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수덕사에 가보다.
2012. 5. 28.
산과바다는 안해와 동반하여
불기2556년 초파일에 수덕사 봉축행사에 참여 후 덕숭산 등산
수덕사-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번지
차가 밀리어 수덕사 주차장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 못 가서 도로변에 주차하고 약 1km 걸어서 수덕사에 도착하였다.
수덕사
백제시대의 사찰로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禪은 붓다의 마음이요, 교敎는 붓다의 말씀이다. 붓다의 마음인 선은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직지인심 直指人心)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며(견성성불 見性成佛) 문자를 세우지 않고(불립문자 不立文字) 문자 밖의 소식을 따로 전하는(교외별전 敎外別傳) 것을 지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자기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임을 일깨우는 수행법이다. 이러한 수행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을 이끌어 주는 곳이 바로 선찰인바, 선의 으뜸사찰(禪之宗刹 )임을 내세우는 수덕사는 선법禪法을 사찰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경허·만공선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 선禪의 여명을 밝힌 선의 종찰 수덕사에는 덕숭총림선원이 있다. 덕숭총림선원 산하에는 만공선사께서 주석하셨던 정혜사 능인선원을 비롯하여 비구선원인 개심사 보현선원, 향천사 천불선원이 있고, 비구니선원에는 견성암선원과 보덕사선원이 있으며, 이 중 견성암선원은 일엽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원들에는 많은 선객들이 안거철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참선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덕사는 오늘날까지 선지종찰의 가풍이 이어지는 현대 선의 종찰 로도 이름이 드높다.
칠층석탑
1931년 滿空大禪師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기단 面石 밖으로 두드러지게 隅柱를 표현하였고, 면석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의 屋身은 없는데, 屋身 대신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방돌을 받치고 있다. 각 층의 面石과 지방돌은 별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面石 마다에는 우주와 창방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2단의 지방돌 받침을 가지고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하다. 상층부에는 擦柱ㆍ寶珠ㆍ寶輪이 올려져 있다.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탑이다.
불기2556년 초파일에 수덕사 봉축행사를 둘러보고......
초파일 봉축행사에 참석한사람들과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잠시 서서 관람하다가 덕숭산 산행에 올랐다.
만공탑에 오르기위해 덕숭산 산행을 시작한다. 대웅전 왼쪽 골짜기로 오름이 시작된다.
만공탑에 오르는 중턱에 사면석불이 보인다.
만공스님이 세웠다는 관세음보살입상
수덕사 창건에 대한 설화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만공스님을 기리기위한 만공탑
만공탑 위쪽에 정혜사가 위치한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수도한 곳이란다.
관음전앞 마당에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심어져 있군요.
정혜사 마당앞이 확 튀여 전망이 참좋아 한참을 쉬어간다.
남매탑이란다.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스님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교화와 불교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이다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는 조선 말기의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 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俗名은 동욱(東旭), 법명은 성우(性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宋斗玉)과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절에 와있던 어느 거사에게서 사서삼경을 배우고 기초적인 불교교리(佛敎敎理)를 익혔다
전국 곳곳에 선원과 선실을 개설하여 불교계에 새로운 선수행(禪修行)의 풍토를 조성, 선풍을 진작시킨 그의 문하에는 근대 한국불교 선문(禪門)을 빛낸 만공(滿空), 혜월(慧月), 수월(水月)등이 있다.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禪의 중흥조인 경허(鏡虛)의 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위대한 선지식이다.
스님의 속명은 도암(道巖),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 이다.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송신통 宋神通과 모친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 13세 되던 해 김제 금산사(金山寺)에서 불상을 처음 보고 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 동학사(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경허 스님을 따라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와서 태허(泰虛)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를 계사(戒師)로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법명을 월면(月面)이라 하였다.
경허 스님의 법을 이은 스님은 덕숭산에 와서 금선대(金仙臺)를 짓고 수년 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衲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修德寺), 정혜사(定慧寺), 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스님은 일제 강점기 선학원(禪學院)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하였으며,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에게 직접 일본의 한국 불교정책을 힐책하였다.
이는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만공의 사상은 생사를 초탈한 선사의 가풍이라 할 것이다. 말년에는 덕숭산 정상 가까이 전월사(轉月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지내다가 입적하니, 1946년 10월 20일 그의 나이 75세, 법랍 62세였다.
그 뒤 제자들이 정혜사 아래에 만공탑(滿空塔)을 세우고 진영(眞影)을 경허. 혜월 스님과 함께 금선대에 봉안 하였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그의 문하에는 비구 보월(寶月), 용음(龍吟), 고봉(高峰), 금봉(錦峰),서경(西耕), 혜암(惠庵), 전강(田岡), 금오(金烏), 춘성(春城), 벽초(碧超), 원담(圓潭) 등과 비구니 법희(法喜), 만성(萬性), 일엽(一葉)등 당대에 뛰어난 제자들이 있다.
서쪽방향으로 멀리 넓은들과 수덕사앞 상가와 넓은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정혜사에서 한참을 올라 덕숭산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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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었지만 산행을 마치고 오후2시가 넘었는데도 관광객들에게 공양간앞에서 점심공양을 하고있어 줄을 기다린다.
절밥(산채비빕밥+콩나물국+절편)을 받아 늦은 점심이라 더욱 맛있게 먹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안해와 두런거리며 왕복 약 3시간 걸려 덕숭산 산행을 하였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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