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단청인증조패장군(丹靑引贈曹霸將軍) - 두보(杜甫)
조패 장군에게 단청인을 드리며
將軍魏武之子孫(장군위무지자손) : 장군은 위무제(魏武帝)의 자손인데
于今爲庶爲靑門(우금위서위청문) : 지금은 서민이 되어 청빈한 가문이 되었네.
英雄割據雖已矣(영웅할거수이의) : 영웅이 할거하던 시대 이미 끝났지만
文采風流今尙存(문채풍류금상존) : 문채와 풍류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오.
學書初學衛夫人(학서초학위부인) : 글씨는 처음 위부인(衛夫人)에게 배웠지만
但恨無過王右軍(단한무과왕우군) : 다만 왕희지 보다 낫지 못함 한하더니
丹靑不知老將至(단청부지노장지) : 그림 그리다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해
富貴于我如浮雲(부귀우아여부운) : 부귀는 나에게 뜬 구름과 같다 하게 되었네.
開元之中常引見(개원지중상인견) : 개원(開元) 연간에 황제가 항상 불리어가
承恩數上南熏殿(승은삭상남훈전) : 성은 입어 여러 번 남훈전(南熏殿)에 올랐네.
凌煙功臣少顔色(능연공신소안색) : 능연각의 공신상 색깔 바랬는데
將軍下筆開生面(장군하필개생면) : 장군이 붓을 대어 산 얼굴로 펼쳤네.
良相頭上進賢冠(량상두상진현관) : 어진 재상 머리에는 진현관(進賢冠)을 올렸고
猛將腰間大羽箭(맹장요간대우전) : 용맹한 장수 허리에 대우전(大羽箭)이 끼어있네.
褒公鄂公毛發動(포공악공모발동) : 포공(褒公)과 악공(鄂公)은 모발이 움직이는 듯
英姿颯爽猶酣戰(영자삽상유감전) : 영웅의 자태 늠름하여 한창 싸우다 돌아온 듯
先帝天馬玉花驄(선제천마옥화총) : 선제가 타던 천마 옥화총은
畫工如山貌不同(화공여산모부동) : 화공들 산처럼 많아도 그림이 실물 같지 않았는데
是日牽來赤墀下(시일견내적지하) : 이날 붉은 계단 아래로 끌고 와
逈立閶闔生長風(형립창합생장풍) : 궁문 앞에 우뚝 서자 긴 바람이 일었지.
詔謂將軍拂絹素(조위장군불견소) : 장군에게 명을 내려 흰 비단 펼치라 하자
意匠慘淡經營中(의장참담경영중) : 어떻게 그릴까 고심하며 구상하더니
斯須九重眞龍出(사수구중진룡출) : 잠깐 사이 궁궐에 진짜 용마(龍馬) 나타나
一洗萬古凡馬空(일세만고범마공) : 만고의 범상한 말들을 단 번에 씻어버렸네.
玉花卻在御榻上(옥화각재어탑상) : 옥화총(玉花驄)이 어느새 어탑 위에 있게 되니
榻上庭前屹相向(탑상정전흘상향) : 어탑 위와 뜰 앞에 우뚝 서서 서로 마주보고 있네.
至尊含笑催賜金(지존함소최사금) : 지존께서 웃음 머금고 금을 하사하라 재촉하니
圉人太仆皆惆悵(어인태부개추창) : 어인(圉人)과 태복(太僕)이 모두 슬퍼하였지.
弟子韓干早入室(제자한간조입실) : 제자인 한간(韓幹)도 일찍이 입실(入室)의 경지로
亦能畫馬窮殊相(역능화마궁수상) : 그 또한 말을 잘 그려 다양한 모습 다 그렸지만
干惟畫肉不畫骨(간유화육부화골) : 한간(韓幹)은 오직 살만 그렸을 뿐 뼈는 그리지 못해
忍使驊騮氣凋喪(인사화류기조상) : 화류마(驊騮馬)의 기상을 쇠하게 하였네.
將軍畫善蓋有神(장군화선개유신) : 장군의 그림 정교하고 아름다워 신이 도와주는 듯
偶逢佳士亦寫眞(우봉가사역사진) : 훌륭한 선비 만나면 또한 참모습 그려주련만
卽今漂泊干戈際(즉금표박간과제) : 지금은 전란 가운데 떠돌면서
屢貌尋常行路人(누모심상항노인) : 길가는 보통 사람만 자주 그릴 뿐
涂窮反遭俗眼白(도궁반조속안백) : 가는 길 곤궁한데 도리어 사람들에게 백안시당해
世上未有如公貧(세상미유여공빈) : 세상에는 공처럼 가난한 이도 없다네.
但看古來盛名下(단간고내성명하) : 다만 보건대 예로부터 훌륭한 명성 아래에는
終日坎壈纏其身(종일감람전기신) : 오래도록 곤궁함이 그 몸을 휘감는다오.
* 당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조패(曹覇)는 인물과 말을 아주 잘 그렸다. 그의 명성 장안(長安)에까지 알려지면서, 구중궁궐에 사는 현종(玄宗)의 귀에 들어갔다. 현종은 수시로 조패를 궁중 안으로 불러들여 그림을 그리게 하고, 항상 푸짐한 상을 내렸다.
* 조패가 현종의 총애를 받자, 장안에 사는 왕족 귀족 벼슬아치들은 조패의 그림을 집에 가지고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어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들였다.
* 장안성 북쪽의 태극궁(太極宮)에서 아주 유명한 능연각(凌煙閣)이라는 누각이 있었다. 이 누각의 네 벽면에는 당나라의 개국공신 24명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초상화는 그로부터 70여 년 전 염지본(閻之本)이라는 화가가 그린 것이었다.
이미 70년이 지나면서, 이들 초상화는 원래의 생생한 모습이 퇴색되어 어떤 것들은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이 때, 현종은 조패를 불러 그 초상화를 다시 손보게 했다.
초상화를 다시 손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패는 먼저아주 많은 역사책을 정독하고, 사료와 이미 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해진 초상의 인물을 대조하고, 자세히 만져본 후, 정신을 집중하여 초상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4명 공신의 초상들은 새로 빛을 발하며, 아주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조패는 이렇게 인물을 잘 그렸을 뿐만 아니라 말의 모습도 잘 그렸다.
어느 날, 현종은 조패를 궁으로 불러서, 자신의 애마인 “옥화총”을 눈앞에 끌고와 그림을 그리게 했다. 조패는 우선 아주 큰 비단 한 장을 갖다달라고 한 뒤, 말을 한참 동안관찰한 후, 몸을 돌려 순식간에 그 말을 화폭에 담았다. 현종은 아주 기분이 좋아 조패에게 금은보화를 상으로 내리고, 좌무위(左武衛)장군에 봉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시절도 오래가지 못했다. 현종이 이림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 등의 권신을 등용한 후 음주가무 사치황음에 빠져 정사를 멀리하게 되자, 조패를 부르는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조패는 조그마한 잘못을 저질러 관직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어 장안을 떠나게 되었다.
* 서기 755년,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키자, 현종은 사천(四川)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이 때 조패도 사천 성도(成都)땅까지 밀려와 지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이 때,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가 성도에 오게 되었는데, 친구의 집에서 조패가 그린 <구마도(九馬圖)>를 보게 되었다. 두보는 당대 유명화가 조패의 그림을 금방 알아보고, 조패가 성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길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패를 발견하게 되었다.
* 두보는 여기서 조패의 신세와 역경을 알아차리게 되자, 아주 안타까워하며 시 한 수를 지어 그에게 바쳤다. 그 시가 <단청인증조패장군(丹靑引贈曹霸將軍)>이다.
* 丹靑(단청) : 원래는 그림에 쓰이는 안료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림’의 뜻으로 쓰였다.
* 曹霸(조패) : 조모(曹髦)의 후예로, 개원(開元)ㆍ천보(天寶) 연간에 활약한 유명한 화가이다.
* 魏武(위무) :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를 말한다.
* 於今爲庶爲淸門(어금위서위청문) : ‘庶(서)’는 평민을 이르고, ‘淸門(청문)’은 청빈한 가문을 일컫는다. 현종(玄宗) 말년에 조패는 죄를 지어 평민이 되었다.
* 今(금) : ‘猶(유)’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 衛夫人(위부인) : 동진(東晉)의 여류 화가로서 예서(隸書)를 특히 잘 썼다. 성(姓)은 위(衛)이며 이름은 鑠(삭), 자(字)는 무의(茂猗)이다. 여양태수(汝陽太守) 이구(李矩)의 처였으므로 이부인(李夫人)이라고도 한다. 왕우군[王羲之]이 위부인에게 글씨를 배운 적이 있다.
두보 시에 이에 대한 주석에도 “진나라 이부인(李夫人)은 이름이 위(衛)로 글씨를 잘 썼다.”라 하였다. 이씨(李氏)의 이름이 위(衛)이기 때문에 위부인(衛夫人)이라 한 것이다. 우군(右軍)이 처음 위부인(衛夫人)에게 글씨를 배울 때 부인이 그의 글씨를 보고 감탄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정말 위압감을 느낄 만큼 대단하구나.”라고 했다. 우군(右軍)은 마침내 글씨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므로 子美(두보)가 처음에는 조패를 우군에게 견주어 “처음에 조패는 위부인(衛夫人)에게 배웠다.”고 했지만 바로 이어서 “다만 왕우군(王右軍)보다 나을 수 없음을 한(恨)하였다.”고 했다.
* 王右軍(왕우군) :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晉書(진서)》 〈王羲之傳(왕희지전)〉에, “왕희지는 자(字)가 일소(逸少)로 예서를 잘 써 고금(古今) 이래 으뜸이다. 관직은 우장군에 이르렀다.[王羲之字逸少 善隸書 爲古今之冠 官右將軍]” 하였다. 서성(書聖)으로 알려진 중국의 서예가다.
* 不知老將至(부지노장지) : 《論語(논어)》 〈述而(술이)〉에 보이는 공자의 말이다. “그 사람됨이,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워 근심을 잊어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 富貴於我如浮雲(부귀어아여부운) : 《論語》 〈述而(술이)〉에 보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은데 부유하고 귀함은 내게 있어 뜬구름과 같다.’[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南薰殿(남훈전) : 《長安志(장안지)》에 의하면 남훈전은 흥경군(興慶宮) 내에 위치한 내전(內殿)이다.
* 凌煙功臣少顔色(능연공신소안색) : ‘凌煙(능연)’은 능연각(凌煙閣)을 이른다. 《唐書(당서)》에, “태종 정관 17년 2월, 공신 24인의 그림을 능연각에 그려 놓았는데, 능연각은 서내(西內) 삼청전에 있다.[太宗貞觀十七年二月 圖功臣卄四人於凌煙閣 閣在西內三淸殿]”고 하였다. ‘少顔色(소안색)’은 그림이 오래되어 색깔이 바랜 것을 이른다.
* 進賢冠(진현관) : 문관(文官)이 조정에 들어갈 때 쓰던 모자이다.
* 大羽箭(대우전) : 당 태종이 즐겨 쓰던 깃이 달린 큰 화살을 말한다.
* 褒公鄂公(포공악공) : ‘褒公(포공)’은 충장공(忠壯公) 단지현(段志玄)으로 능연각(凌煙閣) 공신상 가운데 제10열에 있으며, ‘鄂公(악공)’은 위지공(尉遲恭)으로 자(字)는 경덕(敬德)인데 능연각(凌煙閣) 공신상 가운데 제7열에 있다. 둘 다 맹장(猛將)으로 알려져 있다.
* 颯爽(삽상) : 위풍이 늠름한 모양을 말한다.
* 天馬玉花驄(천마옥화총): ‘天馬(천마)’가 ‘御馬(어마)’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玉花驄(옥화총)’은 선제 현종이 타던 준마로 총(驄)은 청백색(靑白色)의 말을 가리킨다.
* 赤墀(적지) : 궁궐 내에 붉은 색으로 칠한 계단으로 단지(丹墀)라고도 한다.
* 閶闔(창합) : 대궐 문
* 意匠(의장) : 화가가 그림 그리는 것을 장인(匠人)이 마음을 쓰며 구상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창조력과 관련하여 ‘정교한 구상’ 정도의 뜻으로 쓰이며 장심(匠心)과 같은 말이다.
* 意匠慘惔(의장참담):뜻이 구조를 짜는 데 있는 것을 일러 ‘意匠(의장)’이라 한다. ‘慘惔(참담)’은 신묘(神妙)하며 기이하게 변하는 모습이다.
* 斯須九重眞龍出(사수구중진룡출) : ‘斯須(사수)’는 수유(須臾)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九重(구중)’에는 하늘이라는 뜻과 구중궁궐 즉 임금의 거처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취했다. ‘眞龍(진룡)’은 진짜 용마(龍馬)라는 뜻으로 《周禮(주례)》 〈夏官(하관)〉에, “말은 8척 이상을 龍이라 한다.[馬八尺以上爲龍]”는 기록이 있다.
* 圉人太僕皆惆悵(어인태복개추창) : ‘圉人(어인)’은 말을 기르는 사람이며 ‘太僕(태복)’은 황제의 거마(車馬)를 관장하는 사람이다. 어인과 태복이 상을 못 탐을 섭섭해하며 실망한다는 뜻이다.
* 韓幹早入室(한간조입실) : ‘한간’은 남전(藍田)사람이다. 젊어서는 주가(酒家)에서 술을 파는 일을 하였다. 일찍이 시인 왕유의 집으로 술값을 받으러 갔다가 재미로 땅에 인마도(人馬圖)를 그렸는데, 왕유가 그 그림을 보고 그를 격려하였다. 인물화를 잘 그렸으며 특히 안마도(鞍馬圖)에 능했다. 현종(玄宗)은 큰 말을 좋아하였는데, 서역(西域)의 대완(大宛)이 해마다 말을 헌납하면 한간에게 명하여 그 준마들을 모두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그 가운데 옥화총(玉花驄)이며 조야백(照夜白) 등이 있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역대명화기》에 보인다. 입실(入室)은 《論語(논어)》 〈先進(선진)〉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유(子路)는 비파를 어찌 내 문에서 연주하는가.’ 하자, 문인(門人)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당(堂)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여기서 ‘入室(입실)’이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참된 경지에 올랐음을 말한다.
* 驊騮(화류) : 원래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타던 팔준마(八駿馬) 가운데 하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인데, 여기서는 준마 일반을 가리킨다.
* 屢貌(누막) : ‘貌’은 묘사한다는 뜻으로 ‘막’으로 읽는다.
* 眼白(안백) : 백안시하다. 냉대하며 가볍게 보는 것을 말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어 냉대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靑眼)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보인데서 유래한 말이다.
* 坎壈(감람) : 곤궁(困窮)하여 뜻을 얻지 못함을 이른다.
* 이 시는 광덕(廣德) 2년(764) 두보가 성도(成都)에서 조패(曹霸)를 처음 만나 그에게 써 준 시이다. 〈韋諷錄事宅觀曹將軍畫馬圖(위풍록사택관조장군화마도)〉가 조장군이 그린 아름다운 말 그림을 묘사한 시라면, 이 시는 조장군의 불우함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능연각(凌煙閣)의 공신상과 황제의 말을 잘 그려 유명했던 화가가 전란 통에 떠돌며 길에서 사람을 그려주면서 연명하고 있다. 앞뒤의 선명한 대조를 통해 조장군의 삶이 어떻게 전락했는지 잘 드러낸다. 이 대조법이 시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이 전란 속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가객(歌客)을 그린 두보의 또 다른 작품 〈江南逢李龜年(강남봉이구년)〉에도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이 두 작품은 나란히 읽을 만하다.
이 시를 읽을 때는 ‘贈曹將軍霸(증조장군패)’ 다섯 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시 전체에 감개한 기운이 흘러넘치는데 모두 이 다섯 글자에서 나온다. 예로부터 주석가들은 단지 제화시(題畫詩)로만 풀이했을 뿐 시의 주제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만난 것에 감격함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전성기와 그의 몰락을 모두 그림을 통해 볼 수 있으므로 제목을 〈丹靑引(단청인)〉이라 한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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