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조대(釣臺) - 이백(李白)
낚시터
磨盡石嶺墨(마진석령묵) : 검은 바위등성 다 닳아 검고
潯陽釣赤魚(심양조적어) : 潯陽에서 붉은 고기를 낚네.
靄峰尖似筆(애봉첨사필) : 안개 자욱하게 낀 뾰족한 봉우리는 붓 같은데
堪畵不堪書(감화불감서) : 감히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네.
* 천보(天寶)14년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고, 그는 여산(廬山)에 은거하였다. 그해 이백이 심양(尋陽 혹은 潯陽)의 이현(黟縣)에 놀러왔었고, 공교롭게도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반란을 일으켜 이곳을 지났는데, 평소 이백의 才名을 그리워하였기에 자신의 막료로 불렀다. 결과적으로 이린의 난이 실패하여, 곽자의(郭子儀)의 도움으로 겨우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때 지은 <조대(釣臺)>라는 시에,
磨盡石嶺墨(마진석령묵), 검은 바위등성 다 닳아 검고,
潯陽釣赤魚(심양조적어). 潯陽에서 붉은 고기를 낚네.
靄峰尖似筆(애봉첨사필), 안개 자욱하게 낀 뾰족한 봉우리는 붓 같은데,
堪畵不堪書(감화불감서). 감히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네.
라고 하였다.
* 실제로 이현(黟縣)에 백상(白象)ㆍ청사(靑獅) 두 봉우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기에 <釣臺>詩를 썼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숙종(李亨)과 동생 李璘이 대치하는 형국으로, 동생이 반란을 일으킨 일을 읊은 듯하다. 결국 심양(潯陽)에서 그는 붉은 고기, 이린(李璘)을 낚았고,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서로 대치한 뒷날의 형세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뒤에 사면을 받고 당도(當塗)의 이양빈(李陽冰)에 의지하던 시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남쪽의 산수를 감상하면서 산수시를 쓰기도 했고, 좋은 낚시터를 만나 마음이 동하면 낚시를 하였던 것이다.
* 옛말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학문하는 서생(書生)이 뜻을 잃고 곤궁할 때요, 가장 불쌍한 경우는 호탕하게 놀던 한량의 머리칼이 어느덧 하얗게 새버리는 것이라!“
* 이제 이백도 어느덧 60언저리에 앉아, 객지에서 남에게 의탁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낚시터는 왜 한창 젊은 혈기가 넘칠 때는 찾지를 않다가,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할 즈음에야, 낚시찌를 바라보며 인생을 회상하게 되는가 말이다. 혈기왕성하여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오히려 낚시터를 찾아 심신을 안정시키고 생활의 활력을 충전하고, 한가로운 자연 속에서 옆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인생에 있어 마침 적절한 안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게 아닌 모양이다. 시련을 겪어봐야 안다고 그 시절에는 누구의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 법이니...
어쨌든 이 시기에 쓴 이백의 釣魚詩에는 제법 낚시꾼의 모습이 배어난다.
산과바다 이계도
'*** 詩 *** > 詩仙 李白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산유자첩가(中山孺子妾歌) - 이백(李白) (0) | 2020.11.10 |
---|---|
주필증독고부마(走筆贈獨孤駙馬) - 이백(李白) (0) | 2020.11.10 |
정도호가(丁都護歌)/정독호가(丁督護歌) - 이백(李白) (0) | 2020.11.10 |
전원언회(田園言懷) – 이백(李白) (0) | 2020.11.10 |
장가행(長歌行) - 이백(李白) (0) | 2020.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