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동야(冬夜) - 백거이(白居易)
겨울밤
家貧親愛散(가빈친애산) : 살림살이 어려워져 식구들이 흩어지고
身病交遊罷(신병교유파) : 몸 아픈 뒤 벗들과 왕래조차 끝나버려
眼前無一人(안전무일인) : 집 안에 눈에 띄는 사람 하나 없는 채로
獨掩村齊臥(독엄촌제와) : 홀로 집에 틀어박혀 누워서만 지내네.
冷落燈火闇(랭락등화암) : 쓸쓸하고 적막한 집 등불조차 침침하고
離披簾幕破(리피렴막파) : 들쑥날쑥 찢어진 발 축 늘어져 있는데
策策窗戶前(책책창호전) : 문 밖에서 사박사박 들려오는 소리 있어
又聞新雪下(우문신설하) : 내리던 눈 그쳐 있다 다시 내리는 모양이네
長年漸省睡(장년점성수) : 나이 들면 잠 길이가 점점 줄어드는데
夜半起端坐(야반기단좌) : 자다 깨면 일어나 단정하게 앉아서
不學坐忘心(불학좌망심) : 마음 모으는 참선을 배워두지 않았다면
寂莫安可過(적막안가과) : 적적한 밤 어떻게 지나올 수 있었을까?
兀然身寄世(올연신기세) : 바로 세운 몸뚱이는 이 세상에 맡겨두고
浩然心委化(호연심위화) : 마음은 느긋하게 자연의 변화를 따르면서
如此來四年(여차내사년) : 이와 같이 해온 것이 햇수로 사 년,
一千三百夜(일천삼백야) : 일천 밤에 더하여 삼백 밤이로구나.
* 離坡(이파): 치렁치렁 아래로 늘어진 모습, 들쭉날쭉 여러 길이가 섞여 있는 모습, 뿔뿔이 흩어진 모습, 고생스럽고 힘들어하는 모습 등을 가리킨다.
* 策策(책책): 의성어. 한유韓愈는 「秋懷詩」(其一)에서 ‘窗前兩好樹, 衆葉光薿薿, 秋風一披拂, 策策鳴不已(창문 앞에 보기 좋은 나무 두 그루 / 반짝이는 잎새들이 무성도 한데 / 가을바람 한번씩 스칠 때마다 / 부시럭거리며 우는 소리 그치지 않네)’라고 하였다.
* 坐忘(좌망):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의 상태를 가리킨다. 《장자莊子⋅대종사大宗師》에서 ‘墮肢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손발과 몸에서 힘을 빼 늘어뜨리고,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소식을 물리치고, 몸을 잊고 아는 것을 버림으로써 크게 통하는 것과 같아지는 것을 ‘坐忘’, 즉 잡념을 떠나 무아의 경지에 드는 것이라 한다).’이라고 했다.
* 兀然(올연): 우뚝 솟은 모양을 가리킨다.
▶ 浩然(호연): 물이 많고 넓은 것을 가리킨다. 호탕하고 당당한 것을 가리킨다.
▶ 委化(위화):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당순지唐順之는 「九月八日作」이란 시에서 ‘余心久委化, 何用惜良時(마음으로 자연을 따른 지 오래되어서 / 좋은 시절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네)’라고 하였다.
원화元和 9년(814) 겨울 모친상을 당해 고향 위촌渭村으로 내려가 상을 치르던 시기에 지은 것인데 남자가 나이 마흔을 넘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삼 생각이 많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고 당연하게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쏟아지는 잠을 노력으로 참아낼 수 없는 것처럼 애쓴다고 깬 잠을 다시 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뜬눈으로 새벽을 불러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세상에 없다.
위로가 되는 건 오직 하나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어둠과 적막뿐......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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