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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樂天 白居易 詩

지상편 병서(池上篇 并序) - 백거이(白居易)

by 산산바다 2021.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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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편 병서(池上篇 并序) - 백거이(白居易)

             「지상편병서

 

 

并序

都城風土水木之勝, 在東南偏; 東南之勝, 在履道里; 里之勝在西北隅.(도성풍토수목지승, 재동남편; 동남지승, 재리도리; 리지승재서북우.)

낙양의 명승지는 동남쪽에 쏠려 있고

동남쪽의 명승지는 이도리에 있으며 이도리의 명승지는 서북쪽에 있다.

 

西閈北垣第一第, 卽白氏叟樂天退老之地. 地方十七畝, 屋室三之一, 水五之一, 竹九之一.(서한북원제일제, 즉백씨수낙천퇴로지지. 지방십칠묘, 옥실삼지일, 수오지일, 죽구지일.)

서쪽과 북쪽의 담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저택은 낙천이 은퇴 후 자리한 은거지로,

땅 크기는 2,700평 정도로 네모반듯하게 생겼는데

그 중 집이 1/3을 차지하고 연못과 대밭이 각각 1/51/9을 차지하고 있다.

 

而島樹橋道間之, 初樂天旣爲主, , 且曰: 雖有臺, 無粟不能守也.(이도수교도간지, 초낙천기위주, , 차왈: 수유대, 무속불능수야.)

(그리고) 나머지는 섬과 나무, 다리와 길 등이 차지하고 있는데,

처음에 낙천이 주인이 되었을 때 좋아하며 말했다.

누대가 있다 해도 곡물이 없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乃作池東粟廩, 又曰: 雖有子弟, 無書不能訓也.(내작지동속름, 우왈: 수유자제, 무서불능훈야.)

그러고는 연못 동쪽에 창고를 지은 뒤에 말했다.

자식들이 있다 해도 책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다.”

 

乃作池北書庫, 又曰: 雖有賓朋, 無琴酒不能娛也. 乃作池西琴亭, 加石樽焉.(내작지북서고, 우왈: 수유빈붕, 무금주불능오야. 내작지서금정, 가석준언.)

그러고는 연못 북쪽에 서고를 지은 뒤에 말했다.

손님이나 벗들이 방문한다 하더라도 금과 술이 없으면 즐길 수 없다.”

그러고는 연못 서쪽에 금정을 짓고 돌로 만든 술항아리를 보태두었다.

 

樂天罷杭州刺史時, 得天竺石一, 華亭鶴二以歸, 始作西平橋, 開環池路. (낙천파항주자사시, 득천축석일, 화정학이이귀, 시작서평교, 개환지로.)

낙천은 항주자사 임기를 마칠 때 천축에서 들여온 바위 하나와

화정의 학에게서 나온 깃 두 개를 갖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먼저 서평교를 놓고 연못을 돌아가며 길을 냈다.

 

罷蘇州刺史時, 得太湖石, 白蓮, 折腰菱, 靑版旁舫以歸, 又作中高橋, 通三島徑.(파소주자사시, 득태호석, 백련, 절요릉, 청판방방이귀, 우작중고교, 통삼도경.)

() 소주자사 임기를 마칠 때에는 태호석을 비롯하여

백련과, 절요릉, 청판선을 입수하여 돌아왔다.

그러고는 중고교를 만들고 섬 세 개를 통하는 길을 냈다.

 

罷刑部侍郞時, 有粟千斛, 書一車. 洎臧獲之習管磬弦歌者指百以歸.(파형부시랑시, 유속천곡, 서일거. 계장획지습관경현가자지백이귀.)

() 형부시랑을 그만둘 때에는 천 곡()의 곡물과 수레 한 대 분량의 서적,

그리고 각종 악기를 다룰 수 있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백 명과 함께 돌아왔다.

 

先是潁川陳孝仙與酿酒法, 味甚佳; 博陵崔晦叔與琴, 韻甚淸;(선시영천진효선여양주법, 미심가; 박릉최회숙여금, 운심청;)

이전에 영천의 진효선이 술을 아주 잘 빚었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았다.

박릉의 최회숙과는 금을 함께 연주했는데 그 소리가 아주 맑았다.

 

蜀客姜發授秋思, 聲甚淡; 弘農楊貞一與靑石三, 方長平滑, 可以坐臥.(촉객강발수추사, 성심담; 홍농양정일여청석삼, 방장평활, 가이좌와.)

촉에서 온 강발에게 전수받은 추사(秋思)란 곡은 그 소리가 매우 담백하였고,

홍농의 양정일에게 받은 매끄러운 청석 세 개는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었다.

 

太和三年夏, 樂天始得請爲太子賓客, 分秩於洛下, 息躬於池上.(태화삼년하, 낙천시득청위태자빈객, 분질어낙하, 식궁어지상.)

태화 3(829) 여름, 낙천이 태자빈객직을 청하여 낙양분사가 된 뒤에

(미리 마련해둔) 연못 주변에서 몸을 쉴 수 있게 되었다.

 

凡三任所得, 四人所與, 洎吾不才身, 今率爲池中物.(범삼임소득, 사인소여, 계오부재신, 금솔위지중물.)

세 곳의 지난 임지에서 얻은 물건과 함께 어울렸던 세 사람에게 전해 받은 것,

그리고 재주가 모자란 나라는 사람, 이 셋이 지금은 모두 연못과 함께 하는 것이 되었다.

 

每至池風春, 池月秋, 水香蓮開之旦, 露淸鶴唳之夕,(매지지풍춘, 지월추, 수향련개지단, 로청학려지석,)

연못에 바람이 지나가는 봄, 연못에 달이 비치는 가을,

연못의 연꽃이 피어 향기가 수면 위를 떠다니는 아침과 이슬이 맑고 학이 우는 저녁,

 

拂楊石, 擧陳酒, 援崔琴, 彈秋思, 頹然自適, 不知其他.(불양석, 거진주, 원최금, 탄추사, 퇴연자적, 부지기타.)

(그럴 때에는 언제나) 양정일이 준 청석을 깨끗이 닦고

진효선에게 배워 빚어 거른 술을 마시고

최회숙에게 얻은 금을 안고 강발에게 배운 추사란 곡을 연주하는데,

술이 올라 기분이 좋아지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酒酣琴罷, 又命樂童登中島亭, 合奏霓裳散序, 聲隨風飄, 或凝或散, 悠揚於竹烟波月之際者久之.(주감금파, 우명악동등중도정, 합주예상산서, 성수풍표, 혹응혹산, 유양어죽연파월지제자구지.)

술도 적당히 마시고 금 연주도 마치면

젊은 아이들로 이뤄진 악단을 데리고 중도정에 올라서

모두 함께 예상우의곡을 연주하게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였다 흩어지며 바람 따라 떠다니는 오묘한 소리들이

안개 낀 대숲과 달빛 비치는 연못 위를 오랫동안 흘러 다녔다.

 

曲未竟, 而樂天陶然石上矣. 睡起偶咏, 非詩非賦, 阿龜握筆, 因題石間.(곡미경, 이낙천도연석상의. 수기우영, 비시비부, 아구악필, 인제석간.)

낙천은 곡이 끝나기도 전에 청석 위에서 황홀경에 빠져 잠이 들어버린다.

잠에서 깨어나 중얼중얼 하는 말들은 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장도 아닌데

아구란 녀석이 붓을 들고 바위 위에 받아 적었다.

 

視其粗成韻章, 命爲池上篇云.(시기조성운장, 명위지상편운.)

(그런데) 그 말들이 대체로 운의 격식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아 지상편(池上篇)이란 이름을 붙였다.

 

 

池上篇

十畝之宅(십묘지택) : 천육백 평 큰 집에

五畝之園(오묘지원) : 팔백 평 마당이 딸려 있고

有水一池(유수일지) : 맑은 물 가득한 연못과

有竹千竿(유죽천간) : 천 그루 넘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勿謂土狹(물위토협) : 땅이 좁다는 말일랑 할 생각 말고

勿謂地偏(물위지편) : 있는 곳이 구석이라 불평도 마라

足以容膝(족이용슬) : 무릎을 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足以息肩(족이식견) : 어깨 뉠 수 있으면 그곳으로도 족하다

有堂有庭(유당유정) : 안채가 있고 마당이 있고

有橋有船(유교유선) : 다리도 있고 배도 있으며

有書有酒(유서유주) : 책에 더해 술까지 함께 있고

有歌有弦(유가유현) :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네.

有叟在中(유수재중) : 그 중에 늙어가는 사람이 있어

白鬚飄然(백수표연) : 흰 수염을 바람에 나부끼는데

識分知足(식분지족) :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알고

外求無焉(외무구언) : 바깥에서 무엇을 더 구하지 않네.

如鳥擇木(여조택목) : 새가 나뭇가지를 골라 앉는 것처럼

姑務巢安(고무소안) : 잠깐이라도 편안한 집을 찾는 것과 같고

如龜居坎(여구거감) : 구덩이 속에서 지내는 거북이

不知海寬(부지해관) : 바다가 넓은 것을 모르는 것과도 같네.

靈鶴怪石(영학괴석) : 신령한 학과 불가사의한 돌

紫菱白蓮(자릉백련) : 자줏빛 마름과 새하얀 연꽃

皆吾所好(개오소호) : 이것들은 내가 다 좋아하는 것들인데

盡在吾前(진재오전) : 모두가 지금 내 눈앞에 벌여져 있네.

時飮一杯(시음일배) : 때때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或吟一篇(혹음일편) : 어떤 때는 시 한 편 읊어가면서

妻孥熙熙(처노희희) : 온 가족이 함께 화목하게 지내고

鷄犬閑閑(계견한한) : 닭과 개도 할 일 없어 심심해하니

優哉遊哉(우재유재) : 좋구나 노는 것처럼 살아보자꾸나.

吾將終老乎其間(오장종로호기간) : 나는 그러다 어느 날 세상 뜨면 될 테고

 

 

* 都城(도성) : 여기서는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 履道里(이도리) : 낙양의 골목 이름이다. 백거이의 집이 있던 곳이다. 구당서舊唐書백거이전白居易傳에서 居易罷杭州, 歸洛陽, 於履道里得故散騎常侍楊憑宅. 竹木池館, 有林泉之致(백거이는 항주자사 임기를 마치고 낙양으로 돌아와 이도리에 있는 전 산기상시 양빙의 집을 구했다. 집 안에는 대숲과 나무와 연못과 집이 있고, 산에는 숲과 우물, 바위 등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라고 했다.

* () : 마을 어귀에 있는 문을 가리킨다. 담장을 가리킨다.

* () : 당대(唐代)의 도량형을 현재의 것과 비교해보면 일척一尺0.3미터에 해당되고, 일당묘一唐畝520평방미터에 해당되는데, 그렇게 보면 낙천의 집이 자리한 땅의 크기 17묘는 현재 기준 9천 평방미터에 조금 못 미쳐 2,700평 정도가 되는 셈이다.

* 華鶴亭(화학정) : 세설신어世說新語우회尤悔에서 陸平原河橋敗, 爲盧志所讒, 被誅, 臨刑嘆曰: 欲聞華亭鶴唳, 可復得乎(평원내사 육기가 하교에서 패한 뒤 노지의 참언으로 인해 죽게 되었는데, 형장에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고향의 학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도 다시 들을 수가 없겠구나)!’라고 했다. 이후 華亭鶴唳란 말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관계에 진출한 것을 후회하는 전고로 쓰이게 되었다. 이백(李白)行路難(其三)이란 시에서 陸機雄才豈自保, 李斯稅駕苦不早. 華亭鶴唳詎可聞, 上蔡蒼鷹何足道(큰 뜻 품은 육기도 제 몸 하나 못 지켰고 / 이사 역시 살아서 물러나지 못했네 / 육기가 화정의 학 울음소리 못 듣는데 / 이사가 상채의 매사냥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平橋(평교) : 배가 지나다닐 수 있게 가운데가 위로 둥글게 솟은 호형교(弧形橋)과 달리 평평한 다리를 가리킨다.

* 太湖石(태호석) : 장쑤(江蘇) 태호(太湖)에서 나는 돌을 가리킨다. 구멍과 주름이 많아 예로부터 정원의 장식용으로 많이 쓰였다.

* 折腰菱(절요릉) : 마름의 일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 臧獲(장획) : 노비奴婢에 대한 멸칭蔑稱이다.

* 陳孝仙(진효선) : 백거이의 외가(外家) 쪽 인사로 술 빚는 기술이 좋았다.

* 崔晦叔(최회숙) : 백거이의 만년 벗으로 금() 연주에 능했다. 주장문(朱長文)금사琴史에서 최회숙을 강직한 관원이었다고 하면서 퇴직 후에 산과 물, 금과 술을 즐기며 지냈는데, 백거이와 벗이 되어 지내다가 죽기 전에 자신의 옥경금(玉磬琴)을 주었다고 했다.

* 秋思(추사) : 동한(東漢) 때 음악가 채옹(蔡邕)이 지은 채씨오농蔡氏五弄중 한 곡을 가리킨다. ‘五弄춘유春遊, 녹수淥水, 유사幽思, 좌수坐愁, 추사秋思등이다.

* 楊貞一(양정일) : 의술(醫術)과 시문에 능했던 양귀후(楊歸厚)를 가리킨다. ‘貞一은 그의 자이다. 저서로 양씨산유집험방楊氏産乳集驗方이 있다.

* 太和(태화) : 당문종(唐文宗)의 연호(827~835)大和로도 쓴다.

* 太子賓客(태자빈객) : 태자를 가르치던 사람의 관직명으로 겸직이다. ‘分秩은 직분(職分)을 가리킨다. ‘秩分으로도 쓴다.

* 洛下(낙하) :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 池中物(지중물) : 집 안에 틀어박혀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 水鄕(수향) : 물의 맛이 향기로운 것을 가리킨다. 택란(澤蘭), 즉 쉽싸리의 별명이다.

* 頹然(퇴연) : 꼼짝하지 않는 모양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술에 많이 취해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 命樂(명악) :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 霓裳散序(예산서) : ‘霓裳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散序는 전주(前奏)를 가리킨다.

* 悠揚(유양) :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 해가 지다. 휘날리다.

* 竹烟波月(죽연파월) : 연무 낀 대숲과 달빛이 비치는 수면에 파문이 이는 아름다운 경색을 가리킨다.

* 陶然(도연) : 즐거워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 飄然(표연) : 정처 없이 떠도는 모양.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양. 나풀거리는 모양.

* 靈鶴(영학) : 선학(仙鶴)

* 妻孥(처노) : 부인과 자식을 가리킨다.

* 희희(희희) : 화목하고 즐거운 모습을 가리킨다.

* 閑閑(한한) : 여유롭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 優哉遊哉(우재유재) : 유유자적하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가리킨다.

 

병을 핑계로 태자빈객동도분사(太子賓客東都分司)로 를 자청한 백거이는 태화(太和) 3(829) 봄에 낙양(洛陽)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항주 시절에 미리 풍광이 좋은 이도방(履道坊)에 터를 잡아둔 곳은 이전에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낸 양빙(楊憑)이 살던 집이었다.

당시 낙양에는 백거이와 오랜 세월 교유한 유우석(劉禹錫)과 배도(裴度)를 비롯하여 우승유(牛僧孺), 최현량(崔玄亮) 같은 이들이 살고 있었고, 유우석에게 보낸 화답시(和劉汝州酬侍中見寄長句因書集賢坊勝事戱而問之)에서

낙수와 여수가 왕도에 붙어 있으나(洛川汝海封畿接)

이도방과 집현방은 내왕이 빈번하네(履道集賢來往頻)

한 번 왔다 가는 데도 멀지 않아서(一復時程雖不遠)

백여 걸음밖에 되지 않아 더욱 친하네(百餘步地更相親)’라고 했을 만큼 집현방에 사는 배도와는 특히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되었다.

 

(낙천은 시구 밑에 아래와 같은 자주를 달아두었다.

汝去洛程一宿, 履道集賢兩宅, 相去一百三十步.

(여수와 낙수의 거리는 하룻밤이 걸릴 만큼 떨어져 있지만 이도방과 집현방 두 집은 백서른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낙천은 낙양에 오기 전까지 항주와 소주와 장안을 거치면서 각각 항주자사杭州刺史 와 소주자사(蘇州刺史), 그리고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지냈는데, 낙양에 온 이후로도 비록 명예직이긴 했지만 계속 녹봉을 받고 있었다.

 

그런 정황을 낙천은 지족음知足吟이란 시에서

 

밭 한 고랑 씨 뿌려 농사짓지 않고도(不種一隴田)

창고 안에 먹을 곡식 여유가 있고(倉中有餘粟)

뽕잎 한 가지 따본 적 없으면서도(不采一枝桑)

상자 속 입을 것들이 모자란 적 없었네(箱中有餘服)

자리는 한가하고 걱정과 책임도 없고(官閑離憂責)

매인 데 없어 몸뚱이도 편안해졌는데(身泰無羈束)

중인들 백 명이 낸 세금을 모아야(中人百戶稅)

빈객이 받는 한 해치 녹봉밖에 안 되네(賓客一年祿)’라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노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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