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독장자(讀莊子) 1 - 백거이(白居易)
《장자》를 읽고
去國辭家謫異方(거국사가적이방) : 도성을 떠나 구석진 곳으로 쫓겨나고도
中心自怪少憂傷(중심자괴소우상) : 까닭을 몰라 근심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는데
爲尋莊子知歸處(위심장자지귀처) : 《장자》를 읽고 나서야 어찌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네.
認得無何是本鄕(인득무하시본향) : 걱정될 때도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 게 답이란 것을
* 莊子(장자) :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도가학파(道家學派)를 대표하는 철학자 장주(莊周)를 가리킨다. 또는 그의 저서를 이르기도 한다.
* 去國辭家(거국사가) : 여기서는 조정(朝廷)과 집을 떠나는 것으로 새겨 읽었다.
* 無何(무하) :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생략형으로 인위(人爲)로 이뤄지는 것이 없는 곳을 가리킨다. ‘無何有’는 ‘無有’와 같다.
* 本鄕(본향) : 고향(故鄕)
원화(元和) 10년(815), 당시 재상으로 있던 무원형(武元衡)이 치청절도사(淄靑節度使) 이사도(李師道)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함구한 채 사건이 무마되기만을 바라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백거이는 범인을 체포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오히려 백거이의 죄를 물었다. 태자좌찬선대부(太子左贊善大夫)에게 없는 직언을 하는 월권을 범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이해가 끼어 있는 것을 몰랐던 백거이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형국이었다. 백거이는 이 일로 인해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고 이 시는 그렇게 쫓겨 간 강주에서 지은 것이다.
말로는 이상하기만 했지 그다지 분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해야 할 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정에서 지방으로 쫓겨 가면서 분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마(司馬)라는 실권 없는 관리가 유배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속 끓이고 술 마시다 몸을 상하는 것이 유배객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었을 것인데 유학(儒學)으로 뜻을 세운 이 같지 않게 백거이는 《장자》를 읽고 그곳에서 답을 찾았다.
아래는 시문에 들어 있는 ‘無何’와 관련된 《장자》의 한 대목이다.
今子有大樹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지금 그대는 큰 나무의 쓸모없음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곳에 그 나무를 심어두고
하는 것 없이 그 옆을 거닐고 편안하게 그 아래 누워 지내려 고는 하지 않는가?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큰 나무가) 도끼에 찍히지 않고 해치려고 하는 것이 없다면
쓰일 곳이 없다 해서 걱정하고 힘들어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중에서
인위(人爲)의 통치술을 익힌 자신에게 모자랐거나 없었던 것이 바로 억지로 무엇인가를 도모하지 않는 ‘무하유無何有’란 것을 깨닫게 된 백거이는 강주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이후 중앙보다는 지방을, 입신양명보다는 염담과욕(恬淡寡欲)을 지향하며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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