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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涅槃頌

용성진종(龍城辰鍾) 열반송(涅槃頌)

by 산산바다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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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성진종(龍城辰鍾)선사 (1864~1940) 열반송(涅槃頌)

 

 

諸行之無常 : 모든 행이 무상하고

萬法之俱寂 : 모든 법이 적적하여라

匏花穿離出 :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아가

閑臥麻田上 : 삼밭에 한가로이 누웠나니

 

 

선사는 186458일 전라도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에서 아버지 수원(水原) 백씨(白氏)인 남현(南賢)과 어머니 밀양(密陽) 손씨(孫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상규(相奎)이고 법명은 진종(震鍾)이며 법호는 용성(龍城)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자비스러운 성품으로 자라났으며 이에 관한 일화가 많으나 생략키로 한다. 7세에 한학을 익혔으며 9세에 합죽선(合竹扇)이란 시를 짓기도 하여 총명함이 일찍부터 알려졌다.

 

14세 때 꿈에 부처님을 뵌 것이 인연이 되어 1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우수주(于手呪)9개월 동안 념()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난 뒤 화두참구(話頭參究)에 들어갔다. 23세 때에 낙동강을 지나는 도중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금오산에는 천추의 달이 걸려 있고

낙동강에 는 만리에 파도가 치는구나.

  고깃배는 어디로 가는가?

예나 다름없이 갈대밭을 의지해 쉬는구나.

 

선사는 나중에 대각교를 세울 때 이 오도송을 종지천명(宗旨闡明)의 구()로 삼았다. 전 후 세 례에 걸쳐 오도한 선사는 그 뒤에도 보림과 정전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내전(內典)의 열람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이러한 선사의 산중생활은 47세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일찍이 선곡율사(禪谷律師)에게 비구계를 받기도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안거와 운수(雲水)생활로 40세 때까지 선()을 중심한 전통적인 한국 불교의 종맥을 확고하게 다지면서 제방의 납자들을 접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44세 때에는 중국의 북경에 가서 천하의 선지식들을 만났으나 여기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귀국하므로 세계의 정세와 시대의 변천을 간파하게 된다. 특히 뼈저리게 느낀 것이 기독교 세력의 범람이었다. 기독교에서 불교를 비방하고 조직적으로 교세를 확장해 가고 있음에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47세 되던 해에는 귀원정종(歸源正宗)을 저술하여 기독교의 불교 비방에 대하여 강력하게 논박하고 있다.

선사에게 있어서는 47세가 중요한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수행과 산중선회(山中禪會)를 중심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세계를 갈구해 왔으나 이때부터 선사의 삶은 사바세계에 뛰어든 보살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게 된다.

 

특히 이 해는 한일합방이 체결된 1910년이므로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라를 빼앗겨 민족이 방황하고 있을 때 서울에 상경하게  되며 1911년에는 신도 집에서 법회를 보다가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를 창건하게 되니 이가 오늘날의 그 자리이다. 대각사는 장안의 선도량(禪道場)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때 한용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선사와 상의하였으며 급기야는 19193.1독립운동을 성사하기에 이른다. 선사 역시 33 가운데 불교 대표로 참여함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선사의 옥중생활은 참으로 시야를 크게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출옥 후에 대각교 운동의 방향을 뚜렷이 하는 시원점이 되었다.

 

선사는 출옥과 더불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각해일론(覺海日論)등 많은 저술과 역경(譯經)을 하게 되며 불교의식을 완전히 한글화하며, 교단의 청정을 주장하게 된다. 선사의 정진과 교화사업은 계속되었으며, 61세 되던 해에는 왼쪽 이에서 우연히 치사리(齒舍利) 일과(一顆)가 나왔는데 이 사리는 지금도 해인사 용탑(龍塔)에 모셔져 있다. 1940224일 새벽에 선사는 목욕재계한 뒤 제자들을 불러 두고 그 동안 수고했다.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이며, 법락이 6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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