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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친구와 함께/둘둘 모임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다녀오다.

by 산산바다 2013. 6. 2.

산과바다

허~이~! 벗님아 한눈팔지마! 물에 빠질라......! 다리로 건너지 않고 벗님들이 징검다리로 건너 간다는군요.



영주 순흥면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다녀오다.

2013. 5. 31.

둘둘모임-박범익 강경원 이계도(6명)

경북 영주시 순흥면(順興面)에 위치

소수서원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서원을 둘러보고 앞 공원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선비촌 입장료를 따로 지불 안하고 선비촌을 관람할 수 있다.



소수 서원(紹修書院)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順興面) 내죽리(內竹里)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서원. 1542(중종 37)년에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白雲洞) 서원이 1550(명종 5)년에 이황(李滉)의 건의로 사액(賜額)된 이름이다.

 

소수서원과 영주선비촌 가는길

 

 

 

 

사적 제55호. 세종대에 설립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최초로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풍기지방의 교화를 위해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는 사묘(祠廟)를 설립했다가 1543년(중종 38)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補)를 추가배향했다. 주세붕은 서원에 자주 와 유생과 더불어 토론을 벌이는 등 정성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서원의 유생들이 4~5년 만에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이 입원자편급제(入院者便及第)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후 1546년(명종 1)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은 유생의 정원(10명), 공양절차(供養節次), 서원재정, 경리관계를 규정한 사문입의(斯文立義)를 만들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백운동서원은 약 30결의 토지 및 18명의 노비, 4명의 원직(院直) 등을 소유함으로써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시기에는 서원이 사묘의 부속적인 존재로서 유생의 독서를 위한 건물로 생각되었으며,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후 이황(李滉)에 의해 과거를 위한 독서보다는 수기(修己)·강명도학(講明道學) 위주로 변했다. 특히 그는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뒤 을사사화로 고초를 겪은 다음 관료로서 군주를 보필하고 경륜을 펴기보다는 학문의 연구와 교화, 특히 후진의 양성을 통해 학파를 형성함으로써 향촌사회를 교화하고 나아가 장래의 정치를 지치(至治)로 이끌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에서 지방유생의 강학(講學)과 교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붕괴된 교학(敎學)을 진흥하고 사풍(士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서원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면서 백운동서원에 대해서 송나라의 예에 따라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과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받았다. 이는 서원이 국가의 공인하에 발전하고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한 사학으로서의 위치가 확고해지면서 풍기지역 사림의 집결소이자 향촌의 중심기구로 위치를 굳혔다. 

 

 

1633년(인조 11)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8년(고종 5)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서원 내에는 보물 제59호인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晦軒影幀),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영정(周世鵬影幀)이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소수서원을 나와 공원길따라 영주선비촌으로 향한다.

 

 

때죽나무인가? 쪽동백보다 잎이 작아보인다.

 

 

 

냇가 공원길따라 조금올라 이 다리를 건너가면 선비촌으로 들어갈수 있다.

 

 

 

 

영주 선비촌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을 복원하고 생활상을 재현하여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영주시가 건설한 테마파크이다.

 

선비촌은 옛 선현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을 재현하였다. 부지면적이 57,717㎡(17,459평) 이고, 시설들로는 선비촌, 민속시설, 강학시설, 저잣거리 등이 있다.

 

 

 

 

선비촌에는 

와가7동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가옥 이있다.

초가5동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이 있다.

민속시설로 정자 1동 누각 1동 연자방아 1개소 물레방아 1개소 디딜방아 1개소 산신각  1동 정려각 2동 원두막 1동 곳집  1동 대장간 1동 이 있으며

강학시설로 강학당 2동 강학당 부속채가 있고

저잣거리로 초가 2동(음식점) 와가 10동(음식점 4동, 판매장 6동) 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측여-강 우축남-박 이쁘고 용맹스럽군요.

 

좌측여-박 우축남-강 이렇게 변장하니 더이쁘고 더용맹스럽군요.

 

 

무슨 드라마 촬영장 이었던가보다.

 

<井>자가 뚜렸하군요.

 

 

 

마을 가운데로 개천물이 흐른다.

 

 

선비촌 식당가의 뜨라네에 들리어 산채비빔밥과 묵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 식사 후 선비촌에서 나와 소수서원쪽으로 건너 주차장으로 간다.

 

 

냇가에 해당화도 꽃을 피우고

 

소수서원옆의 연못엔 연꽃이 피고있군요.

 

소수서원 입구의 내건너 경자바위를보며 소수서원을 나선다. 공경할경(敬)자에 붉은색을 넣어 귀신을 쫒았다는군요.

 

소고기 인견 인삼이 풍기에는 유명하단다.

소고기는(안심살)어제 저녁식사에 한잔 하면서 맛있게 먹었고......

오후에 인견백화점에 들리어 무얼 산다고 가자하는군요. 가는길에 희방사에 들리어 간다.

 

 

* 인견-천연섬유(포풀러나무와 은사시나무 껍질의 섬유)로 짠 옷감으로 인견옷들은 아주 시원하더군요.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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