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書林逋詩後(서임포시후) : 소식蘇軾
임포의 시를 쓴 뒤에
吳儂生長湖山曲,呼吸湖光飲山淥。不論世外隱君子,傭兒販婦皆冰玉。
先生可是絕俗人,神清骨冷無由俗。我不識君曾夢見,瞳子了然光可燭。
遺篇妙字處處有,步繞西湖看不足。詩如東野不言寒,書似西臺差少肉。
平生高節已難繼,將死微言猶可錄。自言不作封禪書,更肯悲吟白頭曲。
〈(逋臨終詩云:茂陵異日求遺草,猶喜初無封禪書。)〉
我笑吳人不好事,好作祠堂傍修竹。不然配食水仙王,一盞寒泉薦秋菊。
〈(湖上有水仙王廟。)〉
吳儂生長湖山曲(오농생장호산곡) : 오나라 땅 사람들 호수와 산 깊은 곳에 살면서
呼吸湖光飮山淥(호흡호광음산록) : 호수의 물빛을 호흡하고 산속의 맑은 물 마시는데
不論世外隱君子(불론세외은군자) :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은둔군자는 물론이고
傭兒販婦皆氷玉(용아판부개빙옥) : 품 팔고 물건 파는 사람들 마음도 백옥 같네.
先生可是絶俗人(선생가시절속인) : 선생은 속세 인연 아주 끊지는 않았지만
神淸骨冷無由俗(신청골랭무유속) : 타고난 자질이 고결하고 속된 것이 없었으니
我不識君曾夢見(아불식군증몽견) : 선생을 만난 적 없지만 꿈에서 본 바로는
瞳子了然光可燭(동자요연광가촉) : 맑고 밝은 눈동자가 분명하였네.
遺篇妙字處處有(유편묘자처처유) : 생전에 쓴 시와 글씨 여러 곳에 남아 있어
步繞西湖看不足(보요서호간부족) : 서호를 빙 둘러봐도 다 볼 수가 없는데
詩如東野不言寒(시여동야불언한) : 시가는 맹교를 닮았지만 춥고 배곯는 말이 없고
書似西台差少肉(서사서대차소육) : 서대를 닮은 서법 갸름 하지만 힘이 있네.
平生高節已難繼(평생고절이난계) : 평생 지킨 높은 절개 이어 가기 쉽지 않고
將死微言猶可錄(장사미언유가록) : 남겨둔 뜻깊은 말 기록해 둘만한데
自言不作封禪書(자언부작봉선서) : 「봉선서」 같은 건 쓰지 않겠다 말한 마당에
更肯悲吟白頭曲(갱긍비음백두곡) : 노년을 탄식하는 「백두음」같은 걸 썼겠는가!
我笑吳人不好事(아소오인불호사) : 강남 사람들 하는 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好作祠堂傍修竹(호작사당방수죽) : 수죽 옆에 사당을 짓는 건 좋을 듯도 싶은데
不然配食水仙王(불연배식수선왕) : 그렇지 않으면 임포의 상을 수선왕 옆에 나란히 두고
一盞寒泉薦秋菊(일잔한천천추국) : 술 한 잔과 국화 한 송이 올리고 싶네.
임포(林逋, BuLin) 967(북송 건덕 5)년 ~ 1028(천성 6)년
중국 북송의 시인. 자는 군부(軍復) 인종이 내린 시호 임화정(林和靖)으로 불리웠다. 전당(장쑤성 항주) 사람. 일생 독신으로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며 매화 300본을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간 성안에 들어오지 않고 풍류 생활했다. 시인으로서 뛰어났으며 대표적 고사(高士)로서 세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행서에 뛰어났고 수경(痩勁)한 서풍에 고사다운 풍운을 발휘했다. 대표작가에 친필인 『잡시권』 (타이페이 고궁박물관)이 있고 『정운관법첩』 모각이 있다. 이상적 은둔자로서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여 학을 길들이는 고사를 묘사한 『무학도』, 『준학도』 (장로필) 등 외에 매화를 사랑한 고사에 따른 『애매도』는 4애도(四愛圖)의 하나가 되었다.
* 吳儂(오농) : 옛 오나라 땅에 사는 사람들, 여기서는 특히 강남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아농(我儂)으로 다른 사람을 거농(渠儂) 또는 개농(個儂) 이나 타농(他儂)으로 칭했다.
* 淥(록) : 물이 맑은 것을 가리킨다.
* 隱君子 : 세상을 피해 은둔해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 傭兒(용아) : 머슴. 하인. 종.
* 販婦(판부) : 물건을 파는 여인을 가리킨다.
* 不論 : 말할 것도 없고. ~뿐만 아니라.
* 氷玉 : 인품이 고상하고 정결한 사람 또는 그러한 사물을 가리킨다.
* 可是 : 그렇기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 神淸 : 심신이 맑고 밝은 것을 가리킨다. ‘骨’은 자질資質과 성품性品을 가리킨다.
* 瞳子 : 눈동자
* 了然 : 분명하다. 동공이 맑고 밝은 것을 가리킨다. ‘瞭然’으로 쓴 자료도 있다. ⟪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에서 ‘胸中正, 則眸之瞭焉. 胸中不正, 則眸子眊焉(가슴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가슴속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이라고 했다.
* 遺篇 : 앞사람이 남긴 시문을 가리킨다. 유극장劉克莊은 「十月二十二夜同方寺丞宿瀑庵讀劉賓客集」이란 시에서 ‘坐對遺篇忘漏盡, 手遮殘燭怕風吹(시집 앞에 앉아서 날 새는 줄 모르고 / 바람에 꺼질까 손으로 촛불을 가려가며)’라고 하였다.
* 東野 : 당조(唐朝)의 시인 맹교(孟郊)(751~814, ‘東野’는 그의 자字)를 가리킨다. 소식이 ‘교한도수(郊寒島瘦)’라고 말한 이후, 평론가들이 맹교와 가도(賈島)를 병칭하여 어려움을 읊은 고음시인(苦吟詩人)의 대표로 불렀다.
* 西台(西臺) : 송대(宋代)의 서법가 이건중(李建中)(945~1013)을 가리킨다. 촉(蜀) 출신으로 자는 득중(得中)이고 행서(行書)에 능했다. 서경유사어사대(西京留司御史臺)를 지낸 그를 사람들이 이서대(李西臺) 또는 이유대(李留臺)로 불렀다.
* 微言: 뜻이 깊고 미묘한 말을 가리킨다. 뜻이 드러나지 않은, 완곡한 풍자의 언어를 가리킨다.
* 封禪書(봉선서) : 서한(西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대 72국의 제왕들이 태산(泰山)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낸 봉선(封禪)에 관한 전설을 담아낸 산문을 가리킨다.
* 白頭曲 : 유흠(劉歆)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서 ‘相如將聘茂陵女爲妾, 卓文君作白頭吟以自絶, 相如乃止(사마상여가 무릉의 여인을 첩으로 맞으려 하자 탁문군이 「백두음」을 지어 읊으며 자진하겠다고 말하자 상여가 그만두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白頭曲’은 늙은 것을 한탄하며 한평생 이룬 것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내용의 시가를 가리킨다.
* 水仙王 : 전당용군(錢塘龍君)을 가리킨다. 송대(宋代)에 서호(西湖) 옆에 있는 수선왕묘(水仙王廟)에서 전당용군(錢塘龍君)에게 제사를 지냈다.
소식은 「飲湖上, 初晴後雨」란 시에서도 '此意自佳君不會, 一杯當屬水仙王(이렇게 좋은 기분 그대 아직 모르려니 / 술 한 잔 마땅히 수선왕에게 올려야지)’라고 하였다.
* 薦(천) : 절기를 맞아 제철에 맞는 제물로 제사를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원풍(元豊) 8년(1085) 작이다. 동파가 시제에서 ‘書林逋詩(서임포시)’라고 한 것은 임포가 자신의 칠언시 5수(34행)를 쓴 것으로, 거기에는 ‘황상이 즉위한 해 5월에 고산에 있는 북제에서 손가는 대로 임포 쓰다(時皇上登寶位歲夏五月孤山北齋手書林逋記)’라고 한 관식(款識)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해는 인종이 즉위한 천성(天聖) 원년(1023)으로 임포의 나이 57세였던 때였다.
말하자면 동파의 이 시는 임포(林逋)가 자신의 칠언시 5수를 써놓은 묵적의 뒷면에 시를 지어 쓴 것으로 임포의 시와 서법에 대한 동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임포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스무 해 동안 성으로 들어가는 발길을 끊고 혼인도 하지 않은 채 홀로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지냈는데, 사람들이 그런 그의 삶의 태도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그는 또 시를 지을 때 닥치는 대로 쓰고 원고를 남겨두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임포(林逋) 사후, 송인종(宋仁宗)은 화정선생(和靖先生)이란 시호를 하사하였다.
제11구 ‘詩如東野不言寒’는 당나라 때 시인 맹교(孟郊)와 임포의 시를 비교해서 말한 것으로, 시의 풍격은 서로 닮았지만 임포의 시에서는 맹교와 같은 추위와 굶주림에 관한 말이 없다고 말한 것인데, 동파는 「맹교의 시를 읽고(讀孟郊詩)」란 자신의 시에서 ‘수행자로 산 것보다 시가 맑기는 하지만(要當鬥僧淸) 한유의 호방함에는 미치지 못하네(未足當韓豪)’라고 했고,
또 「유자옥을 위한 제문(祭柳子玉文)」이란 글에서는
‘맹교의 시는 춥고 가도의 시는 비쩍 말라 있다(郊寒島瘦)’라고 하며 둘을 ‘苦吟詩人’의 전형으로 보았다.
또 제12구의 ‘書似西台差少肉’는 서법가 이건중(李建中)과 임포의 글씨를 논한 것으로 서대 이건중의 글씨보다 가늘고 힘찬 임포의 글씨를 더 높이 보았다.
제15구의 ‘封禪書’는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한무제(漢武帝)를 염두에 두고 쓴 「봉선문(封禪文)」을 가리키는데, 그는 이 글에서 ‘옛날에 새로 나라를 세운 제왕이 태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古者封泰山), 양보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거행한 것이 72개국인데(禪梁父者七十二家), 내가 여기 적은 것은 겨우 12개 나라뿐이다(而夷吾所記者十有二焉).’라고 하였다.
임표는 자신이 사마상여처럼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글을 쓰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동파는 또 임포가 죽기 전에 만들어 놓은 무덤에서 쓴 시를 예로 들어 그가 평생 고결한 뜻을 잃지 않고 살았던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湖上靑山對結廬(호상청산대결려) : 호수 위 푸른 산에 움막을 엮고
墳頭秋色亦蕭疏(분두추색역소소) : 무덤 위에서 쓸쓸한 가을빛을 바라보네
茂陵他日求遺稿(무릉타일구유고) : 황제가 내 유고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猶喜曾無封禪書(유희증무봉선서) : 다행히 나는 「봉선서」를 쓴 적 없다네
- 임포林逋의 시 「미리 만들어둔 내 무덤 앞에서 절구 한 수를 짓다(自作壽堂因書一絶以志之)」 전문
임포가 쓴 칠언시 5수는 아래와 같다.
松扇
編松爲箑寄山中, 兼得紫微詩一通. 入手凉生殊自慰, 可煩長聽隱居風.
孤山雪中寫望
片山兼水繞, 晴雪復漫漫. 一徑何人到, 中林盡日看.
遠分樵載重, 斜壓葦叢乾. 樓閣嚴城寺, 疏鐘動晩寒.
孤山從上人林亭寫望
林表秋山白鳥飛, 此中幽致世還稀. 誰家岸口人烟晩, 坐見漁舟兩兩歸.
送史殿丞之任封州
炎方將命選朝倫, 治行何嘗下古人. 擁旆肯辭臨遠都, 登艫還喜奉慈親.
水蓮芳草江南地, 烟隔寒梅嶺上春. 若過中途値歸雁, 慰懷能與致音塵.
春日齋中偶成
空階重疊上垣衣, 白晝初長社燕歸. 落塵海棠人臥病, 東風時復動柴扉.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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