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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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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작기낭지(偶作寄郞之) - 백거이(白居易)

by 산산바다 2021.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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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작기낭지(偶作寄郞之) - 백거이(白居易)

              우연히 지어 낭지에게주다

 

 

歷想爲官日(역상위관일) : 벼슬살이 세월을 생각해보니

無如刺史時(무여자사시) : 자사였을 때가 그 중 가장 좋아서

歡娛接賓客(환오접빈객) : 찾아오는 손님들 즐겁게 맞고

飽暖及妻兒(포난급처아) : 처자식들 배부르고 등 따시게 했었네.

自到東都後(자도동도후) : 그런데 동도인 낙양으로 온 뒤에

安閑更得宜(안한갱득의) : 지내기가 전보다 한결 편안해

分司勝刺史(분사승자사) : 분사로 지내는 게 자사보다 낫고

致仕勝分司(치사승분사) : 벼슬 떠난 게 분사보다 더욱 좋았네.

何況園林下(하황원림하) : 하물며 이렇게 고향으로 내려와

欣然得朗之(흔연득낭지) : 낭지 그대의 소식을 들으니 더욱 기쁜데

仰名同舊識(앙명동구식) : 오래된 친구처럼 그대 이름을 그리워하네.

爲樂卽新知(위락즉신지) : 그대와 함께 악곡을 지으니 새로 얻은 벗 같고

有雪先相訪(유설선상방) : 꽃 피는 시절 아니라 약속한 바 없었지만

無花不作期(무화부작기) : 눈 내리는 날 그대 집을 먼저 찾아가

斗醲乾酿酒(두농건양주) : 집에서 빚은 맛 좋은 술 맘껏 마시고

夸妙細吟詩(과묘세음시) : 자랑스레 가볍게 시를 지어 노래했네.

里巷千來往(이항천래왕) : 이웃으로 왕래한 게 셀 수 없이 많고

都門五別離(도문오별리) : 도성에서 헤어진 것도 다섯 번인데

岐分兩回首(기분양회수) : 기산에서 갈라진 뒤 몇 번이나 돌아보다

書到一開眉(서도일개미) : 글 받아 읽으면서 마음 놓았네.

葉落槐亭院(엽락괴정원) : 괴정의 정원은 낙엽으로 덮여 있고

氷生竹閣池(빙생죽각지) : 죽각지는 날이 추워 얼어붙었는데

雀羅誰問訊(작라수문신) : 쓸쓸해진 문 앞에 사람이 없어

鶴氅罷追隨(학창파추수) : 할 수 없이 물어보기를 그만 두었네.

身與心俱病(신여심구별) : 몸과 마음이 더불어 병들어가고

容將力共衰(용장역공쇠) : 용모와 체력도 점점 더 쇠약해지고

老來多健忘(노래다건망) : 늙을수록 잊어버리는 것도 늘어 가는데

唯不忘相思(유불망상사) : 함께했던 장면만은 너무나도 생생하네.

 

 

* 飽暖(포난) :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다.

* 東都(동도) : 도성(都城)인 장안(長安)의 동쪽에 있는 또 하나의 도성, 여기서는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 安閑(안한) : 편안하고 한적하다.

* 分司(분사) : 장안에 있는 관리의 일을 낙양에서 집행할 수 있게 한 사람을 가리킨다. , 어사(御史)를 제외한 분사는 실권이 주어지지 않은 명예직 같은 한관(閑官)이었다.

* 致仕(치사) : 벼슬을 그만두다.

* 新知(신지) : 새로 사귄 벗.

* 都門(도문) : 도성(都城)의 성문 또는 도성(都城)

* () : 기산현(岐山縣)

* 開眉(개미) : 웃다. 얼굴을 펴다. 마음이 편안해지다.

* 竹閣(죽각) : 지금은 없어진, 저강(浙江) 항주(杭州) 고산(孤山) 부근에 있었던 누각의 이름이다.

* 雀羅(작라) :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을 가리킨다.

* 鶴氅(학창) :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갈라진 흰옷의 가를 검은 천으로 넓게 댄 웃옷. 도포를 가리키기도 한다.

 

백거이는 문종(文宗) 대화(大和) 3(829) , 병을 핑계로 벼슬을 내려놓고 태자빈객분사동도(太子賓客分司東都)를 제수 받았고, 이 시를 쓴 것은 이듬해인 대화 4(830)이었다.

 

* 낭지(郎之)는 당시 하남소윤(河南少尹)이었던 황보서(皇甫曙)를 가리키는데, 백거이가 황보서에게 보낸 시로는 이 밖에도 携酒往郞之莊居同飮, 題郎之槐亭, 春晩咏懷贈皇甫郞之같은 시들이 있다.

백거이는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에서 황보서와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었다.

 

與嵩山僧如滿爲空門友, 平泉客韋楚爲山水友, 彭城劉夢得爲詩友, 安定皇甫朗之爲酒友.

숭산의 승려 여만과는 불가의 도반이 되었고,

평천의 나그네 위초와는 산수를 유람하는 친구가 되었으며,

팽성의 몽득 유우석과는 시를 나누는 벗이 되었는가 하면,

안정(安定)의 낭지 황보서와는 술벗으로 지냈다.

- 백거이白居易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중에서

 

입신양명과 권력 장악을 위해 벌이는 조정의 암투에 염증을 느낀 백거이는 일찍부터 조정에 있는 것보다 스스로 외직으로 나가기를 바랐는데, 백거이가 벼슬을 사는 동안 지방의 장관을 지낸 것은 원화(元和) 13(818) 몇 달 동안의 충주자사(忠州刺史)를 시작으로 장경(長慶) 2년에서 4(822~824)까지 항주자사(杭州刺史), 그리고 보력(寶曆) 원년에서 2(825~826)까지 소주자사(蘇州刺史) 등 모두 세 차례였다.

그러나 시문에서 피력한 순서대로 말하자면 백거이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은 조정보다 외직으로 나가 있을 때였고, 외직보다는 실권 없는 명예직으로 있을 때였으며, 명예직보다 더 좋았던 시절은 그마저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가 구관의 한 사람이 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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