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漢詩

한국한시 四友亭詠松(강희안) 외

by 산산바다 2006. 12. 13.

 산과바다

만첩빈도리

 

 

      四友亭詠松 사우정영송   소나무를 읊음

 

                                         姜 希顔 강희안

 

      階前偃盖一孤松 계전언개일고송    

계단 앞을 덮어 드리운 한 그루 홀로선 소나무

      枝幹多年老作龍 지간다년로작룡    

가지와 줄기가 오래되어 용의 형상 되었네.

      歲暮風高 病目 세모풍고개병목    

세모에 바람 높이 불어 병든 눈을 비비고 보니

      擬看千丈上靑空 의간천장상청공     마치 용이 천길 높이 하늘로 오르는 것 같네.

 

 

 

 

 

강 희안 姜 希顔 1419 - 1464

 

본관 진주(晋州), 자 경우(景遇), 호 인재(仁齋). 희맹(希孟)의 형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돈령부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43년 정인지 등과 세종이 지은 정운(正韻) 28자에 대한 해석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1444년에는 의사청(議事廳)에 나아가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과 운회(韻會)를 언문으로 번역하였다.

 

1445년에는 최항 등과 《용비어천가》를 주석하였다. 한편 조정의 추천을 받아 명(明)나라가 보낸 ‘체천목민영창후사(體天牧民永昌後嗣)’의 8글자를 직접 옥새에 새기기도 하였다. 1447년 이조정랑이 되어 최항 ·성삼문 ·이개 등 집현전 학자들과 《동국정운(東國正韻)》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4년(단종 2) 집현전직제학이 되어 수양대군 ·양성지 ·정척(鄭陟) 등과 조선 8도 및 서울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가 등극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으나, 1456년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1460년 호조참의 겸 황해도관찰사, 1462년 인순부윤이 되었으며,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를 방문하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하여 말수가 적었으며, 청렴하고 소박하여 출세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의정부에서 일찍부터 검상(檢詳)에 추천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 ·그림 ·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 안견 ·최경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 문집에 원예에 관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이 있으며, 그림으로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강호한거도(江湖閑居圖)》 등이 전하는데, 산수화 ·인물화 등 모든 부문에 뛰어났다. 글씨로는 아버지의 묘표인 《강지돈녕석덕묘표(姜知敦寧碩德墓表)》등이 남아 있는데, 왕희지와 조맹부의 작품에 비견되기도 한다.

 

또한 세조 때 임신자(壬申字)를 녹여 활자를 새로 주조할 때도 자본(字本)을 썼는데, 이를 을해자(乙亥字)라고 한다.

 

 

 

 

 

 

             詠黃白二菊 영황백이국     황백 두 국화를 읊음

 

                                                                            高 敬命 고경명

 

             正色黃爲貴 정색황위귀      

정통의 빛깔로는 노란색을 귀히 여기고

 

             天姿白亦奇 천자백역기     

천연적인 자태는 역시 흰국화가 신비롭네.

 

             世人看自別 세인간자별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보면서 스스로 구별하지만

 

             均是傲霜枝 균시오상지     

서리에 오만하게 핀 것은 둘이 같다네.

 

 

 

           

 

    

 

  

 

 

 

          山庄雨夜 산장우야       산장의 비오는 밤

 

                                                            高 敬命 1533 - 1592

 

 

 

          昨夜松堂雨 작야송당우     

어제 밤에 송당에 비 내리고

 

          溪聲一枕西 계성일침서      서쪽 시냇물 소리를 누워서 들었네.

 

          平明看庭樹 평명간정수      새벽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니

 

          宿鳥未離棲 숙조미이서     

자던 새는 아직 둥우리를 안 떠났네.

 

 

 

 

 

☞ 參考資料(참고자료)

 

 山庄(산장)은 산 속의 별장으로 庄(장)자는 莊(장)자의 俗字(속자)이다.

 

 

 

고 경명 高 敬命 1533 - 1592

 

본관 장흥(長興). 자 이순(而順). 호 제봉(霽峰)·태헌(苔軒). 시호 충렬(忠烈). l552년(명종 7) 진사가 되었으며,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호조좌랑으로 기용되었다가 전적(典籍)·정언(正言)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563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 이조판서 이량(李樑)의 전횡을 논할 때 교리(校理)로서 이에 참여하였다가 그 경위를 이량에게 알려준 사실이 발각되어, 울산군수로 좌천된 뒤 파면되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西人)이 제거될 때 사직하고 낙향하였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光州)에서 모집한 의병 6,000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광주의 표충사(表忠祠),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종용사(從容祠), 순창(淳昌)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제봉집(霽峰集)》, 저서에 《유서석록(遊瑞石錄)》등이 있다.

 

 

 


 

 

 

           書雲岩鎭 서운암진    운암진에서 짖다

 

                                        高 兆基 고조기

 

 

 

           風入湖山萬窺號 풍입호산만규호   

바람 불어 호수와 산이 모두 울부짖고

 

           宿雲歸盡塞天高 숙운귀진새천고    밤 안개 걷히니 변방의 하늘은 높네.

 

           蒼鷹直上百千尺 창응직상백천척    푸른 매는 까마득히 하늘로 솟구치니

 

           那箇纖塵點羽毛 나개섬진점우모    

한 점 티끌인들 어찌 깃에 묻으리.

 

 

 

 

 

  參考事項- 雲岩鎭(운암진) ; 평안남도(平安南道) 안주 부근의 절경(絶景)이다.

 절경(絶景) 속에서 하늘 높이 나는 매를 보며 속세(俗世)의 풍진(風塵)이 묻지 않은 매의 자유 롭고 맑은 모습을 한없이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