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추도단수(抽刀斷水)/(宣州謝脁樓餞別校書叔雲) - 이백(李白)
선주 사조루에서 족숙 교서랑 운을 전송하며
棄我去者(기아거자) : 날 버리고 가는 사람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부가류) : 어제는 말리지 못하고
亂我心者(란아심자) :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 오늘은 근심이 많아라.
長風萬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 만 리 추풍에 기러기는 날아야하고
對此可以酣高樓(대차가이감고루) : 이러한 때는 높은 누각에 올라 술 취하기 좋아라.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 봉래의 문장과 건안의 풍골
中間小謝又清發(중간소사우청발) : 중간에는 소사가 있어 또 맑아진다.
俱懷逸興壯志飛(구회일흥장지비) : 뛰어난 흥취 함께 품고 굳센 생각 일어나
欲上青天攬明月(욕상청천람명월) : 푸른 하늘에 날아올라 해와 달을 잡으리라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 :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더욱 흐르고,
擧杯銷愁愁更愁(거배소수수경수) : 잔 들어 근심 지우려 해도 시름 더욱 쌓이네.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부칭의) : 세상 살아가자니 뜻대로 되는 게 없어,
明朝散髮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 : 내일아침은 산발머리로 일엽편주를 타고서 놀아보리라.
* 이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宣州謝脁樓餞別校書叔雲)> 시는 당대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는 이백(李白, 701-761)이 지은 것으로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시제(詩題)는 <배시어숙화등루가(陪侍御叔華登樓歌)>로도 알려져 있다.
* 이 시를 지을 당시는 안록산(安祿山)이 북방에서 모반을 꾀하여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 있어 온 나라가 뒤숭숭할 때였다. 천보(天寶) 13년(753) 가을, 이백이 선주(宣州, 즉 宣城. 지금의 안휘성 宣州市)에 당도했을 때 마침 감찰어사의 신분으로 그곳에 와서 일 처리를 하고 있던 족숙(族叔) 이운(李雲)을 만나 선주의 유서 깊은 사조루(謝眺樓)에 올라 곧 떠날 그를 전별하면서 지은 것이다.
당시 이운은 관직이 비서성 교서랑(校書郞)이었다. 사조루는 남제(南齊) 시인 사조(謝眺, 464-499)가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을 때 선성의 북쪽 능양산(陵陽山) 마루에 지은 누각이다. 선성의 명승으로 유명하며 북루(北樓)·사공루(謝公樓)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 제목에서 시작(詩作)의 확실한 유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 날 두고 떠나 가버린 어제의 시간은 이미 붙들어 둘 수 없고 내 마음 어지럽게 하는 오늘의 시간은 대부분 괴로움과 근심이로구나. 내가 이 사조루에서 그대를 전별하는데 만리를 부는 장풍에 가을 기러기가 날아가는걸 보노라니 통쾌하게 술 한 잔 마실 만하다. 역대 훌륭한 문인을 떠올려보니 그대는 蓬萊(봉래)의 문장이고 건안의 풍골을 가지고 있고 중간에는 사조가 또 청신하고 뛰어났는데 나는 그를 좋아했지. 우리 두 사람 모두 뛰어난 흥취 품고 장대한 생각을 가지고서 푸른 하늘에 날아올라 해와 달을 잡으려 할 만큼 포부가 컸건만. 칼을 빼어 흐르는 물을 베어도 흐르는 물은 다시 흘러 그치지 않고 술잔 들어 근심 삭여보지만 어찌하든 근심은 다시 많아져 풀기 힘들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뜻같이 되지 않으니 내일 머리 풀고 세상 등져 조각배를 타고 떠나가리라.
* 이 시의 표제는 〈陪侍御叔華登樓歌(배사어숙화등루가〉로 쓰기도 한다. 叔雲(숙운)을 李華(이화)로 볼 경우 이화의 약력에 견주어 저작시기를 살필 수 있는데 천보 12년(753) 이백의 나이 53세인 해에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단락은 이별의 괴로움을 묘사한 것으로 3ㆍ4구 가운데 ‘送(송)’과 ‘酣(감)’을 써서 전별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단락은 술 마시며 문장을 논하고 시를 얘기하는 대목이다. 마지막 단락은 다시 이별의 시름을 묘사해 맺고 있다.
이 시는 전별시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시름을 펼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백은 장안을 떠난 이후 뜻을 얻지 못해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는 열정이 좌절되었다. 그로 인해 내심의 모순이 격렬하던 때 자신의 심사를 풀어버린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인생살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일은 머리 풀고 조각배 타리.[人生在世不稱意 明朝散髮弄扁舟]’라는 마지막 구는 시 전편의 主旨를 드러낸다.
* 宣州(선주) :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선성현(宣城縣)이다.
* 謝朓樓(사조루) : 남제(南齊)의 유명한 시인 사조(謝脁)가 선성태수(宣城太守)로 있으면서 지은 누대로 북루(北樓) 혹은 사공루(謝公樓)라고도 한다.
* 校書叔雲(교서숙운) : 校書(교서:서책을 검열하는 직책)는 비서성(秘書省) 교서랑(校書郞)을 말한다. 이 시의 제목이 《文苑英華(문원영화)》에는 〈陪侍御叔華登樓歌(배시어숙화등루가)〉로 되어 있다. ‘叔(숙)’은 李白과 같은 姓氏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백이 전별하는 인물이 李雲인지 李華인지 확실하지 않다. 李雲은 生平 未詳의 인물이다. 李華는 字가 遐叔(가숙)으로 開元年間에 進士가 되고 天寶(천보) 11년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는데 권신들의 미움을 받아 어사부(御史府)에 있을 수 없어 우보궐(右補闕)에 제수(除授)되었다. 文章으로 이름이 높아 소영사(蕭穎士)와 나란히 칭해져 세상에서 소이(蕭李)라 불렸던 인물이다.
*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 蓬萊(봉래)는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을 말하는데 도가(道家)의 서적들이 이곳에 보관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동한(東漢) 때에는 종종 도서관을 ‘蓬萊閣(봉래각)’ 또는 ‘東觀(동관)’으로 불렀고, 당(唐)나라 때에는 비서성(秘書省)을 ‘蓬閣(봉각)’으로 불렀다. 여기서 蓬萊文章(봉래문장)은 곧 한 대(漢代)의 문장으로, 이운(李雲)이 비서성(秘書省) 교서랑(校書郞)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건안(建安)은 한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당시 문인에 조씨삼부자(曹氏三父子:三曹)와 건안칠자(建安七子)가 유명한데 모두 문장에 뛰어나 세칭(世稱) 건안체(建安體)라 했다.
* 小謝又淸發(소사우청발) : 小謝(소사)는 謝朓(사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謝靈運(사령운)을 大謝(대사)라 칭한데서 연유한다. 謝朓(사조)는 五言에 능했는데 특히 山水詩로 이름이 높았다. 宣城太守(선성태수)를 지냈지만 무고(誣告)로 옥사(獄死)했다. 청발(淸發)은 청신준발(淸新俊發)을 말한다.
* 壯思(장사) : 장대한 뜻[壯志]과 같은 말이다.
* 覽日月(람일월) : ‘覽’은 ‘攬’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두 글자는 본래 통용된다. ‘日月’은 ‘明月’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散髮弄扁舟(산발롱편주) : 이 구절을 두고 《全唐詩(전당시)》 注에는, “ ‘노를 저어 滄洲(창주:옛날 隱士의 거처로 항상 쓰이던 말)로 돌아가다.[擧櫂還滄洲]’라고 되어 있다.” 하였다. 散髮(산발)은 “세상과 인연을 끊다.[絶世]”라는 뜻이 있다. 《後漢書》 〈袁閎傳(원굉전)〉에, “閎(굉)은 마침내 머리를 풀고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閎遂散髮絶世]”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곧 머리를 풀어 헤침으로써 벼슬아치들의 머리장식인 簪ㆍ纓을 벗어던진다는 뜻이니, 더 이상 벼슬에 미련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弄扁舟는 전국시대 范蠡의 고사를 빌어온 것이다. 越나라가 吳나라를 멸한 후 범려는 조각배를 타고 강호를 떠돌며 變姓名했다는 기록이 《史記》 〈越王勾踐世家〉에 보인다. 弄은 여기서 ‘타다[駕(가)]’라는 뜻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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