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海峯有璣(해봉유기) (1707~1785)의 禪詩 (1)~(2)
● 海峯有璣(해봉유기) (1707~1785. 法號 好隱 또는 海峰. 法名 有機. 忠北 淸州 出生. 俗姓은 文化柳氏)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번암집(樊岩集)>에 실려 있는 해봉대사영찬(海峯大師影讚)이다. 영찬의 주인공은 해봉유기(海峯有璣, 1707~1785)이며, 채제공이 예를 표한 해봉스님의 진영은 현재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이 영찬은 해봉스님의 시문집인 <호은집(好隱集)>에도 실려 있다.
해봉스님은 9세에 속리산에서 <소학>을 공부하다 어떤 스님의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를 읽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아 15세에 출가했다. 이후 28세에 가야산에 계신 낙암의눌(洛庵義, 1666~1737)스님에게서 선교(禪敎)의 요체를 체득하고 가사와 발우를 전수받아 서산휴정-편양언기-풍담의심-상봉정원-낙암의눌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다. 스님은 비슬산과 가야산을 오가며 교화를 펼쳤다. 여러 경전 가운데 <화엄경>에 특히 뛰어났으며 염불에도 관심이 깊어 1776년 해인사에서 <신편보권문(新編普勸文)>을 간행했다. 말년에 가야산 처소에 들어 15년간 출입하지 않았음에도 문 밖에는 왕래하는 학인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스님이 입적하자 제자 평악지학(平岳旨學)은 해봉스님의 문집을 들고 양주에 있는 채제공을 찾아가 서문(序文)을 청했다. 해봉스님과 채제공은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해봉스님은 1771년에 채제공이 찬한 봉암채흠(鳳巖采欽)의 비문을 보고 죽어서라도 채공(蔡公)의 글을 얻기를 원했다. 채제공 역시 온갖 문체에 막힘이 없는 스님의 문장을 보고 찬탄을 마지하지 않았으며, 서문만이 아니라 진영의 영찬을 지어 최치원(崔致遠)의 시처럼 해봉스님이 후세에 영원토록 기억되길 기원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1) 庚申病中作(경신병중작) : 庚申년 病中에 짓다.
病臥一年頭亦白 ~ 병들어 일 년 되니 머리가 희끗하고
自羞於學未專工 ~ 배운 것 못다 이루니 스스로 부끄럽네.
往時萬卷筌蹄業 ~ 지난날 만권 책은 고기 잡는 그물이라
入海籌砂不見終 ~ 해변의 모래알 세기 어느 세월에 끝나랴.
(2) 碧巖覺性 影讚(벽암각성 영찬) : 碧巖覺性 禪師의 영상을 讚揚한 글
虎而能及其虓乎 毛而已 ~ 범을 그림에 咆哮하는 모습을 그리고자하나 범털에 미칠 뿐이며
人而能及其衷乎 面而已 ~ 사람을 그림에 마음을 表現하고자 하나 얼굴에 미칠 뿐이다.
今碧巖尊者之影 ~ 지금의 碧巖尊者의 眞影은
能其聲德乎衣帶而已 ~ 그의 聲德을 그리려 했으나 衣帶일 뿐이다.
愚之詞 ~ 어리석은 讚詞로
亦曷盡其尊者 ~ 어떻게 尊者를 다할 수 있으리.
在世遍灑甘露法雨 ~ 世上에 계실 적에는 甘露의 法雨를 두루 뿌리시어
於無限天人之化乎 ~ 限없는 天上 人間을 敎化하셨다.
難矣 筆路斯塞而已 ~ 어려워라! 글로써 말하는 것은 壅塞(옹새)할 뿐이다.
* 海峯有璣스님이 碧巖覺性(1575~1660)禪師에게 올린 影讚으로 海峯有璣의 好隱集에 收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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