고
馬官廝養森成列(마관시양삼성렬) : 말 관원과 하인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네.
可憐九馬爭神駿(가련구마쟁신준) : 아름답다, 아홉 필의 말 매우 뛰어남을 다투니
顧視清高氣深穩(고시청고기심온) : 돌아보는 눈빛은 맑고 고결하고 기운은 깊숙하고 아늑하네.
借問苦心愛者誰(차문고심애자수) : 묻노니 고심하며 이 말을 아꼈던 자 그 누구였나?
後有韋諷前支遁(후유위풍전지둔) : 후대에는 위풍(韋諷)이요 전대에는 지둔(支遁)이었네.
憶昔巡幸新豐宮(억석순행신풍궁) : 그 옛날 신풍궁에 행차했던 때를 생각하니
翠華拂天來向東(취화불천래향동) : 천자의 깃발 하늘에 닿을 듯 동쪽으로 향했고
騰驤磊落三萬匹(등양뢰락삼만필) : 뛰고 내달리는 말이 삼만 필이었는데
皆與此圖筋骨同(개여차도근골동) : 모두 이 그림 속 말들과 근육과 골격이 같았네.
自從獻寶朝河宗(자종헌보조하종) : 보배 바쳐 하백(河伯)에게 조회 간 후로는
無復射蛟江水中(무복사교강수중) : 다시는 강물 속 교룡을 쏘지 못하였다네.
君不見(군불견) : 그대는 보지 못했나?
金粟堆前松柏裏(금속퇴전송백리) : 금속산(金粟山)무덤 앞 송백(松柏) 속에서
龍媒去盡鳥呼風(용매거진조호풍) : 준마는 다 가 버리고 새들만이 바람 속에 우는 것을?
* 拳毛騧(권모왜) : 당(唐) 태종(太宗)이 타던 여섯 마리 준마 중의 하나이다. 《長安志(장안지)》에, “태종의 여섯 마리 준마가 소릉 북궐의 아래쪽에 돌로 조각되어 있는데, 다섯 번째 말이 권모왜이다.[太宗六駿刻石於昭陵北闕之下 五曰拳毛騧]”고 하였다. 黃馬인데 검은 주둥이를 가졌다.
* 郭家師子花(곽가사자화) : ‘郭家(곽가)’는 과자의(郭子儀)이다. ‘師子花(사자화)’는 곧 구화규(九花虯)로서 대종(代宗) 이상(李豫)의 준마의 이름인데 훗날 공훈을 세운 곽자의에게 하사하였다. 《杜陽雜編(두양잡편)》에, “대종이 섬서(陝西)에서 돌아와 어마(御馬)인 구화규와 자옥(紫玉)으로 된 채찍과 고삐를 곽자의에게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구화규는 곧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 이회선(李懷仙)이 바친 것인데, 이마의 높이가 9촌이고 앞발굽이 기린과 같다. 또 사자총(獅子驄)이 있는데 모두 그 부류이다.[代宗自陝還 命以御馬九花虯幷紫玉鞭轡賜郭子儀 九花虯 卽范陽節度使李懷仙所貢 額高九寸 拳如麟 亦有獅子驄 皆其類]”라고 하였다.
* 七匹(칠필) : 조장군이 그린 그림은 ‘九駿圖(구준도)’이다.
* 霜蹄(상제) : 말발굽을 가리킨다. 《莊子(장자)》 〈馬蹄(마제)〉에, “말은 발굽이 있어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다.[馬蹄可以踐霜雪]”라고 했다.
* 長楸間(장추간) : 대로(大路)의 도상(道上)을 말한다. 조식(曹植)의 시에, “긴 가래나무 사이로 말을 달린다.[走馬長楸間]”고 했는데, 그 주(注)에, “옛날 사람들은 길가에 가래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장추(長楸)라 한 것이다.[古人種楸於道 故曰長楸]”라고 하였다.
* 馬官廝養(마관시양) : 마관은 말을 관리하는 관원이고, 시양은 군중에서 나무를 하거나 밥을 짓는 천한 일을 하는 자를 이른다. 《漢書(한서)》 〈路溫舒傳(노온서전)〉에, “시양을 공급해 주길 원한다.[願給廝養]”라 했는데, 위소(韋昭)가 말하기를, “땔나무 쪼개는 자를 시(廝)라 하고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자를 양(養)이라 한다.[析薪爲廝 炊烹爲養]” 하였다.
* 氣深穩(기심온) : 말의 기운과 도량이 깊이 침잠(沈潛)해 있으면서도 온중(穩重)하여 아름다운 기품을 지녔음을 가리킨다.
* 支遁(지둔) : 진(晉)나라 고승(高僧)이다. 《世說新語(세설신어)》 〈言語篇(언어편)〉에, “支道林(지둔의 字)은 일찍이 몇 마리의 말을 키웠는데, 혹자가 이르기를 ‘道人이 말을 키우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니, 지도림이 ‘나는 그 신준(神駿)함을 중히 여길 뿐이다.’ 하였다.[支道林 嘗養數匹馬 或謂道人畜馬不韻 支曰 貧道重其神駿耳]”는 기록이 보인다.
* 新豐宮(신풍궁) : 화청궁(華淸宮)이다. 《元和郡縣志(원화군현지)》에, “漢나라 7년에 고조가 태상황이 되어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이곳에 현(縣)을 설치하고 풍(豐) 땅 사람들을 이주시켜 그곳을 채웠기 때문에 신풍(新豐)이라 한다. 화청궁은 여산 위에 있는데, 개원 11년에 처음 온천궁을 지었고 천보 6년에 개명(改名)하여 화청궁이라 하였다.[漢七年 高祖以太上皇思東歸 於此置縣 徙豐人以實之 故曰新豐 華淸宮在驪山上 開元十一年初置溫泉宮 天寶六年 改爲華淸宮]”고 되어 있다. 여기서는 현종(玄宗)이 화청궁에 거둥한 것을 가리킨다.
* 翠華(취화) : 황제가 순행(巡幸)을 나갈 때 사용하였던 깃발로 취조(翠鳥)의 깃털로 장식하였다.
* 騰驤磊落(등양뢰락) : ‘騰驤(등양)’은 뛰어오르고 내달린다는 뜻이다. 말이 내달리고 뛰어오르는 그 모습이 대단함을 말한 것이다.
* 獻寶朝河宗(헌보조하종) : 《穆天子傳(목천자전)》에 의하면, 목천자가 서쪽으로 가다가 양우(陽紆)의 산에 이르러 물의 신 하백(河伯)을 만났다. 그는 하백에게 절을 하고 보물을 바친 후 돌아왔는데, 그로부터 오래지않아 죽었다. 여기에서는 이 고사(故事)를 들어 당 현종의 죽음을 말하였다.
* 射蛟(사교) : 《漢書(한서)》 〈武帝紀(무제기)〉에, “원봉 5년 겨울에 남쪽으로 순수(巡狩)를 떠났다. 심양에서부터 강에 배를 띄워 가다가 강 가운데서 직접 교룡을 쏘아 잡았다.[元封五年冬行南巡狩 自尋陽浮江 親射蛟江中 獲之]”고 하였다. “다시 교룡을 쏘지 못하였다.”는 말 또한 현종(玄宗)의 죽음을 의미한다.
* 金粟(금속) : 산이름이다. 현종(玄宗)을 금속산(金粟山)에 장사지내고 태릉(泰陵)이라 하였다.
* 龍媒(용매) : 말 이름이다. 《漢書(한서)》 〈禮樂志(예악지)〉에, “천마가 오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天馬徠兮龍之媒]” 했다. 후에 이로 인하여 준마를 용매(龍媒)라 부르게 되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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