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취음선생묘지명(醉吟先生墓志銘) - 백거이(白居易)
취음선생묘지명
병서(并序)
啟手足之夕, 語其妻與侄曰: 吾之幸也, 壽過七十, 官至二品, 有名於世, 無益於人, 褒優之禮, 宜自貶損.
죽음을 눈앞에 둔 날 밤, 아내와 조카에게 말했다.
“내가 운이 좋아 나이 일흔을 넘겨 살았고, 벼슬이 2품에 이르렀으며, 세상에 이름까지 떨쳤는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도 없이 칭찬과 공경을 받았으니 스스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我歿, 當斂以衣一襲, 以車一乘, 無用鹵薄葬, 無以血食祭, 無請太常諡, 無建神道碑.
내가 죽거든 몸에는 옷 한 벌만 입히고, 수레는 한 대만 쓸 것이며, 소금을 쓰지 말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나면 제사는 희생물 없이 지내고, 태상에게 시호 같은 것을 청하지 말고, 길에 신도비 같은 것도 세우지 마라.
但於墓前立一石, 刻吾醉吟先生傳一本可矣. 語訖命筆, 自銘其墓云:
단지 무덤 앞에 석비 하나 세워서 내 ⟪취음선생전⟫ 한 편만 새겨주면 그만이다.”
말을 마친 뒤 붓을 달라 하더니 자기 손으로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樂天樂天, 生天地中, 七十有五年. 其生也浮雲然, 其死也委蜕然. 來何因, 去何緣. 吾性不動, 吾行屢遷.
낙천! 낙천! 천지 중에 태어나 일흔다섯 해를 살았으니 그 삶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빨랐고, 그 죽음은 매미가 껍질을 벗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무슨 까닭으로 왔다가 무슨 연유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본성은 오간 적이 없는데 행적은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已焉已焉, 吾安往而不可, 又何足厭戀乎其間?
됐다! 됐어! 내 어찌 가는 것을 아니 된다 하겠으며 그 사이에 연연하며 만족해할 것인가!
「취음선생묘지명병서醉吟先生墓志銘并序」 중에서
* 啟手足 : 계수계족(啟手啟足)의 생략형으로 선종(善終), 즉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의 표현이다.
* 官二品 : 당조관제唐朝官制에서 백거이가 지낸 태자소부분사동도太子少傅分司東都의 품계가 종이품(從二品)이었다.
* 委蜕 : 곤충의 번데기가 껍질을 깨고 나와 날개가 돋은 성충으로 변태하는 자연의 현상을 가리킨다. ⟪장자莊子ㆍ지북유知北遊⟫에서 ‘舜問乎丞: 道可得而有乎? 曰: 汝身非汝有也, 如何得有夫道! 舜曰: 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 是天地之委形也; 生非汝有, 是天地之委和也; 性命非汝有, 是天地之委順也; 子孫非汝有, 是天地之委蜕也(순임금이 승에게 가르침을 청하여 물었다. “도를 획득하여 가질 수 있습니까?” 승이 말했다. “당신의 몸뚱이도 당신의 것이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큰 도를 획득하여 점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내 것이 아니라면 그러면 내 몸은 누가 가질 수 있습니까?” 승이 말했다. “이것은 천지의 자연이 당신에게 형체를 맡긴 것입니다. 인간세상에 내려와 생겨난 것도 당신의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이 당신에게 조화로움을 맡긴 것이고, 천성과 천명도 당신의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이 당신에게 순조로움을 맡긴 것이며, 설사 자손까지라도 당신의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이 당신에게 번데기가 허물을 벗은 형으로 맡긴 것입니다).’라고 했다.
취음선생묘지명(醉吟先生墓志銘)
先生姓白,名居易,字樂天,其先太原人也,秦將武安君起之後。高祖諱志善,尚衣奉御。曾祖諱溫,檢校都官郎中,王父諱鍠,侍御史、河南府鞏縣令。先大父諱季庚,朝奉大夫、襄州別駕、大理少卿,累贈刑部尚書右僕射。先太夫人陳氏,贈穎川郡太夫人。妻楊氏,弘農郡君。兄幼文,皇浮梁縣主簿。弟行簡,皇尚書膳部郎中。一女,適監宗御史談弘慕。三侄:長曰味道,廬州巢縣丞;次曰景回,淄州司兵參軍;次曰晦之,舉進士。樂天無子,以侄孫阿新為之後。樂天幼好學,長工文,累登進士、拔萃、制策三科,始自校書郎,終以少傅致仕。前後歷官二十任、食祿四十年。外以儒行修其身,中以釋教治其心,旁以山水風月歌詩琴酒樂其志。前後著文集七十卷,合三千七百二十首,傳於家。又著《事類集要》三十部,合一千一百三十門,時人目為《白氏六帖》,行於世。凡平生所慕、所感、所得、所喪、所經、所逼、所通,一事一物,已上布在文集中,開卷而盡可知也,故不備書。大曆七年正月二十日,生於鄭州新鄭縣東郭宅;以會昌六年月日,終於東都履道里私第,春秋七十有五;以某年月日,葬於華州下邽縣臨津里北原,袝侍御、僕射二先塋也。啟手足之夕,語其妻與侄曰:吾之幸也,壽過七十,官至二品,有名於世,無益於人,褒優之禮,宜自貶損。我歿,當斂以衣一襲,送以車一乘,無用鹵簿葬,無以血食祭,無諸大常隘,無建神道碑;但於墓前立一石,冽吾《醉吟先生傳》一本可矣。語訖命筆,自銘其墓云:
樂天樂天,生天地中,七十有五年。其生也浮雲然,其死也委蛻然。來何因?去何緣?吾性不動,吾形屢遷。已焉已焉!吾安往而不可,又何足厭戀乎其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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