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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涅槃頌

보리달마(菩提達磨) 열반송(涅槃頌)

by 산산바다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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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菩提達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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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달마(菩提達磨) (?~534?) 열반송(涅槃頌)

 

 

以指標月 其指所以在月

以言喩道 其言所以在道

顧言而不顧其道 非知道也

昧指而不昧其月 非識月也

所以至人常妙悟於言象之表

而獨得于形骸之外.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은 그 손가락의 뜻이 달에 있고

말로써 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말이 도에 있기 때문이다.

말만을 귀담아 듣고 도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손가락만을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을 알지 못한다.

지극한 도를 아는 사람은 항상 언어 밖의 소식을 묘하게 깨닫고

형상 이전의 실재를 얻게 된다.

 

 

보리달마(菩提達磨)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선승(禪僧)(?~534?). 중국 선종(禪宗) 창시자이다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셋째 왕자로후에 대승 불교의 승려가 되어 ()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 뤄양(洛陽) 이르러 동쪽의 쑹산(嵩山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 좌선(面壁坐禪) 하고 나서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선법(禪法)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달마는 전법의 증거로 가사를 혜가에게 전한 다음 대담하게 독극물을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대사는 평소에 자기의 나이는 150세라고 했기 때문에 대사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대사의 유해는 낙주(洛州) 웅이산(熊耳山) 기슭에 매장되었다.

 

위나라 외교관으로 인도에 나가 있던 송운(宋雲)이 본국으로 돌아오던 도중 파미르 고원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대사는 짚신 한 짝을 들고 있었다.

송운이 대사를 보고 인사를 했다.

대사는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이제 내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요. 당신네 나라의 황제도 오늘 사망했소.”

대사의 법은 누구에게 전하셨나요?”

나는 지금 돌아가지만 앞으로 40년이 지난 다음에 한 사람의 중국 승려가 나타날 것이오.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소.”

 

전법보기(傳法寶記)는 동위 숭산 소림사의 석보리달마선종의 초조로 기록했다. 전법보기에 따르면 석보리달마는 위대한 바라문족 출신으로 남인도 국왕의 제3 왕자로서 예민한 정신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보배를 이어받았다고 언급한다.

성스러운 지혜를 깨닫고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자 노력한 달마는 중국인들을 위하여 바다를 건너 숭산으로 왔다고 기록했다.

 

달마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으며 오직 도육과 혜가가 남몰래 마음속으로 진실을 알고자 했으므로 달마는 성심으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6년 동안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도육과 혜가는 그로부터 완전한 대각을 성취하고자 고심했다.

위대한 스승은 조용히 혜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혜가는 자기의 팔을 자름으로서 진정한 성의를 표시했다.

달마는 친히 방편으로서 혜가를 지도하여 단번에 그 마음을 이법(理法)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는 다시 또 5년 동안 능가경에 의한 전거를 연구한 다음 혜가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 나라의 수행자에게는 능가경이 가장 적합하다.”

혜가 이외의 학자 가운데 진실을 잡지 못한 사람에게는 몇 번이나 능가경을 주면서 달마는 말했다.

장래를 위하여 무기(방법)로 삼으라.”

달마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날로 늘어났다. 이름 높은 승려들은 달마를 질투했다.

이들은 달마의 음식에 독극물을 풀었다.

위대한 스승은 그 낌새를 알아챘으면서도 그대로 음식을 들었다. 그러나 독극물은 달마를 헤치지 못했다.

음식에 독을 타는 일이 반복되자 대사는 혜가에게 말했다.

나는 법을 위하여 이 나라에 왔는데 이미 그것을 그대에게 전했다. 앞으로 더 이상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쯤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겠다.”

대사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종지(宗旨)의 오의(奧義)를 밝힌 다음 독이 섞인 음식을 먹었다. 입멸의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후일에 이르러, 이를 전승하려는 선사들이 입멸시에 진실의 종지를 남기게 되는 일이 습관화되었다. 그것이 오늘의 열반송이다.

 

 

<달마전기의 개요>

달마를 만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달마상과 마주쳐야 한다. 하나는 역사상의 실제 달마상이며, 다른 하나는 선종의 초조(初祖)로서의 달마상이다. 실제 달마에 대한 전기는 불분명하지만,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 왕자 출신이며, 6세기 초 중국(北魏)에 건너와 소림사를 중심으로 한 낙양 일대에서 행화 하였다고 전한다. 도선이 속고승전에서 달마의 선법을 남천축일승종(南天竺一乘宗), 혹은 허종(虛宗)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달마선은 반야사상에 그 기초를 두었다.

達摩禪楞伽經을 소의경전으로 삼았으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으로 종지를 삼는다(佛語心爲宗)”는 것,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 제일이다(諸佛心第一)”는 법문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초기선종을 능가종(楞伽宗) 혹은 불심종(佛心宗)이라 칭하며 그 선종의 선사들을 능가사(楞伽師)라고 부른다.

달마의 핵심사상은 이입사행(二入四行)이라 할 수 있다.

이치로 들어가는 문[理入]과 실천행으로 들어가는 문[行入]의 두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이입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불교의 근본종지를 깨닫는 것이다(藉敎悟宗).

 

중생은 부처님과 동일한 참성품[眞性]을 지니고 있으나, 다만 객진망념에 뒤덮여 있어 그 참성품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을 깊이 믿는 것이다.

망념을 제거하고 진성을 드러내기(捨妄歸眞) 위해서는 마음을 집중해 벽관(壁觀)을 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타의 구별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믿음에 굳게 머물러야 한다. 또한 언어문자의 개념적 가르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와 하나 되어 분별을 여의고 고요한 무위[寂然無爲]에 도달한다. 이것을 이치로 들어간 문이라 한다.

 

이른바 경전에 의거해 선()을 깨닫는 것을 말함이다.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은 부처님과 동일한 참성품(眞性)을 가지고 있으나, 객진번뇌에 덮여 있으므로 벽관을 통해 참성품을 깨달아 안심(安心)을 얻어야 한다.

 “이입이란 안심이며, 안심이란 벽관이다라고 설명한다. 대중부 이래의  <심성은 본래 청정하나[心性本淨], 객진번뇌에 오염되어 있다[客塵所染]>는 심성본정설을 계승하고 있다. 출처 : (한국불교신문)

 

 

* 韓國佛敎法脈

* 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 보리달마부터 혜능화상의 悟道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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