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고백행(古柏行) - 두보(杜甫)
오래된 잣나무의 노래
孔明廟前有老柏(공명묘전유노백) : 공명의 묘 앞 늙은 소나무
柯如靑銅根如石(가여청동근여석) : 가지는 청동구리 같고 뿌리는 돌 같이 여물다.
雙皮溜雨四十圍(쌍피류우사십위) : 껍질에는 빗방울이 흐르고 둘레는 마흔아홉 아름
黛色參天二千尺(대색삼천이천척) : 짙푸른 잎들은 하늘로 이천 척이네.
君臣已與時際會(군신이여시제회) : 임금과 신하 이미 함께 모여
樹木猶爲人愛惜(수목유위인애석) : 나무도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雲來氣接巫峽長(운내기접무협장) : 구름은 내려와 그 기운 긴 무협에 이어있고
月出寒通雪山白(월출한통설산백) : 달은 떠올라 그 한기가 흰 설산에 통해있네.
憶昨路繞錦亭東(억작노요금정동) :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길은 금정을 돌아 동으로 향하고
先主武侯同閟宮(선주무후동비궁) : 선주와 무후가 함께 궁궐에 갇히셨네.
崔嵬枝干郊原古(최외지간교원고) : 높은 가지는 들판에서 늙어가고
窈窕丹靑戶牖空(요조단청호유공) : 그윽한 단청집은 창문마저 쓸쓸하네.
落落盤踞雖得地(낙낙반거수득지) : 굳게 서려앉아 비록 땅을 얻었으나
冥冥孤高多烈風(명명고고다렬풍) : 푸른 하늘에 홀로 높아 바람도 심하리라
扶持自是神明力(부지자시신명력) : 이로부터 부지함은 신의 힘이요
正直元因造化功(정직원인조화공) : 바르고 곧은 원인은 조화옹의 공덕이네
大廈如傾要梁棟(대하여경요량동) : 큰집이 무너질 것 같으면 동량이 필요한데
萬年回首丘山重(만년회수구산중) : 만년 후에 고개 돌려보아 그 산의 무거움을 보리
不露文章世已驚(부노문장세이경) : 문장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놀라
未辭剪伐誰能送(미사전벌수능송) : 베어짐도 잘리어짐도 거절하지 않지만
苦心豈免容螻蟻(고심개면용루의) : 고심하여 어찌 개미의 무너뜨림 면할 것인가
香葉終經宿鸞鳳(향섭종경숙난봉) : 향기로운 잎에는 끝내 난새와 봉황새가 자고 갈 것이네
志士幽人莫怨嗟(지사유인막원차) : 지사들과 은사들은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마시라
古來材大難爲用(고내재대난위용) : 고래부터 재목이 크면 쓰이기 어려웠다오.
* 이 시는 대력(大曆) 元年(766) 두보가 기주(蘷州)에서 지낼 때 지은 작품이다. 이는 사물에 의탁하여 노래한 영물시(詠物詩)로, 기주(蘷州) 고백(古柏)의 크고 높으며 곧고 빼어난 모습을 찬탄(讚嘆)하여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높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번민과 불평을 드러내었다.
시 전체는 세 단락으로 나뉜다. 첫 번째 단락은 기주 무후묘 앞의 古柏을 묘사하고 있는데, 제5ㆍ6구에서 古柏을 통해 인간사까지 언급함으로써 古柏을 인격화시키고 있다. 다음 단락은 성도 선주묘와 무후묘 앞의 古柏을 언급했으며, 마지막 단락은 古柏을 통해 人間事를 비유하고, ‘예로부터 재목이 크면 쓰이기 어려웠다.[古來材大難爲用]’라고 끝맺어 재주가 있어도 시대를 만나지 못한 두보 자신의 불우한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 [通釋] 기주(蘷州)의 제갈공명 묘 앞에 서 있는 측백나무, 그 가지는 늙었지만 푸른 구리처럼 굳세고 뿌리는 돌처럼 견고하다. 나무껍질은 서리를 맞은 듯 창백하지만 가지는 비에 씻긴 듯 윤기가 돌고 전체 둘레는 마흔 아름 정도로 굵으며 짙푸른 잎들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가 2천 척이나 된다. 이전의 현군 유비와 충신 제갈공명이 시대를 걱정하며 뜻을 함께했던 일은 이미 역사상의 지난 일이 되었건만, 나무는 그들을 기억하는 후인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무 꼭대기에 구름이 떠오면 그 기운이 무협에 닿아 길게 뻗고, 달이 뜨면 그 차가운 기운이 설산과 통하여 희다.
지난날 내가 성도의 錦亭 동쪽을 지나갈 때를 생각해 보니, 先主 유비의 사당과 武侯 제갈공명의 사당은 깊고 고즈넉한 사당에 함께 모셔져 있었다. 그곳 나무의 높다란 가지는 들녘에 古色을 더하고, 단청으로 꾸며진 고요한 사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의 측백나무는 비록 제자리를 얻어 생장하고 있었지만, 홀로 높이 솟아 하늘의 매서운 바람을 다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명의 힘이었고, 바르고 곧을 수 있었던 것은 조화옹의 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집이 기울어져 이를 지탱할 들보와 기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기주의 이 나무는 언덕이나 산같이 무거워 만 마리의 소를 이용해도 옮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文彩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그 질박한 아름다움에 세상 사람들은 이미 감탄하고, 이 나무도 잘리거나 베어져 들보와 기둥이 되는 것을 사양하지 않지만, 누가 이 나무를 옮길 수 있을까. 나무속에 땅강아지와 개미가 들어와 해를 입히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마는, 끝내는 그 향기로운 잎에 난새와 봉새가 깃들어 머물 것이다. 세상의 지사들과 은자들은 원망도 탄식도 하지 말라, 예로부터 재목이 크면 쓰이기 어려운 법이다.
* 古柏(고백): 虁州(기주:지금의 四川省 奉節縣)의 諸葛孔明 사당 앞에 있는 오래된 측백나무를 말한다.
* 孔明廟(공명묘) : 諸葛孔明의 사당을 지칭하는 것으로,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팔진대(八陳臺) 아래에 있다.
* 霜皮溜雨(상피류우) : 측백나무의 껍질이 창백하여 마치 서리가 지나간 것 같고, 가지가 윤택하여 마치 비에 씻긴 듯 하다는 의미이다.
* 參天(참천) :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는 의미이다.
* 雲來氣接巫峽長 月出寒通雪山白(운래기접무협장 월출한통설산백) : 《杜詩詳註(두시상주)》에는 이 2구가 ‘黛色參天二千尺(대색참천이천척)’ 구 아래에 있는데, “2구는 예전에는 愛惜(애석)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 須溪(수계:刘辰翁류진옹)를 따라 고치니 기(氣)가 순(順)하다.[二句舊在愛惜之下 今依須溪改正 則氣順矣]”고 하였다. 여기서는 《全唐詩(전당시)》본을 따른다.
‘巫峽(무협)’은 사천성 巫山縣(무산현) 동쪽에 있는데 장강(長江) 삼협(三峽) 중 하나이다.
‘雪山(설산)’은 西岭(서령), 西山이라고도 하는데, 사천성 松潘縣(송반현) 남쪽에 있으며 岷山(민산)을 주봉(主峰)으로 한다.
일 년 내내 눈이 쌓여 녹지 않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 錦亭(금정) : 정자이름이다. 두보가 성도(成都) 초당(草堂)에 머물던 때에 정자가 있었는데, 금강(錦江)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錦亭(금정)’이라 하였다.
* 先主武侯同閟宮(선주무후동비궁) : ‘先主(선주)’는 劉備(유비)를 가리키고, ‘武侯(무후)’는 諸葛亮(제갈량)을 가리킨다. 제갈량이 유비를 보좌하여 촉(蜀)나라를 세운 공으로 무향후(武鄕侯)에 봉해졌는데, 이를 줄여 무후(武侯)라고 한다. ‘閟宮(비궁)’은 사묘(祠廟)를 말하고, ‘同閟宮(동비궁)’은 한 사묘 안에 함께 있는 것을 말한다. 성도의 무후묘가 선주묘 안에 달려 있기에, 동비궁(同閟宮)이라고 한 것이다.
* 崔嵬(최외) : 높은 모습을 말한다.
* 窈窕(요조) : 깊고 그윽한 모습을 말한다.
* 落落(락락) : 홀로 우뚝하게 높은 모습을 말한다.
* 盤踞(반거) : 龍盤虎踞(용반호거)의 준말로, 용이 서려 있는 듯하고 범이 웅크리고 앉은 듯한 모습을 말한다.
* 不露文章(불로문장) : 문채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화려한 꽃가지가 없는 측백나무의 질박함을 의미한다.
* 未辭剪伐誰能送: ‘辭’는 거절의 뜻으로, ‘未辭剪伐’은 측백나무가 동량이 되기 위해 찍히고 깎이는 괴로움을 마다하지 않음을 표현한 것이다. ‘誰能送’은 운송해 줄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동량이 될 만한 인재를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 豈(개) : ‘未’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螻蟻(루의) : 小人을 의미한다.
* 鸞鳳(난봉) : 君子를 의미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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