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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次韻章傳道喜雨(禱常山而得)차운장전도희우(도상산이득)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23.

산과바다

비가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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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次韻章傳道喜雨(禱常山而得)차운장전도희우(도상산이득) : 소식(蘇軾)

                비가 내리는 것을 기뻐한 장전도의 시에 차운하여(도상산에서 얻다)

 

去年夏旱秋不雨海畔居民飮鹹苦今年春暖欲生蝝地上戢戢多於土預憂一旦開兩翅口吻如風那肯吐

前時渡江入吳越布陣橫空如項羽農夫拱手但垂泣人力區區固難禦撲緣發尾困牛馬啖嚙衣服穿房戶

坐觀不救亦何心秉畀炎火傳自古荷鋤散掘誰敢後得米濟饑還小補常山山神信英烈撝駕雷公訶電母

應憐郡守老且愚欲把瘡痍手摩撫山中歸時風色變中路已覺商羊舞夜窗騷騷鬧松竹朝畦泫泫流膏乳

從來蝗旱必相資此事吾聞老農語庶將積潤掃遺孽收拾豐歲還明主縣前已窖八千斛率以一升完一畝

更看蠶婦過初眠未用賀客來旁午先生筆力吾所畏蹙踏鮑謝跨徐庾偶然談笑得佳篇便恐流傳成樂府

陋邦一雨何足道吾君盛德九州普中和樂職幾時作試向諸生選何武

 

 

去年夏早秋不雨 : 작년 여름엔 가물고 가을에도 비도 오지 않아서

海畔居民飮鹹苦 : 바닷가의 주민들이 짜고 쓴 물을 마시네.

今年春暖欲生蝝 : 금 년 봄은 따뜻하여 누리 새끼 생길 듯하더니

地上戢戢多魚土 : 땅 위에 와글와글 흙을 뒤덮고도 남았었네.

預憂一旦開兩翅 : 어느 날 문득 두 날개 펴고 날아오를 것 걱정해

口吻如風那肯吐 : 바람 같은 입에 문 곡식을 어찌 뱉어내려 하리

前時渡江入吳越 : 옛날에 강을 건너 오월 땅으로 들어와서

布陣橫空如項羽 : 허공에 길게 항우처럼 진을 쳤는데

農夫拱手但垂泣 : 농부는 두 손을 놓고 눈물만 흘렸나니

人力區區固難禦 : 사람의 힘은 작디작아 막기가 참 어려웠지

撲緣鬉毛困牛馬 : 털에 찰싹 달라붙어 소와 말을 못살게 하고

啖齧衣服穿房戶 : 옷을 다 뜯어 먹고 방문을 뚫었었지

坐觀不救亦何心 : 빤히 바라볼 뿐 어쩌지 못한 마음이 어땠을까?

秉界炎火傳自古 : 불꽃 속에 던지는 수법 옛날부터 전해오네.

 

荷鋤散掘誰敢後 : 호미 메고 땅 파는 일에 뒤처질 사람 없을지니

得米濟飢還小補 : 쌀을 얻어 요기하면 이 또한 작은 보탬이 되지

常山山神信英烈 : 상산의 산신령이 참으로 늠름하게

撝駕雷公訶電母 : 우레의 신 지휘하고 번개의 신 호통치시네.

應憐郡守老且愚 : 틀림없이 늘고 둔한 이 군수를 가련히 여겨서

欲把瘡痍手摩撫 : 생채기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려 하신 거겠지.

山中歸時風色變 : 산속에서 돌아올 때 바람의 기색이 달라져서

中路已覺商羊舞 : 산양이 춤추는 것 도중에 벌써 느꼈겠네.

夜窗騷騷鬧松竹 : 밤에 창문에 솨아솨아 솔과 대가 요란 터니

朝畦泫泫流膏乳 : 아침에 밭에 줄줄 기름진 젖이 흘렀네.

從來蝗早必相資 :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반드시 누리가 생겼지

此事吾聞老農語 : 이 말을 나는 나이 많은 농부에게 들었다네.

庶將積潤掃遺孼 : 바라건대 불어난 빗물이 재앙의 잔재를 쓸어버려

收拾豊歲還明主 : 풍년을 거둬 영명하신 임금님께 돌려드렸으면

縣前已窖八千斛 : 현청 앞에 팔천 섬을 이미 파묻어 두었으니

率以一升完一畝 : 한 되로 한 이랑을 온전하게 할 터이니

更看蠶婦過初眠 : 이다가 또 잠부가 첫 잠 맞는 것을 볼지라도

未用賀客來旁午 : 하객들이여 사방에서 몰려올 것이 없더이다

先生筆力吾所畏 : 장선생의 필력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蹴踏鮑謝跨徐庾 : 포조 사조도 능가하고 서릉 유신도 넘어서네

偶然談笑得佳篇 : 우연히 담소하다가 멋진 시를 얻으면

便恐流傳成樂府 : 그것이 곧 유행하여 악부가 되리라

陋邦一雨何足道 : 촌구석에 비 한번 온 거야 어찌 말할게 있으리?

吾君盛德九州普 : 임금님의 성덕은 구주에 펴져 있으니

中和樂職幾時作 : <중화><낙직>을 언제나 짓게 하여

試向諸生選何武 : 여러 생도 중에서 하무를 선발하리?

 

 

* 中和(중화) : 감정이나 성격이 치우치지 아니하고 바른 상태

* 하무(何武) : 출생 사망 미상(BC ?~3) 전한 촉군(蜀郡) 비현(郫縣) 사람. 자는 군공(君公)이고, 시호는 자후(刺侯). 주역(周易)을 공부했고,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낭()이 되었다. 호현령(鄠縣令)으로 옮겼다. 오랜 뒤에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었는데, 사람됨이 어질고 후덕하여 남을 칭찬하기를 좋아했다. 성제(成帝) 말에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가 다시 대사공(大司空)을 지냈고, 범향후(氾鄕侯)에 봉해졌다. 애제(哀帝) 때 승상(丞相) 공광(孔光)과 함께 한전(限田)과 한노비(限奴婢) 방안을 추진해 한도를 넘긴 사람을 정리하려 했지만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시행하지 못했다. 평제(平帝) 때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자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해치려고 했는데, 무고를 받아 자살했다. 선제(宣帝) 때는 경학박사에게 수업을 받았다. 경술(經術)이 설선(薛宣)보다 뛰어났다고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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