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 - 백거이(白居易)
취음선생전
醉吟先生者, 忘其姓字, 鄕里, 官爵, 忽忽不知吾爲誰也. 宦游三十載, 將老, 退居洛下. 所居有池五六畝, 竹數千竿, 喬木數十株, 台榭舟橋, 具體而微, 先生安焉. 家雖貧, 不至寒餒; 年雖老, 未及昏耄. 性嗜酒, 貪琴淫詩, 凡酒徒: 琴侶, 詩客多與之游. 游之外, 棲心釋氏, 通學小中大乘法, 與嵩山僧如滿爲空門友, 平泉客韋楚爲山水友, 彭城劉夢得爲詩友, 安定皇甫郞之爲酒友. 每一相見, 欣然忘歸, 洛城內外, 六七十里間, 凡觀寺丘墅有泉石花竹者, 靡不游; 人家有美酒鳴琴者, 靡不過; 有圖書歌舞者, 靡不觀.
취음선생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과 이름, 관향과 관직을 몰라 그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아는 이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삼십 년 동안 관직에 있었고 나이가 들자 벼슬에서 물러나 낙양에 살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사는 집에는 천 평 정도 되는 연못과 대나무 숲, 수 십 그루의 나무와 대사, 그리고 배다리 등 작지만 갖춰야 할 것들이 갖춰져 있었는데, 그는 이 곳에서 편안하게 지냈다. 집은 가난했지만 배를 곯거나 추위에 떨 정도는 아니었고, 나이는 많았지만 아직 정신이 혼미할 정도는 아니었다. 타고 나기를 술과 거문고, 시를 좋아하여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거문고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시객들이 오가며 그와 교유하였다. 이 같은 도락 이외에도 불교에 심취하여 소승에서 대승에 이르기까지 부처의 가르침에 통달했던 그는 숭산의 승려 여만과는 불문의 도반이 되고, 평천의 위초와는 산수를 유람하는 친구가 되고, 팽성의 유몽득과는 시를 나누는 시우가 되었으며, 안정의 황보서와는 술을 함께 마시는 벗으로 지냈는데, 그들을 만나 어울릴 때면 매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린 채 즐겁게 지냈다. 낙양성에는 안팎으로 육칠십 리 안에 샘과 바위, 꽃이 보기 좋은 도관과 사찰, 산과 들이 있었는데 취음선생은 그런 곳들을 모두 가보았다. 다른 사람 집에 맛 좋은 술과 거문고를 타는 이가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 만났고, 서적이나 가무로 소문난 곳에도 모두 다녀왔다.
自居守洛川泊布衣家, 以宴游召者亦時時往. 每良辰美景或雪朝月夕, 好事者相遇, 必爲之先拂酒暑, 次開詩筐, 詩酒旣酣, 乃自援琴, 操宮聲, 弄「秋思」一遍. 若興發, 命家僮調法部絲竹, 合奏「霓裳羽衣」一曲. 若歡甚, 又命小妓歌「楊柳枝」新詞十數章. 放情自娛, 酪酊而後己. 往往乘興, 屨及鄰, 杖於鄕, 騎游都邑, 肩舁適野. 舁中置一琴一枕, 陶謝詩數卷, 舁竿坐右, 懸雙酒壺, 尋水望山, 率情便去, 抱琴引酌, 興盡而返.
낙양의 관원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연회나 유흥으로 그를 부르면 그는 흔쾌히 그곳으로 갔다. 좋은 날의 경치와 눈 내린 아침과 달 밝은 밤에 벗들과 함께 왕래할 때마다 그는 먼저 술자리를 펴고 시집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연 뒤에 한편으로는 술을 마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시를 읊었는데,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흠뻑 술을 마시면 거문고로 「추사」라는 곡을 연주했고, 흥이 오르면 집에 있는 동복을 시켜 이원의 악사들을 불러 모아 「예상우의」란 곡을 합주하게 했다. 즐거움이 최고조에 이르면 노래하는 어린 기생에게 새로 가사를 붙인 「양류지」 수십 편을 노래하게 하면서 마음껏 즐거움을 쏟아내다가 술에 크게 취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때때로 흥이 오르면 버선발로 옆집으로 가서 걸어둔 지팡이를 짚고 마을을 돌아보고, 말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왔다가 가마를 타고 들녘으로 나가기도 했다. 가마 안에는 거문고와 침구, 그리고 도연명과 사령운의 시권들이 놓여 있었고, 가마 좌우에는 술병 두 개가 걸려 있어서 산수를 돌아보는 중에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곤 했다.
如此者凡十年, 其間賦詩約千餘首, 歲酿酒約數百斜, 而十年前後, 賦酿者不與焉. 妻孥弟侄, 慮其過也, 或譏之, 不應, 至於再三, 乃曰: “凡人之性鮮得中, 必有所偏好, 吾非中者也. 設不幸吾好利而貨殖焉, 以至於多藏潤屋, 賈禍爲身, 奈吾何? 設不幸吾好博弈, 一擲數萬, 傾財破産, 以至於妻子凍餒, 奈吾何? 設不幸吾好藥, 損衣削食, 煉鉛燒汞, 以至於無所成, 有所誤, 奈吾何? 今吾幸不好彼而目適於杯觴, 諷詠之間, 放則放矣, 庸何傷乎? 不猶愈於好彼三者乎? 此劉伯倫所以聞婦言而不聽, 王無功所以游醉鄕而不還也.” 遂率子弟, 入酒房, 環酿瓮, 箕踞仰面, 長吁太息曰: “吾生天地間, 才與行不逮於古人遠矣, 而富於黔婁, 壽於顔回, 飽於伯夷, 樂於榮啓期, 健於韋叔寶, 幸甚幸甚! 余何求哉! 若捨吾所好, 何以送老?” 因自吟咏懷詩云: 抱琴榮啓樂, 縱酒劉伶達, 放眼看靑山, 任頭生白髮. 不知天地內, 更得幾年活. 從此到終身, 盡爲閑日月.
이와 같이 십여 년을 보내면서 그 동안에 지은 시가 천여 수에 이르고 해마다 빚은 술이 수백 항아리에 이르렀다. 그의 처자와 형제, 그리고 조카들이 모두 그의 기호가 지나친 것을 걱정하며 때때로 술을 좀 적게 마실 것을 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가 말했다.
“보통사람들의 성정에 치우침이 없는 경우가 많지 않아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나 또한 치우침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잇속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여 집안에 있는 재산들로 인해 일신상에 재앙을 불러들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또 불행히도 내가 도박을 좋아해 한꺼번에 천금을 잃는 등 가산을 탕진해버리고 처자식들에게 추위와 굶주림을 겪게 한다면 어쩌겠는가? 또 불행히 내가 신선의 도술을 좋아하여 의식주에는 마음이 없고 단약이나 만들다가 이루는 것 없이 세월을 허송해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나는 다행히 그 같은 기호가 없고 단지 술과 시 사이에서 즐거움을 구할 뿐인데 잘못될 것이 무엇인가? 앞에 세 가지 기호들보다는 훨씬 좋지 않은가? 그래서 유령도 처자식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왕적도 취향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가서 술동이를 돌아본 뒤 땅바닥에 앉아 하늘을 우러르며 길게 탄식했다.
“내가 천지간에 태어나 재능이 비록 옛사람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검루보다 가난하지 않고 안회보다 오래 살았으며, 백이보다 배불리 먹고 영계기보다 더 즐거우며 위숙보보다 건강하니 참으로 행운이로다! 내 어찌 무엇을 더 바랄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버려둔 채 무엇에 기대 늙어갈 것인가?”그런 다음 「속내를 읊은 시(詠懷詩)」를 한 수 읊었다.
抱琴榮啓樂(포금영계락) : 거문고가 있으면 영계기보다 즐겁고
縱酒劉伶達(종주유령달) : 술 있으면 유령보다 막힘없으니
放眼看靑山(방안간청산) : 눈 들어 푸른 산 마음껏 바라보고
任頭白髮生(임두백발생) : 흰머리 따위에는 마음 쓰지 않네.
不知天地內(부지천지내) : 알 수 없어라 저 하늘과 이 땅 사이에
更得幾年活(갱득기년활) : 앞으로 더 몇 년이나 살 수 있을지
從此到終身(종차도종신) : 앞으로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盡爲閑日月(진위한일월) : 한 해 한 해 마음 쓰지 않고 살리라
飮罷自曬, 揭瓮撥醅, 又飮數杯, 兀然而醉, 旣而醉復醒, 醒復飮, 陰復陰, 飮復醉,醉吟相仍若循環然. 由(繇)是得以夢身世, 云富貴, 幕席天地, 瞬息百年, 陶陶然, 昏昏然, 不知老之將至, 古所謂得全於酒者, 故自號爲醉吟先生. 於是開成三年(838), 先生之齒六十有七, 鬚盡白, 髮半禿, 齒雙缺, 而觴咏之興猶未衰. 顧謂妻子云: “今之前, 吾適矣, 今之後, 吾不自知其興何如?”
시를 다 읊고 나서는 술동이를 열고 잇따라 몇 잔을 들이킨 뒤 크게 취하고 얼마 안 있어 또 취했다가 다시 깨어나고 깨어나면 계속해서 시를 읊으며 한편으로는 시를 읊고 한편으로 술을 마셨다. 하늘을 천장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부귀를 말하며 순식간에 백 년 세월이 흘러가니 취중에 늙고 죽는 날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들이 말한 취중에 얻을 수 있는 온전함이며 스스로를 취음선생이라 한 까닭이었다. 이때가 개성 3년(838)으로 선생의 나이 예순일곱이었는데, 수염은 완전히 하얗게 세어 있었고 머리는 반 넘게 벗겨져 있었으며 치아도 온전하지 않았으나 술 마시는 것과 시 읊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루는) 그가 처자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전까지는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었는데, 오늘 이후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 洛下(낙하) :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백거이는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난 뒤 낙양의 이도리(履道里)란 곳에서 살았다.
* 台榭(대사) : 축대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경관을 보기 위해 지은 정자나 건물을 가리킨다.
* 釋氏(석씨) : 불교(佛敎)를 가리킨다. 부처의 이름이 석가모니(釋迦牟尼)인 까닭에 붙여진 호칭이다.
* 夢得(몽득) : 당조(唐朝)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字다.
* 郞之(낭지) : 당조(唐朝)의 시인 황보서(皇甫曙)의 字다.
* 陶謝(도사) : 남북조시대 때 진(晉)과 송(宋)의 시인이었던 도잠(陶潛)과 사령운(謝靈運)을 가리킨다.
* 劉伯倫(유백륜) :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유령(劉伶)의 字가 伯倫이다. 술을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었다.
* 王無功(왕무공) : 당나라 때 시인 왕적(王績)의 字가 無功이다. 이 사람도 술을 좋아하여 「취향기(醉鄕記)」를 지었다.
* 黔婁(검루) : 전국시대 때의 은자(隱者)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
* 顔回(안회) : 공자(孔子)의 아낌을 받은 제자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 榮啓期(영계기) : 춘추시대 때 사람.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남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을 세 가지 즐거움(三樂)이라고 말했다.
* 韋叔寶(위숙보) : 남북조시대 때 진(晉)나라의 현학가(玄學家) 위개(韋玠)의 字가 叔寶다.
* 法部(법부) : 당나라 때 황궁의 이원(梨園)에서 악곡인 법곡(法曲)을 연주하거나 연주법을 훈련하는 부문을 가리킨다. 나중에는 교방(敎坊) 또는 법곡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斛(곡) : 고대의 도량형. 열 말(十斗)에 해당하는 양을 가리킨다. 나중에 다섯 말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큰) 항아리로 새겨 읽었다.
* 賈禍(고화) : 재앙을 불러들이다.
* 開成(개성) : 당나라 문종(文宗)의 연호(836~840)로 5년 동안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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