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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인도조사(西天祖師) 法脈 系譜

제 20조 사야다(闍夜多)

by 산산바다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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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0 사야다(闍夜多) (?74)

 

 

그는 북인도국(北印度國) 사람으로 지혜가 깊어서 교화된 이가 한량이 없었다.

뒤에 나열성(羅閱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드날렸는데 그곳에 있는 수행하는 무리들은 오직 사리를 밝혀주는 법문만을 숭상하였다.

거기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바수반두(婆藪槃頭)라 하였는데 항상 한 끼니만을 먹고 눕지도 않으며 여섯 차례 예불하고 청정하며 욕심이 없어서 대중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존자가 그를 제도 하고자 하여, 우선 그 무리들에게 물었다.

"이 변행두타(遍行頭陀)가 범행(梵行)을 닦은들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 무리들이 대답했다.

"우리 스승이 정진하거늘 어찌 옳지 못하다 하는가?“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멀다. 설사 티끌 수 같은 겁을 고행하더라도 모두가 허망할 뿐이다.“

"그러면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웃으십니까?“

"나는 도를 구하지는 않았으나 뒤바꾸지 않고, 부처에게 절하지는 않으나 교만하지 않고, 오래 앉아있지는 않으나 게을리 하지 않고, 한 끼니만 먹지는 않으나 잡되게 먹지 않고, 만족함을 알지는 못하나 탐하지 않나니, 마음에 희망하는 바가 없는 것을 도라 한다.“

이때에 변행 두타가 이 말을 듣고,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어 기꺼이 찬탄하였다.

 

존자는 다시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나의 말을 알아듣겠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너희의 도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므로 너희를 칭찬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안락한 경지에 이르러 부처의 지혜에 들라.“

 

그러고는 다시 변행 두타에게 말했다.

"내가 아까 대중 앞에서 스님을 억누르는 말을 했는데 마음속에 괴로움이 없었는가?“

 

변행이 대답했다.

"내가 일곱 전생 일을 기억하는데 항상 안락국에 태어났었습니다. 그때 스님은 월정이라는 지혜로운 이로서 나에게 '오래지 않아서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리라'하고 수기하셨습니다.

 

그 무렵에 대광명보살(大光明菩薩)이 세상에 나셨는데 내가 너무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가서 예배하고 나니 스님께서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아비는 가벼이 여기니 어쩌면 그다지도 못났는가'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허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님께서 보여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스님이 '네가 대광명 보살께 예배할 때에 벽에 그린 부처님의 얼굴에 지팡이를 기대었다.

이 교만으로 인하여 2과(果)를 잃었다'라고 말씀해 주시니 스스로를 경책하고 잘못을 뉘우친 그때부터 온갖 나쁜 말을 들어도 메아리 같이 여겼습니다.

하물며 이제 위없는 감로수의 법문을 들었거늘 성을 내겠습니까. 바라오니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묘한 도를 보여 주옵소서.“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오래 전부터 온갖 공덕을 심었으니, 나의 법을 계승하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으라.“

 

言下合無生(언하합무생) : 말이 떨어지자 무생(無生)에 합하면

同於法界性(동어법계성) : 법계의 성품과 같으니

若能如是解(약능여시해) : 만일 이와 같이 깨달으면

通達事理竟(통달사리경) : 현실과 진리를 통달해 마치리.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살며시 열반에 드니,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이는 곧 후한의 명제(明帝) 17년 갑술년이었다.

 

사야다 존자가 말한 여기의 이 가르침은 선어록에서 매우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도인의 삶이라거나, 또는 불교적 수행생활이라거나 하는 문제에 대한 참되고 바른 견해를 피력한 말씀이다.

 

바수반두 존자는 평소에 철저한 계율과 두타행을 수행함으로서 그것이 불도를 얻는 참되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행으로 인하여 인도사회에 소문과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사야다 존자의 안목으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바르게 가르치고자 그의 제자들에게 비난을 한 것이 곧바로 바수반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말을 전해들은 바수반두는 단박에 도의 눈이 떠지고 지혜가 밝아졌다.

마치 밥을 떠다 나른 숟가락은 앎이 없는데 그 밥을 받아먹은 사람은 배가 부르고 원기가 충만하여진 것과 같이 되었다.

이를테면, 도를 구한다는 것은 전도되지 않으며 바르게 산다는 뜻이다.

예불이란 평소에 사람들을 존경하고 섬긴다는 뜻이다.

늘 앉아서 눕지 않는다는 것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뜻이다.

일중식이란 아무 때나 함부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인연을 따라서 물이 흐르듯이 순리대로 사는 삶이 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영가 증도가>에서 공부가 다 끝나서 아무런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의 삶이란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또한 진실한 생각을 구하지도 않는 것이다.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라고 한 것과 같다.

참으로 바르고 옳은 삶을 명쾌하게 밝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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