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기한간의(寄韓諫議)/기한간의주(寄韓諫議注) - 두보(杜甫)
한간의에게 부치다
今我不樂思岳陽(금아불락사악양) : 지금 내가 즐겁지 않은 것은 악양(岳陽)을 생각하기 때문이니
身欲奮飛病在床(신욕분비병재상) : 몸은 날아가고 싶지만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네.
美人娟娟隔秋水(미인연연격추수) : 미인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을 물 저 건너에서
濯足洞庭望八荒(탁족동정망팔황) : 동정호에 발 씻으며 팔황(八荒)을 바라보고 있겠지.
鴻飛冥冥日月白(홍비명명일월백) : 높은 하늘에 기러기 날고 해와 달은 빛나는데
青楓葉赤天雨霜(청풍엽적천우상) : 푸르던 단풍잎이 붉어지고 서리가 내린다.
* 韓諫議(한간의) : 《杜詩詳注(두시상주)》에는 〈寄韓諫議注(기한간의주)〉로 되어 있어 명자(名字)가 ‘注(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간의의 행적이 자세하게 남아있지 않고, 한휴(韓休)의 아들 한굉(韓汯)이 당시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있었으므로, ‘注(주)’를 ‘汯(굉)’의 오자(誤字)로 보기도 한다.
* 岳陽(악양) :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이다. 한간의(韓諫議)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美人(미인) : 군왕(君王) 또는 군자(君子)의 대칭(代稱)인데, 대개 상대방에 대한 미칭(美稱)으로 쓰이기도 한다. 논자에 따라 한간의로 보기도 하고, 두보가 한간의에게 추천해주기 바랬던 이필(李泌)로 보기도 한다. 이필은 숙종(肅宗)이 장안을 수복할 때 큰 공을 세웠고, 당시에는 형산(衡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 娟娟(연연):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한다.
* 濯足(척족): 《孟子(맹자)》 〈離婁(이루)〉의, “창랑(滄浪)의 물이 탁(濁)하면 발 씻을 만하다.[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에서 취한 것으로 세속을 떠나 있음을 뜻한다.
* 八荒(팔황) : 팔극(八極), 즉 팔방의 끝까지 이르는 지경으로 온 천하를 뜻한다.
* 鴻飛冥冥(홍비명명): ‘冥冥(명명)’은 높고 아득히 먼 하늘을 뜻한다. 양웅(揚雄)의 《法言(법언)》 〈問明(문명)〉에, “큰 기러기 아득한 하늘을 나니, 주살을 가진 자들이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鴻飛冥冥 弋人何簒焉]”라는 전거에서 볼 수 있듯이 큰 기러기는 세속에서 벗어나 있는 현자(賢者)를 상징하기도 한다.
* 雨霜(우상): 하상(下霜), 즉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玉京群帝集北斗(옥경군제집북두) : 옥경(玉京)의 여러 제왕들 북두성에 모였는데
或騎麒麟翳鳳凰(혹기기린예봉황) : 혹 기린을 타기도 하고 봉황을 타기도 했네.
芙蓉旌旗煙霧落(부용정기연무락) : 부용꽃 새겨진 깃발 연무(煙霧) 속에 내려오니
影動倒景搖瀟湘(영동도경요소상) : 그 그림자 거꾸로 비쳐 소상강 수면에 너울거린다.
星宮之君醉瓊漿(성궁지군취경장) : 성궁(星宮)의 신하들은 좋은 술에 취하여 있으나
羽人稀少不在旁(우인희소부재방) : 신선은 드물어 그 곁에 있지 않네.
似聞昨者赤松子(사문작자적송자) : 그 옛날 적송자(赤松子)와 같다고 들은 듯한데
恐是漢代韓張良(공시한대한장량) : 한(漢)나라 때 한인(韓人) 장량(張良)이 아니었을까?
* 玉京群帝集北斗(옥경군제집북두) : ‘玉京(옥경)’은 천제(天帝)가 있는 천궁(天宮)을 지칭하며, ‘群帝(군제)’는 여러 제왕들을 지칭한다. ‘北斗(북두)’는 별의 이름으로 여기서는 천자를 상징한다.
《晉書(진서)》 〈天文志(천문지)〉에, “북두칠성은 태미성의 북쪽에 있는데 칠정(七政)의 중심축이요 음양의 근원이다. …… 북두는 인군(人君)의 상(象)이요, 호령(號令)의 주재자이다.[北斗七星 在太微北 七政之樞機 陰陽之元本也……斗爲人君之象 號令之主也]”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천궁에서 천상의 제왕들이 천제(天帝)를 시종하고 있는 모습을 형용한 것으로 군신(群臣)들이 천자를 모시고 있는 조정(朝廷)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 或騎麒麟翳鳳凰(혹기기린예봉황) : 기린과 봉황은 선인(仙人)이 타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集仙錄(집선록)》에, “여러 신선들이 모두 모이는데, 지위가 가장 높은 자는 난(鸞)을 타고, 그 다음은 기린을 타고, 그 다음은 용을 탄다.[群仙畢集 位高者 乘鸞 次乘麒麟 次乘龍]”라고 하였다. ‘翳(예)’는 원래 가리개 또는 일산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탄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 구절은 조정에 모이는 신하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 星宮之君(성궁지군) : ‘星宮(성궁)’은 별자리인 이십팔수(二十八宿)를 뜻하는데, 각 별자리를 맡은 제왕이라는 뜻으로 앞에서 말한 ‘玉京群帝(옥경군제)’와 같이 조정의 신하를 비유한 것이다.
* 羽人(우인) : 우의(羽衣)를 입은 선인(仙人)으로 비선(飛仙)을 지칭한다. 여기서는 동정호의 은자처럼 조정에 등용되지 못한 인재를 뜻한다.
* 赤松子(적송자) : 전설 속의 선인(仙人)이다. 《漢書(한서)》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 “적송자는 선인(仙人)의 호(號)이다.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였다.[赤松子仙人號也 神農時爲雨師]”라고 하였다.
* 韓張良(한장량) : 장량을 지칭한다. 한(韓)나라 출신으로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건국,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훗날 공명(功名)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昔隨劉氏定長安(석수유씨정장안) : 옛날 유방(劉邦)을 따라 장안(長安)을 평정했던
帷幄未改神慘傷(유약미개신참상) : 군막의 지략은 그대로 지녔기에 마음이 아팠으리라
國家成敗吾豈敢(국가성패오개감) : 나라의 성패에 내가 어찌 관여하랴
色難腥腐餐楓香(색난성부찬풍향) : 비리고 썩은 음식은 사양하고 풍향(楓香)을 먹고 있네.
周南留滯古所惜(주남류체고소석) : 주남(周南)에 남겨짐을 예로부터 애석하게 여겼거늘
南極老人應壽昌(남극노인응수창) : 남극노인(南極老人)이 나타나 태평성대를 이루리니
美人胡為隔秋水(미인호위격추수) : 미인은 어이하여 가을 물 건너에 있는가?
焉得置之貢玉堂(언득치지공옥당) : 어찌하면 그대를 천거하여 옥당(玉堂)에 앉힐거나?
* 昔隨劉氏定長安(석수유씨정장안): 장량이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다는 뜻이다. “장안을 평정했다.[定長安]”는 것은 천하를 평정하여 한나라를 건국하였음을 뜻한다.
* 帷幄未改神慘傷(유악미개신참상) : ‘帷幄(유악)’은 군막을 뜻한다. 《漢書(한서)》 〈高帝紀(고제기)〉에 한고조가, “군막 안에서 책략을 세워 천리 밖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내가 자방(子房:장량張良)만 못하다.[夫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동정호의 은자가 장량과 같은 지략을 지니고 있음에도 등용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色難腥腐餐楓香(색난성부찬풍향): ‘色難(색난)’은 ‘싫어함[難]을 얼굴색으로 드러내다[色]’라는 뜻이며, ‘腥腐(성부)’는 비린내 나고 썩은 음식으로 세속적 삶을 뜻하고, ‘楓香(풍향)’은 신선의 음식으로 탈속의 삶을 뜻한다.
* 周南留滯古所惜(주남류체고소석) : ‘周南(주남)’은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사마천(司馬遷)의 아버지인 태사공(太史公) 사마담(司馬談)이 태산(泰山)의 제천(祭天)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주남(周南)에 남겨진 것을 애석해하였던 전거를 인용하였다. 《史記(사기)》 〈太史公自序(태사공자서)〉에, “이 해에 천자가 비로소 한나라의 봉선(封禪)을 올렸는데 태사공은 주남에 체류하고 있어 그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분통한 나머지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是歲 天子始建漢家之封 而太史公留滯周南 不得與從事 故發憤且卒]”라고 하였다.
* 南極老人應壽昌(남극노인응수창): ‘南極老人(남극노인)’은 별자리의 명칭으로 남극성 또는 노인성이라고 하는데, 이 별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한다. ‘壽昌(수창)’은 ‘長壽昌盛(장수창성)’의 준말로 황제의 장수와 태평성대를 뜻한다. 이 구절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응당 한간의(韓諫議)를 창수(昌壽)케 하기를 빈다.”로 풀이하기도 한다.
* 玉堂(옥당): 옥전(玉殿)으로 한 대(漢代)의 궁정의 이름인데, 조정(朝廷)을 뜻한다.
* [通釋] 내가 지금 슬퍼하는 것은 악양(岳陽)에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날아가 그를 만나보고 싶지만 몸은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으랴. 그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을 물 저 건너에서 세속을 잊은 채 동정호에서 발을 씻으며 이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겠지. 이제 해와 달이 하얗게 빛나는 높은 하늘에 큰 기러기 날고, 붉어진 단풍잎에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다.
저 천상의 궁전을 바라보니, 여러 제왕들은 북두성에 모이는데, 어떤 이는 기린을 타고, 또 어떤 이는 봉황을 탔다. 또 부용꽃 새겨진 깃발을 휘날리며 선인(仙人)들이 연무(煙霧) 속에 내려오니 그 그림자가 소상강(瀟湘江) 수면에 거꾸로 비쳐 너울거린다. 하늘 위 별자리에 군왕들은 좋은 술에 잔뜩 취하여 있으나 선인(仙人)들은 그곳을 떠나있으니, 그들의 곁에 선인은 있지 않구나. 이러한 모습은 조정에 그가 없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가 그 옛날 적송자(赤松子)와 같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듯한데, 내 생각에는 한(漢)나라의 건국을 도운 한(韓)나라 출신 장량(張良)이 아닌가 한다.
옛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따라 천하를 평정했던 장량의 지략을 지니고 있으나 세상을 떠나있어 크게 쓰이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상심하지 않겠는가. 그는 “나라의 성패에 내가 어찌 관여하랴.”라 말하면서 세속의 비리고 썩은 음식은 먹지 않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풍향을 먹고 있다.
그러나 태산(泰山)의 봉선(封禪)에 참여하지 못하고 주남(周南)에 체류하고 있던 사마담(司馬談)이 국가대사에 참여하지 못해 분통한 나머지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사실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겨오지 않았던가. 이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이 나라를 창성케 할 것인데, 어찌 그대와 같은 인물이 가을 물 건너편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대를 천거하여 조정에 앉힐 수 있을까.
* 이 시는 한간의(韓諫議)라는 인물에게 부친 시로, 두보가 55세인 대력(大曆) 원년(元年:766)에 기주(夔州)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의 내용은 한나라의 장량(張良)과 같은 큰 공을 세우고도 당시 동정호에서 은거하고 있던 인물을 안타까워하며, 그가 다시 등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시를 보낸 한간의의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논의가 매우 분분하다. 주학년(朱鶴年)은 숙종(肅宗)이 장안을 수복할 때 큰 공을 세우고도 형산(衡山)에 은거하여 선도(仙道)를 닦던 이필(李泌)과 같은 류의 사람이 한간의 일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전겸익(錢謙益)은 두보가 한간의에게 이필을 추천해줄 것을 청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전겸익의 해석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다. 먼저 두보와 교유한 인물은 모두 그의 시에 등장하는데, 이필의 경우는 두보와 교유한 자취가 없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한(韓)나라 출신 장량의 고사를 인용한 것은 한간의를 비유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란 말이다. 《杜詩詳注(두시상주)》에 여러 논의가 자세하게 실려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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