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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仙 李白 詩

금능주사류별(金陵酒肆留別) -이백(李白)

by 산산바다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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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능주사류별(金陵酒肆留別) -이백(李白)

                 금릉 술집에서 이별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봄바람 불어와 버들 꽃 주점에 가득하고

吳姬壓酒喚客嘗(오희압주환객상). 오나라 계집들 술 걸러 손더러 맛보라하네

金陵子弟來相送(금능자제내상송): 금릉의 자제들 모두 나와 서로 보내려하니

欲行不行各盡觴(욕항부항각진상). 떠나려 하나 차마 가지 못하고 술잔만 비우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그대들에게 청하노니 동으로 흐르는 강물에 물어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이별하는 마음과 강물 어느 것이 더 길더냐고

 

 

* 미풍이 버들개지를 불어 흔드니 주점에 꽃향기가 넘쳐나고, 오희는 술을 잘 거른 후에 손님을 불러 맛보게 한다. 금릉의 자제들은 모두 와서 나를 전송해주니, 떠나야 하는 나는 물론이고 떠나지 않는 그들까지도 이별이 아쉬워 다만 각자의 술잔을 비울 뿐이다.

그대들, 저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에 물어보시오. 우리의 이별을 섭섭해 하는 마음과 저 흐르는 강물, 어느 것이 더 깊고도 유장한가를.

 

* 이 시는 開元 14(726) 그의 나이 26세 때, 이백이 금릉을 떠나 양주(揚州)로 가면서 벗들에게 남긴 유별시(留別詩)이다. 매우 화창한 봄날에 좋은 술이 있고 이에 금릉의 젊은이들이 와서 전송해주니, 이 같은 젊은 날의 이별은 절로 주저되기 마련이다. 이별의 아쉬움이 짙어질수록 술을 권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한데, 묻는 말로 끝을 맺었으니 여운이 더욱 길다. 이백이 술을 마신 후 손 가는 대로 써내려간 시로서, 그의 솔직한 심경이 잘 드러났을 뿐 아니라 정경(情景)이 서로 어우러져 청신(淸新)하고 명려(明麗)한 맛이 가득하다.

 

* 吳姬壓酒喚客嘗(오희압주환객상) : ‘吳姬(오희)’땅의 여자이다. '壓酒(압주)’는 쌀로 술을 빚어, 그것이 익을 때를 기다려 눌러서 술을 취하는 것이다. ‘()’全唐詩, ‘一作勸(일작권)’, ‘一作使(일작사)’라고 하였다.

* () : 지시대명사로 東流水(동류수)를 가리킨다.

* 金陵(금릉) : 삼국 시대 당시에는 건업(建業)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오(東吳)의 수도였다. 이후 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인 원제(元帝)가 서진(西晉)의 마지막 황제인 민제(愍帝) 사마업(司馬業)의 휘()''과 건업의 ''의 글자가 같아, 피휘를 위해 313년 건업을 건강(建康)으로 개명하였으며, 이후 동진과 남조(南朝) 시대의 수도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북조 시대에 화남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인구가 100만에 이르러 북조(北朝)의 수도인 낙양(洛陽)에 비견되었다. 후경의 난 당시인 549년에 후경(後景)에 의해 포위되었으며, 1년여 동안의 공성전 동안 많은 사람이 살해되거나 굶어 죽었다. 수나라의 통일 당시에 파괴되었으며, 당나라 당시에 재건되어 이름을 금릉(金陵)으로 고쳤다. 오대 십국 시대에는 강녕(江寧)으로 불렸으며, 남송 당시에는 건강으로 회귀하였다. 명나라 시대에 남경(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이름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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