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정도호가(丁都護歌)/정독호가(丁督護歌) - 이백(李白)
슬픈 탄식(독호(督護) 정오(丁旿)를 노래하며)
雲陽上征去(운양상정거) : 운양(雲陽) 땅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兩岸饒商賈(량안요상가) : 양편 언덕엔 장사치들 북적이네.
吳牛喘月時(오우천월시) : 오(吳) 지방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일 제
拖船一何苦(타선일하고) : 배를 당기기 어이 이리 힘이 드나.
水濁不可飮(수탁불가음) : 물은 탁하여 마실 수 없고
壺漿半成土(호장반성토) : 단지에 담으니 태반이 흙이라네.
一唱都護歌(일창도호가) : 한바탕 도호가(都護歌) 노래 부르노라니
心摧淚如雨(심최루여우) : 마음 무너져 눈물 비 오듯 하네.
萬人鑿盤石(만인착반석) : 만 명이 반석을 쪼갠다 한들
無由達江滸(무유달강호) : 강기슭에 닿을 방도 없다네.
君看石芒碭(군간석망탕) : 그대도 울퉁불퉁 바윗돌 바라보면
掩淚悲千古(엄루비천고) : 눈물 훔치며 천고 세월 슬퍼하리.
* 남조(南朝) 송(宋; 420~479)나라 때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파견된 독호(督護) 정오(丁旿)를 채근하면서, '정도호(丁都護)'라고 탄식한 高祖 장녀의 애절한 부르짖음을 본떠 만들었다는 노래로서, 청상곡사(淸商曲辭) 중의 하나이다.
* 부역의 고통을 목격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부른 노래이다. 이백의 시가 중에는 동시대 백성들의 실상과 고통을 반영한 작품이 많기는 하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는 시시콜콜함을 싫어하는 그의 대범한 성격이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초기 시절의 태평성대라는 시대적 특성 때문에, 이백 같은 계층의 인물이 절실하게 느낄 만큼 표면화된 사회 문제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744년 한림직(翰林職)을 사퇴하고 장안을 떠난 후부터 사회의 혼란상이 피부로 느껴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백의 관심도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다. 악부 〈원별리(遠別離)〉와 여러 고풍시(古風詩) 속에서 이러한 관심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만년 청년 같던 이백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보다 성숙한 인격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 丁督護歌라고도 한다. 南朝宋(420~479)나라 高祖劉裕(?, 420~422) 때 그의 사위 彭城內史徐逵之가 魯軌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자 高祖는 府의 督護인 丁旿에게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라 시켰다. 高祖의 장녀는 丁督護에게 남편의 죽음을 물으며 탄식하였다. 督護는 지방군사 책임자의 장수이다.
* 촉견폐일(蜀犬吠日)은 구름안개 자욱한 蜀나라에 어쩌다 해가 비치면 개가 짖고, 越犬吠雪은 따듯한 越나라에 어쩌다 눈 내리면 개가 짖고, 吳犬喘月 무더운 吳나라에 소는 달만 봐도 숨을 헐떡거린다는 뜻으로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 작은 일에 크게 놀라거나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비난하고 의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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