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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長阿含經

長阿含經 9. 衆集經

by 산산바다 2015. 2. 10.

산과바다 

 

 

 

長阿含經

 

9. 衆集經 중집경

 

 

중집경(衆集經)은 부처님께서 파바성(波婆城)에 계실 때 등의 통증으로 괴로워하시자 사리불(舍利弗)이 대신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한 경이다. 사리불의 설교에 의하면 자이나교의 스승인 니건이 죽은 뒤 자이나교의 교단이 둘로 분열하여, 제자들이 서로 다투어 비방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법이 진정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깨우며, 모든 중생이 진정한 안락을 얻기 위해서 부처님의 여러 교리를 모아 참된 실천을 해야 함을 강조 하였다. 그리고 불멸후 불교 교단의 쟁송(諍訟) 분열을 막기 위하여 여래의 법만이 진정한 출요(出要), 즉 곧 해탈도의 가르침임을 역설하였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於末羅遊行與千二百五十比丘俱漸至波婆城闍頭菴婆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말라(末羅)를 유행하시면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파바성(波婆城)에 있는 사두의 암파(菴婆) 동산에 다다르셨다.

 

 

爾時世尊以十五日月滿時於露地坐諸比丘僧前後圍繞世尊於夜多說法已告舍利弗言今者四方諸比丘集皆共精勤捐除睡眠吾患背痛欲暫止息汝今可爲諸比丘說法

이 때 세존께서는 보름날 달이 가득 찬 밤에 맨땅에 앉아 계셨고 모든 비구들도 앞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에 많은

 

설법을 마치시고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와서 다 함께 정근하며 잠을 자지 않고 있구나. 나는 등병을 앓아 잠깐 쉬고 싶다. 네가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對曰唯然當如聖敎

그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땅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爾時世尊即四牒僧伽梨偃右脇如師子累足而臥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舍利弗告諸比丘今此波婆城有尼乾子命終未久其後弟子分爲二部常共諍訟相求長短迭相罵各相是非我知此法汝不知此汝在邪見我在正法言語錯亂無有前後自稱己言以爲眞正我所言勝汝所言負我今能爲談論之主汝有所問可來問我

* (꾸짖을 리) 1.욕하다.

 

그 때 사리불(舍利弗)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파바성에는 니건자(尼乾子)가 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뒤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늘 서로의 잘잘못을 캐고 서로 꾸짖으며 시비하고 있다.

'나는 이 법을 알지만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사견(邪見)을 가졌지만 나는 바른 법을 가졌다.'

이렇게 말이 서로 얽혀 앞뒤가 없다. 모두 자기 말을 참되고 바르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이길 것이고, 당신 논리는 질 것이다. 나는 이제 담론(談論)의 주인이 될 것이니, 당신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내게 와서 물으라.'

 

 

諸比丘國人民奉尼乾者厭患此輩鬪訟之聲皆由其法不眞正故法不眞正無由出要譬如朽塔不可復圬此非三耶三佛所說諸比丘唯我釋迦無上尊法最爲眞正可得出要譬如新塔易可嚴飾此是三耶三佛之所說也諸比丘我等今者宜集法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諸比丘如來說一正法一切眾生皆仰食存如來所說復有一法一切眾生皆由行往是爲一法如來所說當共集之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이 나라 백성으로서 니건자를 받드는 자는 다 저 무리들의 다투는 소리를 싫어하고 괴로워하나니, 그것은 그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면 썩은 탑은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의 말씀이 아니다.

* 삼야삼불(三耶三佛): samyaksa?buddha의 음역. 부처님 10()의 하나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삼야삼불단(三耶三佛檀)이라고도 한다. 정변지(正遍知)등정각(等正覺)정등각(正等覺)은 이에 대한 번역이다. 외도(外道)아라한(阿羅漢)보살(菩薩)의 깨달음을 각각 사각(邪覺)정각(正覺)등각(等覺)이라 하는데 대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정등각(正等覺)이라 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다만 우리 석가(釋迦) 무상존(無上尊)의 법만이 가장 참되고 바르기 때문에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새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삼야삼불의 말씀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법과 율()을 모아 저 다툼을 막고 범행(梵行)을 오래 세우고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二正法一名二色復有二法一癡二愛復有二法有見無見復有二法一無慚二無愧復有二法一有慚二有愧復有二法一盡智二無生智復有二法二因二緣生於欲愛一者淨妙色二者不思惟復有二法二因二緣生於瞋恚一者怨憎二者不思惟復有二法二因二緣生於邪見一者從他聞二者邪思惟復有二法二因二緣生於正見一者從他聞二者正思惟復有二法二因二緣一者學解脫二者無學解脫復有二法二因二緣一者有爲界二者無爲界諸比丘是爲如來所說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바른 법을 설하셨다.

'일체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르며 살아간다.'

 

여래의 설법 중에 또 한 가지 법이 있다.

'일체 중생은 다 행()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법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이 법과 율을 모아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두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명()이요, 둘째는 색()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치(), 둘째는 애()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견(有見)이고, 둘째는 무견(無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무참()이요, 둘째는 무괴(無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참()이요, 둘째는 유괴(有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진지(盡智), 둘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어 욕애(欲愛)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정묘색(淨妙色)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어 진에()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원증(怨憎)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어 사견(邪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사사유(邪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어 정견(正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학해탈(學解脫)이요, 둘째는 무학해탈(無學解脫)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유위계(有爲界), 둘째는 무위계(無爲界)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마땅히 함께 이것을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三正法謂三不善根一者貪欲二者瞋恚三者愚癡復有三法謂三善根一者不貪二者不恚三者不癡復有三法謂三不善行一者不善身行二者不善口行三者不善意行復有三法謂三不善行身不善行口不善行意不善行復有三法謂三惡行身惡行口惡行意惡行復有三法謂三善行身善行口善行意善行復有三法謂三不善想欲想瞋想害想復有三法謂三善想無欲想無瞋想無害想復有三法謂三不善思欲思恚思害思復有三法謂三善思無欲思無恚思無害思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세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3불선근(不善根)으로서 첫째는 탐욕(貪欲)이요, 둘째는 진에()이며, 셋째는 우치(愚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근(善根)으로서 첫째는 불탐(不貪)이요, 둘째는 불에()이며, 셋째는 불치(不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不善行)으로서 첫째는 불선신행(不善身行)이요, 둘째는 불선구행(不善口行)이며, 셋째는 불선의행(不善意行)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으로서 첫째는 신()불선행이요, 둘째는 구()불선행이며, 셋째는 의()불선행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악행(惡行)으로서 첫째는 신()악행이요, 둘째는 구()악행이며, 셋째는 의()악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행으로서 신선행과 구선행과 의선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상(不善想)으로서 욕상(欲想)진상(瞋想)해상(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상(善想)으로서 무욕상(無欲想)무진상(無瞋想)무해상(無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사(不善思)로서 욕사(欲思)에사(?)해사(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사(善思)로서 무욕사(無欲思)무에사(?)무해사(無害思)이다.

 

 

復有三法謂三福業施業平等業思惟業復有三法謂三受樂受苦受不苦不樂受復有三法謂三愛欲愛有愛無有愛復有三法謂三有漏欲漏有漏無明漏復有三法謂三火欲火恚火愚癡火復有三法謂三求欲求有求梵行求復有三法謂三增盛我增盛世增盛法增盛復有三法謂三界欲界恚界害界復有三法謂三界出離界無恚界無害界復有三法謂三界色界無色界盡界復有三法謂三聚戒聚定聚慧聚復有三法謂三戒增盛戒增盛意增盛慧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복업(福業)으로서 시업(施業)평등업(平等業)사유업(思惟業)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낙수(樂受)고수(苦受)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욕애(欲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유루(有漏)로서 욕루(欲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욕화(欲火)에화()우치화(愚癡火)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욕구(欲求)유구(有求)범행구(梵行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증성(增盛)으로서 아증성(我增盛)세증성(世增盛)법증성(法增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욕계(欲界)에계(?)해계(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출리계(出離界)무에계(?)무해계(無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진계(盡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계취(界聚)정취(定聚)혜취(慧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증성계(增盛戒)증성의(增盛意)증성혜(增盛慧)이다.

 

 

復有三法謂三三昧空三昧無願三昧無相三昧復有三法謂三相止息相精勤相捨相復有三法謂三明自識宿命智明天眼智明漏盡智明復有三法謂三變化一者神足變化二者知他心隨意說法三者敎誡復有三法謂三欲生本一者由現欲生人天二者由化欲生化自在天三者由他化欲生他化自在天復有三法謂三樂生一者眾生自然成辦生歡樂心如梵光音天初始生時二者有眾生以念爲樂自唱善哉如光音天三者得止息樂如遍淨天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삼매(三昧)로서 공삼매(空三昧)무원삼매(無願三昧)무상삼매(無相三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지식상(止息相)정근상(精勤相)사상(捨相)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자식숙명지명(自識宿命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변화(變化)로서 첫째는 신족변화(神足變化), 둘째는 지타심수의설법(知他心隨意說法)이며, 셋째는 교계(敎誡)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욕생본(欲生本)으로서 첫째는 현욕(現欲)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나 천상에 나는 것이며, 둘째는 화욕(化欲)으로 말미암아 화자재천(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며, 셋째는 타화욕(他化欲)으로 말미암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낙생(樂生)으로서 첫째는 중생이 저절로 성취하여[自然成辦] 환락심(歡樂心)을 내는 것이 마치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은 것이요, 둘째는 중생이 생각[]을 낙()으로 삼아 스스로 착하다고 외치는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지식락(止息樂)을 얻은 것이 변정천(遍淨天)과 같은 것이다.

 

 

復有三法謂三苦行苦苦苦變易苦復有三法謂三根未知欲知根知根知已根復有三法謂三堂賢聖堂天堂梵堂復有三法謂三發見發聞發疑發復有三法謂三論過去有如此事有如是論未來有如此事有如是論現在有如此事有如是論復有三法謂三聚正定聚邪定聚不定聚復有三法謂三憂身憂口憂意憂復有三法謂三長老年耆長老法長老作長老復有三法謂三眼肉眼天眼慧眼諸比丘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행고(行苦)고고(苦苦)변역고(變易苦)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지근(知根)지이근(知已根)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현성당(賢聖堂)천당(天堂)범당(梵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견발(見發)문발(聞發)의발(疑發)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논()이 있었으며,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요 이런 논이 있을 것이며, 현재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정정취(正定聚)사정취(邪定聚)부정취(不定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로서 신우(身憂)구우(口憂)의우(意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장로(長老)로서 연기장로(年耆長老)법장로(法長老)작장로(作長老)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으로서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正法]이라고 한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고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四正法謂口四惡行一者妄語二者兩舌三者惡口四者綺語復有四法謂口四善行一者實語二者軟語三者不綺語四者不兩舌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네 가지 바른 법을 설명하셨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惡業)으로서 첫째는 거짓말[妄語]이요, 둘째는 이간하는 말[兩舌]이며, 셋째는 욕설[惡口]이요, 넷째는 꾸밈말[綺語]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첫째는 진실한 말[實語]이요, 둘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며 셋째는 꾸밈이 없는 말[不綺語]이요, 넷째는 이간하지 않는 말[不兩舌]이다.

 

 

復有四法謂四不聖語不見言見不聞言聞不覺言覺不知言知復有四法謂四聖語見則言見聞則言聞覺則言覺知則言知復有四法謂四種食觸食念食識食復有四法謂四受有現作苦行後受苦報有現作苦行後受樂報有現作樂行後受苦報有現作樂行後受樂報復有四法謂四受欲受我受戒受見受復有四法謂四縛貪欲身縛瞋恚身縛戒盜身縛我見身縛

* (둥글 단) 1.맴돌다. 빙빙 돌다. 선회하다 2.둥글게 빚다. (손으로) 뭉치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로서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不見言見]이요,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不聞言聞]이며,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不覺言覺]이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不知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어(聖語)로서 본 것은 보았다고 말하는 것[見則言見]이요, 들은 것은 들었다고 말하는 것[聞則言聞]이며,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 말하는 것[覺則言覺]이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知則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종류의 음식으로서 단식()촉식(觸食)염식(念食)식식(識食)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욕수(欲受)아수(我受)계수(戒受)견수(見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으로서 탐욕신박(貪欲身縛)진에신박(?身縛)계도신박(戒盜身縛)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

 

 

復有四法謂四刺欲刺恚刺見刺慢刺復有四法謂四生卵生胎生濕生化生復有四法謂四念處於是比丘內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內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法觀亦復如是復有四法謂四意斷於是比丘未起惡法方便使不起已起惡法方便使滅未起善法方便使起已起善法方便思惟使其增廣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욕자(欲刺)에자()견자(見刺)만자(慢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으로서 난생(卵生)태생(胎生)습생(濕生)화생(化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이다. 여기서 비구는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요,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관(受觀)의관(意觀)법관(法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의단(意斷)으로 여기서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惡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법은 방편으로써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법은 방편으로써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더하고 넓히는 것이다.

 

 

復有四法謂四神足於是比丘思惟欲定滅行成就精進定意定思惟定亦復如是復有四法謂四禪於是比丘除欲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入於初禪滅有覺內信一心無覺無觀定生喜入第二禪離喜修捨自知身樂諸聖所求憶念入第三禪離苦樂行先滅憂不苦不樂淸淨入第四禪復有四法謂四梵堂一慈二悲三喜四捨復有四法謂四無色定於是比丘越一切色想先盡瞋恚想不念異想思惟無量空處捨空處已入識處捨識處已入不用處捨不用處已入有想無想處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신족(神足)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사유욕정멸행(思惟欲定滅行)을 성취한다. 정진정(精進定)의정(意定)사유정(思惟定)도 또한 그러하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는 것이요, ()과 관()이 그쳐 안으로[內信]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가는 것이며, 기쁨을 떠나 평정을 닦아 생각이 나아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身樂]을 알고 모든 성인이 구하는 기억[憶念]평정[]즐거움[]이 있는 제3선에 들어가는 것이요, 괴로움도 멸하고 즐거움의 행도 여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 멸했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기억[]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범당(梵堂)으로서 첫째는 자애로움[]이요, 둘째는 불쌍히 여김[]이며, 셋째는 기뻐함[]이요, 넷째는 평정[]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색정(無色定)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일체의 색()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먼저 성냄의 생각[?]을 없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무량한 공처(空處)를 생각하는 것이요,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는 것이며, 식처를 버리고 이미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는 것이요,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復有四法謂四法足不貪法足不瞋法足正念法足正定法足復有四法謂四賢聖族於是比丘衣服知足得好不喜遇惡不憂不染不著知所禁忌知出要路於此法中精勤不懈成辦其事無闕無減亦能敎人成辦此事是爲第一知足住賢聖族從本至今未常惱亂諸天沙門婆羅門天及世間人無能毀罵飯食牀臥具病瘦醫藥皆悉知足亦復如是復有四法謂四攝法惠施愛語利人等利復有四法謂四須陀洹支比丘於佛得無壞信於法於僧於戒得無壞信復有四法謂四受證見色受證身受滅證念宿命證知漏盡證復有四法謂四道苦遲得苦速得樂遲得樂速得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법족(法足)으로서 탐하지 않는 법족[不貪法足]이요, 성내지 않는 법족이며, 바른 생각의 법족[正念法足]이요, 바른 선정의 법족[正定法足]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현성족(賢聖族)으로서 여기서 비구들은 의복에 만족할 줄 알아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금기(禁忌)할 바를 알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그 일을 성취하여 빠짐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을 첫 번째 만족할 줄 아는 데에 머무는 현성족[第一知足住賢聖族]이라고 한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아직 항상 고뇌하여 산란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악마제석사문 바라문과 하늘 및 세간 사람들을 헐거나 꾸짖지 않으며, 음식평상와구(臥具)병들고 허약할 때의 의약 등 모두 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섭법(攝法)으로서 혜시(惠施)애어(愛語)이인(利人)등리(等利)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다원지(須陀洹支)로서 비구들이 부처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법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스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계율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증(受證)으로서 견색수증(見色受證)신수멸증(身受滅證)염숙명증(念宿命證)지루진증(知漏盡證)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고지득(苦遲得)고속득(苦速得)낙지득(樂遲得)낙속득(樂速得)이다.

 

 

復有四法謂四聖諦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出要聖諦復有四法謂四沙門果須陀洹果斯陀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復有四法謂四處實處施處智處止息處復有四法謂四智法智未知智等智知他人心智復有四法謂四辯才法辯義辯詞辯應辯復有四法謂四識住處色識住緣色住色與愛俱增長行識中亦如是住復有四法謂四扼欲扼有扼見扼無明扼復有四法謂四無扼無欲扼無有扼無見扼無無明扼。  復有四法謂四淨戒淨心淨見淨度疑淨復有四法謂四知可受知受可行知行可樂知樂可捨知捨復有四法謂四威儀可行知行可住知住可坐知坐可臥知臥復有四法謂四思惟少思惟廣思惟無量思惟無所有思惟復有四法謂四記論決定記論分別記論詰問記論止住記論復有四法謂佛四不護法如來身行淸淨無有闕漏可自防護口行淸淨意行淸淨命行淸淨亦復如是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제(聖諦)로서 고성제(苦聖諦)고집성제(苦集聖諦)고멸성제(苦滅聖諦)고출요성제(苦出要聖諦)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문과(沙門果)로서 수다원과(須陀洹果)사다함과(斯陀含果)아나함과(阿那含果)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실처(實處)시처(施處)지처(智處)지식처(止息處)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법지(法智)미지지(未知智)등지(等智)지타인심지(知他人心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변재(辯才)로서 법변(法辯)의변(義辯)사변(詞辯)응변(應辯)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식주처(識住處)로서 색식주(色識住)는 색을 연()으로 하여 색()에 머물며 애()와 더불어 더하고 자라난다[增長]. ()()()도 또한 그와 같이 머문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으로서 욕액(欲扼)유액(有扼)견액(見扼)무명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액(無扼)으로서 무욕액(無欲扼)무유액(無有扼)무견액(無見扼)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으로서 계정(戒淨)심정(心淨)견정(見淨)도의정(度疑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로서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줄 알며, 즐겨야 할 것을 즐길 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위의(威儀)로서 가야 할 때에 갈 줄 알고, 머물러야 할 때에 머물 줄 알며, 앉아야 할 때에 앉을 줄 알고, 누워야 할 때에 누울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유(思惟)로서 소사유(少思惟)광사유(廣思惟)무소유사유(無所有思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기론(記論)으로서 결정기론(決定記論)분별기론(分別記論)힐문기론(詰問記論)지주기론(止住記論)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의 4불호법(不護法)으로서 여래는 신행(身行)이 청정하고 모자라거나[] []이 없어 저절로 방호(防護)된다. 구행(口行)의 청정의행(意行)의 청정명행(命行)의 청정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일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五正法謂五入眼色耳聲鼻香舌味身觸復有五法謂五受陰色受陰識受陰復有五法謂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戲蓋疑蓋復有五法謂五下結身見結戒盜結疑結貪欲結瞋恚結復有五法謂五上結色愛無色愛無明復有五法謂五根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復有五法謂五力信力精進力念力定力慧力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다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5()으로서 눈의 빛깔[眼色]귀의 소리[耳聲]코의 냄새[鼻香]혀의 맛[舌味]몸의 닿임[身觸]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으로서 색수음(色受陰)수수음(受受陰)상수음(想受陰)행수음(行受陰)식수음(識受陰)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로서 탐욕개(貪欲盖)진에개(?)수면개(睡眠盖)도희개(掉戱盖)의개(疑盖)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하결(下結)로서 신견결(身見結)계도결(戒盜結)의결(疑結)탐욕결(貪欲結)진에결()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상결(上結)로서 색애(色愛)무색애(無色愛)무명(無明)()()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으로서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으로서 신력(信力)정진력(精進力)염력(念力)정력(定力)혜력(慧力)이다.

 

 

復有五法謂滅盡枝一者比丘信佛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足二者比丘無病身常安隱三者質直無有諛諂能如是者如來則示涅槃徑路四者自專其心使不錯亂昔所諷誦憶持不忘五者善於觀察法之起滅以賢聖行盡於苦本復有五法謂五發非時發虛發非義發虛言發無慈發復有五法謂五善發時發實發義發和言發慈心發復有五法謂五憎嫉住處憎嫉檀越憎嫉利養憎嫉色憎嫉法憎嫉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멸진지(滅盡枝)로서 첫째 비구는 불여래(佛如來)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10()를 구족한 이를 믿는 것이요, 둘째 비구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는 순박하고 곧아 아첨이 없는 것이니 능히 이러한 자에게 여래께서는 곧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이신다. 넷째는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란(錯亂)하지 않게 하여 전에 외운 것을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로서 비시발(非時發)허발(虛發)비의발(非義發)허언발(虛言發)무자발(無慈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선발(善發)로서 시발(時發)실발(實發)

(義發)화언발(和言發)자심발(慈心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5증질(憎嫉)로서 주처증질(住處憎嫉)단월증질(檀越憎嫉)이양증질(利養憎嫉)색증질(色憎嫉)법증질(法憎嫉)이다.

 

 

復有五法謂五趣解脫一者身不淨想二者食不淨想三者一切行無常想四者一切世間不可樂想五者死想復有五法謂五出要界一者比丘於欲不樂不動亦不親近但念出要樂於遠離親近不怠其心調柔出要離欲彼所因欲起諸漏纏亦盡捨滅而得解脫是爲欲出要瞋恚出要嫉妬出要色出要身見出要亦復如是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취해탈(趣解脫)로서 첫째는 몸의 부정상(不淨想)이요, 둘째는 음식의 부정상(不淨想)이며, 셋째는 일체행의 무상상(無常想)이요, 넷째는 일체 세간의 불가락상(不可樂想)이며, 다섯째는 죽음의 상[死想]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출요계(出要界)로서 첫째는 비구는 욕심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동요되지도 않으며 또 친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요(出要)를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즐기고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다루어 부드럽게 하고 출요로 욕심을 여의며 저 욕심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얽매임도 또한 다 버리고 멸하여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 한다. 진에출요(出要)질투출요(嫉妬出要)색출요(色出要)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그와 같다.

 

 

復有五法謂五喜解脫入若比丘精勤不懈樂閑靜處專念一心未解得解未盡得盡未安得安何謂五於是比丘聞如來說法或聞梵行者說或聞師長說法思惟觀察分別法義心得歡喜得歡喜已得法愛得法愛已身心安隱身心安隱已則得禪定得禪定已得實知見是爲初解脫入於是比丘聞法喜已受持諷誦亦復歡喜爲他人說亦復歡喜思惟分別亦復歡喜於法得定亦復如是復有五法謂五人中般涅槃生般涅槃無行般涅槃有行般涅槃上流阿迦尼諸比丘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 의 대치(꾸짖을 타) 신화(神話) 속의 인명(人名)에 쓰임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희해탈입(喜解脫入)이다.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마음을 오로지 하면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할 수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던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나니,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여기서 비구는 여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梵行者)의 말을 듣거나 혹은 스승[師長]의 설법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의 환희를 얻고, 마음의 환희를 얻고 나면 법애(法愛)를 얻으며, 법애를 얻고 나면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면 곧 선정(禪定)을 얻으며, 선정을 얻고 나면 진실한 지견(知見)을 얻는다. 이것을 처음의 해탈입(解脫入)이라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고 기뻐한 뒤에는 그것을 받아 지녀 외우고, 또한 기뻐하여 남을 위해 설명하며, 또한 기뻐하여 사유(思惟)하고 분별하고 또한 기뻐하여 법에 대해 선정[]을 얻는 것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으로서 중반열반(中般涅槃)생반열반(生般涅槃)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우리는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 5() : 다섯 종류의 아나함(阿那含), 다섯 종류의 불환과(不還果)라고 쓰기도 한다. 즉 불환과의 지위에 오른 성자(聖者)로서,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는데 선후(先後)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섯 종류로 나눈 것이다.

* 중반열반(中般涅槃) : 지위에 오른 성자가 욕계(欲界)에서 죽어 색계(色界)에 태어나는 중유(中有)의 지위로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반열반(般涅槃)에 들게 된다.

* 생반열반(生般涅槃) : 성자가 욕계로부터 색계에 태어나서 오래지 않아 성도(聖道)를 일으켜서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 : 성자가 색계에 태어났으나 수행을 게을리 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 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 : 태어나서 거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 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 : 초선(初禪)에 태어난 불환과의 성자가 다시 위의 하늘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 태어나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諸比丘如來說六正法謂內六入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復有六法謂外六入色入聲入香入味入觸入法入復有六法謂六識身眼識身意識身復有六法謂六觸身眼觸身意觸身復有六法謂六受身眼受身意受身復有六法謂六想身色想聲想香想味想觸想法想復有六法謂六思身色思聲思香思味思觸思法思復有六法謂六愛身色愛身法愛身復有六法謂六淨本若比丘好瞋不捨不敬如來亦不敬法亦不敬眾於戒穿漏染汙不淨好於眾中多生諍訟人所憎惡嬈亂淨眾人不安諸比丘汝等當自內觀設有瞋恨如彼嬈亂者當集和合眾廣設方便拔此諍本汝等又當專念自觀若結恨已滅當更方便遮止其心勿復使起諸比丘戾不諦慳恡嫉妬巧僞虛妄自因己見謬受不捨迷於邪見與邊見俱亦復如是復有六法謂六界地界火界水界風界空界識界復有六法謂六察行眼察色耳聲鼻香舌味身觸意察法

* (패려궂을 흔)악랄하다. 모질다. 잔인하다. 악독하다. 매섭다.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내육입(內六入)으로서 안입(眼入)이입(耳入)비입(鼻入)설입(舌入)신입(身入)의입(意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외육입(外六入)으로서 색입(色入)성입(聲入)향입(香入)미입(味入)촉입(觸入)법입(法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식신(識身)으로서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신식신(身識身)의식신(意識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촉신(觸身)으로서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6수신(受身)으로서 안수신(眼受身)이수신(耳受身)비수신(鼻受身)설수신(舌受身)신수신(身受身)의수신(意受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상신(想身)으로서 색상(色想)성상(聲想)향상(香想)미상(味想)촉상(觸想)법상(法想)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신(思身)으로서 색사(色思)성사(聲思)향사(香思)미사(味思)촉사(觸思)법사(法思)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애신(愛身)으로서 색애신(色愛身)성애신(聲愛身)향애신(香愛身)미애신(味愛身)촉애신(觸愛身)법애신(法愛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쟁본(諍本)이다. 만일 비구가 성내기를 좋아해 버리지 못하고 여래를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법을 공경하지 않고 또한 스님 대중을 공경하지 않으며, ()에 있어서 샘[]이 있고 물들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며,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다투기를 좋아해 남의 미움을 사고 깨끗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며 하늘과 사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안을 관찰[內觀]하라. 만일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렇게 대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화합(和合)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이 다툼의 근본을 뽑아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 하여 스스로 관찰하라. 만일 맺힌 원한이 이미 다했거든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그 마음을 막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성내고 뒤틀어져 자상하지 못하고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활하고 허망하여 스스로 자기 견해로 인해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고도 버리지 못하고 사견(邪見)에서 헤매고 변견(邊見)과 함께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로서 지계(地界)화계(火界)수계(水界)풍계(風界)공계(空界)식계(識界)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찰행(察行)으로서 눈은 빛깔을 살피고 귀는 소리를 살피며, 코는 냄새를 살피고, 혀는 맛을 살피며, 몸은 촉감을 살피고, 뜻은 법을 살피는 것이다.

 

 

復有六法謂六出要界若比丘作是言我修慈心更生瞋恚餘比丘語言汝勿作此言勿謗如來如來不作是說欲使修慈解脫更生瞋恚想無有是處佛言除瞋恚已然後得慈若比丘言我行悲解脫生憎嫉心行喜解脫生憂惱心行捨解脫生憎愛心行無我行生狐疑心行無想行生眾亂想亦復如是復有六法謂六無上見無上聞無上利養無上戒無上恭敬無上憶念無上復有六法謂六思念佛念法念僧念戒念施念天念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출요계(出要界)이다. 만일 비구가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도 다시 진에()가 생긴다'고 한다면, 다른 비구들은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애로움의 해탈[慈解脫]을 닦고자 하면서 다시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 진에() : 십악(十惡)의 하나. 삼독(三毒)의 하나. 자기 의사에 어그러짐에 대하여 성내는 일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다 없앤 뒤에 비로소 자애로움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나는 불쌍히 여기는 해탈[悲解脫]을 행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의 해탈[喜解脫]을 행해도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이 생기며, 버림의 해탈[捨解脫]을 행해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아(無我)의 행을 행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상(無想)의 행을 행해도 숱한 어지러운 생각이 생긴다'고 한다면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무상(無上)으로서 견무상(見無上)문무상(聞無上)이양무상(利養無上)계무상(戒無上)공경무상(恭敬無上)억념무상(憶念無上)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념(思念)으로서 불념(佛念)법념(法念)승념(僧念)계념(戒念)시념(施念)천념(天念)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七正法謂七非法無信無慙無愧少聞懈怠多忘無智復有七法謂七正法有信有慚有愧多聞精進總持多智復有七法謂七識住或有眾生若干種身若干種想天及人是是初識住或有眾生若干種身而一想者梵光音天最初生時是是二識住或有眾生一身若干種想光音天是是三識住或有眾生一身一想遍淨天是是四識住或有眾生空處住識處住不用處住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7비법(非法)으로서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고, 들은 것이 적고, 게으르며, 잊음이 많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정법(正法)으로서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꾸준히 힘쓰고, 모두 기억하며, 지혜가 많은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로서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머물고 식처(識處)에 머물며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

 

 

復有七法謂七勤法一者比丘勤於戒行二者勤滅貪欲三者勤破邪見四者勤於多聞五者勤於精進六者勤於正念七者勤於禪定復有七法謂七想不淨想食不淨想一切世間不可樂想無想無常想無常苦想苦無我想復有七法謂七三昧具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復有七法謂七覺意念覺意法覺意精進覺意喜覺意猗覺意定覺意護覺意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근법(勤法)이다. 첫째는 비구가 계행(戒行)에 힘쓰는 것이고, 둘째는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며, 셋째는 삿된 소견을 깨뜨리려고 애쓰는 것이요, 넷째는 많이 듣기[多聞]를 힘쓰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진(精進)에 힘쓰는 것이요, 여섯째는 바른 생각[正念]에 힘쓰는 것이며 일곱째는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으로서,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 죽음의 생각[死想],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 괴로움은 나[]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삼매구(三昧具)로서 바른 견해[正見]바른 생각[正思]바른 말[正言]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각의(覺意)로서 염각의(念覺意)법각의(法覺意)정진각의(精進覺意)희각의(喜覺意)의각의(?覺意)정각의(定覺意)호각의(護覺意)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八正法謂世八法復有八法謂八解脫色觀色一解脫內無色想觀外色二解脫淨解脫三解脫度色想滅瞋恚想住空處解脫四解脫度空處住識處五解脫度識處住不用處六解脫度不用處住有想無想處七解脫度有想無想處住想知滅八解脫復有八法謂八聖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復有八法謂八人須陀洹向須陀洹斯陀含向斯陀含阿那含向阿那含阿羅漢向阿羅漢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덟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이로움[]과 쇠함[]과 헐뜯음[]기림[]칭찬비방괴로움즐거움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해탈로써 색()을 대하여 색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속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요, ()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해탈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견해바른 생각바른 말바른 행동바른 생활바른 방편바른 기억바른 선정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으로서 수다원향(須陀洹向)수다원사다함향(斯陀含向)사다함아나함향(阿那含向)아나함아라한향(阿羅漢向)아라한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九正法所謂九眾生居或有眾生若干種身若干種想天及人是是初眾生居復有眾生若干種身而一想者梵光音天最初生時是是二眾生居復有眾生一身若干種想光音天是是三眾生居復有眾生一身一想遍淨天是是四眾生居復有眾生無想無所覺知無想天是是五眾生居復有眾生空處住是六眾生居復有眾生識處住是七眾生居復有眾生不用處住是八眾生居復有眾生住有想無想處是九眾生居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아홉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9중생거(衆生居)로서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중생거(衆生居)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르니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공처에 머무는데 이것이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식처(識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諸比丘如來說十正法所謂十無學法無學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念正方便正定正智正解脫是爲如來所說正法當共撰集以防諍訟使梵行久立多所饒益人獲安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열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10무학법(無學法)으로서 무학의 바른 견해바른 생각바른 말바른 행동바른 생활바른 기억바른 방편바른 선정바른 지혜바른 해탈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爾時世尊印可舍利弗所說諸比丘聞舍利弗所說歡喜奉行

 

그 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의 말을 인가(印可)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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