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送劉道原歸覲南康(송유도원귀근남강)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14.

산과바다

首陽山(수양산)

蘇軾 詩 HOME

 

 

 

                  送劉道原歸覲南康(송유도원귀근남강) : 소식(蘇軾)

                  부모님을 봉양하러 남강으로 돌아가는 유도원을 전송하며

 

晏嬰不滿六尺長高節萬仞陵首陽青衫白髮不自嘆富貴在天那得忙

十年閉戶樂幽獨百金購書收散亡朅來東觀弄丹墨聊借舊史誅奸強

孔融不肯下曹操汲黯本自輕張湯雖無尺箠與寸刃口吻排擊含風霜

自言靜中閱世俗有似不飲觀酒狂衣巾狼藉又屢舞旁人大笑供千場

交朋翩翩去略盡惟我與子猶仿徨世人共棄君獨厚豈敢自愛恐子傷

朝來告別驚何速歸意已逐征鴻翔匡廬先生古君子掛冠兩紀鬢未蒼

定將文度置膝上喜動鄰里烹豬羊君歸為我道姓字幅巾他日容登堂

 

 

晏嬰不滿六尺長(안영불만육척장) : 안영의 키 여섯 자도 되지 않지만

高節萬仞陵首陽(고절만인능수양) : 만 길처럼 높은 절개 수양산을 넘어서니

靑衫白髮不自歎(청삼백발부자탄) : 푸른 옷에 흰머리 탄식하려 하지 않고

富貴在天那得忙(부귀재천나득망) : 부귀는 재천이라 바쁠 것도 하나 없네.

十年閉戶樂幽獨(십년폐호낙유독) : 십 년 동안 문을 닫고 홀로 적적함 즐기면서

白金購書收散亡(백금구서수산망) : 가진 돈 쏟아부어 흩어진 책 사 모으고

朅來東觀弄丹墨(걸래동관농단묵) : 그 뒤로는 동관에서 책을 쓰고 교정하여

聊借舊史誅姦强(료차구사주간강) : 오래된 역사 속 사악한 자들을 꾸짖었네.

孔融不肯下曺操(공융부긍하조조) : 공융은 조조 밑에서 일할 생각 없었고

汲黯本自輕張湯(급암본자경장탕) : 급암도 본래 장탕을 중히 보지 않았으니

雖無尺箠與寸刃(수무척추여촌인) : 작게라도 채찍이나 칼 같은 건 없었지만

口吻排擊含風霜(구문배격함풍상) : 말속에 찬바람과 된서리가 들어 있었네.

自言靜中閱世俗(자언정중열세속) : 스스로 말하기를 조용히 세상 풍속 보는 것이

有似不飮觀酒狂(유사불음관주광) : 술 안 마시고 취객들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衣巾狼藉又屢舞(의건낭자우루무) : 옷과 두건 헝클어지도록 몇 번이나 춤을 추어

傍人大笑供千場(방인대소공천장) : 옆 사람들 백번 천번 배꼽 잡고 웃게 했네.

交朋翩翩去略盡(교붕편편거략진) : 풍류 함께 즐긴 벗들 거의 모두 떠나가고

惟蜈與子猶徬徨(유오여자유방황) : 애오라지 나와 그대 둘만 남아 방황하네.

世人共棄君獨厚(세인공기군독후) : 세상 사람들 날 버려도 그대 혼자 도타워서

豈敢自愛恐子傷(개감자애공자상) : 어찌 감히 날 아낄까 그대 다칠까 걱정했네.

朝來告別驚何速(조래고별경하속) : 아침에 와서 떠난다니 너무 급해서 놀랐는데

歸意已逐征鴻翔(귀의이축정홍상) : 돌아갈 마음 벌써부터 기러기를 따르겠고

匡廬先生古君子(광려선생고군자) : 지난날 군자 같던 그대의 부친 광려선생

桂冠兩紀鬢末蒼(계관양기빈말창) : 은퇴하신 지 스물네 해 아직도 흰머리 없으시네.

定將文度置膝上(정장문도치슬상) :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좋아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喜動鄰里烹豬羊(희동린리팽저양) : 기쁜 맘으로 이웃들 불러 양과 돼지를 잡으시겠네.

君歸爲我道名姓(군귀위아도명성) : 집에 가거든 나를 위해 이름자라도 말씀 올려

幅巾他日容登堂(폭건타일용등당) : 뒷날 내가 건을 쓰고 마루에 오를 수 있게 해 주게나.

 

 

* 歸覲(귀근) : 돌아가 군왕을 알현하거나 부모를 뵙는 것을 가리킨다.

* 南康 : 지명(현재의 강서성(江西省) 공주시(贛州市) 남강구(南康區). 옛 이름은 남야(南野)이고 진한(秦漢) 때는 南埜로 썼다.

* 靑衫(청삼) : 학자와 서생, 품계가 낮은 관리 또는 비천한 사람들이 입었던 푸른빛이 있는 옷을 가리킨다.

* 東觀 : 후한(後漢) 때 낙양(洛陽)의 남궁(南宮) 안에 문서와 전적을 보관하고 교서(校書)(역사)저술에 관련된 사람들이 종사했던 곳을 가리킨다.

* 丹墨은 붉은 먹과 검은 먹을 뜻하는 것으로 글 쓰는 것과 교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 朅來그때 이래를 가리키는데, 소식은 送安惇秀才失解西歸란 시에서도 朅來東遊慕人爵, 棄去舊學從兒嬉(집 떠나 동쪽을 노닐며 벼슬 구하고 / 지난날의 학문을 버리고 아이들 장난 따라 했네)’라고 했다.

* 奸强(간강) : 권세에 의지하여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악한 사람을 가리킨다. ‘姦疆으로도 쓴다.

* 孔融不肯下曹操 이하 두 구절 : 공융(孔融)과 급암(汲黯)은 유도원(劉道原)을 빗대어 말한 것이고, 조조(曹操)와 장탕(張湯)은 왕안석(王安石)을 떠올리게 쓴 것이다. ‘는 추측하다. 추정하다. 헤아리다.

* 孔融(공융) : 동한(東漢)의 문학가로 자는 문거(文擧)이고 노국(魯國) 사람(153~208)이다. 조조(曹操)에게 밉보여 죽임을 당했다. 천예형소薦禰衡疏여조공논성효장서與曹公論盛孝章書같은 명편을 남겼다.

* 汲黯(급암) : 서한(西漢)의 명신으로 자는 장유(長孺)이고 복양(濮陽) 사람(?~BCE112)이다. 성품이 강직하여 직간을 잘했는데, 한무제(漢武帝)가 그를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고 불렀다. 흉노와의 화친을 주장하고 관리가 작은 죄라도 저지르면 파면시켰다.

* 張湯(장탕) : 서한(西漢) 때 혹리(酷吏)로 두릉(杜陵) 사람(?~ BCE116)이다. 무제 때 정위ㆍ어사대부 등을 역임했다. 일찍이 조우(趙禹)와 함께 율령을 정비하고, 피폐(皮幣)와 백전폐(白全幣) 및 오수전(五銖錢) 제조를 건의하는 한편 염철(鹽鐵) 전매정책을 추진하고 고민령(告緡令)을 제정하였다. 당시의 승상과 그의 상급자들이 모두 무능했던 까닭에 그가 조정의 모든 대사를 좌지우지하였고 황제의 신임 역시 대단하였다. 그러나 후에 상인들과 짜고 부정 이득을 취하였다는 모함을 받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자 이를 불명예로 여겨 자결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 그의 권력에 불만을 품은 주매신(朱買臣) 등 승상부의 일부 비서관들의 참언으로 드러나자 격노한 무제가 그들을 즉시 처형하고 당시 승상이었던 장청적(莊靑翟)에게는 자결을 명하였다. 이후 무제는 장탕의 아들 장안세(張安世)를 후하게 대접하여 전한 말까지 명문 귀족으로써의 체면을 지킬 수 있게 배려하였다.

* 雖無尺棰與寸刃 이하 두 구절 : 왕안석이 변법을 시행했을 때 도원이 왕안석의 면전에서 신법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거론하자 왕안석이 낯빛을 달리하며 화를 내는데도 도원이 개의치 않았던 악연(惡緣)을 말한 것이다.

* 尺棰(척추) : 짧은 채찍을 가리킨다. 형벌이 엄격한 것을 가리킨다. 규모가 작은 병력을 가리킨다. ‘는 채찍을 뜻하며 또는 를 쓰기도 한다. ‘寸刃은 아주 작은 무기를 가리킨다.

* 口吻(구문) : . 입술. 말소리. 말투. 입심.

* 排擊(배격) : 배격하다. 배척하다. 비난하다. 베다. 타격하다.

* 狼藉(낭자) :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 屢舞(누무) : 이어서 여러 차례 춤을 추고 노래하다. 무절제하게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詩經ㆍ소아小雅ㆍ빈지초연賓之初筵에서 舍其坐遷, 屢舞僊僊(제자리 놔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 쉬지 않고 손발 놀려 나풀나풀 춤을 추네)’이라고 했다.

* 翩翩(편편) : 경쾌하게 나는 모양을 가리킨다.

* 獨厚(독후) : 우정(友情)이 유난히 깊은 것을 가리킨다.

* 匡廬先生古君子 이하 두 구절: ‘匡廬先生(광려선생)’은 구양수(歐陽修)와 진사에 동반 급제한 이후 영상령(潁上令)을 지낸, 유도원의 부친 유환劉渙(998~1078)을 가리키는데, 천성이 강직하여 상사와의 불화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여산(廬山)에서 지냈다. ‘匡勵는 여산(廬山)을 가리킨다.

* : ‘一紀는 십이 년을 가리킨다. ‘兩紀는 이십 년을 가리킨다.

* 掛冠 : 벼슬을 떠나는 것, 곧 퇴은(退隱)을 가리킨다.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