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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佛 心***/長阿含經

長阿含經 10. 十上經

by 산산바다 2015. 2. 10.

산과바다

희방사 대웅보전

 

 

長阿含經

 

10. 十上經 십상경

 

십상경(十上經)은 중집경(衆集經)과 같은 경우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설법케 하신 것이다. 열 가지로 법상(法相)을 분류하고 그 10법을 다시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총 550가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상법(上法)을 닦으면 온갖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러 안온함을 얻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 십상경(十上經): 경의 이역 경전으로는 후한 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이 있으며, 참고가 될 만한 경문으로는 장아함경 제89번째 소경인 중집경(衆集經)과 제911번째 소경인 증일경(增一經)이 있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遊鴦伽國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詣瞻婆城止宿伽伽池側。  以十五日月滿時世尊在露地坐大眾圍遶竟夜說法告舍利弗今者四方諸比丘集皆各精勤捐除眠睡欲聞說法吾患背痛欲小止息卿今可爲諸比丘說法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앙가국(鴦伽國)을 유행하시면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첨파(瞻婆)성으로 나아가 가가(伽伽)못 가에 머무시면서 보름날 달이 가득 찼을 때, 세존께서 맨 땅에 앉으시어 대중들에게 둘러싸인 채 밤새도록 설법하셨다.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정근하면서 잠자지 않고 설법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등병을 앓아 조금 쉬고 싶으니, 너는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舍利弗受佛敎已爾時世尊即四牒僧伽梨偃右脅臥如師子累足而臥爾時耆年舍利弗告諸比丘今我說法上中下言皆悉眞正義味具足梵行淸淨汝等諦聽善思念之當爲汝說

 

사리불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 때 장로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설법하는 상하의 말은 다 참되고 바르며 의미(義味)를 구족하고 범행(梵行)이 청정하다.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諸比丘受敎而聽舍利弗告諸比丘有十上法除眾結縛得至泥洹盡於苦際又能具足五百五十法今當分別汝等善聽諸比丘有一成法一修法一覺法一滅法一退法一增法一難解法一生法一知法一證法云何一成法謂於諸善法能不放逸云何一修法謂常自念身云何一覺法謂有漏觸云何一滅法謂是我慢云何一退法謂不惡露觀云何一增法謂惡露觀云何一難解法謂無間定云何一生法謂有漏解脫云何一知法謂諸眾生皆仰食存云何一證法謂無礙心解脫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열 가지 상법(上法)이 있다. 그것은 온갖 결박(結縛)을 끊고 니원(泥洹열반)에 이르게 하여 괴로움의 끝[苦際]을 다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 550가지 법을 구족하고 있는데 이제 마땅히 밝혀 주리니 그대들은 잘 들으라.

 

모든 비구들이여, 1성법(成法)1수법(修法)1각법(覺法)1멸법(滅法)1퇴법(退法)1증법(增法)1난해법(難解法)1생법(生法)1지법(知法)1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1성법이라 하는가? 모든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수법이라 하는가? 항상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각법이라 하는가? 번뇌를 내는 접촉[有漏觸]을 말한다.

어떤 것을 1멸법이라 하는가? 아만(我慢)을 말한다.

어떤 것을 1퇴법(退法)이라 하는가? 오로관(惡露觀)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증법이라 하는가? 오로관을 말한다.

어떤 것을 1난해법이라 하는가? 간단이 없는[無間] 선정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생법이라 하는가? 유루해탈(有漏解脫)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지법이라 하는가? 모든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러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1증법이라 하는가? 걸림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말한다.

 

 

又有二成法二修法二覺法二滅法二退法二增法二難解法二生法二知法二證法云何二成法謂知慙知愧云何二修法謂止與觀云何二覺法謂名與色云何二滅法謂無明云何二退法謂毀戒破見云何二增法戒具見具云何二難解法有因有緣眾生生垢有因有緣眾生得淨云何二生法盡智無生智云何二知法謂是處非處云何二證法謂明與解脫

 

2성법(成法)2수법(修法)2각법(覺法)2멸법(滅法)2퇴법(退法)2증법(增法)2난해법(難解法)2생법(生法)2지법(知法)2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2성법이라 하는가? 제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수법이라 하는가? ()와 관()을 말한다. 어떤 것을 2각법이라 하는가? ()과 색()을 말한다.

어떤 것을 2멸법이라 하는가? 무명(無明)과 애()를 말한다.

어떤 것을 2퇴법이라 하는가? 계율을 허물고 바른 견해를 깨뜨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증법(增法)이라 하는가? 계율을 갖추고 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난해법이라 하는가? ()이 있고 연()이 있어 중생에게 때[]가 생기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 중생이 청정해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2생법이라 하는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어떤 것을 2지법이라 하는가? 시처(是處有爲界)와 비처(非處有爲處)를 말한다.

어떤 것을 2증법(證法)이라 하는가? ()과 해탈*解脫)을 말한다.

 

 

又有三成法三修法三覺法三滅法三退法三增法三難解法三生法三知法三證法云何三成法一者親近善友二者耳聞法音三者法法成就云何三修法謂三三昧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云何三覺法謂三受苦受樂受不苦不樂受云何三滅法謂三愛欲愛有愛無有愛云何三退法謂三不善根貪不善根恚不善根癡不善根云何三增法謂三善根無貪善根無恚善根無癡善根云何三難解法謂三難解賢聖難解聞法難解如來難解云何三生法謂三相息止相精進相捨離相云何三知法謂三出要界欲出要至色界色界出要至無色界捨離一切諸有爲法彼名爲盡云何三證法謂三明宿命智天眼智漏盡智諸比丘是爲三十法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3성법(成法)3수법(修法)3각법(覺法)3멸법(滅法)3퇴법(退法)3증법(增法)3난해법(難解法)3생법(生法)3지법(知法)3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3성법이라 하는가? 첫째는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요, 둘째는 귀로 설법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셋째는 법다운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3수법이라 하는가? 3삼매(三昧)를 말하나니, 곧 공()삼매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이다.

어떤 것을 3각법이라 하는가? 3()를 말하나니, 곧 고수(苦受)낙수(樂受)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어떤 것을 3멸법이라 하는가? 3()를 말하나니, 곧 욕애(欲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이다.

어떤 것을 3퇴법이라 하는가? 3불선근(不善根)을 말하나니, 곧 탐불선근(貪不善根)에불선근(?不善根)치불선근(癡不善根)이다.

어떤 것을 3증법이라 하는가? 3선근을 말하나니, 곧 무탐선근(無貪善根)무에선근(?善根)무치선근(無癡善根)이다.

어떤 것을 3난해법이라 하는가? 세 가지 알기 어려운 것[難解]을 말하나니, 곧 현성(賢聖)에 대해 알기 어렵고, 법을 들어도 알기 어려우며, 여래에 대하여 알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3생법이라 하는가? 3()을 말하나니, 곧 식지상(息止相)정진상(精進相)사리상(捨離相)이다.

어떤 것을 3지법이라 하는가? 3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곧 욕계(欲界)의 경계를 벗어나 색계(色界)에 이르고, 색계의 경계를 벗어나 무색계에 이르러, 일체의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버려 여의는 것으로서 그것을 다함[]이라고 이름 한다.

어떤 것을 3증법이라 하는가? 3()을 말하나니, 곧 숙명지(宿命智)천안지(天眼智)누진지(漏盡智)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3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四成法四修法四覺法四滅法四退法四增法四難解法四生法四知法四證法云何四成法謂四輪法一者住中國二者近善友三者自謹愼四者宿植善本云何四修法謂四念處比丘內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內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捨世貪憂法觀亦復如是云何四覺法謂四食觸食念食識食云何四滅法謂四受欲受我受戒受見受

* (둥글 단)

 

다시 4성법(成法)4수법(修法)4각법(覺法)4멸법(滅法)4퇴법(退法)4증법(增法)4난해법(難解法)4생법(生法)4지법(知法)4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4성법이라 하는가? 4윤법(輪法)을 말하나니, 첫째는 중국(中國中印度)에 머물러 사는 것이고, 둘째는 선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셋째는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요, 넷째는 전생[宿]에 선의 근본[根本]을 심은 것이다.

 

어떤 것을 4수법이라 하는가? 4념처(念處)를 말하나니, 곧 비구는 내신신(內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외신신(外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내외신신(內外身身)을 관하되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의법(受意法)을 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4각법이라 하는가? 4()을 말하나니, 곧 단식()촉식(觸食)염식(念食)식식(識食)이다.

어떤 것을 4멸법이라 하는가? 4()를 말하나니, 곧 욕수(欲受)아수(我受)계수(戒受)견수(見受)이다.

 

 

云何四退法謂四扼欲扼有扼見扼無明扼云何四增法謂四無扼無欲扼無有扼無見扼無無明扼云何四難解法謂有四聖諦苦諦集諦滅諦道諦云何四生法謂四智法智未知智等智知他心智云何四知法謂四辯才法辯義辯辭辯應辯云何四證法謂四沙門果須陀洹果斯陀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諸比丘是爲四十法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4퇴법이라 하는가? 4()을 말하나니, 곧 욕액(欲扼)유액(有扼)견액(見扼)무명액(無明扼)이다.

어떤 것을 4증법(增法)이라 하는가? 4무액(無扼)을 말하나니, 곧 무욕액(無欲扼)무유액(無有扼)무견액(無見扼)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어떤 것을 4난해법이라 하는가? 4성제(聖諦)를 말하나니, 곧 고제(苦諦)집제(集諦)진제(盡諦滅諦)도제(道諦)이다.

어떤 것을 4생법이라 하는가? 4지를 말하나니, 곧 법지(法智)미지지(未知智)등지지(等知智)타심지(他心智)이다.

어떤 것을 4지법이라 하는가? 4변재를 말하나니, 곧 법변(法辯)의변(義辯)사변(辭辯)응변(應辯)이다.

어떤 것을 4증법(證法)이라 하는가? 4사문과(沙門果)를 말하나니, 곧 수다원과(須陀洹果)사다함과(斯陀含果)아나함과(阿那含果)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4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五成法五修法五覺法五滅法五退法五增法五難解法五生法五知法五證法云何五成法謂五滅盡枝一者信佛如來至眞十號具足二者無病身常安隱三者質直無有諛諂直趣如來涅槃徑路四者專心不亂諷誦不忘五者善於觀察法之起滅以賢聖行盡於苦本云何五修法謂五根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云何五覺法謂五受陰色受陰識受陰

 

다시 5성법(成法)5수법(修法)5각법(覺法)5멸법(滅法)5퇴법(退法)5증법(增法)5난해법(難解法)5생법(生法)5지법(知法)5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5성법이라 하는가? 5멸진지(滅盡枝)를 말하나니, 첫째는 불()여래(如來)지진(至眞) 10()를 구족하신 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는 질박하고 곧고 아첨함이 없어 바로 여래(如來)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을 오로지해 산란하지 않고 항상 외워 잊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5수법이라 하는가? 5()을 말하나니, 곧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이다. 어떤 것을 5각법이라 하는가? 5수음(受陰)을 말하나니, 곧 색수음(色受陰)수수음(受受陰)상수음(想受陰)행수음(行受陰)식수음(識受陰)이다.

 

 

云何五滅法謂五蓋貪欲蓋瞋恚蓋眠睡蓋掉戲蓋疑蓋云何五退法謂五心礙結一者比丘疑佛疑佛已則不親近不親近已則不恭敬是爲初心礙結又比丘於法於眾於戒有穿漏行不眞正行爲汙染行不親近戒亦不恭敬是爲四心礙結又復比丘於梵行人生惡向心心不喜樂惡言而毁罵之是爲五心礙結云何五增法謂五喜本一悅二念三猗四樂五定

* 의 대치(거칠 조)

 

어떤 것을 5멸법이라 하는가? 5()를 말하나니, 곧탐욕개(貪欲蓋)진에개(?)수면개(睡眠蓋)도희개(?)의개(疑蓋)이다.

 

어떤 것을 5퇴법이라 하는가?

5심애결(心碍結)을 말하나니, 첫째는 비구가 부처님을 의심하는 것이니, 부처님을 의심하면 곧 친근하지 않고 친근하지 않으면 곧 공경하지 않나니, 이것이 초심애결(初心碍結)이다. 또 비구가 법()에 대해서, 승가[]에 대해서, ()에 대해서 뚫려 새는[穿漏] 행과 참되고 바르지 않은 행과 더럽고 물든 행이 있어 계()를 친근하지도 않고 또한 공경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이 4심애결이다. 또 비구가 범행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마음을 내고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아 추악한 말로 헐뜯어 꾸짖는 것, 이것을 5심애결이라 한다.

 

어떤 것을 5증법(增法)이라 하는가?

5희본(喜本)을 말하나니, 첫째는 기쁨[]이요, 둘째는 생각[]이며, 셋째는 의지함[]이요, 넷째는 즐거움[]이며, 다섯째는 선정[]이다.

 

 

云何五難解法謂五解脫入若比丘精勤不懈樂閑靜處專念一心未解得解未盡得盡未安得安何謂五若比丘聞佛說法或聞梵行者說或聞師長說思惟觀察分別法義心得歡喜得歡喜已便得法愛得法愛已身心安隱身心安隱已則得禪定得禪定已得如實智是爲初解脫入於是比丘聞法歡喜受持諷誦亦復歡喜爲他人說亦復歡喜思惟分別亦復歡喜於法得定亦復如是

 

어떤 것을 5난해법이라 하는가?

5해탈입(解脫入)을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전념일심(專念一心)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고 다하지 못한것[未盡]을 다하며, 편안하지 못한 것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만일 비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의 말을 듣거나 혹은 장로[師長]의 말을 듣고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에 곧 기쁨을 얻고, 기쁨을 얻은 뒤에는 다시 법애(法愛)를 얻고, 법애를 얻은 뒤에는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며, 몸과 마음이 안온해진 뒤에는 곧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은 뒤에는 여실한 지혜를 얻을 것이다.

 

이것을 초해탈입(初解脫入)이라고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는 것을 기뻐하고, 받아 지니고 외우는 것 또한 기뻐하며, 남을 위해 설법하는 것 또한 기뻐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 또한 기뻐하며, 법에서 선정을 얻어 기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云何五生法謂賢聖五智定一者修三昧現樂後樂生內外智二者賢聖無愛生內外智三者諸佛賢聖之所修行生內外智四者猗寂滅相獨而無侶而生內外智五者於三昧一心入一心起生內外智云何五知法謂五出要界一者比丘於欲不樂不念亦不親近但念出要樂於遠離親近不怠其心調柔出要離欲因欲起漏亦盡捨滅而得解脫是爲欲出要瞋恚出要嫉妬出要色出要身見出要亦復如是云何五證法謂五無學聚無學戒聚定聚慧聚解脫聚解脫知見聚是爲五十法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5생법이라 하는가?

현성(賢聖)5지정(智定)을 말하나니, 첫째는 삼매를 닦아 현생에도 즐겁고 내생에도 즐거워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둘째는 현성의 무애(無愛)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과 현성들이 수행했던 것으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넷째는 적멸상(寂滅相)을 의지해 도반 없이 홀로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삼매에 한마음으로 들고 한마음으로 일어나 안팎의 지혜를 내는 것이다.

 

어떤 것을 5지법이라 하는가?

5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첫째는 비구가 탐욕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친근히 하지도 않고 다만 출요(出要)만을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며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면 그 마음은 조화롭고 부드러워진다. 출요로 욕심을 여의면 욕심으로 인해 일어난 번뇌[]도 또한 다 멸해 버려 해탈을 증득하게 된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고 한다. 진에출요(?出要)질투출요(嫉妬出要)색출요(色出要)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5증법(證法)이라 하는가?

5무학취(無學聚)를 말하나니, 곧 무학의 계취(戒聚)정취(定聚)혜취(慧聚)해탈취(解脫聚)해탈지견취(解脫知見聚)이다. 이것을 5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六成法六修法六覺法六滅法六退法六增法六難解法六生法六知法六證法云何六成法謂六重法若有比丘修六重法可敬可重和合於眾無有諍訟獨行無雜云何六於是比丘身常行慈敬梵行者住仁愛心名曰重法可敬可重和合於眾無有諍訟獨行無雜復次比丘口慈意慈以法得養及鉢中餘與人共之不懷彼此復次比丘聖所行戒不犯不毁無有染汙智者所稱善具足持成就定意復次比丘成就賢聖出要平等盡苦正見及諸梵行是名重法可敬可重和合於眾無有諍訟獨行不雜

 

다시 6성법(成法)6수법(修法)6각법(覺法)6멸법(滅法)6퇴법(退法)6증법(增法)6난해법(難解法)6생법(生法)6지법(知法)6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6성법이라 하는가?

6중법(重法)을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6중법을 닦으면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가 몸으로 항상 자애(慈愛)를 행해 범행자(梵行者)를 공경하고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에 머물면 그것을 이름하여 중법(重法)이라 하나니,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여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다시 또 비구가 입의 자애와 뜻의 자애를 행해 법으로써 공양을 받고 또 발우에 남은 것을 남과 나누어 저와 남[彼此]이라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다시 비구는 현성의 행하는 계()를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아 물들고 더러움이 없으며, 지자(智者)가 칭찬하는 계를 잘 구족하고 지녀 정의(定意)를 성취하는 것이다.

다시 비구가 현성의 출요법(出要法)을 평등하게 성취하여 괴로움을 다하며 바른 견해와 모든 범행을 가지면 이것을 이름하여 중법이라 하나니, 그것은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대중과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홀로 다니더라도 잡됨이 없을 것이다.

 

 

云何六修法謂六念念佛念法念僧念戒念施念天云何六覺法謂六內入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云何六滅法謂六愛色愛聲愛法愛云何六退法謂六不敬法不敬佛不敬法不敬僧不敬戒不敬定不敬父母云何六增法謂六敬法敬佛敬法敬僧敬戒敬定敬父母云何六難解法謂六無上見無上聞無上利養無上戒無上恭敬無上念無上云何六生法謂六等法於是比丘眼見色無憂無喜住捨專念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不喜不憂住捨專念

 

어떤 것을 6수법이라 하는가? 6()을 말하나니,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염계(念戒)염시(念施)염천(念天)이다 

어떤 것을 6각법이라 하는가? 6내입(內入)을 말하나니, 안입(眼入)이입(耳入)비입(鼻入)설입(舌入)신입(身入)의입(意入)이다 

어떤 것을 6멸법이라 하는가? 6()를 말하나니, 색애(色愛)성애(聲愛)향애(香愛)미애(味愛)촉애(觸愛)법애(法愛)이다 

어떤 것을 6퇴법이라 하는가? 6불경법(不敬法)을 말하나니,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不敬佛],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不敬法], 스님을 공경하지 않고[不敬僧], 계를 공경하지 않으며, 선정을 공경하지 않고[不敬定],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不敬父母]이다.

 

어떠한 것을 6증법(增法)이라 하는가? 6경법(敬法)을 말하나니, 부처님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敬法], 스님을 공경하고[敬僧], 계를 공경하며[敬戒], 선정을 공경하고[敬定], 부모를 공경하는 것[敬父母]이다.

 

어떤 것을 6난해법이라 하는가? 6무상(無上)을 말하나니, 견무상(見無上)문무상(聞無上)이양무상(利養無上)계무상(戒無上)공경무상(恭敬無上)염무상(念無上)이다.

 

어떤 것을 6생법이라 하는가? 6등법(等法)을 말하나니, 여기서 비구는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걱정이 없고 기쁨도 없이 버림[]에 머물러 생각을 오로지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며, 법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도 걱정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버림에 머물러 생각을 오로지하는 것이다.

 

 

云何六知法謂六出要界若比丘作是言我修慈心更生瞋恚餘比丘言汝勿作此言勿謗如來如來不作是說欲使修慈解脫更生瞋恚者無有是處佛言除瞋恚已然後得慈若比丘言我行悲解脫生憎嫉心行喜解脫生憂惱心行捨解脫生憎愛心行無我行生狐疑心行無想行生眾亂想亦復如是云何六證法謂六神通一者神足通證二者天耳通證三者知他心通證四者宿命通證五者天眼通證六者漏盡通證是爲六十法諸比丘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6지법이라 하는가?

6출요계(出要界)를 말하나니, 만일 비구가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닦는다"고 말하면서 또 성을 낸다면 다른 비구들이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해탈(慈解脫)을 닦으면서 다시 성을 낸다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없앤 뒤에야 비로소 자애로움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나는 비해탈(悲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증오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거나, "희해탈(喜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을 내거나, "사해탈(捨解脫)을 행한다"고 하면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거나, "[]라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행을 행한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마음을 내거나, "무상행(無想行)을 행한다"고 하면서 숱한 어지러운 생각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6증법(證法)이라 하는가?

6신통을 말하나니, 첫째는 신족통증(神足通證)이요, 둘째는 천이통증(天耳通證)이요, 셋째는 지타심통증(知他心通證)이요, 넷째는 숙명통증(宿命通證)이요, 다섯째는 천안통증(天眼通證)이요, 여섯째는 누진통증(漏盡通證)이다. 이것을 60가지 법이라 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나니, 여래께서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七成法七修法七覺法七滅法七退法七增法七難解法七生法七知法七證法云何七成法謂七財信財戒財慙財愧財聞財施財慧財爲七財云何七修法謂七覺意於是比丘修念覺意依無欲依寂滅依遠離修法修精進修喜修猗修定修捨依無欲依寂滅依遠離

 

다시 7성법(成法)7수법(修法)7각법(覺法)7멸법(滅法)7퇴법(退法)7증법(增法)7난해법(難解法)7생법(生法)7지법(知法)7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7성법이라 하는가?

7()를 말하나니, 믿음의 재물[信財]계율의 재물[戒財]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남에 대한 부끄러움의 재물[愧財]들음의 재물[聞財]보시의 재물[施財]지혜의 재물[慧財]이니 이것을 7재라 한다.

 

어떤 것을 7수법이라 하는가?

7각의(覺意)를 말한다. 여기서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無欲]에 의지하고, 적멸(寂滅)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遠離]에 의지하는 것이다. 법각의(法覺意)를 닦고, 정진각의(精進覺意)를 닦고, 희각의(喜覺意)를 닦고, 의각의(?覺意)를 닦고, 정각의(定覺意)를 닦고, 사각의(捨覺意)를 닦을 때 탐욕 없는 것에 의지하고 적멸에 의지하며 멀리 여읨에 의지하는 것이다.

 

 

云何七覺法謂七識住處若有眾生若干種身若干種想天及人是是初識住復有眾生若干種身而一想者梵光音天最初生時是是二識住復有眾生一身若干種想光音天是是三識住復有眾生一身一想徧淨天是是四識住或有眾生空處住是五識住或識處住是六識住或不用處住是七識住云何七滅法謂七使法欲愛使有愛使見使慢使瞋恚使無明使疑使

 

어떤 것을 7각법이라 하는가?

7식주처(識住處)를 말한다. 만약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에 각기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니 하늘과 사람이 이것이며,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각기 다른 몸에 한 생각을 하는 것이니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날 때가 이것이며,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니 광음천이 이것이며,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에 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변정천(遍淨天)이 이것이며, 이것은 네 번째 식주이다. 혹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다섯 번째 식주이고, 혹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여섯 번째 식주이다. 혹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은 일곱 번째 식주이다.

 

어떤 것을 7멸법이라 하는가?

7사법(使法)을 말하나니, 욕애사(欲愛使)유애사(有愛使)견사(見使)만사(慢使)진에사(使)무명사(無明使)의사(疑使)이다.

 

 

云何七退法謂七非法是比丘無信無慙無愧少聞懈墮多忘無智云何七增法謂七正法於是比丘有信有慚有愧多聞不懈墮强記有智云何七難解法謂七正善法於是比丘好義好法好知時好知足好自攝好集眾好分別人云何七生法謂七想不淨想食不淨想一切世間不可樂想死想無常想無常苦想苦無我想

 

어떤 것을 7퇴법이라 하는가?

7비법(非法)을 말하나니, 비구가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며, 다른 이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들은 것이 적으며, 게으르고, 잘 잊으며, 지혜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증법(增法)이라 하는가?

7정법을 말하나니, 비구가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이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게으르지 않고 굳게 기억하며 지혜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7난해법이라 하는가?

7정선법(正善法)을 말하나니, 비구가 의()를 좋아하고, 법을 좋아하며, []를 잘 아는 것을 좋아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거두기[自攝]를 좋아하고, 비구 대중 모으기를 좋아하며, 사람을 분별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생법이라 하는가?

7()을 말하나니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 음식은 부정한 것이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에 대한 생각,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한 것이어서 괴롭다는 생각, 괴로운[] 것으로서 나[]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云何七知法謂七勤勤於戒行勤滅貪欲勤破邪見勤於多聞勤於精進勤於正念勤於禪定云何七證法謂七漏盡力於是漏盡比丘於一切諸苦出要如實知見觀欲如火坑亦如刀劍知欲見欲不貪於欲心不住欲漏盡比丘逆順觀察如實覺知如實見已世間貪嫉惡不善法不漏不起修四念處多修多行五根五力七覺意賢聖八道多修多行諸比丘是爲七十法如實不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7지법이라 하는가?

7()을 말하니, 계행(戒行)에 힘쓰고, 탐욕 없애기에 힘쓰며, 사견(邪見)을 깨뜨리기에 힘쓰고, 많이 듣기에 힘쓰며, 정진에 힘쓰고, 바른 생각에 힘쓰며,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증법(證法)이라 하는가?

7누진력(漏盡力)을 말한다. 여기서 번뇌가 다한 비구는 일체 모든 고()()()()()출요(出要)에 대하여 진실되게 보아 알고, 욕심[]을 관찰하기를 불구덩이나 칼과 같이 본다. 욕심을 알고 욕심을 보아, 욕심을 탐하지 않고 마음이 욕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번뇌가 다한 비구[漏盡比丘]는 역순으로 관찰하여, 진실되게 깨달아 알고 진실되게 본다. 그래서 세간의 탐욕과 질투처럼 악하고 불선한 법으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4념처(念處)를 닦되 많이 닦고 많이 행하며, 5()5()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를 많이 닦고 많이 행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7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나니,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八成法八修法八覺法八滅法八退法八增法八難解法八生法八知法八證法云何八成法謂八因緣不得梵行而得智得梵行已智增多云何爲八於是比丘依世尊住或依師長或依智慧梵行者住生慙愧心有愛有敬是謂初因緣未得梵行而得智得梵行已智增多復次依世尊住隨時請問此法云何義何所趣諸尊長即爲開演甚深義理是爲二因緣旣聞法已身心樂靜是爲三因緣旣樂靜已不爲遮道無益雜論彼到眾中或自說法或請他說猶復不捨賢聖默然是爲四因緣多聞廣博守持不忘諸法深奧上中下善義味諦誠梵行具足聞已入心見不流動是爲五因緣修習精勤滅惡增善勉力堪任不捨斯法是爲六因緣有以智慧知起滅法賢聖所趣能盡苦際是爲七因緣觀五受陰生相滅相此色色集色滅此受識集識滅是爲八因緣未得梵行而有智得梵行已智增多

 

다시 8성법(成法)8수법(修法)8각법(覺法)8멸법(滅法)8퇴법(退法)8증법(增法)8난해법(難解法)8생법(生法)8지법(知法)8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8성법이라고 하는가?

8인연을 말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범행(梵行)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여기서 비구는 세존을 의지해 머물거나, 혹 장로[師長]를 의지해 머물거나, 혹 지혜 있는 운 범행자(梵行者)를 의지해 머물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다른 이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이것을 첫 번째 인연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 범행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를 얻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되는데 다시 세존을 의지해 머물면서 때에 따라 청해 묻는다. "이 법은 무엇을 뜻하며, 어디로 나아가는 것입니까?"

그러면 모든 존장(尊長)들은 그를 위하여 깊은 뜻을 열어 설명하는데 이것을 두 번째 인연이라 한다.

이미 법을 들어 마치고 몸과 마음이 즐겁고 고요해지면 이것을 세 번째 인연이라고 한다.

이미 즐겁고 고요해지고 나서는 도를 방해하는 쓸데없는 잡담을 하지 않으며 대중 속으로 나아가 혹은 스스로 설법하기도 하고 혹은 남에게 설법을 청하기도 하며 다시 현성들의 침묵을 저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네 번째 인연이라 한다.

심오하고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의 의미가 훌륭하고 진실하고 진리가 담긴 법을 많이 듣고 널리 알며 지니고 지켜 잊지 않고 범행(梵行)을 구족하고, 듣고 나서 마음에 들어가 견해가 흔들리지 않으면 이것을 다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닦아 익히기를 부지런히 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늘여가며 힘써 감당하여 법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여섯 번째 인연이라 한다.

지혜로써 일어나고 멸하는 법을 알고 현성이 지향하는 것을 알아 능히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면, 이것을 일곱 번째 인연이라 한다.

5수음(受陰)의 생겨나는 모양과 멸하는 모양을 관찰하여 "이것은 색()이요, 색집(色集)이며, 색멸(色滅)이다. 이것은 수(), 수집(受集)이며, 수멸(受滅)이다. 이것은 상()이요, 상집(想集)이며, 상멸(想滅)이다. 이것은 행()이요, 행집(行集)이며, 행멸(行滅)이다. 이것은 식()이요, 식집(識集)이며, 식멸(識滅)이다"라고 안다면, 이것을 여덟 번째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아직 범행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지혜가 생기고 범행을 얻고 나면 지혜는 더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云何八修法謂賢聖八道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云何八覺法謂世八法云何八滅法謂八邪邪見邪思邪語邪業邪命邪方便邪念邪定云何八退法謂八懈怠法何謂八懈怠比丘乞食不得食便作是念我於今日下村乞食不得身體疲極不能堪任坐禪經行今宜臥息懈怠比丘即便臥息不肯精勤未得欲得未獲欲獲未證欲證是爲初懈怠懈怠比丘得食旣足復作是念我朝入村乞食得食過足身體沈重不能堪任坐禪經行今宜寢息懈怠比丘即便寢息不能精勤未得欲得未獲欲獲未證欲證懈怠比丘設少執事便作是念我今日執事身體疲極不能堪任坐禪經行今宜寢息懈怠比丘即便寢息懈怠比丘設欲執事便作是念明當執事必有疲極今者不得坐禪經行當豫臥息懈怠比丘即便臥息懈怠比丘設少行來便作是念我朝行來身體疲極不能堪任坐禪經行我今宜當臥息懈怠比丘即便臥息懈怠比丘設欲少行便作是念我明當行必有疲極今者不得坐禪經行當豫寢息懈怠比丘即尋寢息不能精勤未得欲得未獲欲獲未證欲證是爲六懈怠比丘設遇小患便作是念我得重病困篤羸瘦不能堪任坐禪經行當須寢息懈怠比丘即尋寢息不能精勤未得欲得未獲欲獲未證欲證懈怠比丘所患已差復作是念我病差未久身體羸瘦不能堪任坐禪經行宜自寢息懈怠比丘即尋寢息不能精勤未得欲得未獲欲獲未證欲證云何八增法謂八不怠

 

어떤 것을 8수법이라고 하는가?

현성의 여덟 가지 도를 말하나니, 바른 견해[正見]바른 뜻[正志]바른 말[正語]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이다.

 

어떤 것을 8각법이라 하는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말하나니, 이로움[]쇠함[]헐뜯음[]기림[]칭찬[]비방[]괴로움[]즐거움[]이다.

 

어떤 것을 8멸법이라 하는가?

8사법(邪法)을 말하나니, 삿된 견해[邪見]삿된 생각[邪思]삿된 말[邪語]삿된 행동[邪業]삿된 생활[邪命]삿된 방편[邪方便]삿된 기억[邪念]삿된 선정[邪定]이다.

 

어떤 것을 8퇴법이라 하는가?

8해태법(懈怠法)을 말한다. 어떤 것을 8해태라 하는가? 비구가 걸식하여 밥을 얻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나는 마을로 내려가 걸식하였으나 얻지 못해 몸이 몹시 피로하다.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서 쉬며,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초해태(初懈怠)라 한다. 게으른[懈怠] 비구는 이미 넉넉하게 걸식하여 먹고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여 과하게 얻어먹고 나니 몸이 나른하고 무겁다.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쉬며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일을 하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을 해서 몸이 몹시 피곤하다. 그래서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이제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일 일을 하면 반드시 몸이 몹시 피곤할 것이다. 지금은 좌선도 경행도 하지 말고 미리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 걸어왔더라도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부터 걸어와서 몸이 몹시 피곤하다. 그래서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나는 이제 좀 누워 쉬어야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걸을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내일 걸으면 반드시 몹시 피곤해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좌선도 경행도 하지 말고 미리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6해태(懈怠)라 한다.

게으른 비구는 가령 조금만 아프더라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중한 병을 얻어 몹시 피곤하고 여위어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모름지기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게으른 비구는 앓던 병이 이미 나아도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병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이 여위어 좌선도 경행도 감당할 수 없구나. 스스로 누워 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게으른 비구는 곧 누워 쉴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써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거나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려 하거나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8증법(增法)이라 하는가? 8불태(不怠)를 말한다.

 

 

云何八精進比丘入村乞食不得食還即作是念我身體輕便少於睡眠宜可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便精進是爲初精進比丘乞食得足便作是念我今入村乞食飽滿氣力充足宜勤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尋精進精進比丘設有執事便作是念我向執事廢我行道今宜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尋精進精進比丘設欲執事便作是念明當執事廢我行道今宜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便精進精進比丘設有行來便作是念我朝行來廢我行道今宜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尋精進精進比丘設欲行來便作是念我明當行廢我行道今宜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便精進精進比丘設遇患時便作是念我得重病或能命終今宜精進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便精進精進比丘患得小差復作是念我病初差或更增動廢我行道今宜精進坐禪經行未得者得未獲者獲未證者證於是比丘即便精進坐禪經行是爲八

 

어떤 것을 8정진(精進)이라 하는가? 비구가 마을에 들어가 걸식했으나 밥을 얻지 못하고 돌아와 곧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이 홀가분하여 졸음도 적어졌구나.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래서 비구가 곧 정진하면 이것을 초정진(初精進)이라고 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걸식하여 풍족하게 먹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여 배불리 먹어 기력이 충만해졌다. 마땅히 힘써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좀전에, 일을 하기 위해 도를 닦던 것을 그만뒀었다. 이제는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할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일은 할 일이 있어 내가 도 닦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니, 지금 곧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길을 걸은 일이 있으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길을 걷느라 도 닦는 일을 중단했었다.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길을 걸을 일이 생기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일 길을 걸어야하기 때문에 도 닦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니,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가령 병을 앓을 때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중한 병을 얻어 혹 죽을지도 모르니, 지금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한다.

정진하는 비구는 병을 앓다가 조금 차도가 있으면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병은 처음보다 차도가 있지만 혹 다시 도져서 내가 도 닦던 것을 중단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제 마땅히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해야겠다. 그래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해야겠다."

그리하여 비구는 곧 정진하여 좌선하고 경행한다. 이것이 여덟 가지이다.

 

 

云何八難解法謂八不閑妨修梵行云何八如來至眞出現於世說微妙法寂滅無爲向菩提道有人生地獄中是爲不閑處不得修梵行如來至眞出現於世說微妙法寂滅無爲向菩提道而有眾生在畜生中餓鬼中長壽天中邊地無識無佛法處是爲不閑處不得修梵行如來至眞等正覺出現於世說微妙法寂滅無爲向菩提道或有眾生生於中國而有邪見懷顚倒心惡行成就必入地獄是爲不閑處不得修梵行如來至眞等正覺出現於世說微妙法寂滅無爲向菩提道或有眾生生於中國不得聞法修行梵行是爲不閑如來至眞等正覺不出世間無有能說微妙法寂滅無爲向菩提道而有眾生生於中國彼諸根具足堪受聖敎而不値佛不得修行梵行是爲八不閑

* (벙어리 음) 의 대치(벙어리 아)

 

어떤 것을 8난해법이라 하는가?

범행 닦는 것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여가가 없는 곳[不閑]을 말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여래지진(至眞)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寂滅無爲)하여 보리도(菩提道)로 향할 때, 어떤 사람이 지옥 속에 태어난다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不閑處]이라 한다.

여래지진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어떤 중생이 축생아귀장수천(長壽天)의 지식(知識)도 없고 불법(佛法)도 없는 변지(邊地)에 태어난다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 한다.

여래지진등정각(等正覺)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혹 어떤 중생이 중국(中國印度)에 태어났으면서도 삿된 견해와 마음을 가지면 악행(惡行)을 성취하여 반드시 지옥에 들어간다.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여래지진등정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고 적멸무위하여 보리도로 향할 때, 혹 어떤 중생이 중국에 태어났으면서도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가 되어 법을 듣거나 범행을 닦지 못하면 이것을 범행을 닦을 수 없는 여가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여래지진등정각께서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시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거나 적멸무위하거나 보리도로 향하는 이가 없을 때, 어떤 중생이 중국에서 태어나고, 모든 감관[]을 구족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받을 만하지만 부처님을 만나지 못해 범행을 닦을 수 없다면 이것을 여덟 번째 여가가 없는 곳이라 한다.

 

 

云何八生法謂八大人覺道當少欲多欲非道道當知足無厭非道道當閑靜樂眾非道道當自守戱笑非道道當精進懈怠非道道當專念多忘非道道當定意亂意非道道當智慧愚癡非道云何八知法謂八除入內有色想觀外色少若好若醜常觀常念是爲初除入內有色想觀外色無量若好若醜常觀常念是爲二除入內無色想外觀色少若好若醜常觀常念是爲三除入內無色想外觀色無量若好若醜常觀常念是爲四除入內無色想外觀色靑靑色靑光靑見譬如靑蓮華亦如靑波羅奈衣純一靑色靑光靑見作如是想常觀常念是爲五除入內無色想外觀色黃黃色黃光黃見譬如黃華黃波羅奈衣黃色黃光黃見常念常觀作如是想是爲六除入內無色想觀外色赤赤色赤光赤見譬如赤華赤波羅奈衣純一赤色赤光赤見常觀常念作如是想是爲七除入內無色想外觀色白白色白光白見譬如白華白波羅奈衣純一白色白光白見常觀常念作如是想是爲八除入

 

어떤 것을 8생법이라 하는가?

8대인(大人)의 깨달음을 말한다. ()는 마땅히 욕심이 적은 것으로서 욕심이 많음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으로 만족함이 없으면 도가 아니다. 도는 한가하고 고요한 것으로서 여럿이 즐기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스스로 지키는 것으로서 희롱하고 웃고 하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정진하는 것으로서 게으른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하는 것으로서 많이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뜻을 안정시키는 것으로서 뜻이 산란한 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마땅히 지혜로운 것으로서 어리석은 것은 도가 아니다.

 

어떤 것을 8지법이라 하는가?

8제입(除入)을 말한다. 안에 색상(色想)을 가지고 바깥의 일부분의 색을 보고 혹 좋다거나 혹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초제입(初除入)이라 한다. 마음 속의 색()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바깥의 무량한 색을 보고 혹은 좋다거나 혹은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 이것을 두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색의 적음을 보고 혹은 좋다거나 혹은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속에 색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무량한 색을 보고 혹 좋다거나 혹 추하다고 항상 관찰하고 항상 생각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식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푸른색을 관()하고 그 청색(靑色)청광(靑光)청견(靑見)을 마치 푸른 연꽃이나 또는 푸른 바라내의(婆羅衣)가 순일(純一)한 청색청광청견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여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제입이라 한다.

* 바라내의(婆羅衣): vattha B?r?na-seyyaka라고 함. 바라내 지방에서 생산되는 옷이다.

마음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누런색을 관()하고, 그 황색(黃色)황광(黃光)황견(黃見)은 마치 누런 꽃이나 누런 바라내의가 황색황광황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여섯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붉은 색을 관()하고 적색(赤色)적광(赤光)적견(赤見)이 마치 붉은 꽃이나 붉은 바라내의의 순일한 적색적광적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일곱 번째 제입이라 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흰색을 관하고, 그 백색(白色)백광(白光)백견(白見)은 마치 흰 꽃이나 흰 바라내의의 순일한 백색백광백견과 같다고 본다. 항상 관찰하고 항상 기억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이것을 여덟 번째 제입(除入)이라 한다.

 

 

云何八證法謂八解脫色觀色一解脫內無色想觀外色二解脫淨解脫三解脫度色想滅瞋恚想住空處四解脫度空處住識處五解脫度識處住不用處六解脫度不用處住有想無想處七解脫度有想無想處住想知滅八解脫諸比丘是爲八十法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8증법(證法)이라 하는가?

8해탈을 말한다.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바깥 색()을 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에 색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의 색을 관하는 것은 두 번째 해탈이요, 청정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요,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요,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8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는 것으로서 여래께서는 이미 깨달아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九成法九修法九覺法九滅法九退法九增法九難解法九生法九知法九證法云何九成法謂九淨滅枝法戒淨滅枝心淨滅枝見淨滅枝度疑淨滅枝分別淨滅枝道淨滅枝除淨滅枝無欲淨滅枝解脫淨滅枝云何九修法謂九喜本一喜二愛三悅四樂五定六如實知七除捨八無欲九解脫

 

다시 9성법(成法)9수법(修法)9각법(覺法)9멸법(滅法)9퇴법(退法)9증법(增法)9난해법(難解法)9생법(生法)9지법(知法)9증법(證法)이 있다.

 

어떤 것을 9성법이라 하는가?

9정멸지법(淨滅枝法)을 말하나니, 계정멸지(戒淨滅枝)심정멸지(心淨滅枝)견정멸지(見淨滅枝)도의정멸지(度疑淨滅枝)분별정멸지(分別淨滅枝)도정멸지(道淨滅枝)제정멸지(除淨滅枝)무욕정멸지(無欲淨滅枝)해탈정멸지(解脫淨滅枝)이다.

 

어떤 것을 9수법이라 하는가?

9희본(喜本)을 말한다. 첫째는 기쁨이요, 둘째는 사랑[]이며, 셋째는 흐뭇함[]이요, 넷째는 즐거움[]이며, 다섯째는 선정[]이요, 여섯째는 여실지(如實知)이며, 일곱째는 없애는 것[除捨]이요, 여덟째는 욕심 없음(無欲)이며, 아홉째는 해탈(解脫)이다.

 

 

云何九覺法謂九眾生居或有眾生若干種身若干種想天及人是是初眾生居或有眾生若干種身而一想者梵光音天最初生時是是二眾生居或有眾生一身若干種想光音天是是三眾生居或有眾生一身一想遍淨天是是四眾生居或有眾生無想無所覺知無想天是是五眾生居復有眾生空處住是六眾生居復有眾生識處住是七眾生居復有眾生不用處住是八眾生居復有眾生住有想無想處是九眾生居

 

어떤 것을 9각법이라 하는가?

9중생거(衆生居)를 말한다.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중생거(初衆生居)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공처(空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어떤 중생이 식처(識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문다면 이것은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云何九滅法謂九愛本因愛有求因求有利因利有用因用有欲因欲有著因著有嫉因嫉有守因守有護云何九退法謂九惱法有人已侵惱我今侵惱我當侵惱我我所愛者已侵惱今侵惱當侵惱我所憎者已愛敬今愛敬當愛敬云何九增法謂無惱彼已侵我我惱何益已不生惱今不生惱當不生惱我所愛者彼已侵惱我惱何益已不生惱今不生惱當不生惱我所憎者彼已愛敬我惱何益已不生惱今不生惱當不生惱

 

어떤 것을 9멸법이라 하는가?

9애본(愛本)을 말한다. 애착[]을 인연하여 구함[]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씀[]이 있고 씀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질투[]가 있으며, 질투를 인연하여 지킴[]이 있고 지킴을 인연하여 보호함[]이 있다.

 

어떤 것을 9퇴법이라 하는가?

9뇌법(惱法)을 말한다. 어떤 이가 이미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했고 지금도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하며 앞으로도 나를 침노하여 번민케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미 침노하여 번민케 했고 지금도 침노하여 번민케 하며 앞으로도 침노하여 번민케 할 것이다. 또 그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공경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어떤 것을 9증법(增法)이라 하는가?

9무뇌법(無惱法)을 말한다. 저 사람이 이미 나를 침노했다 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침노하여 번민하게 했다 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다해서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云何九難解法謂九梵行若比丘有信而不持戒則梵行不具比丘有信有戒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而不多聞則梵行不具比丘有信有戒有多聞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不能說法則梵行不具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不能養眾則梵行不具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不能於大眾中廣演法言則梵行不具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能於大眾廣演法言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能在大眾廣演法言而不得四禪則梵行不具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能於大眾廣演法言又得四禪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多聞能說法能養眾在大眾中廣演法言又得四禪不於八解脫逆順遊行則梵行不具有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於大眾中廣演法言具足四禪於八解脫逆順遊行則梵行具足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在大眾中廣演法言得四禪於八解脫逆順遊行然不能盡有漏成無漏心解脫智慧解脫於現法中自身作證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受有則梵行不具若比丘有信有戒有多聞能說法能養眾能在大眾廣演法言成就四禪於八解脫逆順遊行捨有漏成無漏心解脫智慧解脫於現法中自身作證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受有則梵行具足

 

어떤 것을 9난해법이라 하는가?

9범행(梵行)을 말한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이 있다 하여도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킨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을 지켜도 들은 것이 많지 않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면서 들은 것이 많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고 들은 것이 많다 하더라도 설법하지 못한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이 많으면서 설법을 잘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을 잘해도 대중을 기르지 못한다면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을 잘해도 대중을 기를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이 많고 설법도 잘 하며 대중을 기를 수 있어도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지 못한다면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를 수 있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할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대중을 기르고 능히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의 말을 연설하더라도 4()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또 4선까지 증득했다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또 4선을 증득했어도 8해탈에서 거꾸로[] 행하고 바로[] 행하지 못하면 곧 범행을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속에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구족하고 8해탈을 거꾸로 바로 행하면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속에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증득하고 8해탈을 거꾸로 바로 행하지만, 번뇌[有漏]를 다하여 번뇌 없음[無漏]을 이루고 심해탈(心解脫)과 지혜해탈(智慧解脫)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서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 뒷세상의 몸[]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 곧 범행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믿음도 있고 계율도 지키며 들은 것도 많고 설법도 잘 하며, 능히 대중을 기르고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연설하며 4선을 성취하고 8해탈의 법을 거꾸로 바로 행하며 번뇌[有漏]를 버리고 번뇌 없음[有漏]을 이루고 심해탈과 지혜해탈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서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쳐 다시 몸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곧 범행을 구족한 것이다.

 

 

云何九生法謂九想不淨想觀食想一切世間不可樂想死想無常想無常苦想苦無我想盡想無欲想云何九知法謂九異法生果異因果異生觸異因觸異生受異因受異生想異因想異生集異因集異生欲異因欲異生利異因利異生求異因求異生煩惱異因煩惱異云何九證法謂九盡若入初禪則聲刺滅入第二禪則覺觀刺滅入第三禪則喜刺滅入第四禪則出入息刺滅入空處則色想刺滅入識處則空想刺滅入不用處則識想刺滅入有想無想處則不用想刺滅入滅盡定則想受刺滅諸比丘是爲九十法如實不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9생법이라 하는가?

9()을 말한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不淨想], 음식도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觀食不淨想],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 죽음에 대한 생각[死想],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 무상한 것이라서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 괴로운 것이며 나[]가 없다는 생각[苦無我想], 다한다는 생각[盡想], 욕심이 없는 생각[無欲想]이다.

* 觀食不淨想 : "관식상(觀食想)"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송 3본에 의하여 "관식부정상(觀食不淨想)"으로 번역함.

 

어떤 것을 9지법이라 하는가?

9이법(異法)을 말한다. 생겨나는 과보[生果]가 다른 것은 인과(因果)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촉(生觸)이 다른 것은 인촉(因觸)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수(生受)가 다른 것은 인수(因受)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상(生想)이 다른 것은 인상(因想)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집(生集)이 다른 것은 인집(因集)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욕(生欲)이 다른 것은 인욕(因欲)이 다르기 때문이며, 생리(生利)가 다른 것은 인리(因利)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구(生求)가 다른 것은 인구(因求)가 다르기 때문이며, 생번뇌(生煩惱)가 다른 것은 인번뇌(因煩惱)가 다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9증법(證法)이라 하는가?

9()을 말한다. 만일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소리가 없어지고, 2선에 들어가면 각관(覺觀)이 없어지며, 3선에 들어가면 기쁨[]이 없어지고, 4선에 들어가면 숨결의 출입이 없어지며, 공처(空處)에 들어가면 색()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면 공상(空想)이 없어지며,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면 식상(識想)이 없어지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면 불용상(不用想)이 없어지며,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면 상수(想受)가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비구여, 이것을 90가지 법이라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께서는 이미 다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復有十成法十修法十覺法十滅法十退法十增法十難解法十生法十知法十證法云何十成法謂十救法一者比丘二百五十戒具威儀亦具見有小罪生大怖畏平等學戒心無傾邪二者得善知識三者言語中正多所含受四者好求善法分布不五者諸梵行人有所施設輒往佐助不以爲勞難爲能爲亦敎人爲六者多聞聞便能持未曾有忘七者精進滅不善法增長善法八者常自專念無有他想憶本善行若在目前九者智慧成就觀法生滅以賢聖律而斷苦本十者樂於閑居專念思惟於禪中間無有調戲

* 의 대치(아낄 린)

 

다시 10성법10수법10각법10멸법10퇴법10증법10난해법10생법10지법10증법이 있다.

 

어떤 것을 10성법이라 하는가?

10구법(求法)을 말한다. 첫째는 비구가 250조항의 계()를 갖추고 또한 위의(威儀)를 갖추며 조그마한 죄라도 발견되면 크게 두려워하며 평등하게 계를 배워 마음에 비뚤어지거나 삿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말이 바르고 정직하며 함축[含受]한 바가 많은 것이요, 넷째는 착한 법 구하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펴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이 시설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거기 가서 돕되, 고달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며 또한 남에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여섯째는 많이 듣고 들은 것은 잘 지녀 일찍이 잊어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요, 일곱째는 정진하여 착하지 않은 법은 없애고 착한 법을 더하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항상 스스로 전념하여 다른 생각이 없고 본래의 선행을 생각하기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요, 아홉째는 지혜를 성취하여 법의 생멸(生滅)을 관찰하고 현성(賢聖)의 율()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끊는 것이며, 열째는 한가하게 하고 생각을 오로지해 사유하며 선정[] 도중에 희롱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云何十修法謂十正行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正解脫正知云何十覺法謂十色入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色入聲入香入味入觸入云何十滅法謂十邪行邪見邪思邪語邪業邪命邪方便邪念邪定邪解脫邪智云何十退法謂十不善行迹身殺口兩舌惡罵妄言綺語意貪取嫉妬邪見云何十增法謂十善行身不殺口不兩舌惡罵妄言綺語意不貪取嫉妬邪見云何十難解法謂十賢聖居一者比丘除滅五枝二者成就六枝三者捨一四者依四五者滅異諦六者勝妙求七者無濁想八者身行已立九者心解脫十者慧解脫

* 의대치(음란할 음)

 

어떤 것을 10수법이라 하는가?

10정행(正行)을 말한다. 바른 견해[正見]바른 생각[正思]바른 말[正語]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바른 해탈[正解脫]바른 지혜[正知]이다.

 

어떤 것을 10각법이라 하는가?

10색입(色入)을 말한다. 안입(眼入)이입(耳入)비입(鼻入)설입(舌入)신입(身入)색입(色入)성입(聲入)향입(香入)미입(味入)촉입(觸入)이다.

 

어떤 것을 10멸법이라 하는가?

10사행(邪行)을 말한다. 삿된 견해[邪見]삿된 생각[邪思]삿된 말[邪語]삿된 행동[邪業]삿된 생활[邪命]삿된 방편[邪方便]삿된 생각[邪念]삿된 선정[邪定]삿된 해탈[邪解脫]삿된 지혜[邪智]이다.

 

어떤 것을 10퇴법이라 하는가?

10불선행적(不善行迹)을 말한다. 몸으로 살생[]도둑질[]간음[]을 하고, 입으로 이간하는 말[兩舌]욕설[惡罵]거짓말[妄言]꾸밈말[綺語]을 하고, 뜻으로 탐욕[貪取]질투(嫉妬)삿된 견해[邪見]를 가지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증법(增法)이라 하는가?

10선행을 말한다. 몸으로 살생도둑질간음을 하지 않고, 입으로 이간하는 말욕설거짓말꾸밈말을 하지 않으며, 뜻으로 탐욕질투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10난해법이라 하는가?

10현성거(賢聖居)를 말한다. 첫째는 비구가 5(五蓋)를 없애는 것이요, 둘째는 6(六根)를 성취하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를 지키는 것[一護]이요, 넷째는 네 가지에 의지하는 것[依四]이며, 다섯째는 이론[異諦외도의 논리]을 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승하고 묘한 진리를 구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혼탁한 생각이 없는 것이요, 여덟째는 신행(身行)이 이미 선 것이며, 아홉째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이요, 열째는 지혜의 해탈(慧解脫)이다.

* 一護 : ek?rakkha(一護)라고 되어 있다. 이를 한역하면 일호(一護)가 된다.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사일(捨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ek?rakkha(一守護)eka()a()rakkha()로 잘못 한역한 데서 비롯된 문구인 듯하다.

* 依四 : 의거해야 할 네 가지를 말한다. 즉 첫째는 습관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요, 둘째는 없애야 할 것이요, 셋째는 멀리 회피해야 할 것이요, 넷째는 참고 인내해야 할 것이다.

 

 

云何十生法謂十稱譽處若比丘自得信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得信者自持戒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持戒者自少欲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少欲者自知足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知足者自樂閑靜爲他人說亦復稱歎樂閑靜者自多聞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多聞者自精進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精進者自專念已爲他人說亦復稱歎諸專念者自得禪定爲他人說亦復稱歎得禪定者自得智慧爲他人說亦復稱歎得智慧者

 

어떤 것을 10생법이라 하는가?

10칭예처(稱譽處)를 말한다. 만일 비구로서 자기 자신이 믿음을 얻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믿음을 얻은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계를 지니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계를 지닌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욕심이 적어진 뒤에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욕심이 적은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만족할 줄 알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모든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많이 듣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많이 들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정진하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정진하는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생각을 오로지 하고 나서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생각을 오로지 하는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선정을 얻고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선정을 얻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지혜를 얻고는 남을 위해 설명하고 다시 또 지혜를 얻은 모든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云何十知法謂十滅法正見之人能滅邪見諸緣邪見起無數惡亦盡除滅諸因正見生無數善盡得成就正思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正解脫正智正智之人能滅邪智諸因邪智起無數惡悉皆除滅諸因正智起無數善法盡得成就云何十證法謂十無學法無學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正解脫正智諸比丘是爲百法如實無虛如來知已平等說法

 

어떤 것을 10지법이라 하는가?

10멸법을 말한다.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능히 삿된 견해를 없애고 모든 삿된 견해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악을 또한 다 없앤다. 바른 견해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선을 또한 다 성취한다. 바른 뜻[正志]바른 말[正語]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바른 해탈[正解脫]바른 지혜[正智]에 대해서도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능히 삿된 지혜를 없애고, 모든 삿된 지혜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악을 다 없애고, 모든 바른 지혜를 인연하여 일어나는 무수한 선법을 또한 다 성취한다.

 

어떤 것을 10증법(證法)이라 하는가?

10무학법(無學法)을 말한다. 무학(無學)의 바른 견해바른 생각바른 말바른 행동바른 생활바른 방편바른 기억바른 선정바른 해탈바른 지혜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100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되고 허망함이 없으니 여래는 이미 다 깨달으시어 평등하게 설법하셨다.”

 

 

爾時舍利弗佛所印可諸比丘聞舍利弗所說歡喜奉行

 

그 때에 사리불은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받았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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