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송광사 관음전 뒤쪽에 안치되어있는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감로탑이다.
승보사찰 송광사에 들리다.
2013. 6. 6.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위치
산과바다는 서산꽃님과
*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감로탑(사리탑)이 관음전 뒤에 안치되어있더군요.
* -불-법-승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인 송광사에 들리어 둘러보고- 서산경유 벗님과 3박 4일 일정을 마친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 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 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그 하나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
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보전 벽화
승보전벽화
비사리구시-쌀7가마 4천명의 밥을 담았던 그릇이란다.
관음전 뒷쪽 계단을 오르면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감로탑(사리탑)이 안장되어있다.
화장실에 들려보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경내를 둘러보고 냇물을 건너 나온다.
서산꽃님 방식의 사과를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느티나무의 충영(외줄면충)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불-법-승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종찰 송광사의 대단한 규모와 아름다움에 조용히 송광사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요모조모를 둘러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서산꽃 벗님(박종규)과 동행하여 3박4일동안 여행이 즐거웠군요.
벗님아 다음 만날 때 까지 항상 건강하시고 매일매일 즐거우시게나......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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