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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漢詩

한국한시 산행(강백년) 외

by 산산바다 2006. 9. 29.

산과바다 

 

                    

한국한시 감상(작자 가나다순)

 

 

 

 

 

          山行 산행     산길을 걸으며

 

                                                   강 백년 姜 栢年 1603 - 1681

 

 

 

      十里無人響 십리무인향     

십리를 가도 사람의 소리 없고

 

      山空春鳥啼 산공춘조제     

텅 빈 산에서 봄새들만 울어대네.

 

      逢僧問前路 봉승문전로     

스님을 만나 앞길을 물었는데

 

      僧去路還迷 승거로환미     

스님이 떠나자 길을 돌아 헤매네

 

 

      


본관 진주. 자 숙구(叔久). 호 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시호 문정(文貞).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급제하였고, 1646년 부교리로 있을 때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한때 삭직되었다. 이해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오르고 이듬해 상소하여 전국의 향교(鄕校)를 재흥하게 하였으며, 1648년 대사간으로서 다시 강빈의 신원(伸寃)을 상소하였다가 청풍군수(淸風郡守)로 좌천되었다. 1660년(현종 1) 예조참판으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淸)나라에 다녀왔다.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후에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었다. 문집에 《설봉집(雪峰集)》 《한계만록(閑溪캄錄)》 등이 있다.

 

 

 

 

          熊津渡 웅진도    웅진 나루를 건너며

 

                                                                  강 호문 康 好文

 

 

 

    江水茫茫入??     강수망망입해류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가고

 

    靑山影裏一扁舟  청산영리일편주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배 흘러가네.

 

    百年南北人多事  백년남북인다사  

세상은 언제나 어지럽기 마련인데

 

    只有沙驅得自由  지유사구득자유 

저 모래밭 갈매기처럼 자유롭기를 원하네.

 

 

자 자야(子野), 호 매계(梅溪).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전교시판사에 이르렀다. 부인 문씨(文氏)는 1388년(우왕 14) 왜구(倭寇)가 쳐들어왔을 때 왜구에게 납치되어 가던 중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절벽에서 뛰어내려 탈출, 열녀라는 칭송을 받았다.

 

 

 

 

     鐵原懷古 철원회고(철원을 생각하며)

 

 

 

                                                             姜 淮伯 강 회백 1357 - 1402

 

 

 

      山含故國千年恨 산함고국천년한    

산은 천년 한을 머금은 채 솟아있고

 

      雲抱長空萬里心 운포장공만리심    

구름은 만리 하늘에 뻗어있네.

 

      自古興亡皆有致 자고흥망개유치    

예로부터 흥하고 망함에는 이치가 있으니

 

      願因前轍戒來今 원인전철계래금     

원컨데 지난 일로 오늘을 경계하라 함이여.

 

 

     

參考事項- 흥망에는 이치가 있으니 과거를 거울삼아 오는 일을 경계하라고 노래함.

 

철원(鐵原)은 고구려의 철원(鐵圓) 또는 모을동비군(毛乙冬非郡)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철성군(鐵城郡)으로 고쳤다.  궁예가 태봉국(泰封國)을 세웠을 때 수도였으며, 고려 태조가 송악(松岳:개성)으로 옮기면서 동주(東州)로 고쳤다.

 

 

 

姜 淮伯 강 회백 1357 - 1402

 

본관 진주(晋州), 자 백부(伯父), 호 통정(通亭).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하고, 1385년 밀직부사, 1388년에는 밀직사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으로 밀직사판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공양왕 때 왕에게 상소하여 한양천도(漢陽遷都)를 중지하도록 하였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이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晋陽)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1398년(태조 7) 동북면도순문사가 되었다.

 

문집에 《통정집(通亭集)》이 있다.

 

 

 

 

         病餘偶吟 병여우음     아픈 중에 우연히 지음

 

            

             姜 希孟 강 희맹 1424 - 1483

 

 

 

      南窓終日坐忘機 남창종일좌망기

남창에 온종일 정신 없이 앉아서

 

      庭院無人鳥學飛 정원무인조학비

사람 없는 정원에 새끼 새 나는 연습을 보네.

 

      細草暗香難覓處 세초암秀?蛙?   

돋아나는 새싹에는 아직 풀 향기 없고

 

      淡烟殘照雨   담연잔조우비비

저녁 연기 속에 보슬비만 내리네.

 

 

 


 

 

      生陽館山茶盛開吟成一絶 생양관산다성개음성일절 

동백꽃

 

                                                   姜 希孟 강 희맹 1424 - 1483

 

 

 

      山茶花發簇嫣紅 산다화발족언홍  

동백꽃이 붉게 피어 무리지어 아리땁고

 

      歲久根盤作大叢 세구근반작대총  

오랜 세월 뿌리가 굳어 많은 무리 이루었네.

 

      自是地偏車馬少 자시지편거마소  

외진 곳이라 오가는 것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年年開謝小園中 년년개사소원중  

해마다 작은 뜰에서 피고지네.

 

 

 

 

 參考事項- 山茶 (산다)는 동백꽃을 이름.

 

 

姜 希孟 강 희맹 1424 - 1483

 

본관 진주(晋州). 자 경순(景醇). 호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세종의 이질(姨姪)이고, 화가 희안(希顔)의 동생이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로 등극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63년 중추원부사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464년 부윤으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서 차석,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서 3등, 등준시(登俊試)에서 차석을 차지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다. 1468년(예종 1) 남이(南怡)의 옥사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으로 진산군(晉山君)에 책봉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고, 지춘추관사로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이어 돈령부판사 ·우찬성 등을 거쳐 1482년 좌찬성에 이르렀다.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서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겸손하여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관인적 취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농촌사회에서 널리 전승되고 있던 민요나 설화에도 남다른 식견으로 관인문학(官人文學)의 틀을 스스로 깨뜨려 버리는 면도 있었다. 이런 예는 당시 농정의 실상과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에 잘 나타나 있다. 문집으로는 《금양잡록(衿陽雜錄)》 《촌담해이(村談解燎)》와 할아버지와 아버지 및 형 희안의 시를 모아 편찬한 《진산세고(晉山世稿)》가 있다. 이 밖에 서거정이 성종의 명을 받고 편찬한 《사숙재집(私淑齋集)》(17권)이 전한다. 세조 때 《신찬국조보감》 《경국대전》, 성종 때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서례》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출처 : 한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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