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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인도조사(西天祖師) 法脈 系譜

제 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Prajnatara)

by 산산바다 2022. 11. 17.

산과바다

반야다라(般若多羅 Prajnat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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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7 반야다라(般若多羅 Prajnatara) (?-457)

 

 

27조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

第二十七祖 般若多羅 旣得法已 行化하야 至南印度하시니 彼王香至 請祖宮中하야 尊重供養하고 施無價寶珠 王有三子하니 其季 開士也 尊者 欲試其所得하사 乃以所施珠 問三王子曰此珠 圓明하니 有能及此不 二子 皆曰此珠 七寶中尊이니 固無踰也 非尊者道力이면 孰能受之릿가 第三子菩提多羅曰此是世寶 未足爲上이오 於諸寶中 法寶爲上이로다 此是世光이니 未足爲上이오 於諸光中 智光爲上이니다 此是世明이니 未足爲上이오 於諸明中 心明爲上이니다 此珠光明 不能自照하고 要假智光하야사 乃辨於此 旣辨此已 卽知是珠 卽知是珠 卽明其寶 然則師有其道 其寶自現이오 衆生有道 心寶自現이니다 尊者 歎其辯慧하시니라

尊者 知是法嗣호대 以時未至할새 且黙而混之이어니 及香至王 厭世하야 衆皆號哭호대 唯第三子 於柩前 入定하야 經七日而出하니라 乃求出家어늘 旣授具戒하시고 尊者 告曰如來正法 轉轉乃至於我 我今付汝하노니 聽吾偈하라 曰 心地生諸種하며 因事復生理 果滿 菩提圓이요 花開 世界起니라 尊者 付法已 卽於座上 舒左右手하사 各各放光明하시니 二十七道 五色 光耀 踊身虛空하시니 高七多羅樹 化火自焚하시니라

 

27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가 이미 법을 얻은 뒤에 교화를 펴다가 남인도에 이르니 그 나라의 향지왕이 궁중으로 청하여 존중하고 공양하며 무가보주로써 보시하였다.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막내아들은 보살이었다. 반야다라 존자가 그들의 안목을 시험하려고 보시를 받은 무가보주로써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으니 무엇이 능히 이것에 미칠만한 이가 있겠는가?”

두 왕자들이 같이 말하기를,

이 구슬은 7보 가운데 으뜸이니 진실로 이것을 능가할 것이 없습니다. 존자님의 도력이 아니면 누가 능히 받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셋째 왕자인 보리다라(菩提多羅)가 말하였다.

이것은 세간의 보배이니 족히 훌륭한 것이 못되고 모든 보배 가운데 법보(法寶)가 으뜸이 됩니다. 이것은 세간의 빛이니 족히 훌륭한 빛이 못되고 모든 광명 가운데 지혜의 광명이 으뜸이 됩니다. 이것은 세간의 밝음이니 족히 훌륭한 것이 못되고 모든 밝음 가운데 마음의 밝음이 으뜸이 됩니다. 이 구슬의 광명은 능히 스스로를 비추지 못하고 요컨대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 이에 이것을 분별할 수 있으니 이미 이것을 분별한 다음에 곧 이것이 구슬인줄 압니다. 이미 이것이 구슬인줄 알아야 곧 그것이 보물인줄을 압니다. 그렇다면 스승님에게 그 도가 있으므로 그 보물이 저절로 드러나고 중생에게 도가 있으면 마음의 보배가 나타납니다.”

반야다라 존자가 그의 변재와 지혜를 감탄하였다반야다라 존자는 그가 법을 계승할 사람임을 알았으나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침묵하고 그대로 있었다. 급기야 향지왕이 세상을 하직하여 여러 사람들이 슬피 우는데 오직 셋째 왕자는 널 앞에서 선정에 들어 7일이 지난 뒤에 나와서 출가할 것을 구하거늘 이미 구족계를 주고 반야다라 존자가 말하였다.

여래의 정법이 전하고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노라. 나는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에서 여러 가지 종자가 생겨나며

일로 인하여 다시 이치가 생김이라.

결과가 원만함에 보리가 원만하여지고

꽃이 핌에 세계가 생기도다.”

 

반야다라 존자가 법을 부촉하여 마치고 곧 법좌에서 좌우의 양손을 펴서 각각 광명을 놓으니 스물일곱 줄기에 오색이 찬란하였다. 몸을 솟구쳐 일곱 다라수 높이 만치 솟아 올라가서 불을 일으켜 스스로를 태우시니라

 

 

해설 반야다라 존자가 법을 받고 교화를 펴다가 남인도에 이르러 매우 뛰어난 사람을 만나 법을 전하게 되는데 그가 불교역사상 석가세존에 버금가는 동토초조(東土初祖) 보리달마(菩提達磨, ?-528)였다. 달마대사를 흔히 일컫기를 남인도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하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눈 대화도 다른 형들의 말과는 특별히 달랐다. 그래서 반야다라 존자는 그를 첫눈에 법의 그릇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세간의 보배와 법의 보배, 세간의 광명과 지혜의 광명, 세간의 밝음과 마음의 밝음을 명석하게 설명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보배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는 훌륭한 줄을 모르고 다만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만 능히 그것이 훌륭한 보배인줄을 안다는 말은 만고에 명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궁극적 가치는 보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배를 알아볼 줄 아는 지혜가 궁극적 보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반야다라 존자에게 도가 있으므로 보리다라의 그릇됨을 알아보듯이, 사람 사람에게 도가 있으므로 마음의 보배가 나타나며 마음의 보배를 십분 활용하여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동굴 속에 보물이 가득히 있을 경우 동굴을 밝히는 등불이 있으므로 해서 보물을 알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취하여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만약 등불이 없다면 보물을 알아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취하여 활용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물도 소중하지만 그 보물을 알아보는 마음의 지혜가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에서 보리달마는 뒷날 동토인 중국으로 건너와서 기존의 이론에만 치우친 불교를 배격하고 모든 법의 근본인 이 한 마음을 중요시하는 가르침을 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론(觀心論)에서 마음을 관조하는 한 가지 방법이 6바라밀 등 온갖 수행을 다 포함하고 있다[觀心一法 總攝諸行].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전법게송에 마음 땅에서 여러 가지 종자가 생겨난다.”라고 하였는데 제자인 달마대사가 이와 같은 가르침을 전해 받은 영향과 어우러져서 일심법(一心法)의 이치를 제창하게 된 것이다. 불교를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원리지만 그 표현에는 또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표현에도 그 근거와 뿌리가 있게 된 것이다. 혹자는 마음[]을 즐겨 거론하고, 혹자는 성품[]을 자주 쓰며, 혹자는 진여(眞如), 법성(法性), 열반(涅槃) 등등을 선호한다. 특히 임제스님은 그 모든 것이 사람이라는 한 마디 말에 다 포함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이며 직접적인 표현이라 하여 사람[)이라는 말을 가장 즐겨 쓴다. 마음 없는 사람은 없으며 사람 없는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동인도 사람이며, 종성은 바라문이다. 부모를 모두 잃었어도 보살로 화현하여 불사를 일으키는 불여밀다를 만나 법을 얻고 교화를 펴면서 남천축에까지 이르니, 그 나라의 왕은 찰제리로서 이름은 향지(香至)였다. 조사가 왕의 재()에 참석했을 때 다른 성인들은 모두가 경을 읽는데, 조사만이 경을 읽지 않으니, 왕이 물었다  "어째서 스님은 경을 읽지 않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빈도는 숨을 내어쉴 때에 모든 반연을 따르지 않고 숨을 들여쉴 때에도 온(()에 머물지 않나니, 항상 이렇게 백천억 권의 경을 읽으니, 한두 권뿐이 아닙니다."  그 때에 대왕이 조사에게 구슬 하나를 바쳤는데 광채가 찬란하였다.[자세한 것은 보림전에 있다.]   

조사가 달마에게 말하였다. "내 이제 이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주노니, 나의 게송을 들으라.   

 

心地生諸種 因事復因理 果滿菩提圓 花開世界起

 

마음에서 모든 종자가 나되  

현상으로 인하고 또 이치로 인한다.  

과만(果滿)이면 보리가 원만해지리니  

꽃이 필 때 세계가 일어난다."  

 

조사가 삼매의 불로 몸을 태우니, ()의 제5대 무제(武帝)의 효건(孝建) 4년 정유(丁酉)였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般若多羅 幼名瓔珞 父母淪亡 東西盤泊

반야다라 존자는

어릴 때의 이름은 영락이라.

부모가 모두 죽으니

동서로 떠다녔도다.

 

一曉龜毛 恒嗟水涸   果滿菩提 道源遼廓
한 번 거북의 털을 깨친 뒤엔

항상 물이 마름을 개탄하였다.

과만(果滿)의 보리(菩提)

도의 근원이 멀고도 넓도다.

 

보리달마반야다라 조사의 인과(因果)를 꿰뚫어 내리는 교시(敎示)에 새삼 감복했다.

조사님. 듣자옵건데 동쪽 땅에도 고승대덕들이 많다고 하던데,

제가 그곳으로 가야만 할 어떤 인연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반야다라는 달마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은 채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윽고 눈을 뜬 조사는 눈동자의 촛점을 고정시키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 갔다.

 

네가 그곳으로 반드시 가야할 이유는 진법을 원래의 곳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너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의 추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남쪽은 너와 별로 인연이 없다.

왜냐하면 그곳 사람들은 비록 불교를 숭상하고는 있지만 불교의 참 이치는 잘 모른다.

설령 네가 교화하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의 방해에 봉착할 것이다.

그곳에선 절대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느니라.

내가 게송 하나를 너에게 들려주겠노라.”

보리달마는 조사의 가르침을 되 뇌이면서 공손하게 말했다.

원컨대 조사님의 게송을 듣고자 합니다.”

 

路行跨水復逢羊 獨自棲棲暗渡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嫩桂久昌昌

 

"길을 가고 물을 건너 다시 양을 만나고

홀로 외로이 강을 건너네.

햇빛 아래엔 가련한 한 쌍 코끼리와 말

두 그루 계수나무 있는 곳 오래오래 창성하리라

 

이 게송은 보리달마가 동쪽으로 갔을 때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이다.

맨 마지막 구절의 두 그루 계수나무가 있는 곳은 소림(少林)사를 말하고

오래를 나타내는 ()’자는 아홉을 뜻하는 구()와 상통한다.

따라서 소림사에서 구년면벽으로 창성하게 될 것을 노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송의 첫 구절의 ()’은 양()나라를 상징한 것이고, 다음 구절의 외로이 강을 건너가는대목은 양 나라 무제(武帝)와 헤어져서 양자강을 건너가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의 코끼리와 말은 각각 양 나라와 위() 나라의 임금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송을 들은 보리달마는 반야다라에게 물었다.

자꾸 여쭙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다음엔 무슨 일이 있겠는지요?”

반야다라가 대답했다.

내가 죽은 뒤로 105년이 지나면 작은 난리가 있을 것이다.”

무슨 난리를 말씀하시는지요?”

나의 게송을 듣거라!”

반야다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읊조렸다.

 

心中雖吉外頭凶 川下僧房名不中 爲遇毒龍生武子 忽逢小鼠寂無窮

 

마음속은 길하건만 머리 밖은 흉하고

시냇물 아래 승방은 이름에 걸맞지 않네.

독룡을 만나 무자를 낳고

홀연히 생쥐 만나니 오래도록 적막하리.”

 

보리달마는 몸을 굽혀서 읍을 하고 또 물었다.

다시 그 이후는 어떻겠습니까?”

반야다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후에 너는 총림(叢林)에서 한 사람을 만나 도과(道果)를 얻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들려줄 게송 하나가 더 있느니라!”

그저 가르쳐 주시기만 바랄 뿐이옵니다!”

반야다라는 다시 낭송을 시작했다.

 

震旦雖闊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鷄解御一粒粟 供養四方羅漢僧

 

동쪽 땅 비록 넓으나 별다른 길 없구나

자손의 힘 빌려 걸어 나아가야 할지니

금계가 물어온 조 한 알로

사방의 나한과 승려를 공양하네

 

게송을 끝마치자 반야다라는 불자를 한 번 털고는 본당 밖으로 훌쩍 나갔다.

보리달마는 조사의 현묘한 말씀과 이치에 새삼 감동했다.

자기도 모르게 찬탄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는 반야다라가 불교의 융성과 침체를 예견하고 읊은 세 가지 게송의 속뜻을 깊이 되새겼다.

 

그는 정법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절감했다.

짚신을 신고 운수행각(雲水行脚)하며 보리를 증험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불문의 계율과 선법을 널리 펼침으로써 세간의 도탄에 빠진 생령들의 죄악을 물리치고 나아가서 가련한 중생들의 심령(心靈)을 밝혀 주리라고 다짐했다.

불경에 파묻혀서 그리고 종소리와 경소리를 들으며 사는 완벽한 승려의 생활이 시작됐다.

 

이로부터 보리달마는 조사의 곁을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다.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날도 여전히 태양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반야다라 조사는 몸에 회색가사를 걸치고 발에는 삼으로 엮은 신발을 신은 다음 보리달마를 불렀다.

두 사람은 본당 앞 넓은 바위 앞으로 나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를 콸콸 소리 내며 흐르는 계곡물이 해질녘의 고요함을 부수고 있었다.

저녁 햇살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절벽과 계곡으로 거꾸로 내려가고 있었다.

반야다라 조사는 유난히 냉정한 모습을 하고 보리달마에게 말했다.

옛날 석가여래께서 가섭존자에게 정법을 전해 주신 이래로 이처럼 27대나 흘러서 나에게 이르렀다.

네가 나와 함께 한지도 이미 40년이 되었으니 오늘 나도 너에게 정식으로 법위(法位)를 맡기고자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인생은 비록 잠시지만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길은 영원히 다함없이 무궁한 것이니라.”

보리달마는 조사가 열반에 들어 법과(法果)를 증험하시려는 것을 알았다.

황망히 두 손을 합장하고 엎드려 말했다

제자는 삼가 조사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듣겠나이다.”

그래, 그래.”

반야다라는 얼굴 가득히 웃음꽃을 피웠다그리고 게송을 읊기 시작했다.

 

心地生諸種 因事復生理 果滿菩提圓 華開世界起 

 

마음속에 여러 씨앗이 생겼으니

이로 인하여 다시 이치가 생기고,

정과를 이루면 보리도 원만해지니

꽃피는 아름다운 세계 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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