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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時調詩 ***/時調 감상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by 산산바다 2008. 7. 5.

 산과바다

 

 


        시조 감상


161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되어       작자미상

162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작자미상

163  까마귀 깍깍한들 사람마다 다 죽으랴       작자미상

164  건너서는 손을 치고 집에서는 들라 하네    작자미상

165  산중에 책력 없어 철 가는 줄 모르노라     작자미상

166  벼슬을 바리거나 전 나귀로 돌아오니       작자미상

167  사랑이 어떻더니 두렷더냐 넓엇더냐        작자미상

168  한자 쓰고 눈물지고 두자 쓰고 한숨지니    작자미상

169  청춘 소년들아 백발 노인 웃지마라         작자미상

170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작자미상

171  이러나 저러나 이 초옥 편코 좋다          작자미상

172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은 다익거다      작자미상

173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정도전

174  금준에 가득한 술을 슬카장 거후르고       정두경

175  나비야 청산 가자 벌나비 너도가자         정두경

176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정몽주

177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정민교

178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떠 있다      정온

179  자모사(慈母思)                           정인보

180  재 넘어 성 권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정철



161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되어 / 작자미상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되어

님 자는 창 밖에 불면서 뿌리고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감 상> 실연(失戀)의 한숨과 눈물은 흔한 것이지만 또한 만고에 별로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그대를 못 잊어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데, 그대는 나를 잊어버리고 깊은 잠에 들다니 야속하고 얄밉기까지 하구나. 한숨아, 바람이 되어라. 눈물아, 비가 되어라. 그리하여 날 잊고 잠든 님의 창문을 흔들면서 뿌려라. 이것은 일종의 야릇한 복수심이다.


그러나 그 님을 다쳐서는 안 된다. 살포시 잠이 깨어 나를 생각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으로 야릇한 심정이다. " 날 잊고 깊이 든 님의 잠을 깨워 보려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님의 방에 숨어들겠다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내 정령을 술에 섞어 님의 구곡간장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 있고 이번에는 한숨과 눈물이 바람과 궂은비가 되어 님이 집 창문을 두드리겠다는 것이다.



162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 작자미상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청(淸)쳐라 : 청줄을 쳐서 가락을 맞추어라. 청줄은 거문고 여섯 줄 중의 과상청(課上淸)과 과외청(課外淸)을 뜻한다.


<감상> 창 밖에 국화 심고, 국화 밑에 술 빚어 두었더니 이제 술 익고, 국화 피고, 게다가 벗님네 찾아오고, 또 둥근 달이 둥실 솟아오른다. 얘야! 거문고를 꺼내어 청줄을 쳐서 소리를 맞추어라. 밤새도록 놀아 보리라. 꽃과 술과 달과 거문고, 이만하면 흥이 일지 않겠는가. 거기에 벗이 오니 더 바랄 것이 또 무엇이랴. 이래서 인생이란 즐거운 것, 그까짓 부귀영화는 탐내어 무엇하리. 이렇게 풍류로 인생을 즐길 줄 알던 옛선비는 인생의 본질을 살고 간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163 까마귀 깍깍한들 사람마다 다 죽으랴 /작자미상


까마귀 깍깍한들 사람마다 다 죽으랴

비록 깍깍한들 네 죽으며 내 죽으랴

진실로 죽기곧 죽으면 남의 님이 죽으리라


깍깍한들 : 까마귀 울음소리는 옛 부터 불길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죽기곧 : 죽기만. 이때 '~ 곧'은 뜻을 강조하는 조사. '죽기곧 죽으면' 은 틀림없이 죽기만 한다면의 뜻



164 건너서는 손을 치고 집에서는 들라 하네 / 작자미상


건너서는 손을 치고 집에서는 들라 하네

문 닫고 들자하랴 손치는 데를 가자 하랴

이 몸이 두 몸 되어 여기저기 하리라


<감 상> 건너편에서는 손을 치며 오라 부르고 이쪽 집에서는 들어오라고 보챈다. 문 닫고 집으로 들어갈까, 손 치며 부르는 데를 가 볼까. 이야말로 두 손에 떡이로구나. 이것도 못 버리고 저것도 버릴 수가 없다. 에라! 이 몸이 둘이 되어 여기도 가고 저기도 들면 얼마나 좋을까. 유원지 등에서의 한 장면을 연상해도 나쁠 것이 없다.


여러 벗의 부름, 여러 님의 반김. 풍류객에게는 이런 경우가 흔히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들라 하네"의 집은 자기 집이니 마누라의 바가지인 모양이요, 그렇게 되면 "건너서 손을 치는"것은 시앗의 앙탈이 되니 상황은 상당히 심각해진다. 그러면 '이 몸이 두 몸 되어 여기저기 하리라'는 두 여인을 거느린다는 뜻이 되므로 봉건 사회에서의 축첩제도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문 닫고......."의 구절에서는 자중(自重)과 나아가서는 수신제가의 뜻까지 포함시켰는지도 모른다.



165 산중에 책력 없어 철가는 줄 모르노라 / 작사미상


산중에 책력 없어 철가는 줄 모르노라

꽃 피면 봄이요 잎 지면 가을이라

아이들 헌옷 찾으면 겨울인가 하노라


분초를 다투는 현대인에게 이것은 고대 신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옛사람의 생활에 일말의 향수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166 벼슬을 바리거나 전 나귀로 돌아오니 / 작자미상


벼슬을 바리거나 전 나귀로 돌아오니

새가을 금수정에 여읜 고기 살찌도다

아이야 그물 던져라 날 보내려 하노라


벼슬을 버리고 다리 저는 나귀 타고 돌아와 새 가을의 살찐 고기 건지면서 세월 보내려는 이 선비! 요즘 세상에서는 틀림없는 낙오자요 낙제생이다. 그러나 이 선비는 즐겁기만 하니 웬일인가. 생산량은 보잘것없어도 논밭에서 곡식 나고, 물속에서 고기 얻고, 금수정 아담한 정자 있어 여기서 날 보낼 수 있으니,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풍요를 구가하는 고도성장의 산업 시대에 살면서도 이런 것에 일말의 향수를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167 사랑이 어떻더니 두렷더냐 넓엇더냐 / 작자미상


사랑이 어떻더니 두렷더냐 넓엇더냐

기더냐 자르더냐 발일러냐 자일러냐

지멸이 긴 줄은 모르되 애궂을 만하더라


"발일러냐 자일러냐"는 몇 밭이나 되더냐, 한자밖에 안되더냐. "지멸이"는 매우 지리하게의 뜻.



168 한자 쓰고 눈물지고 두자 쓰고 한숨지니 / 작자미상


한자 쓰고 눈물지고 두자 쓰고 한숨지니

자자행행이 수묵산수가 되었구나

저 님아 울고 쓴 편지이니 눌러볼까 하노라


자자행행(字字行行) : 글자마다. 글줄마다. 편지의 글씨가 온통.

수묵산수(水墨山水) :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

눌러볼까 : 용서하고 볼까. 이해하고 잘 보아 달라는 뜻.

<감 상> 울면서 쓴 편지라, 눈물이 글자 위에 떨어져서 글씨와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편지가 마치 수묵화처럼 되어 알아보기 어렵겠지마는, 내 심정 짐작하시어 용서하고 잘 읽어 주소서. 이것도 아주 재치 있는 착상이라 하겠다.

말짱한 편지보다도 나의 눈물과 한숨이 어린 이 얼마나 정감 넘치고 애틋한 편지인가. 이런 편지를 받아 본 님의 마음은 아마도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옛사랑을 되찾았을 것이다. 진실에는 감동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169 청춘 소년들아 백발 노인 웃지마라 / 작자미상


청춘 소년들아 백발 노인 웃지마라

공변된 하늘 아래 넨들 매양 젊었으랴

우리도 소년행락이 어제런 듯 하여라


공변된 : 공평한

<감상> 인생무상을 노래함과 동시에 젊은 사람들에게 경노사상을 일깨워 주는 노래다. '청춘소년들아 백발노인을 보고 나이 많다고 비웃지마라. 하늘의 이치가 지극히 공평한데, 너희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늙지 않겠느냐, 우리도 소년시절을 즐기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이렇게 늙었구나.



170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 작자미상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 말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감상> ‘침묵은’금이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쓸데없이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말하기 좋다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이다. 남의 말을 내가 하면 남도 내 말을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말 때문에 시끄러워 질 것이니, 차라리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 하노라



171 이러나 저러나 이 초옥 편코 좋다 / 작자미상


이러나 저러나 이 초옥 편코 좋다

청풍은 오락가락 명월은 들락날락

이중에 병 없는 이 몸이 자락깨락 하여라


초옥 : 초가집

<감상>  안빈낙도의 낙천적인 심정을 노래한 시조다 '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초옥 삼간 오막살이가 좋고 편하다. 맑은 바람은 이리 불고 저리 불고, 공중에 떠 있는 명월도  제 멋대로 이 초옥을 들락날락 하는구나. 이런 가운데 병 없는 이 몸이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172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은 다익거다 / 작자미상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은 다익거다

거문고 가진 벗이 달과 함께 오더마는

아이야 달오른다 벗 오시나 보아라



173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정도전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 년 왕업이 물소래 뿐이로다.

아해야 고국 흥망을 일러 무삼하리요.


지은이 : 정도전(?~1398:태조7) 정 도전은 두 왕조를 섬긴 여조 말(麗祖末)의 정치인으로서 이조 건국의 개국 공신의 한 사람이다.

호는 三峰, 조선 개국 공신으로 삼도(三道都統使)가 되었으나 왕자 방원에 의해 피살됨. 저술에는 '고려사(高麗史)'와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문덕곡(文德曲)' '신도가(新都歌)'등 노래가 남았음.


선인교(仙人橋) : 개성 자하동에 있는 다리

자하동(紫霞洞) : 개성 송악산 밑에 있는 마을

무삼하리요 : 무엇하겠는가


<감상> 선인교를 지난 물이 자하동으로 흘러내리니 5백 년의 긴 세월을 이끌어 왔던 왕업이 이제는 물소리뿐 남은 것은 간데없다. 세월이 어떻게, 또한 권세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과정은 조금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물소리뿐으로, 있어 왔던 것이 없어져 버린 전기의 양상을 그대로 하나의 호흡으로 처리하고 있다. 구 왕조가 어떻느니, 신왕조가 어떻느니 자꾸만 부질없는 이야기로 그 흥망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것이 이 시조가 지니는 내용의 골격이다. 여기서 의미의 압축이 낱말의 얼굴을 빌린 가장 중요한 대목을 들어보면 선인교, 자하동, 물소리뿐, 아해야 등의 대목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말하자면 선인교라는 다리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다리인가? 자하동에 사는 사람들은 여조 지지의 무리들인가? 아해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견좁은 사람들의 지칭인가? 이렇듯 정 도전으로서는 지금은 없는 나라의 흥망을 부질없이 자꾸 되씹어 본들 무슨 소용이랴! 하고 타일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도전은 이씨 조선의 개국 공신이었으므로, 결코 무너져간 여조의 만가를 읊조리는 은둔주의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답답한 사람들아, 없는 나라에 매달려 새로 펼쳐지는 역사를 외면한들 어쩌자는 것인가? 이렇게 오히려 한탄스러웠을는지도 모른다.


5백 년 도읍에 왕업의 자취도 없이 흐르는 물소리만은 예와 다름없이 흐를 뿐, 그 옛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허무감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수이기보다는 차라리 과거를 무너뜨리고 새것을 세운 창조자의 그 새 것 역시 잃어버린 여조의 오늘처럼 무너질 그 날이 있을 것을 내다보는 하나의 허무감, 그것이 이 작품의 참뜻인지 모른다.


일부의 해석이 이 시조를 가리켜 두 왕조에 몸을 바친 정도전의 괴로움을 보여 준 작품이라고 서술한 곳도 있지만, 그것은 존재와 시간의 특질이 주체와의 융합에서 어떻게 그 양식을 갖추느냐 하는 문제에 눈을 감았거나 무감각한데서 오는 해석이 아닐까 생각 된다.



174 금준에 가득한 술을 슬카장 거후르고 / 정두경

금준에 가득한 술을 슬카장 거후르고

취한 후 긴 노래에 즐거움이 그지없다

어즈버 석양이 진타 마라 달이 조차 오노매


정두경(鄭斗卿)1597~1673.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자(東溟子). 이항복의 문인으로, 나이 14세에 별시에 급제하였고, 약관에 장원 급제하여벼슬이 예조참판 · 제학에 이르렀다. 병자년에 '비어절무 십조'를 들어 상소하기도 하였다. 문장이 호방하고 풍자적이었다.


금준(金樽) : 금항아리. 술단지를 미화한 말이다.

슬카장 : 실컷, 마음껏.

거후르고 : 술잔을 기울여 마시고. 오늘날에도 되살려 쓸 만한 옛말이다.

어즈버 : 아! 시조 종장 첫머리에 많이 쓰이는 감탄사이다.

진(盡)타 마라 : 다 지나간다고 걱정하지 말라.

오노매 : '오노매라'를 줄인 형태. '~노매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는구나!'


<감상> 지은이가, 학자이며 시평가인 홍만종의 집에서 친구들과 담론의 꽃을 피우는 자리에서 불렀다고 한다. 금 항아리에 가득한 술을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실컷 마시고, 취한 뒤에 담소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노니, 즐거움이 한이 없다. 아! 해가 다 져 간다고 아쉬워하지 마라. 동쪽 하늘에 달이 돋아오니, 밤을 도와 마시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뜻 맞는 친구와의 술자리는 이렇게도 즐거운 것, 인생의 즐거움이란 별 것이 아니다.

술 있고, 벗 있고, 달만 있으면 그만인 것을······.



175 나비야 청산 가자 벌나비 너도가자 / 정두경


나비야 청산 가자 벌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감상> 나비야, 초목이 우거진 푸른 산으로 가자. 범나비 너도 같이 가자.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가는 길도 아니니, 가는 데까지 가다가 해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가서 자고 가자. 만일, 꽃에서 푸대접을 하거든 잎에서라도 자고 가면 되지 않느냐. 구름같이, 물같이 흘러 다니는 자유의 몸인데 거리낄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거침없이 내뱉은 듯한 표현인데, 읊으면 읊을수록 감칠맛 나는 멋진 시조이다.


자연이 곧 나요, 내가 곧 자연이니 그럴 수 밖에....... 작품 속의 주인공은 행운유수(行雲流水)의 풍류객일까, 꽃을 찾는 나비를 등장시켰으니 여색을 즐기는 한량(閑良)일까. 그 어느 것도 다 좋다. 구애될 것은 하나도 없다.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 자고 가도 하나도 신경 쓰일 것이 없다는 불기(不羈)의 자유이이니 거리낄 것이 무엇이랴.



176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지은이 : 정몽주(鄭夢周 1597~1673 호는 圃隱)

감 상 : 이 작품 또한 해동악부와 포은집에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로 한역되어 있다. 정 몽주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고려 말의 국운을 한 몸에 지고 버티던 충신으로, 그의 죽음은 고려의 멸망과 때를 같이 한 절개의 표본이었다. 이 시조의 이해를 위해서는 물론 정 몽주의 생애에 대한 윤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1360(공민왕 9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 수찬(修撰)을 거쳐 성균대사성 대제학을 지내면서 문신으로서는 국가 최고 중추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겸직으로 낭장 겸 합문지후(郎將兼閤門祗侯) 위위시승(衛慰侍丞) 등을 역임하면서 1363(공민왕 12년)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의 토벌에 참가하였고, 1380년(우왕 6년)엔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이 성계 휘하에서 왜구 토벌에도 참가 하였다. 그는 정치, 군사, 외교에도 밝아 明나라와 일본에도 다녀왔다. 그러기에 이 성계의 세력이 커져 조준, 정 도전 등이 이 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알고 그들을 제거하려다가 끝내는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에게 피살되었다.


이와 같은 경력을 지닌 그가 한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도리의 신봉자란 점을 감안할 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다시 고쳐 죽어 뼈가 티끌이 되어 넋이야 있든 없든 간에 임(우왕)을 향한 한 가닥 충성심이야 변할 수 있겠느냐고 방원의 何如歌에 대답해 준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옮겨 앉게 하려는 방원의 그늘진 제청을 보기 좋게 거절하는 부동의 결의를 나타낸 시조이다.


세상에서는 이 시조를 태종의 '何如歌'에 짝지어 '丹心歌'라고 부르고 있음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얼른 보면 이 시조는 시조가 지니는 형태를 빌었다 뿐이지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기록한 하나의 소신이자 호흡이며, 또한 결의임을 우리는 쉽사리 알 수 있다.



177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 정민교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오려 하는고야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슴하리요


정민교(鄭敏僑)1697~1731. 호는 한경자(寒卿子) · 한계(寒溪). 조선 숙정 때 사람으로 '청구영언'의 서문을 쓴 정내교(鄭來僑)의 아우이다.


만정도화(滿庭桃花) : 뜰에 가득히 피어 있는 복숭아꽃.

지거다 : 지었다. '~거다'는 '~었다, ~았다'로 과거시제 종결어미.

쓸오려 : '쓸려'의 아어형.

하는고야 : 하는구나! '~고야'는 감탄형 종결어미.


<감 상> 지난밤 불던 바람에 뜰에 가득 피어 있던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다 떨어져 버렸다. 철모르는 아이 놈은 비를 들고 그것을 다 쓸어버리려고 하는구나. 아서라, 떨어진 꽃인들 꽃이 아니냐. 구태여 쓸어 무엇 하겠느냐.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더 풍취 있는 일이 아니냐.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멋을 아는 사람은 낙화나 낙엽, 또는 겨울에 내린 첫눈 따위를 박박 쓸어버리지 않는 법이다. 박박 쓸어버린다고 해서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고정 관념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그 고정 관념, 그 선입관, 그 '작은 나'를 떨어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마음에 '집착'이 있는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사람, '작은 나'에 사는 사람이다.


뜰을 벌겋게 덮은 '만정 낙화'. 그것이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그것을 쓸어 내는 것을 말리기까지 할 경지라면, 그는 확실히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178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떠 있다 / 정온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떠 있다

왕래 백구는 무슨 뜻 먹었는고

앗구려 공명도 말고 너를 좇아 놀리라


정 온(鄭蘊)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 이괄의 난 때에는 이조참의로서 임금을 모시고 피난했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이조참판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척화를 부르짖었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자결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으로 들어가 띠집을 짓고 탄식하다가 5년만에 죽었다. 여의정에 추증되었다.


왕래 백구(往來白鷗) : 오락가락하는 갈매기들.

앗구려 : 감탄의 뜻을 가진 '아서라.'


[감상] 읽던 책을 덮고 창문을 여니, 앞내에 배가 둥실 떠 있구나! 그 위를 오락가락하며 날고 있는 갈매기들은 무슨 뜻을 품고 있느냐. 아니다,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무심히 자연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부귀도 공명도 다 말고, 나는 너를 좇아 마음을 비우고 한가로이 놀겠노라. 당시로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다룬 극히 통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표현 형식에 만만치 않은 신선미가 느껴진다.



179 자모사(慈母思) / 정인보(鄭寅普, 1893. 5. 6 서울~1950 ?)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 쭉으렁

우리 속담에 쭉으렁 밤송이 삼년 달린다는 말이 있다.

다병(多病)한 사람이  그대로 부지하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하며  못 생기고  오래 사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한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 우굿이 : 茂盛한 모양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이 아니 못보심가

내 없어 네 미워진 줄 어이 네가 알것가


* 므가나 : 미운 * 양자 : 모양


7

눈 한번 감으시니 내 일생이 다 덮여라

질* 보아 가련하니 님의 속이 어떠시리

자던 닭 나래쳐 울면 이때리니 하여라


* 질 : 저를, 나를


8

체수는 적으셔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 없어 옴으신 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 허리에 부지런히 뵈더니


9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10

미닫이 닫히었나 열고 내다보시는가

중문 턱 바삐 넘어 앞 안 보고 걸었더니

다친 팔 도진다마는 님은 어대 가신고


11

젖 잃은 어린 손녀 손에 끼고 등에 길러

색시꼴 백여가니 눈에 오즉 밟히실가

봉사*도 님 따라간지 아니 든다 웁내다


* 봉사 : 봉선화의 와(訛), 소녀들이 봉선화를 짓찧어서 손톱에 홍색을 들이니 이를 봉사 들인다고 한다.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 바릿밥 : 바리(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에 담아 둔 밥. 놋그릇에 담은  따뜻한 밥은  남에게 주시고 어머니는 늘 찬밥을 잡수셨다는 뜻으로,  어머니의 희생적 자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 보공 : 사람이 죽은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

겨울에는 솜치마 좋다고 하시면서도 그것을 아끼시느라 입지 않으시더니, 끝내 그 솜치마는 돌아가신 뒤에 관의 빈 곳을 채우는 옷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근검한 생활 태도와 그에 대한  시적 자아의 안타까움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3

썩이신 님의 속을 깊이 알 이 뉘 있스리

다만지 하루라도 웃음 한번 도읍과저

이저리 쓰옵던 애가 한 꿈되고 말아라


14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

닮을 이 뉘 없으니 어딜 향해 찾으오리

남으니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녀


15

불현듯 나는 생각 내가 어이 이러한고

말 갈 데 소 갈 데로 잊은 듯이 열흘 달포

설움도 팔자 없으니 더욱 느껴 합내다


16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7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 제 어인 줄을 몰랐고여

님의 공 깨닫고 보니 님은 벌써 머셔라


* 밤중만 어매 그늘 세 번이나 나린다네 : 아이가 잘 때에도 어미의 이슬( 어머니의 눈물,  정성, 사랑)이 세 번 내린다’라는 속신(俗信)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어머니의 끊임없는 정성을 인유적(引誘的)으로 서술하고 있다.


18

태양이 더웁다 해도 님께 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이 한 웃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 날이 언제뇨


19

어머니 부르올 제 일만 있어 부르리까

젖먹이 우리 애기 왜 또 찾나 하시더니

황천(黃泉)이 아득하건만 혼자 불러 봅내다


20

연긴가 구름인가 옛일 벌써 희미(熹微)해라

눈감아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 낯이라

남없는 거룩한 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21

등불은 어이 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 삼아 훨훨 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 못 이뤄 하노라


22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움이면 다 설움가

오십년 님의 살림 눈물인들 남을 것가

이저다* 꿈이라시고 내 키만을 보서라


* 이저다 : 이것 저것 모두


23

북단재 뾰죽집*이 전에 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에 밤동산은 어디런가

님 눈에 비취던 무산* 그저 열둘이려니


* 뾰죽집 : 천주교당(天主敎堂)의 속어

* 경눗골 : 정릉동(貞陵洞)

* 무산 : 巫山十二峰


24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우신 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 짚자 님을 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씀하실 젠 진천인 듯하여라


25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 하리라


26

시식(時食)도 좋건마는 님께 드려 보올 것가

악마듸* 풋저림을 이 없을 때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 악마듸 : 억세인 것, 억센


27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

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온 듯

코끝에 하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내다


28

님 분명 계실 것이 여기 내가 있도소니

내 분명 같을 것이 님 가신지 네 해로다

두 분명 다 허사외라 뵈와 분명하온가


29

친구들 나를 일러 집안 일에 범연타고

아내는 서워라고 어린아이 맛없다고

여린 맘 설움에 찢겨 어대 간지 몰라라


30

집터야 물을 것가 어느 무엇 꿈아니리

한 깊은 저 남산이 님 보시던 옛 낯이라

게섰자 눈물이리만 외오 보니 설워라


31

비 잠깐 산 씻더니 서릿김에 내 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 없다

맘 선뜻 반가워지니 님 뵈온 듯하여라


32

마흔의 외둥이를 응아하자 맏동서께

남없는 자애렸만 정 갈릴가 참으셨네

이 어찌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 줄 압내다


33

찬 서리 어린 칼을 의로 죽자 내 잡으면

분명코 우리 님이 나를 아니 붙드시리

가서도 계신 듯하니 한 걸음을 긔리까*


* 긔리까 : 만과(瞞過), 속여 넘김


34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 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35

백봉황(白鳳凰) 깃을 부쳐 도솔천궁 향하실 제

아득한 구름 한점 옛 강산이 저기로다

빗방울 오동에 드니 눈물 아니 지신가


36

엽둔재 높은 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 뒤 잦은 걸음 얘기 어이 그쳤으리

주막집 어둔 등잔이 맛본상*을 비춰라


* 맛본상 : 겸상으로 보아 놓은 밥상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 새삼 고국 생각이 나서 서럽다고 하시고의 뜻으로 고국을 떠나 유랑민이 된 설움이 새삼 복받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38

개울가 버들개지 바람 따라 휘날린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 마라

이 말씀 지켰다한들 누를 향해 사뢸고


39

이만 사실 님을 뜻조차도 못받든가

한번 상해드려 못내 산 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 다시 오시랴


40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 어버이의 사랑이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

* 욱은 : 우거진, 어머님 묻히신 곳에 풀이 우거진 오늘날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바쁜 일상 생활에 찌들려 어머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돌아가신 후에야 뼈저리게 뉘우침을 표현한 것이다

*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전체를 요약하는 성격의 장, 어머니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그리고 후일의 효마저 겉모습만을 보이는 자식으로서의 회한을 노래 (풍수지탄)



180 재 넘어 성 권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 정철


재 넘어 성 권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은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희야 네 권롱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하여라


성권롱(成權農) :권농은 지방에서 농사를 권장하는 유사(有司) 친구였던 성혼을 가리키는 말

언치 : 안장 밑에 까는 털 헝겊


제 넘어 성 권농네 집이 있는데, 그 집에서 담근 술이 익었다는 기별을 어제 받고, 누워서 반추(反芻)를 즐기고 있는 소를 발로 차 일으켜 언치만 놓아 눌러 타고, 성 권농 집에 이르러 아이를 불러 이르기를 정 좌수가 왔다고 일러라.


유배지의 생활의 일단이 이 시조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말없이 입을 다물고 보내는 세월 속에서도 인간 정철은 우거(寓居)를 걷어차고, 마을의 지방에서는 유일한 지식인인 권농 벼슬 을 하는 성씨 집 문을 두드리기를 유일한 낙으로 삼은 것 같다. 정 좌수가 왔다고 하인에게 외치는 소리부터가 얼마나 유쾌한가 그만큼 성 권농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권농은 또한 정 철의 인간됨을 알아보고, 그를 모실 줄 아는 위인이었기에 정 철의 말벗, 술벗 구실을 다 했을 것이 이 시조를 음미 해 보면 저절로 짐작이 되어 우울한 구름이 끼지 않는다.


대문간에 서서 '이리 오너라'를 부르기보다는 '아희야 정좌수가 왔다고 일러라'하는 말씨부터가 정 철의 평민 정신이 스며 나온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우선 호감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마음 놓고 아이를 아이라고 부를 만큼 정 철은 인자한데가 있고, 아이와 얼마나 다정하게 지냈는가 하는 내력이 그 말속에 묻어 있어서 좋다.


많은 작품을 남겼던 정철은 이조중기 정치가이면서 시인 이었다. 그의 임금에 대한 남다른 충성은 어릴 때부터 궁중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그래서 궁정에 대한 짙은 향수 때문이라고도 한다. 학식도 뛰어났던 그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결백하고 곧은 성격은 많은 사람들과 부딪쳤고 왕과도 부딪쳤다. 의견대립이 있을 때에는 국왕 앞이라도 상대방을 가차 없이 공격하여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정치생활은 평탄하지 못했으며 항상 주변이 시끄럽고 그를 모함하는 무리들로 잠잠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명작. 관동별곡은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당시 관내를 돌아보며 지은 것들인데 금강산의 빼어난 경관을 그려놓은 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고전문학의 최고 걸작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들은 그가 의지하던 율곡이 세상을 뜨고 나이 50이 되던 해 임금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반대파에 의해 추방되다시피 고향으로 돌아와서 쏟아놓은 노래들이다. 말하자면 고관대작(高官大爵) 위에 군림했던 정 철이건만, 한 이웃 할아버지로 아이들과 다정히 지내는 풍모가 있어 이 시조는 정 철의 동심마저 엿보이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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